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에서출발,루클라에공항이생기기전쿰부히말등반과트레킹의기점이었던지리(Jiri·1,955m)도로를따르다차리코트(Charikot·1,980m)를지나먼지풀풀날리는비포장길로볼레(Bhorle·1,000m)에접근한일행은이튿날인3월23일부터11일간의도보트레킹에나섰다.6,000m급설산들이좌우로도열한롤왈링계곡을따라
늘그렇듯
“첫날부터아예곤죽을만드는거아냐?이래서포터들이패스넘어갈수있겠어?”
마을위쪽라마바가르(Lamabagar)일원의댐공사에앞서도로공사로어수선한쳇쳇(Chetchet·1,450m)에서티베트고원에서형성된물줄기와롤왈링추(RolwalingChhu)물줄기가합쳐져규모가제법커진보테계곡(BhoteKosi)을건너시미가온(SimiGaon·2,000m)으로오르는산길은성벽을거슬러오르는것이나다름없었다.
“두명?네명?16명!우와!”
거의파김치가된상태에서오후6시경마을맨위쪽(맨아래집과맨윗집의표고차가150m가까이된다)에위치한로지에도착하자여주인은신이났다.우리가올들어첫여행객이니반갑지않을수없는일.주전자를얼른화덕위에올리며밀크티를마시겠느냐,블랙티를마시겠느냐묻는다(물론나중에다계산해서받는다).얼마지나지않아황원선·최준회씨와함께펨바셰르파(PembaSherpa)가닭한마리를가슴에안고들어왔다.먹을거리를짊어진키친보이들이한참뒤로처지자마을에서닭한마리를구해온펨바는노련한솜씨로잡은닭과쌀을커다란냄비에넣더니얼마뒤근사한백숙을저녁식사로내놓았다.
아침햇살이내리쬐자시미가온은전날저녁과는분위기가달라졌다.급사면의농지는누런빛으로빛나고너와지붕을인민가들도명암이뚜렷해졌다.아침을맞아집밖으로나온이들이동네를나다니면서엊저녁의칙칙한분위기와달리생동감이넘쳤다.티베트쪽무명봉들이정수리를든채반짝여히말라야에와있다는사실을깨닫게했다.
어제워낙늦게까지짐을나르느라피곤했고,또늦게식사를하고늦도록창(네팔식막걸리)을마시며얘기를나누느라느지막히잠자리에들다보니모든일정이한시간쯤미뤄지고출발도계획보다1시간이상늦춰져오전8시15분이돼서야이루어졌다.트레커들의짐을나르기위해모이는포터들은실상서로아는사이가드물다.그런데만난지한시간쯤지나면꼭한동네사람들처럼가까워지고얘기도잘나눈다.서로눈살을찌푸리거나화를내는일이거의없어더욱친근감이든다.
오늘막영예정지인동라(DongLa·2,725m)가는길은하늘길을따르다원시림속으로이어졌다.어제걸었던보테계곡건너편으로산허리를가르며댐공사예정지인라마바가르(Lamabagar·약2,000m)로이어지는도로를바라보며골짜기로들어서자울창한숲속.
숲길은외딴카르카움막으로길을잇고그뒤로이어진산길은또자그마한움막집으로이어졌다.제주올레가마을과마을을잇는길이라면롤왈링숲길은외딴집과외딴집,숲과숲을잇는길이었다.
“벌써낙엽이지네.우리지금겨울로가는거야?”
어제카트만두는후텁지근한여름이었고,버스에서내린볼레는늦여름이었다.그러다쳇쳇을지나절벽길을올라가는사이차츰기온이떨어지더니시미가온로지에서잘때에는간간이침낭을끌어당길만큼서늘함이느껴졌다.그런데숲길바닥은간혹낙엽이떨어져있어늦가을을연상케했다.
찔끔찔끔오르막을오르다대나무숲을빠져나가자하늘이터지면서외딴집이나타났다.젊은부부가갓난아이와함께지내는티숍(TeaShop·2,435m)이다.여기서5분거리인수르무체카르카(SurmucheKharka)에서살면서5년전부터트레킹시즌이면이곳으로옮겨와트레커를상대로장사를하는이들은이일대에서가장큰도시인돌라카에서고등학교를마친뒤도시생활을마다하고고향으로돌아와사는귀농부부였다.남편은2008년가을에한국트레커를만났고,지난해가을에도한국원정대를본적이있다며
일정을하루당기기위해오전7시부터오후6시까지11시간동안발바닥에땀이날정도로걸은어제와달리오늘은노닥이며쉬엄쉬엄걷는여유로운트레킹이었다.점심때머리도감고,따스한햇살도즐기며여유를부렸다.포터들도마찬가지였다.어제그들은볼레에서짐을멜사람을구하지못해2인분의짐을나눠메야했고,그로인해짐이가벼운우리4명은11시간을걸었지만무거운짐을진그들은13시간에서14시간이나걸어야했다.자기배낭에짐까지얹은사다도사정은마찬가지였다.하지만시미가온에서베딩까지짐을나를짐꾼2명을구했으니힘도던셈이었다.그러나짐꾼이라고해봤자15살짜리소년들이었고,막내아들뻘인두아이가무거운짐을나르는모습을보는것은참으로안쓰러운일이었다.
“오늘은여기서끝내죠.”
점심식사후긴오르막이해발2,900m고지대까지이어졌다.2,700m고지의부서진움막을지나자빠알간랄리구라스와하얀산목련이화사하게꽃을피워봄분위기에흠뻑젖게했다.길가샘터를지나자숲이벗겨지면서하늘이뻥터지는데바위위에올라앉아있던다와셰르파가“여기서30분쯤더가면캠핑예정지가나오지만조망은이곳이훨씬낫다”고했다.
목부들이머무는움막과티하우스가있는샤크파카르카(Shakpakharka·2,760m)는다와가권하지않더라도그냥지나칠수없는곳이다.널찍하게초지가형성돼있는데다모처럼롤왈링히말을상징하는가우리상카의하얀정수리가눈에들어오는곳이기때문이다.어쨌든좋다.구름이기회를줘야하지만간간이가우리상카와골끝으로피라미드형상의체키고가우뚝솟아올라히말라야깊숙이들어선다는느낌을한껏고조시켜주었다.
“아니!그럼저높이란말이에요?”
그러고보니우뚝솟구친체키고와우리가
“얼굴에정전기가일어나요.이것도고소증세인가요?”
최준회씨는“얼굴에정전기가일어나는것같은게아무래도낮에머리감은게문제를일으킨것같다”며고소증을걱정했다.해발2,760m.이제시작인데너무빠르다.지나친걱정에서오는현상같기도하고.아무튼식사양이나몸을움직이는모습에서는그리걱정할수준은아니다싶었다.
3월25일.지도와달리허릿길을따라한참돌았다.그사이가우리상카는날카로운정수리를간간이드러냈다.계곡으로내려서자어제캠핑예정지인동라.현지인들이동앙(DongAng)이라부르는이곳역시대여섯살배기어린아들을키우는부부가사는허름한집과그릇과잔을제대로갖춰놓은집등티숍이두집있다.
해발3,000m를넘어서자풍광이다시변한다.한층좁아진골짜기끝으로체키고가다시모습을드러내고왼쪽지계곡으로가우리상카가거대한남벽을고스란히드러낸다.잿빛장벽은위로오를수록각도가세어지다가막판에는위압적인오버행을이루고있다.
“와~,이게뭐야.냉면아냐!”
히말라야산중에서냉면을먹는다는것은호사가아닐수없다.한국원정대의키친보이를몇차례한바있는쿡펨바는한국말은많이서툴지만음식은어지간한가정주부보다나은수준이다.해서오늘낮에는냉면을내놓은것이다.하지만명심하라!냉면은차가운빙하수로그대로씻을수밖에없을뿐아니라육수역시계곡물이그대로사용될경우가많고,그로인해히말라야에서냉면과같은찬육수를이용한음식을먹을경우배탈이날가능성이많다는것을.
점심을먹은뒤산길은표고100여m위로훌쩍올라서더니절벽하단에형성된완경사테라스를따라줄곧이어졌다.숲이우거진골짜기끝으로체키고가피라미드봉을멋지게일으켜세워놓은롤왈링콜라(RolwalingKhola·Chhu)를따라1시간쯤걸었을까.시미가온을향해내려서는주민들에게오늘막영지인베딩(Beding·3,690m)까지걸리는시간을물으니3시간안팎이란다.
높이의변화가거의없는테라스길이지만골짜기안으로들어설수록나무는키가작아지고그수도적어지더니나무가아예없어지면서거대한절벽을등진채감자밭을앞에둔돌집대여섯채가나타났다.그뒤로바위절벽은파란하늘을찌를듯한기세로솟구쳐있지만마을에는차가운바람만불어대고있었다.
베딩인가싶었던마을에서폭포를구경하며출렁다리를건너고다시언덕배기를올라서자물줄기옆으로널찍한평원이펼쳐지고그왼쪽바위절벽아래계단식으로조성된돌집들이보인다.그러고보니해발3,600m를넘어섰다.롤왈링계곡에서가장큰마을인베딩이다.개울가널찍한자갈밭에서는시커먼야크들이어슬렁거리며풀을뜯고민가텃밭주변에서는염소들이저마다작고귀여운새끼들을데리고저녁먹을거리를찾아여기저기기웃거린다.층계식돌집한가운데에서누군가손을흔든다.사다다와다.다와는하얀염소를끌어안은채손을흔들고있었다.그염소는오늘포터들의배를불려줄희생양이었다.
쿡펨바가안내한멘룽체뷰로지(MenlungtseViewLodge)에들어서자널찍한마룻바닥한쪽진열대에옷여러벌이개어져있고그맞은편에는부처를모신제단이마련돼있었다.주인인나왕텐징셰르파(NawangTengingSherpa·45)는에베레스트8회,초오유4회,시샤팡마2회등8,000m급고봉만해도14회등정했다는클라이밍셰르파로이제8,000m고봉등반을하기에는나이가많지만올봄노르웨이사람들과함께테시랍차를넘어쿰부히말의중앙에위치한남체바자르(NamcheBazar·3,400m)까지안내할계획이라한다.
오후5시반이넘자베딩에도착한키친보이와포터들은싱글벙글하고,반면염소는불길한느낌을받았는지살려달라절규하는듯울어댔다.네팔히말라야를트레킹할때,특히이번처럼텐트트레킹을할때는많은포터와함께쿡·키친보이가동행한다.포터들은단순히짐만나르면되지만쿡·키친보이는손님트레커에게매끼니식사를공급하는일외에포터들에게도밥을해대야한다.게다가키친보이는자신의짐에취사도구와식량까지짊어지고다니면서도손님보다빨리야영지나점심식사예정지에도착해야하기때문에하루하루가무척바쁘다.
오늘은그러한현지인들에게특식이제공되는날이다.파키스탄은트레킹규정상현지포터들에게일정량의고기를지급하게돼있지만네팔은그런규정이없다.하지만힘든일을하는포터들에게고마움을표시하면서힘을북돋아주기위해트레커들이나원정대는염소나양혹은야크고기등을특식으로제공하곤한다.덕분에우리의저녁식사도염소수육에내장볶음,갈비까지얹혀나온다.좋은안주에술이곁들여지지않을수없는일.하지만히말라야초보자인최준회씨와또몸관리에철저한양효용씨는술을마시려하지않고,그덕분에야크처럼힘이좋다하여‘야크황’이란별명이붙은황원선씨의얼굴에환한미소가번진다.
아무튼다시한번느끼지만사람의다리는대단하다.슬쩍모습을보이던가우리상카는이제비켜지나쳤고,골끄트머리에우뚝솟아있던체키고도바로옆에솟아있다.저녁무렵이되자어디서몰려왔는지안개가조망을삼켜버렸다.하지만답답하지않다.곧밤하늘은별로가득찰것이고,다시날이밝으면또다른풍광이가슴설레게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