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말라야 고봉 14좌에 도전하는 산악인 오은선 *-

히말라야고봉14좌에도전하는산악인오은선

현재8000m급히말라야14좌를완등한산악인은우리나라의엄홍길,박영석,한왕용씨를포함해세계에서13명뿐이다.산악인오은선은2010년초마지막한좌안나푸르나(8091m)까지올라세계최초로14좌를완등한여성산악인이되기위해출발하였다.

매번인간의한계를시험하며신화를써가는그에게묻고싶은것이많았다.청담동의한뷰티숍에등장한그는여러모로기대를배반했다.우선그는왜소했다.155cm에50kg의그를본순간‘땅꼬마’라고표현했던기사가떠올랐다.또그는천생‘여자’였다.그는“나는한순간도여자가아닌적이없다”고했다.이날도맨얼굴보이기민망해비비크림을발랐다고했고,생사를걸고정상에오르면서도자외선차단제와수분크림을수시로바른다고했다.사진촬영을하면서는“여자는찬데앉으면안돼요”하며방석을청하는가하면,조금만추워도오돌오돌떨었다.

“저추위엄청타요.그래서불가사의한거예요.산에만가면어디서그런열이나는지모르겠어요.제가얼마나엄살이심한데요.”

히말라야정상의온도는날씨에따라편차가크지만평균영하30~40도.그날씨에침낭,텐트,각종장비,눈을녹여물을만들코펠과버너등이담긴20kg짜리배낭을메고등정해야한다.지난해마나슬루등정때함께한네팔인셰르파옹추씨는그에게“남자보다힘이더좋다,이런여성은처음이다”라고했고,뉴질랜드영사이자산악인리포터홀리여사는“이틀만에속공으로등정한것은내기록엔없다.대단한여성이다”라고했다.

마나슬루등정때에는SBS여행다큐<쉼표>에서동반촬영을했다.이프로그램에서그의등정모습은(미안하지만)쉬워보였다.웬만한아마추어가동네야산을오르는것처럼여유로운표정이었다.사흘동안한끼밖에못먹었다는데목소리에에너지가남아돌았고,정상에서찍은사진은혈색이살아있었다.턱수염에고드름이주렁주렁달리고,시커먼얼굴로좀비처럼사진에찍힌남성산악인들의표정과는대조적이었다.
브로드피크정상

“그런이야기많이들었어요.에스컬레이터타고갔느냐고웃으며묻는분도있어요.그때는전체적으로컨디션이좋았어요.날씨가나빠마지막캠프에서오래기다리느라컨디션조절이되어있었으니까요.”

똑같이훈련한다고다오은선처럼되지는않을터.그는‘타고난유전자’도한몫했음을인정한다.태능선수촌에서“황영조보다심폐기능이더낫다”는판정을받기도했다.

“부모님이워낙체력이좋으세요.아버지는69세,어머니는65세이신데,요즘도두분이매일산에오르시거든요.북한산,도봉산에도오르고우리집뒷산인용마산에도오르세요.제속에모험적이고진취적인걸좋아하는유전자가있는것같아요.제가가장존경하는인물이칭기즈칸이에요.”

군인출신인그의아버지와함께찍은사진을보았다.훤칠한키에서구형미남이었다.아버지는당신자신에게는엄격했지만자식들에게는한없이관대하셨단다.자식들이하고싶어하는게있으면무조건믿어주고밀어줬다.그러면서도가정적이라주말이면가족들을데리고여행을떠났다고.그는“어렸을때에는산,강,바다등으로놀러다닌기억밖에없다”고회상했다.산악인이되겠다는꿈도이과정에서자라났다.초등학교5학년때가족들과버스를타고여행을가다북한산인수봉에사람들이매달려있는광경을보고‘어른이되면나도저걸꼭해보겠다’고마음먹었다.
마나슬루정상

메이크업을받던그는속눈썹에마스카라가닿자마자눈이시뻘개지면서눈물을흘렸다.히터가오래가동돼건조해도금세눈물을흘렸다.산에다닐수록인공적인것,오염된환경에민감해진다고한다.또육감이점점발달한다고했다.

“생존본능같아요.아무도없는황량한벌판에혼자서있으면엄청난공포감이밀려와요.신경이곤두서면서시각과청각,후각등이점점발달하죠.사람을보는눈도예리해져요.상대의기운이선한지아닌지를몇초안에본능적으로판단하죠.”

늘예상하지만언제어떻게생길지모르는일들을맞닥뜨리면서인생을배운다는오은선.지난마나슬루등정때는예상치못한악천후가닥쳐그는텐트안에서펑펑울었다.아무리계획을철저히세워도천재지변앞에서는속수무책이다.

“속상하죠.하지만자연에복종하고기다려요.그걸거스르려고하면문제가생기거든요.‘왜이런시련을주시나’하는생각이들때도있지만따지면뭐하겠어요.어차피시간이지나면가라앉을것.때를기다리죠.그게사실더지루하고힘들어요.무시무시한눈보라를만나면자연의위대함을느껴요.자연앞에서인간이란존재가얼마나미미한지절감해요.”
마나슬루


산에오르며자연에순응하는것을배우고,점점예뻐졌어요
로체정상

8000m이상의고도는‘신의영역’으로불린다.공기가희박하고기온이낮아생명이살수없기때문이다.그래서히말라야고봉등정은신과인간과자연이하나가되어만들어내는거대한드라마다.우주에나가초록지구를본우주비행사제임스어윈은“신을믿게됐다”며전도사가됐다.인간의영역을벗어난사람은종교적이된다고하는데,그의종교가궁금했다.

“종교는없어요.엄마는불교신자시고요.산과가까이해서인지절에가면편하긴해요.히말라야를등정할때는라마제라는걸지내요.인간의영역에서신의영역으로들어가니굽어살펴달라고하는의식이죠.처음에는형식적으로따랐어요.셰르파에게는그네들의종교이자중요한의식이니까그들의풍습을존중해주자는의미에서맹목적으로따른거죠.그런데자꾸만가다보니(신의존재가)느껴져요.”

아무도없는망망대해같은설원에혼자서있을때기분은어떨까.아득한공포감일까,대지의신에게포근히안긴느낌일까.

“상상하는것과실제는달라요.상상하는것이훨씬더무서워요.막상그안에서동화되면무섭지는않아요.한걸음도못뗄정도로힘들지만.다녀와서사진으로다시보면그공간이비현실적으로다가와요.‘아,내가저기다녀온거맞아?’하는생각도들어요.특히에베레스트는아득히다른세계를다녀온느낌이에요.하고싶은게있으면상상만하면서두려움에주춤하면안돼요.몸으로해야해요.”


그는7대륙최고봉(에베레스트,매킨리,아콩카구아,엘부르즈,킬리만자로,코지어스코,빈슨매시프)과가셔브룸Ⅱ(8035m),시샤팡마(8027m),초오유(8201m),K2(8611m),마칼루(8463m),로체(8516m),브로드피크(8047m),마나슬루(8156m)등정에성공했다.특히지난한해동안무려네개의고봉등정에성공해갈수록무서운집중력을보이고있다.

1966년말띠생,올해로마흔셋.나이를굳이들먹이는건히말라야등반가의평균나이가35세라는사실때문이다.올해또네개의고봉을등정하려는그에게‘더나이들기전에’하는조바심은없는지물었다.

“그게크죠.게다가14좌를완등한여성산악인이전세계에단한명도없으니까내가처음으로완등하면좋지않을까,하는약간의욕심이더해졌고요.지나친욕심은해가되지만약간의욕심은추진력이돼요.무리해서가면탈이생기지만적당한욕심은좋다고생각해요.한번해보고능력이안되면어쩔수없는거죠.”


그는무슨질문이든솔직하고직설적으로답했다.질문의핵심을파악하고핵심적인답변을내놨다.이느낌을전하자,“당연하죠.정상만봐야죠.삼천포로빠지면죽음이에요”하고농을한다.그는인터뷰내내‘도전’,‘정복’이라는말을피했다.산을정복대상으로보는사고자체가싫다고잘라말했다.

“정복이라는말은서양인에게는맞을지모르지만우리나라에는맞지않아요.알프스는굉장히험하지만우리나라산들은만만하잖아요.옛선인들보면누가산을정복한다는표현이없어요.입산한다고하지.등산이라는표현이생긴지도얼마안됐잖아요.저는‘시도’라는표현을좋아해요.”


오은선은수원대전산학과를졸업하고2년간컴퓨터학원강사를했다.그후3년간서울시교육위원회소속전산직공무원으로지내다1999년,에베레스트원정대모집에지원하면서안정된직장을버렸다.처음에베레스트에오를때대원의실종으로정상시도를눈앞에서접어야했다.그해가을다시박영석등반대대원으로마칼루에갔지만이번엔셰르파의죽음으로실패했다.2001년또다시박영석원정대의일원으로K2등반에나섰지만대원한명이추락사하면서마지막캠프(8000m)에있던그는눈앞에서또꿈을접어야했다.그와중에스파게티집운영도하고,학습지방문교사도했다.

“영어와수학을가르쳤는데학부형들에게인기짱이었어요.씩씩하고활기넘친다고다들좋아했습니다.주3일근무했는데,주5일근무한선생님들과급여가비슷했어요.”

그는자신을‘현실적인사람’으로소개한다.전산학과를택한이유는‘비전이좋아서’,공무원을택한이유는‘먹고사는데지장이없어서’였다.살면서이것아니면안된다는간절함이없었다는오은선.그가간절히바라본대상은오직산뿐이었다.미혼인그에게사랑에대해묻자“산에집중해야해요.생명이오고가는일이라…”하며말끝을흐리더니다시말을이었다.
마칼루정상

“이전에누군가가‘너는산과사랑에빠졌다’고하면아니라고부정했는데,곰곰생각해보면맞는것같아요.새로운고봉을만나는건새애인을만나는느낌과비슷해요.가기전에설레기도하고,두렵기도하고,버겁기도하고….그런데사랑도버거운거맞죠?”

그에게산을만나면서가장달라진것을묻자“인상이요”라고답한다.

“처음에베레스트갈때에는전투하듯이준비했어요.훈련을마치고나서찍은사진이있는데,제가봐도섬뜩했어요.그느낌을잊지못해요.그런데갈수록인상이좋아지는걸느껴요.어렸을때누구한테예쁘다는소릴듣지못했는데,요즘에는예쁘다는소리를많이들어요.예전부터알고지낸분들도‘네가그렇게예쁜줄몰랐다’고해요.40세넘어서예쁘다,아름답다는소리를듣는다니까요.하하하.좋아하는일을하다보니그렇게된것같아요.”

요즘그는법정스님의책에푹빠져있다.배낭에서주섬주섬《무소유》를꺼내면서이렇게말했다.

“법정스님책을만나고충격을받았어요.느낌이너무강렬해서책장을넘길수가없었죠.평이한문장이어떻게그렇게묵직한울림을줄수있는지….예전에는누가글을써달라고하면‘내가뭐대단하다고…’하면서거절했는데생각이바뀌었어요.나의평범한문장속에힘겨움이드러나고,누군가는그힘겨운호흡을같이하면서희망과위로를느낄수있겠구나,싶어요.아,독자들에게이말씀꼭드리고싶어요.평범함속에길이있고,평범함속에서빛나는게진짜아름다운거라고요.”

-글김민희TOPCLASS기자/사진:이창주/TOPCLASS3월호에서-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