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한국인’에건강話頭를던지다
"병원필요없는마을…제가꼭만들겠습니다"
"태양아래바람맞으며흙을밟고사는게최고지요"
강원도홍천군서면에종자산(種子山)이있다.험준한봉우리에둘러싸인산의덩치가27만평이고그한가운데1000평남짓한‘힐리언스선’마을이있다.거기선휴대전화가안된다.신문도TV도볼수없다.인터넷도불통이다.그오지(奧地)에3년전부터사람들이하나둘찾아들고있다.평생앞만보고달려온사람들이다.정신과의이시형(李時炯·76)이지친그들에게말하는건‘느림의미학(美學)’이다.그는"건강의씨앗을뿌리고있다"고말했다.
이시형이보는한국인은미련하다.불사(不死)인양제몸을안돌보기때문이다.그래서1980년대부터화두(話頭)를던져왔다.지금그가말하는건세로토닌(Serotonin)이다.뇌에서생겨감정,행동을바꾼다는바로그물질이다.종자산에가기며칠전서울서초동골목안2층양옥에서그를만났다.그는세간자랑부터했다."저벽엔시멘트에서생기는유해한물질이없어요.이에어컨은엘지전자에제가특별히부탁해만든거예요.앉아계신그책상도…."
그집이’힐링홈(HealingHome)’이라는자랑이었다.‘그게세로토닌과무슨관계냐’고묻자그가말했다."생활환경을이렇게꾸며야세로토닌이형성되거든요.습관도중요하죠.제가주장하는게네가진데,받아적어보세요."만남이강의처럼변했다."첫째,밥한숟갈에최소30번씹어야해요.다이어트가됩니다.소화도촉진시킵니다.암도예방돼요.문부장,뒷목그자리…,거기가중요한데이렇게(딱딱소리를내며)씹으면거길자극한다니까요."
"둘째는걸어야해요.아프리카마사이족(族)처럼요.멍청하게말고사냥감찾는것처럼사물에주의하면서.셋째가명상(瞑想)!화가풀어집니다.사랑과섹스도아주중요하지요…."그때기자의차례가왔다."대단하십니다."
■전진기지
그가주춤했다.기습(奇襲)은원래이런것이다.달변가(達辯家)가말했다."나이가있으니…,예전엔사랑과섹스의중요성을실천했지만."계속물었다."세로토닌의중요성을강조하는데그게혹시최근들어발견된겁니까?"
신경정신과처방전에서는SSRI라는약물을쉽게발견할수있다.세로토닌생성을돕는다고한다.우울증치료에많이쓰이며그존재를알아낸건1950년대다.그런데왜하필60년이지나’세로토닌코리아운동’을한다는말인가.
―세로토닌이지금왜필요합니까.
"전’한국사회에필요한게뭔가’라는문제를5년앞서짚어왔어요.1980년대초엔’배짱’이중요했습니다.시골에서도시로몰려오는데’촌(村)의식’만갖고는견딜수가없잖아요.다음이’스트레스’였고90년대엔’중년여성”청소년’이었어요.90년대후반세계화가이슈가될걸예견했지요.2000년엔’문화운동’과’건강’이었어요.2010년부터2015년까지는’세로토닌’과’창조성’이화두가될겁니다."
―’건강’을예견해지은게강원도홍천의힐리언스선마을이라는말이겠네요.
"평생의사하면서한국인들을지켜봤잖아요.지금도그렇지만과거의한국인들은정말다이내믹했어요.쉴틈이없었지요.그러다보니40대사망률이세계최고에달했고요.느린건아름답다는걸보여주기위해지은게힐리언스선마을입니다."
- ▲신경정신과의사이자인기강사,베스트셀러작가인이시형은5년단위로사회이슈를던져왔다.배짱,스트레스,중년여성,청소년,문화운동,건강…이시형은“앞으로는세로토닌과창조성에주목해야한다”고거침없이말했다.과감하고화려한언변에주부들이반응했다.76세의사가카메라앞에서춤추며활짝웃었다./오종찬기자
―마을이름에’신선선(仙)’자를붙였더군요.
"이마을에오셨던분들이마치신선들이사는것같다고해나중에붙은거지요.전그곳촌장(村長)이고."
―2박3일입촌하는데100만원이넘는돈을받던데,부자(富者)만신선이될수있는겁니까.
"그때는시작할때여서그랬고…,지금은돈이남게됐는데저나주주(株主)들의의견이일치했습니다.직원들월급올려주고시설보수하는비용빼고고객들에게환원하자고.지금은그렇게많이받지않습니다."
―프로그램을보면좋긴좋은데…,2박3일지냈다고수십년된생활습관이쉽게바뀔까요.
"정확한통계는아니지만입촌했던분들가운데생활습관이완전히바뀐비율은30%정도밖에안돼요.그렇지만느리게사는게왜중요한지를안다는것만으로도의미가있습니다.세로토닌문화원일을맡은것도그것과관계가있어요.힐리언스선마을같은환경이도시에는없잖아요.마을은생활습관을바꾸고문화원은생활환경을바꾸는운동을하는전진(前進)기지로만들려고합니다."
―힐리언스선의주주라고하셨는데제가알기론10억정도출자했다고들었습니다.
"처음제가아이디어를냈을때풀무원,대웅제약,매일유업,동아제분은연구비만지원했어요.그들은힐리언스선마을같은시설이우리실정에선너무빠르다는입장이었습니다.그런데제가산(山)을사고막진행하니코가꿰인거지요.전체공사비는150억원이상이들었습니다."
―지금의터를직접골랐나요.
"먼동생가운데한명이부동산개발업을해요.그이가제머릿속생각을훤히알고있어제주도를포함해전국100곳의땅을보고다녔어요.20~30곳은저도직접가봤고요.전부지가서울과너무떨어져선안되지만외부와의접촉이쉽지않게주변이완전히산으로둘러싸여야된다고생각했어요.그곳엔문명의이기라는게없습니다.지금부지는한번보고그날로계약한거예요."
―설계는승효상씨가맡았지요.
"그분이고생을많이했어요.제가설계를세번이나뜯어고쳤거든요.제가그랬어요.절(寺)도아니고,연수원도아니고,병원도아닌건축물을지어달라고요.부지는넓지만건물은1000평정도입니다.나머지는남겨놓았어요.후배들이와서새롭게일할수있는여지는줘야하잖아요."
―주말을대부분그곳에서보낸다는데혹시강의만그럴듯하게하고이박사께서는그지침을따르지않는것은아닌가요.
"3년전까지체중이83㎏이었습니다.지금은74㎏이에요.1년만에그만큼감량(減量)했고2년동안계속그무게를유지하고있으니성공한거지요."
―어떻게했기에요.
"배고픔을느끼는다이어트는반드시실패합니다.힐리언스선마을에선음식내놓는순서가다릅니다.맨먼저가디저트지요.과일,떡,케이크같은.다음이샐러드인데우린접시가아니라큰볼(bowl)에내놓습니다.채소를많이섭취하라는뜻입니다.그다음에싱거운저염식(低鹽食)반찬과메인음식을나눠줍니다.그럼평소보다20~30%절식(節食)하게돼요.바나나,사과,고구마같은간식도꼭드립니다."
―돈을많이받는만큼재료도특별한건가요?
"재료는그냥유기농인데…."
■법정,최인호
사회과학도나역술가(易術家)가아닌의학도가세상의흐름을짚는다는건사실대단한일이다.이시형의’자랑’은사실근거가있는것이다.그가맨먼저펴낸책‘배짱으로삽시다’는지금까지120만부가팔린초(超)베스트셀러다.‘자신있게사는여성’이60만부,‘지혜롭게사는여성’이40만부팔렸다.얼마전펴낸책‘공부하는독종이살아남는다’도벌써30만부를돌파했다.그가쓴책은모두56권이다.인쇄만하면곧책이될원고도상당수라고한다.
―뭐든지하면성공합니까.
"그럼요.제가35년째같은여의도아파트에살고있는데630만원줬거든요.그사이200배넘게올랐잖아요."
―미래를예견하는비결이있습니까.
"왕도(王道)는없고’나가서보면보인다’는게비결이라면비결일까?세계의유행은뉴욕에서생깁니다.거기서일본도쿄(東京)로서울로,요즘은상하이(上海)로도가지만.그곳에가서4~5일간어슬렁거리면보이지요."
▲이시형은‘느림의미학’을이야기했다.이시형은일주일에3번씩강의하고주말마다마을을관리하기바쁜‘평생현역’이다.그는“바쁜한국인들도오래씹어먹고,마사이족처럼걷고,명상하는데서‘느림’을실천하자”고했다./오종찬기자
―’이시형식(式)글쓰기’가한장르가될법한데웬의학도가그렇게팔리는글을씁니까.
"처음신문칼럼을쓴건경북대의대교수로있을때였습니다.대구매일에썼는데’제법잘쓴다’는이야길들었어요.서울로올라와YMCA에서’신부(新婦)교실’이라는데출강해서강의한걸샘터기자가글로옮겼어요.그게인연이돼샘터에상당기간연재를했습니다."
―그러다단행본은?
"샘터에서저와관계했던두사람이출판사를따로차렸는데’책을써보자’는거예요.대구에서습작해놓은것을줬어요.’배짱으로삽시다’였습니다.1주일휴가를얻은뒤경주한국콘도에들어가뚝딱완성했지요."
―요즘도출강(出講)을1주일에3번씩하지요?특히중년여성들에게인기가높다는데.
"제가말을제법재미있게합니다.그리고잘생겼잖아요,하하.젊었을때는그것때문에난리가났어요.절보겠다고환자로가장해들어오는분들까지있었으니까요."
―그렇게유명하면부인속이썩지않을까요.
"마누라가오해도많이했지요.주변에기자에아나운서,화가들까지많았으니까요."
―혹시스캔들은?
"한번은아내가어디다녀온다고나가더니오밤중에들어왔어요.알고보니’이시형의아이를가졌다’는괴(怪)전화를받고자기딴에해결해보겠다고나간거래요.대전의한다방까지갔는데전화가오더니옆다방으로오라고했다는겁니다.그다방엘가면다시원래다방으로오라고하고.마누라가그제야겁을먹고서울로돌아온거예요.그얘길듣고그랬어요,’아이구이마누라쟁이야’라고요.루머가많았습니다만자기관리는철저히합니다."
―샘터시절3대글쟁이가이시형,법정(法頂)스님,소설가최인호(崔仁浩)였지요.
"법정스님을직접뵌건딱두번이에요.강원도봉평의’허브나라’라는곳에서제집필실을줬어요.거기서우연히법정스님을만나3시간동안대화했습니다.관광객들이몰리고난리가났지요.그다음이작년봄이었어요.산책하다길상사에들렀습니다."
―법정스님이알아보던가요.
"일부러표시낼것도없다싶어맨뒤쪽에서있었는데제가키가크잖아요.법정스님이법문을하다절봤나봐요.법문이끝난뒤다가와’이박사도소승의법문을듣습니까’라고해요.이미그때스님의병색(病色)이깊어보였어요.손을잡아보니굉장히찼어요.제가그랬습니다.’스님도이제는고기좀자셔야합니다’라고요.의사로서의처방이었습니다만…,참아까운분이에요."
―공교롭게도최인호씨역시요즘건강이안좋다고합니다.
"최인호씨와는오랜연분이있어요.옛날임국희씨가진행하던MBC’여성시대’라는프로그램에최인호·김주영·한수산씨와함께출연한인연도있고요.제가그분소설을참좋아합니다.책읽다마음에드는부분이있으면금방전화도드렸고.동부이촌동에’예전’이라는카페가있었는데거기서연극배우오현경씨,돌아가신이해랑씨,김동원씨와함께최인호씨와자주어울렸어요.함께연극구경도많이다녔고요."
―의사로서좀돕지그랬습니까.
"그분소식을진작에들었어요.힐리언스선마을에들어오면참좋을텐데,여러번연락을취해도연락이되질않아요."
■오리와의악연
이시형의전공(專攻)은’사회정신의학’이다.그는1934년에태어났다.중학생때6·25를맞은세대다.그런그가지금도아는이별로없는첨단정신의학을필생의업(業)으로삼은것이다.도대체무슨사연이있었던걸까.
그에게’남에게스트레스받지말라고하는데본인은어떠냐’고물었다.이시형이말했다."즐겁게살자는게목표입니다.치료할때는환자,강연할때는관객칭찬을받으며사니신이나지요.안그랬으면벌써죽었을겁니다."
―그리된계기가있습니까.
"제가7남매의둘째아들입니다.형은컴퓨터를전공했어요.얌전한성격이었지요.전무당끼가있었다고나할까,하도제가설치니할매가절감나무밑에매달아놓은적도있었습니다.그래서전그걸피하려손님오는날이면새벽부터마을을돌아다녔어요."
―고향이대구지요.
"지금의대구비행장한복판이제생가였어요.일제때땅을절반쯤뺏기고6·25나면서나머지가전부비행장이돼버렸습니다.아버님은’양현고’라고,일본인들이팔도(八道)에서2명을국비장학생으로선발해명륜전문학원에보내는제도가있었는데거기선발된분입니다.옛날로치면과거급제한격이지요.나중에유림(儒林)재산을관리하는일을했습니다.지금의문화재청과비슷할겁니다."
―선친께서교사를했다고하던데,어떤이는이박사집안이가난했다고도하고요.
"그건해방후의일입니다.중학교에서역사·윤리·한문을가르치셨어요.제가고1때부터선친이병석(病席)에누우셨어요.화병에당뇨병,폐결핵,말초신경염으로7~8년고생하다돌아가셨지요.형이군에입대했기때문에제가가장(家長)노릇을할수밖에없었어요.형빼고형제6명에조실부모(早失父母)해우리가거두고있던사촌2명까지요."
―학생이어떻게가장노릇을합니까.
"제가이래봬도미군부대하우스보이를3년이나했습니다.하우스보이가뭔지아세요?미군구두닦아주고우편물찾아다주고세탁물맡기는일을합니다.그때배운’하우스보이영어’를한참했어요.아이캄,유캄(Icome,Youcome),뭐이런식으로요."
―오리고기를싫어한다는이야길들었습니다.
"어?그얘길어떻게알죠?하우스보이하면서모은돈으로오리를40마리가까이사수성천변에서기른적이있어요.오리가냄새가많이나잖아요.지금은그걸제거하는조리법이나왔는데그때는냄새가난다고사람들이먹질않았습니다.너무아까워냄새나는오리를다먹으니나중엔질려서.지금도오리고기를먹지않습니다.오리뿐아니에요.동생들과만년필장사도해봤고아이스케키장사도해봤어요."
―그렇게가난한환경에서어떻게의대진학할생각을한겁니까.
"대학진학할때형님이제대했으니사정이조금나아졌지요.문사(文士)기질이강한집안이었어요.의대를택한건창피하지만’히포크라테스정신’때문은아니었어요.의대가면마구잡이로군에끌려가지않을것같았고전쟁통에도의사아들은꼭도시락을싸오는걸봤기때문이에요.선생아들은분필놓으면굶는데….친구들이전부의대를택했던것도이유라면이윱니다."
―경북대의대를나왔지요.
"그때는서울대학이그리좋은학교인지몰랐어요.전공을택하려하는데당시우리학교정신과교수님은무슨사건에휘말려강의도못할정도였어요.전워낙사람만나길좋아했으니궁리를하다’사회정신의학’을택하기로한겁니다."
―평소성격에따라전공을결정했군요.
"미국유학을예일대로간것도립튼교수라는분이있었기때문입니다.그분은전쟁때중공군(中共軍)의포로가됐다풀려난사람들의사례를연구해유명해졌어요.포로들은전부브레인워싱(Brainwashing·세뇌)당하잖아요.우리도나중에통일이되면공산주의에세뇌된사람들을다뤄야하는데그걸공부하면좋겠다는생각을했어요."
―그시절유학생이면고생도꽤하셨겠습니다.
"장학금월300달러로강의료내고집세내면남는게없지요.밥은환자들이남긴걸간호사가냉장고에놔둔걸로해결했어요.졸업할때빚이5000달러정도였어요.은사께’돈제일많이주는병원소개해달라’고했습니다.버지니아주립병원에서일하면서아르바이트도해빚을다갚을무렵경북대총장,학장님이절찾아왔어요.학생들탄원서까지가지고요.그래서경북대교수가된겁니다."
- ▲사진을찍기전엔이런절차가필요하다.본지오종찬기자가촬영에앞서이시형박사에게포즈와표정을설명하고있다.이박사의표정이수업듣는학생처럼진지하다./문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