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은선 특집ㅣ생방송] 8,091m 고봉 정상에서 *-

[오은선특집ㅣ생방송]8,091m고봉정상에서히말라야를내려다보다

KBS방송단,세계최초의히말라야고봉등정HD생방송성공

오은선대장의안나푸르나등반못지않게감동을주었던게KBS방송단의생방송이었다.지구상최고오지히말라야.그것도해발4,000~5,000m높이의베이스캠프가아닌해발8,091m의안나푸르나정상을힘겹게오르는여성산악인오은선대장의등반모습뿐아니라설연(雪煙)이휘날리는히말라야설산의웅대함과험난함을안방에앉아고화질영상으로볼수있다는사실만으로도감동이아닐수없었다.

▲1베이스캠프에구축된방송센터에서방송단원과블랙야크임직원들이긴장된표정으로화면을지켜보고있다.2방송전진기지인C1.정상으로향하는오은선대장의모습을잡기위해방송카메라에는2,200mm초망원렌즈가부착돼있다.3KBS방송센터.3.5톤무게의방송장비가설치돼있다.

폭풍설뒤집어쓴모습셀카로촬영해방영

KBS방송단은이번생방송을위해지난해가을부터준비해왔으나현지에서는드라마같은극적인순간을몇번이나넘겨야했다.

안나푸르나HD(HighDefinition·고화질)생방송이결정되기전부터히말라야오지에서방송장비가견딜수있나확인하고,카메라등주요장비에습기가스며드는것을막기위해미세한틈새라도실리콘을바르는등오지에맞도록손을봤다.

몇몇방송대원은한국등산학교동계반에입교해겨울산을경험하는등만전을기했다.23명의방송단원들에게출국을앞두고가장큰걱정거리는과연4,200m높이의베이스캠프까지무난히올라설수있을까하는것이었다.이거종전영상제작국장과정하영촬영감독등4명은히말라야고산등반경험이있었지만KBS방송단원23명중19명은히말라야트레킹경험조차없었다.평생지리산천왕봉한번오른게등산경험의전부인단원도있었다.

예상대로안나푸르나남면베이스캠프로가는길은험난했다.카트만두에서버스를타고흙먼지속에서11시간걸리는레테(2,480m)에도착해이틀간현지적응기간을가진방송단원들은4월1일레테를출발해나흘뒤인4일베이스캠프에도착했다.

그사이하루에1,000m안팎씩고도를높이며,추락의위험이높은툴루보겐(4,600m)을넘자니여간고통스러운게아니었다.지난해가을오은선대장의안나푸르나첫도전에동행했을때‘고소체질’이란소리를들을만큼무난했던김경수기자의경우툴루보겐을넘어닐기리베이스캠프(4,300m)에도착하는날구토와두통으로심한고통을겪는등여러명의단원이고소증에시달려야했다.단원한명한명이각분야의전문가이므로한명이라도컨디션을잃는날이면치명적인결과를초래하기때문에단원들의건강과컨디션이정상적으로이어지는것은매우중요한일이었다.

출국전철저히체크하고카트만두도착이후에도다시한차례점검하기는했지만3.5톤에이르는방송장비가베이스캠프까지무사히운송될수있을지도걱정거리였다.단하나의장비라도빠지는일이생기거나운송중고장이난다면생방송에결정적인영향을끼칠수있기때문이었다.

대형헬기로다섯번이나운송한장비와식량은거의10톤에육박했다.소규모방송국이이전하는수준의엄청난규모였다.단원들은장비가도착하자마자각자맡은촬영·방송장비를설치하고,태양광축전판과발전기에이어위성송수신기도설치했다.스크린은자료화면(녹화)용,카메라8대가촬영하는장면이실시간으로나오는스크린2대,그리고실제방송용외에도그전단계에필요한스크린을2대더설치했다.

전진중계기지인C1을비롯한카메라8대를설치해놓고도베이스캠프현장을담은첫그림을인공위성을통한KBS본사로보낼때까지조마조마했다.과연히말라야오지의생생한현장모습을고화질로생방송한다는게가능할까하는걱정때문이었다.하지만성공이었다.

방송단전원의가슴이철렁했던첫순간은4월4일베이스캠프(4,200m)도착4일만인4월8일일어났다.C1(5,100m)에중계를위한방송전진기지가거의완성되어갈무렵C2(5,600m)아래에서거대한눈사태가일어났고,그후폭풍은눈깜짝할사이에C1을덮쳤다.

C1의방송단원가운데는너무놀라그대로몸이굳어버린사람이있는가하면,혼비백산한사람도있었다.BC에머물고있던다른방송단원들은상상치도못했던눈사태후폭풍이덮친C1과무전교신이되지않자“모든게끝이다”라고낙담했다.하지만곧사태를파악한C1의단원들은안전지대로피하기보다소중한장비를챙기느라몸을아끼지않았다.김승일방송기기보전국부장은주머니속에넣어두었던소형카메라로눈을뒤집어써설인처럼변해버린자신의모습을직접촬영,TV를통해방영하기도했다.이날일은단원들한명한명이전문가다운정신을보여준사건이었다.


오은선대장뿐아니라촬영대원등정에불안

눈사태는단한번으로끝나지않았다.첫등정시도를위해22일베이스캠프를출발해하루에표고1,400m올려치고C2까지올라선원정대와촬영단원들은이튿날C3(6,400m)로향했다.C2~C3는급경사세락지대를이루고있어눈사태가자주일어나는최난구간.셰르파세명이앞장섰다.순조로웠다.그런데급경사설사면상단부에접어들어C3까지무난히갈수있으려니마음놓고있을때위쪽쿨와르에서커다란굉음이나면서쏟아져내린눈사태는어마어마한눈보라와함께그대로세사람을덮쳤다.

C1에서2,200mm초망원렌즈를통해이광경을지켜보던홍성준촬영감독은너무놀란나머지처절한목소리로“안돼!안돼!”하고소리쳤다.후폭풍에일어난눈보라가서서히걷히자세셰르파는소설속의한장면같이설사면에엎드렸던몸을일으켜세우고다시C3를향해한발한발올랐다.

C1에전진중계기지를구축하는날‘눈사태후폭풍폭격’으로한차례난리를치른방송단이베이스캠프에설치한생방송센터개소식을가진것은4월10일.그러나예년의봄날씨와달리안나푸르나일원은4월중순까지도겨울같은눈이내려원정자체가무산되지않나하는걱정에휩싸였다.그런가운데4월22일제1차정상공격에나섰고,23일오후4시경C3를향해무난히올라설듯하던셰르파세명위로거대한눈사태가쏟아져내려방송단을다시한번가슴철렁케했다.

출국전부터방송단이가장걱정한것은무엇보다오은선대장이안전하게정상까지올라갈수있나하는것과촬영담당자가정상까지올라오은선대장이올라오는모습을영상에담아낼수있을까하는것이었다.촬영대원은정하영촬영감독과산악인나관주(오지로여행사대표·밀레)대원.나관주씨는이미8,000m고봉7개를오른베테랑산악인이라누구도나씨의등정을의심치않았다.정하영촬영감독역시믿음직스러웠다.1999년여름낭가파르밧을시작으로캉첸중가북면·캉첸중가남면·K2원정에엄홍길등반대촬영대원으로동행했고,지난해봄오은선대장의캉첸중가(북면)·낭가파르밧·가셔브룸1봉·안나푸르나원정에동행해늘마지막캠프까지함께하며맡은바책임을다해왔다.

이번은달랐다.오은선대장의등정순간을촬영하려면정상에올라야하기때문이다.지난해여름오은선대장의낭가파르밧원정때마지막캠프를출발,정상가는길에동행했지만정상에오른적은없었다.KBS방송단의최종목표는정상에오르는오은선대장을촬영하는것이지만그렇다고오를수없거나오르지못하겠다는사람에게죽음을무릅쓰고억지로오르라고강권할수는없는일이었다.

정하영촬영감독역시고민이많았다.무엇보다HD카메라로촬영한고화질의영상이송신기(포터블HD마이크로웨이브)를통해C1과BC를거치고인공위성을통해한국의KBS본사까지전해질지의문이었다.마지막캠프를출발하기앞서새배터리를카메라에끼워넣고,예비배터리기추위에방전되지않도록우모복안주머니에넣고다녔지만영하30도까지떨어지는날씨에잘견뎌낼까싶었다.

오은선대장도편치않았다.25일등정을목표로삼은제1차공격을앞두고“바람이너무세다”“지난해에비해설사면이훨씬가팔라보인다”는등자신감을잃은듯한말을김경수기자에게건네곤했다.제2차공격에서정상을3시간여앞둔지점에서는포기할까망설이기도했다.하지만‘이제하산하면다시올라오기힘들것이라’는생각이그냥포기할수없게했던것이다.

2차공격에나선오은선대장일행이C2에도착한모습을담은영상은C1에서잘잡혔다.때문에등정사진도좋으리라기대했다.하지만C4를출발한지11시간이지난27일정오경에도오대장의컨디션이눈에띄게나빠지고정상까지의거리가한참남아있자과연성공할수있을까싶었다.오대장이포기하면모든게물거품이기때문이었다.C1에설치해놓은2,200mm초망원렌즈에정상을향해오르는클라이머들(당시스페인대원들도함께정상을향했다)이잡히기는했지만누가누구인지확인할수없었다.

방송단의환호성은나관주촬영대원이오은선대장이힘겹게오르는모습이C1의방송중계기지를거쳐베이스캠프에전달되는순간터져나왔고,그생생한장면은당시TV를지켜보던많은사람에게전달되면서감동을자아내기시작했다.오은선대장의등반도등반이지만해발8,000m고지에서내려다보이는히말라야의아름답고장엄하면서신비로운풍광은시청자들에게감동을주기에충분했다.

5kg무게의휴대용SD(StandardDigital)송신기와약4kg무게의산소통등을짊어지고다니면서4차례의방송을성공적으로끝낸나관주촬영대원역시자신의역할을200%이상해냈지만아마추어산악인에지나지않는정하영촬영감독은촬영뿐아니라등반대를이끄는듯한모습을보여주면서감동을주었다.

C4에서상황을설명하는해설자로등장하기도했던정하영감독은7차례의히말라야촬영등반중처음으로산소마스크를착용한상태에서정상을향했다.캠코더로촬영한영상을C1으로전송하는6.5kg무게의송신기(HD)는동행한옹추셰르파가짊어져주었으나1.5kg안팎의캠코더외에도그는다른대원들과마찬가지로산소통과레귤레이터에물이며간식,예비장갑등이담겨있는6kg안팎의배낭을지고있었기에힘들수밖에없는상황이었다.

정하영촬영감독,오은선대장의심리적안정에도움

정감독은촬영할때마다뷰파인더에눈을붙이기위해산소마스크를벗어야했고,그로인해호흡이가빠오는등고통을겪어야했으나전문등반가못지않은속도와적응력을보여주며정상까지올랐다.나관주촬영대원의촬영을통해몇차례화면에나온정감독은오은선대장보다컨디션이나은듯했고,정상을얼마남겨놓지않은설사면에서“물한번마셔야되지않겠습니까?”“괜찮습니까?”하며오히려오은선대장에게심리적안정을주는데도움이돼주기도했다.

오은선대장이정상에서는순간그감동은정하영촬영감독이더컸던것같았다.정감독은“오은선대장이드디어안나푸르나정상에섰다”며“만세!만세!”를외쳤다.한편의드라마같은순간이었다.

이렇게정상등정생방송은성공적이었다.4월27일낮12시30분부터오후2시10분까지,오후4시10분부터7시10분까지두차례에걸쳐KBS특별생방송‘여기는안나푸르나’를통해오은선대장의등반상황을생생히전하는데성공했다.

▲방송을성공리에끝내고베이스캠프에내려와엄지손가락을치켜든정하영촬영감독과나관주촬영대원(왼쪽)./방송단원이마이크로웨이브장비를살피고있다.

[KBS안나푸르나등정생방송의숨은주역]

이거종KBS전영상제작국장
“이제KBS는세계어떤오지에서든HD생방송을해낼겁니다”

1988년일본의NHK가중국CCTV·네팔TV와공동으로에베레스트등정을생중계하고,2008년중국CCTV가베이징올림픽을앞두고에베레스트정상에서성화를채화하는장면을생중계한바는있지만8,000m고봉을등정하는전과정을HD생중계한것은세계방송사상KBS방송단이처음이다.

이렇게성공리에끝난‘세계최초의8,000m고봉HD생중계’가이거종(李巨鍾·58)전KBS영상제작국장의역작이라는데이의를제기하는사람은KBS내에아무도없을것이다.그만큼이번생중계에이거종전국장은심혈을기울여왔다.

“다끝났다.다죽었구나했어요.정말지금생각해도끔찍해요.”

▲라마제를지낸뒤오은선대장과함께활짝웃고있는이거종전영상제작국장(왼쪽).

안나푸르나생방송에동행한이거종전KBS영상제작국장은베이스캠프에머물면서가슴철렁했던순간이한두번이아니었다고털어놓았다.그역시1996년9월엄홍길대장과처음함께한히말라야의마나슬루봉원정에서‘두개골이깨지는듯한’고소증세을경험하고,1999년캉첸중가북면등반시폭풍설이몰아치고눈사태가빈번하게발생하는해발6,200m고소에서22일간이나머물며방송을진두지휘한바있지만후배들이히말라야8,000m정상을올라가는모습을지켜보고만있는다는것은그가직접오르는것보다힘든일이었다.

이거종전국장은히말라야생중계에오랫동안공을들여왔다.1999년여름낭가파르밧등반을시작으로1999년가을캉첸중가북면등반,2000년캉첸중가남면등반,2000년K2등반등엄홍길씨의8,000m14개거봉레이스에동행했다.특히당시촬영을주도했던이거종국장은엄홍길씨의14번째고봉인K2를생방송할계획이었다.그러나1999년캉첸중가북면등반중눈사태사고로기자1명과대원1명이목숨을잃는사고로인해사측이꺼리는바람에뜻을이루지못했다.

지난해봄캉첸중가등반부터진행된오은선대장의촬영역시이거종전국장의주도하에이루어진것이다.하지만가을시즌안나푸르나생중계가뜻대로이루어지지않아무척아쉬워했다.그것이오히려전화위복이돼주었다.당시안나푸르나녹화중계가좋은반응을나타냈고,그에힘을얻은이거종전국장은다시한번HD생방송계획을사측에올린게“위험을감수하지않고좋은방송을할수없다”는사장의의지와맞아떨어져이번에HD생방송을성사시킬수있었던것이다.

32년3개월의근무를끝으로6월말정년을앞두고있는이거종전국장은“아끼는후배인정하영감독이정상에올라서는순간‘이제내가할일은다했다’는생각이들었다”며“KBS는앞으로세계어떤오지에서든HD생방송을해낼수있을것”이라고자신했다.

-글한필석부장/사진KBS방송단/월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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