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계(市界)종주 5구간] *-

[서울시계(市界)종주5구간]
겸재정선·구암허준만나고봉수대와한강나루터지나쳐
대부분야트막한산…근린공원·고갯길많아

▲서울시계종주팀이양천궁산공원을내려오며활짝웃고있다.제일앞이총부대장유상헌씨,바로그뒤가올해65세인전윤정대장.
서울의동쪽과북쪽이북한산·도봉산·수락산·불암산·망우산·아차산등산으로둘러쳐져경기도와경계를이루고있다면서쪽과서북·서남쪽은한강을사이에두고겸재정선기념관,허준박물관등과야트막한산에조성된근린공원등이특징을이룬다.

야트막한산은기본적으로고개를갖고있다.서울에는문헌상으로230개이상의많은고개가있었던것으로전한다.현재서울은택지나도로개발로상당수의고개가없어졌으나아직도예전그대로혹은흔적이남은고개들이있다.

북악산에서남쪽으로뻗어있는산줄기에고개가많다.삼선교에서혜화동으로넘어가는동소문고개,서울대부속병원과창경궁정문북쪽사이에있는박석고개(薄石峴),동대문경찰서부근에서종로5가로넘어가는배오개고개(梨峴)등이다.인왕산서사면에서뻗어나와북서쪽통일로로통하는무악재외에도풀무재,미아리고개,망우리고개,진고개등이있다.

이러한고개들은세월이흐르면서많이변모되었지만무악재,남태령,미아리고개,망우리고개등몇몇큰고개는그면모를유지하고있다.고개들은없어졌지만그이름은지금도동네이름으로,또는지하철역이름으로남아우리에게친숙한느낌을준다.
고개이름이동명으로남아있는것은인현동(仁峴洞)·송현동(松峴洞)·아현동(阿峴洞)·만리동(萬里洞)·무악동(毋岳洞)·망우동(忘憂洞)등이다.지하철역이름으로는3호선무악재역,4호선남태령역·당고개역이있다.5호선의애오개역,6호선의버티고개역,7호선의장승배기역등도지명유래를전한다.

고개는기본적으로도적떼나호랑이가출몰하기쉬워길손들에게공포의대상이다.그래서고개를넘을때모여서가거나군인들의호위를받으며넘곤했다.따라서고개주위에는주막이있었다.길손들은고개를무사히넘게해달라는기원을담은서낭당을만들어빌었다.이서낭당이나중엔마을의안녕과풍요까지기원하는장소로확대됐다.지방에가면서낭당을쉽게볼수있으나서울에서현재흔적을찾을수있는서낭당은12곳으로전한다.서낭당이고개,서낭당고개,사당이고개,도당재등으로그자취를알수있다.

유난히야트막한산이많은서울시계종주제5·6구간을이번에도거인산악회·54트레킹동호회회원들과같이했다.

[5구간]
지축역~앵봉(서오릉)~벌고개~봉산~수색교~가양대교~구암근린공원(허준박물관)~궁산~겸재정선기념관~마곡체육공원~방화역21.9㎞

이번구간은강북에서만나한강을건너는대장정구간이다.대장정이라고하기엔가소로운거리지만한강을건넌다는,그것도북쪽끝에가까운지축역에서만나한강을건넌다고하기에굉장히먼거리로느껴졌다.지축역에서오전9시에일행을만났다.모이는회원들은구간이지날때마다점점더줄었다.1구간을시작할때는그추운날씨에도30명이넘었는데,지금은10명이채안된다.대단한사람들이다.다들60세를바라보거나60세를훌쩍넘겼는데….아마‘걷기의달인’경지에오른분들같다.

3호선지축역을등지고남쪽으로향했다.한마음미용실의커다란간판이눈에들어온다.기준점으로삼을만한곳이다.조금내려오니주변은온통공사판이다.이곳도뉴타운건립예정지라허허벌판에각종건축자재들이쌓여있다.그사이에있는시경계도로를따라걸었다.2차선도건너고,4차선도로도넘고,통일로도지나서앵산자락임도로접어들었다.야트막한앵산이서울과경기도고양의경계를이룬다.앵산자락오른쪽(서쪽)으로는골프장과서오릉이있다.

서오릉(西五陵)은5개의왕릉으로구성된사적제198호로지정된유적지다.세조3년(1457)세자장(璋:후대에덕종으로추대)이사망후풍수지리설에따라이곳에모셔진것이시초다.덕종과소혜왕후의경릉(敬陵),8대예종과계비안순왕후의무덤인창릉(昌陵),19대숙종과제1계비인현왕후·제2계비인원왕후의명릉(明陵),숙종의원비인인경왕후의무덤인익릉(翼陵),21대영조원비정성왕후의무덤인홍릉(弘陵)까지다섯왕과왕후의능을모셨다.경기도구리에있는동구릉다음으로큰조선왕실의가족무덤이다.

▲강장골산초입에있는좁은길엔개나리와벚꽃,후박나무등이활짝피어걸음걸이를더욱가볍게한다.
서오릉은조선왕실가족무덤

조선시대에는품격에따라왕과왕비의무덤은‘능’,왕의생모·왕세자빈의무덤은‘원’,대군·공주등의무덤은‘묘’로구분해불렀다.서오릉에는5개의능외에도조선왕조최초의‘원’으로명종의첫째아들인순회세자의무덤인순창원이있으며,숙종의후궁으로많은역사적일화를남긴희빈장씨의무덤도있다.

서오릉방향으로는능선에서철제펜스로문화재구역을보호하고있다.앵봉과응봉(244m)을거쳐벌고개로가는길이시경계다.벌고개엔서울시와경기도를가르는이정표가있다.

사실서오릉뒷산의명칭은조금애매하다.잘닦인등산로덕택에많은주민이이용하고있지만이산의이름을정확히아는사람은없었다.어떤사람은“이산전체가앵봉산”이라고하는가하면또다른사람은“응봉과앵봉의구분은…”이라며얼버무렸다.여하튼야트막한봉우리들은벌고개가있는서오릉을지나수색까지계속되며,서울과경기도의경계를이룬다.

벌고개는갈현동의옛자연부락인궁말에서서오릉으로넘어가는고개를말한다.풍수지리상이고개는덕종과덕종비소혜왕후한씨의능인경릉의좌청룡줄기에걸쳐있다.그런데지반이낮고약해사람이지나다니면더욱낮아질염려가있어통행을금지시켰다.만일지나는사람이있으면큰벌을준다고해서벌고개(罰峴)라이름을붙였다.

응봉에서내려오면서오릉로와접한다.도로를건너기위해서는서울방향으로50m쯤내려와횡단보도를지나다시시경계를찾아올라가야한다.그렇게올라가다다르는산이일반지도에표시된봉산이다.

봉산(205m)은정식명칭이덕산(德山:일명거북산)으로알려져있다.서울의서북쪽마을을병풍처럼둘러싸고있는산이다.앵봉,응봉을거쳐벌고개에서끊어진산은다시덕산에서일어나갈현동,구산,역촌,신사등으로이어져수색까지약7㎞연봉으로이어진다.

덕산은서울서북부주민과고양동남쪽주민들의휴식처이면서체력단련장이기도하다.능선을따라걷다가쉴만한곳에이르면정자와운동기구가구비돼있어많은주민이활용하고있다.이용주민은대부분서울시민인데고양시에서정기적으로검사하는약수터도10곳이넘는다고했다.처음나온정자인‘봉수정(烽燧亭)’에앉아쉬고있는등산객들에게이산이름이뭐냐고물어봤다.
“전체산형세가거북이모양을닮아서거북이산이라고한다”고했다.

▲(위)종주팀이출발하기직전파이팅을외치고있다.(아래)꿩고개길중진달래꽃이만발한곳을종주팀이걷고있다.
허준의호따서구암근린공원조성

아마산이라고하기엔너무야트막해서사람들이정식명칭을알려고하지않아그러려니싶었다.실제로이산이름을정확히아는주민은현장에서만난4명중한명도없었다.

이어덕산정상(205m)에도착했다.정상은군부대가철조망을치고차지하고있어접근이금지돼있고,바로그밑에‘고은정(高恩亭)’이등산객을맞았다.낮은산이라등산로는외길이다.간혹동네에서올라오는등산로로두세갈래정도나뉘기는했다.
마침사거리가나왔다.‘←중산생활체육광장,산책로↑,덕산약수터→’를가리키는이정표가있었다.덕산이란명칭이처음등장했다.

은신정,수향정을지나저멀리한강이보이는수색까지나아갔다.이제부터는평지로걷는다.수많은차량과소음을견뎌야한다.울퉁불퉁하지만그래도산길이걷기엔훨씬낫다.최고령인우리의전윤정대장은얼굴을완전히가렸다.전대장은올해65세인데도등산과마라톤으로다져진체력덕분인지50을갓넘긴사람처럼아직피부가탱탱한편이다.열심히운동한결과모든사람의부러움을사고있다.친구들은모두꼬부랑할머니가다돼같이다닐사람이없다고한다.

▲1종주팀이궁산우수조망대에서한강과방화대교,행주대교를바라보고있다.2종주팀이소나무숲사이로난등산로를걷고있다.3종주팀이모두모여정확한위치와지명을지도에서확인하고있다.4방화대교와행주대교,한강을배경으로종주팀이포즈를취했다.
수색교를넘었다.다리아래로는경의선철로가지난다.철로차량기지도겸하고있어수많은열차가정차해있다.차량기지담벼락너머로차들이쌩쌩달렸다.왕복10차선은될법하다.잠시라도말을하느라입을열면입안에뭔가씹히는기분이다.찜찜하다.

바로앞에한강을두고동쪽에난지도노을공원이있다.불과몇년전까지만해도산더미같이쌓인쓰레기더미에서나오는악취가뉴스의초점이었지만지금은아름다운공원,억새가우거진연인과함께가보고싶은곳으로꼽히는장소가되었다.참,세상은모를일이다.

강변북로를건너가양대교로한강을지났다.강폭만1㎞에달한다.한강을건너기위해다리위로걸은거리는총2㎞정도됐다.한강에서부는바람을맞고전경을구경하며강위로걷는기분이새삼스러웠다.강에는청둥오리가무자맥질을하며연방먹이를찾고있고,햇빛에반사된강표면은여기저기서반짝거렸다.

다리를건너니바로강변아파트로연결됐다.도로위이정표는오른(서)쪽으로‘허준박물관500m’라고가리키고있었다.바로우회전하지않고뒤로돌아구암근린공원으로가기로했다.어차피시계는한강이니조금더가까이가기로한것이다.

‘근데왜구암인가?’‘허준박물관은또왜여기있지?’하는생각이들었다.구암은허준의호이다.그의호를따서공원을조성한것이다.또한<소설동의보감>과TV드라마‘허준’등에경기도파주와전남장성·영광,경남산청등으로그의출생지가알려졌으나실제로는경기도김포군양천현에서태어나고자랐다.지금의강서구능촌동능곡마을이다.그래서허준박물관이이곳에있는것이다.박물관내부는그의일대기와약탕체험기,약초식별법등한의학과관련한다양한시설로채워져있다.

허준박물관에서50m쯤거리에공암나루터(孔巖津址)라새겨진비석이서있다.“양천과행주를잇던나루터,일명북포(北浦)나루라고하였다”는글로그옛날이곳이나루터였다는사실을알리고있다.지금주변은온통아파트와주거단지로변했다.나루터의흔적은도저히찾아볼수없다.단지주변엔커다란바위에동굴같은구멍이뚫려있어공암이라는지명의유래를짐작케했다.

영등포공고를지나궁산으로갔다.궁산은해발100m도안되는정말야트막한산이지만조선시대양천고을의진산으로통했다.한남정맥의끝자락으로안산·수리산에서북행하여증산(甑山)이되고,낮은구릉이한강으로끝나면서작은봉우리를이루고있다.따라서한강을따라서쪽의개화산등과더불어한강남안에솟아강변의절경을이룬다.<신증동국여지승람>과<여지도서><대동지지>등에“성산(城山)에고성이있는데,그둘레는약218m이고,지금은성으로서의기능은하지않는다”라고기록되어있다.

궁산의이름은파산(巴山)·성산·궁산·관산(關山)·진산(鎭山)등다양했다.파산은삼국시대에주변의지명인제차파의(齊次巴衣)여서연유된것이며,성산은성이있기때문에,진산은양천고을의관방설비가있어그렇게불렸다.관산은바로건너에있는행주산성과함께한강을빗장(關)처럼지킬수있는산이란의미다.궁산은양천향교가있어서궁(宮)으로표시했던것으로공자를숭배하는의미가담겨있다.현재표준명칭도궁산이다.

행주산성과마주보는궁산,이름도다양

▲까치울이있는능고개로종주팀이올라가고있다.
궁산이갖는역사적의의는임진왜란때전라창의사김천일,전라소모사변이중,강화의병장우성전등이김포·통진·양천·강화·인천등지의의병들을이끌고이산에진을치고있다가한강을건너권율장군을도와행주대첩에서크게승리한것을들수있다.양천현감들은매일저녁궁산에올라강건너피어오르는봉화를바라보고국가의안위를살피기도했다.사적제372호로지정된양천고성지도행주산성,파주의오두산성등과함께한강어귀를지키던중요한산성이었다고안내판에설명하고있다.

궁산한강변의뛰어난절경은중국동정호의악양루(岳陽樓)에서바라보는경치에버금간다하여이곳에소악루(小岳樓)라는정자가있다.영조때이유(李楡)가이곳에와소악루를짓고명사들과더불어풍류를즐겼다.겸재정선은양천현감으로부임한뒤매일이곳에올라소일하면서한강변의그림을그렸다.그작품집<한수주유(漢水舟遊)>는오늘날한강변의옛모습을전해주는귀중한자료다.겸재정선의그림이안내도와함께한강을바라보는우수조망자리에서탐방객들을맞고있다.

궁산정상은6·25전쟁때군부대진지가구축되었다.인근주민들이평평한꼭대기의솔밭사이에서산책과경치를즐기고있다.한강의아름다운전경과수많은다리가각양각색의모습으로펼쳐진광경이파노라마처럼지나갔다.
우리의전대장이다시한말씀하신다.

“어휴,저다리를보니내다리가불쌍하다.”

궁산공원을지나이젠5구간끝인줄알았는데아직끝이아니다.궁산을내려가아파트를지나니겸재정선기념관이나왔다.

겸재정선은65세때인영조16년(1740)양천현감으로발령받아부임했다.정선은이곳에서5년간머물면서한강일대의아름다운풍광을그리며종래의남성적산악미위주에부드럽고서정적이며여성적인표현까지겸비하게된다.그의진경산수화를더욱원숙한경지로끌어올린곳이바로양천현인것이다.지금은강서구로바뀌었지만.그래서이곳에그의기념관이있다.

겸재기념관에서마곡레포츠센터를지나강서공고앞사거리에서좌회전해서방화역에도착했다.이젠정말끝이다.

이날은오전9시지축역에서만나방화역까지꼬박21.9㎞(GPS거리)를걸은끝에오후5시에도착했다.정말다리가불쌍할정도로고생했다.

▲수색을지나시계를따라가양대교를건너고있다.
-글박정원차장/사진정정현부장/’월간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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