“저추위엄청타요.그래서불가사의한거예요.산에만가면어디서그런열이나는지모르겠어요.제가얼마나엄살이심한데요.” 히말라야정상의온도는날씨에따라편차가크지만평균영하30~40도.그날씨에침낭,텐트,각종장비,눈을녹여물을만들코펠과버너등이담긴20kg짜리배낭을메고등정해야한다.지난해마나슬루등정때함께한네팔인셰르파옹추씨는그에게“남자보다힘이더좋다,이런여성은처음이다”라고했고,뉴질랜드영사이자산악인리포터홀리여사는“이틀만에속공으로등정한것은내기록엔없다.대단한여성이다”라고했다. 마나슬루등정때에는SBS여행다큐<쉼표>에서동반촬영을했다.이프로그램에서그의등정모습은(미안하지만)쉬워보였다.웬만한아마추어가동네야산을오르는것처럼여유로운표정이었다.사흘동안한끼밖에못먹었다는데목소리에에너지가남아돌았고,정상에서찍은사진은혈색이살아있었다.턱수염에고드름이주렁주렁달리고,시커먼얼굴로좀비처럼사진에찍힌남성산악인들의표정과는대조적이었다. 똑같이훈련한다고다오은선처럼되지는않을터.그는‘타고난유전자’도한몫했음을인정한다.태능선수촌에서“황영조보다심폐기능이더낫다”는판정을받기도했다. “부모님이워낙체력이좋으세요.아버지는69세,어머니는65세이신데,요즘도두분이매일산에오르시거든요.북한산,도봉산에도오르고우리집뒷산인용마산에도오르세요.제속에모험적이고진취적인걸좋아하는유전자가있는것같아요.제가가장존경하는인물이칭기즈칸이에요.” 군인출신인그의아버지와함께찍은사진을보았다.훤칠한키에서구형미남이었다.아버지는당신자신에게는엄격했지만자식들에게는한없이관대하셨단다.자식들이하고싶어하는게있으면무조건믿어주고밀어줬다.그러면서도가정적이라주말이면가족들을데리고여행을떠났다고.그는“어렸을때에는산,강,바다등으로놀러다닌기억밖에없다”고회상했다.산악인이되겠다는꿈도이과정에서자라났다.초등학교5학년때가족들과버스를타고여행을가다북한산인수봉에사람들이매달려있는광경을보고‘어른이되면나도저걸꼭해보겠다’고마음먹었다. “생존본능같아요.아무도없는황량한벌판에혼자서있으면엄청난공포감이밀려와요.신경이곤두서면서시각과청각,후각등이점점발달하죠.사람을보는눈도예리해져요.상대의기운이선한지아닌지를몇초안에본능적으로판단하죠.” 늘예상하지만언제어떻게생길지모르는일들을맞닥뜨리면서인생을배운다는오은선.지난마나슬루등정때는예상치못한악천후가닥쳐그는텐트안에서펑펑울었다.아무리계획을철저히세워도천재지변앞에서는속수무책이다. “속상하죠.하지만자연에복종하고기다려요.그걸거스르려고하면문제가생기거든요.‘왜이런시련을주시나’하는생각이들때도있지만따지면뭐하겠어요.어차피시간이지나면가라앉을것.때를기다리죠.그게사실더지루하고힘들어요.무시무시한눈보라를만나면자연의위대함을느껴요.자연앞에서인간이란존재가얼마나미미한지절감해요.” “종교는없어요.엄마는불교신자시고요.산과가까이해서인지절에가면편하긴해요.히말라야를등정할때는라마제라는걸지내요.인간의영역에서신의영역으로들어가니굽어살펴달라고하는의식이죠.처음에는형식적으로따랐어요.셰르파에게는그네들의종교이자중요한의식이니까그들의풍습을존중해주자는의미에서맹목적으로따른거죠.그런데자꾸만가다보니(신의존재가)느껴져요.” 아무도없는망망대해같은설원에혼자서있을때기분은어떨까.아득한공포감일까,대지의신에게포근히안긴느낌일까. “상상하는것과실제는달라요.상상하는것이훨씬더무서워요.막상그안에서동화되면무섭지는않아요.한걸음도못뗄정도로힘들지만.다녀와서사진으로다시보면그공간이비현실적으로다가와요.‘아,내가저기다녀온거맞아?’하는생각도들어요.특히에베레스트는아득히다른세계를다녀온느낌이에요.하고싶은게있으면상상만하면서두려움에주춤하면안돼요.몸으로해야해요.” 1966년말띠생,올해로마흔셋.나이를굳이들먹이는건히말라야등반가의평균나이가35세라는사실때문이다.올해또네개의고봉을등정하려는그에게‘더나이들기전에’하는조바심은없는지물었다. “그게크죠.게다가14좌를완등한여성산악인이전세계에단한명도없으니까내가처음으로완등하면좋지않을까,하는약간의욕심이더해졌고요.지나친욕심은해가되지만약간의욕심은추진력이돼요.무리해서가면탈이생기지만적당한욕심은좋다고생각해요.한번해보고능력이안되면어쩔수없는거죠.” “정복이라는말은서양인에게는맞을지모르지만우리나라에는맞지않아요.알프스는굉장히험하지만우리나라산들은만만하잖아요.옛선인들보면누가산을정복한다는표현이없어요.입산한다고하지.등산이라는표현이생긴지도얼마안됐잖아요.저는‘시도’라는표현을좋아해요.” “영어와수학을가르쳤는데학부형들에게인기짱이었어요.씩씩하고활기넘친다고다들좋아했습니다.주3일근무했는데,주5일근무한선생님들과급여가비슷했어요.” 그는자신을‘현실적인사람’으로소개한다.전산학과를택한이유는‘비전이좋아서’,공무원을택한이유는‘먹고사는데지장이없어서’였다.살면서이것아니면안된다는간절함이없었다는오은선.그가간절히바라본대상은오직산뿐이었다.미혼인그에게사랑에대해묻자“산에집중해야해요.생명이오고가는일이라…”하며말끝을흐리더니다시말을이었다. 그에게산을만나면서가장달라진것을묻자“인상이요”라고답한다. “처음에베레스트갈때에는전투하듯이준비했어요.훈련을마치고나서찍은사진이있는데,제가봐도섬뜩했어요.그느낌을잊지못해요.그런데갈수록인상이좋아지는걸느껴요.어렸을때누구한테예쁘다는소릴듣지못했는데,요즘에는예쁘다는소리를많이들어요.예전부터알고지낸분들도‘네가그렇게예쁜줄몰랐다’고해요.40세넘어서예쁘다,아름답다는소리를듣는다니까요.하하하.좋아하는일을하다보니그렇게된것같아요.” 요즘그는법정스님의책에푹빠져있다.배낭에서주섬주섬《무소유》를꺼내면서이렇게말했다. “법정스님책을만나고충격을받았어요.느낌이너무강렬해서책장을넘길수가없었죠.평이한문장이어떻게그렇게묵직한울림을줄수있는지….예전에는누가글을써달라고하면‘내가뭐대단하다고…’하면서거절했는데생각이바뀌었어요.나의평범한문장속에힘겨움이드러나고,누군가는그힘겨운호흡을같이하면서희망과위로를느낄수있겠구나,싶어요.아,독자들에게이말씀꼭드리고싶어요.평범함속에길이있고,평범함속에서빛나는게진짜아름다운거라고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