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교육이평생을좌우한다는말이있듯그녀는어릴적부터산과인연이있었다.강원도산자락의관사에살았는데온산과계곡이그녀의놀이터였다.지금도그녀는“눈쌓인구불구불한임도를걸으며무척즐거웠던기억이난다”며“산은내동심의고향”이라고얘기한다.
“어릴때는아이에게자연을많이경험할수있도록해줘야정서적으로안정되고정신이건강해진다고생각해요.비록제가가정을꾸려보진않았지만부모는아이가다양한경험을하도록해줘야한다고봐요.요즘컴퓨터게임에빠진아이들이많은데한정된모니터안에서유년시절을보낸다는게참안타까워요.그래서부모의역할이중요하다고생각해요.”
어릴적생활기록부에는‘명랑하고사교성이좋다’고기록되어있는데“어디에있든즐거우려고노력한다”는게그비결이다.오은선은유년시절에대해“즐거웠다”고얘기한다.특히휘경여중에다니던때의추억이많다고회상한다.교정이아름다워친구들과의추억이많다는것이다.
중학생때휘경여고축제에서등산반장비전시회를보고그녀는‘고등학교만가면등산반에들테다’하고다짐했다.그러나그녀가입학한송곡여고에는등산반이없었다.그러고보면어릴적부터그녀는참산을좋아했다.아버지와갔던도봉산도좋았고바위에서암벽등반하는사람들을보고멋있다고생각한것도그랬다.본능적으로그녀는산에끌리고있었다.마치14좌에대한무의식적인끌림같은것이었을까.
154cm,47kg의작은몸집이지만오은선은어릴적부터체력과순발력이남달랐다.오은선의어머니는“은선이는시골담벼락을넘어다닐정도로활달했고,예방접종빼고는병원에간적이없다”고한다.어머니는고기보다나물을좋아하는딸이산을타다힘이떨어질까봐지난1년내내홍삼과곰국을달였다.
수원대전산학과에입학한그녀는1학년2학기에대학산악부에들어간다.산악부에가입하는건중학교때부터늘생각해오던것이었기에별다를게없었다.그러나암벽등반은무서웠다.그녀가“암벽은무서워서못한다”고하자선배들은걷는산행만해도된다고하여산악부생활을시작하게된다.산악부에서자주간곳은인수봉이었고가면오은선은늘밑에서혼자남아짐을지켜야했다.몇번을그러고나니지겨웠고“대체뭔데저리미쳐있나”싶어도전하게되었다.
오씨는지금도인수봉에처음올라갔을때를,소위바위꾼들이상투틀었다고말하는그때를아직기억한다.날아갈듯기뻐팔짝팔짝뛰었다.그러자선배가“첫바위에서너처럼기뻐하는애는처음본다”고하며놀랐다.이때부터‘날다람쥐’라는별명이붙게되었다.보통인수봉에처음올라서면진이빠져서지쳐있기마련이다.이후그녀의대학생활은산악부와암벽등반에푹빠져있었다.
“인수봉산천지길크럭스구간을선등했던게지금도자랑스러워요.그때가아마대학교3~4학년쯤이었을거예요.”
“이성에관심은있었죠.근데산악부남자들한테는관심이없었어요.학교에짝사랑하던ROTC선배가있었는데,그렇게끝났죠.그게첫사랑이었어요.”
졸업후오은선은서울과학교육원전산직(8급)공무원으로직장생활을했다.안정된삶을버리게만든건에베레스트원정이었다.1993년에베레스트여성원정대모집공고를보고미련없이사표를던졌다.이에대해그녀는“물론당시에는14좌는꿈도못꿨다”며“히말라야자체가꿈이었다”고공무원을그만둔이유를설명했다.대원선발에발탁된오은선은1년동안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4개산을잇는종주산행과겨울설악산과한라산에서장기훈련을했다.
“그때는젊었기에공무원그만두고나서도뭘하더라도먹고살자신이있었어요.엄마한테는그만뒀다는얘기안하고갔어요.물론다녀오고나서엄마가알게되셨고장비다버리고한바탕떠들썩했죠.”
첫원정이었던에베레스트에서비록등정은하지못했으나3캠프(7,300m)까지진출하는성과를거뒀다.그때만해도체력이뒤처져정상공격조에서는제외됐고선배3명(지현옥,김순주,최오순)이등정의영광을안았다.“힐러리스텝까지갈체력이있었지만대장이내려오라고명령해눈물을머금고발길을돌려야했다”고한다.
“당시해외여행자유화가된지얼마안됐을때예요.애초에정상은꿈도꾸지않았고만년설을보고싶다는생각뿐이었어요.또이번에못가면내생에다시는에베레스트에갈기회가없을것같다고생각했어요.처음에는장기휴가를내고가려했는데그만두기전에는안된다고해서그만두고갔어요.”
처음으로8,000m거봉정상에오른건박영석의원정대를따라나섰던가셔브룸2봉이었다.
“등반도중에영석이형이힘든사람있냐고묻길래그만내려가라할줄알고번쩍손을들었더니웬걸,너맨앞으로나와하는거예요.얼마나당황스럽던지…….”
가셔브룸등정을통해고산등반을배운그녀는한동안박영석대장과함께등반을한다.1999년브로드피크와마칼루,2001년K2로이어지는박대장의14좌원정에홍일점으로동행했다.그러나이세등반에서한사람씩목숨을잃는사고가일어났고오은선은등정하지못했다.
그녀가목격한최초의죽음은1999년파키스탄브로드피크(8,047m)등반때였다.연세대재학생이었던허승관대원이밤사이실종됐는데결국그가입었던빨간재킷만발견됐다.오은선은“참으로천사같은성품의후배였는데주인없는재킷을보면서너무슬펐다”고말했다.그해의마칼루등반에선셰르파가죽는사고를목격하며고산의위험성을다시한번체험하게된다.
1990년대후반,히말라야에대한꿈만가진그에게후원사는없었다.산악부선배들에게도움을청하거나다른원정대의대원으로쫓아가는것도방법이었다.그러나오은선은원정등반을경험할수록내힘으로혼자가야겠다고생각하기에이른다.
“다른원정대의일원으로가는건남한테의지해서가는등반이다보니,다른사람들에의해등반이좌지우지되는경우가많았어요.그래서내힘으로내돈벌어서혼자가보자고생각했어요.”
원정비용을벌기위해학습지교사를4년간했고스파게티가게를1년간운영했다.수학과영어를주로가르쳤는데시원시원한성격때문에학부모들로부터인기가많아능력을인정받았다고한다.1999년다시원정을가게되었고회사에서장기간의휴가를허락해주지않아결국학습지교사일도그만두었다.
1997년가셔브룸2봉이후2001년까지계속등정하지못하자히말라야고산등반에서7대륙최고봉도전이라는새로운목표를설정한다.7대륙최고봉은에베레스트를제외하면혼자서도등정할수있는5,000~6,000m급봉우리들이다.2002년유럽엘브루즈,2003년남미아콩가구아와북미매킨리,2004년아프리카킬리만자로,호주코지오스코,남극빈슨매시프,아시아에베레스트를차례로등정하며7대륙최고봉등정에성공한다.
이중에서도에베레스트등정은14좌를성공할수있었던발판이었다.사실상대구계명대팀과의합동등반이나다름없었던이등반에서계명대팀박무택대원이하산중실종되는사고가났고,등반도중오은선은박무택대원의시신을본다.거기에서겪었던극심한슬픔과공포,그리고등정후하산길에산소가떨어져최종캠프에다다르기직전온몸의기운이쇠진해쓰러졌던극한체험은이후등반에서큰밑거름이되었다.결국7대륙최고봉등정은14좌를할수있었던훈련과정이되었고이를통해오은선은‘날다람쥐’에서지금의‘철녀(鐵女)’로다시태어났다.
7대륙최고봉을할때에도그녀는일을하고있었다.2002년등산장비업체인포리스트시스템에입사했으며다시영원무역으로자리를옮겼다.평소에는일하다가원하는원정을나갈경우시간과장비지원을해준다는괜찮은조건이었기에‘세븐서밋’을무난하게달성할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