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지식인 부부의 ‘귀농 20년’ 일기장 *-

어느지식인부부의‘귀농20년’일기장 최영준교수의‘시골생활분투기’700쪽분량에파란만장일화생생
‘어두운손’행패일삼는농촌현실진정한촌사람돼가는모습‘감동’

‘홍천강변에서20년’.지난해8월에나온인문학무크지<담론과성찰>창간호에실린이런좀낯설어보이는제목의글을읽고많은사람들이감탄하고또몹시심란해했다.‘어느지리학자의주경야독농촌생활기’라는부제가붙은그글의주인공최영준고려대명예교수의글은간결하고담백한듯하면서도오늘날우리들의삶,우리가몸담고있는문명어디가어떻게병들어곪아가고있는지를산골오지의생활이라는아주색다른풍경을통해선명하게보여주었다.이번에최영준교수의글이<홍천강변에서주경야독20년>이라는,700쪽에가까운두터운책으로묶여나온데는무크지에실린그글이주었던감동이분명한몫했을것이다.

»〈홍천강변에서주경야독20년〉

유학까지다녀온서울유명대학의잘나가던교수가20년전49살나이에“현대식개발과도시화의파고를겪지않을곳,아니면가장늦게그러한변화를겪게될후보지”를물색한끝에찾아낸강원도춘천시남산면통곡리(산수리)의포장도로도없는홍천강변오지논골마을외딴집에‘주경야독’하러들어간다.

무크지의그글은그‘돈안되는’거사를결행하게된경위와월~금요일엔서울에서강의하고금~일요일엔논골마을에서낮엔농사일하고밤엔읽고쓰는20년세월을압축적으로보여준다.그리고성장주의와도시소비문명에길들여진자들이그오지까지침투해어떻게그청정무구의자연세계를파괴하고농락하는지,전문지식과특유의감성으로무장한점잖은중·노년학자의시선으로드러낸다.

글의감동은그렇게찾아들어간세계의청정무구가주는기쁨과그것이돈과재미에골몰한외부침입자들의행패로유린당해가는안타까움과슬픔이빚어내는바로그선명한대조때문에배가되는데,읽는독자들이분개할만한침입자들의패악질을지은이는오히려담담하게때로는동정과이해까지표시하며그려나간다.이부분이정치적편견과요란한직설이난무하는흔해빠진고발문들과는다른점이고또강점이다.청정한경승지라는사실이점차알려지면서승용차를모는도회인들이몰려들어그렇지않아도좁은외길을막거나홍천강물속까지밀고들어가면서,“우리민족이아직도수렵채취경제생활을영위했던중석기시대원시인의습성을가지고있음을확인”하게해주는행패를부리기시작한다.

과잉영양의맛난먹을거리들이넘쳐나는데도온갖도구를동원해물고기,다슬기의씨를말리고야생동물을밀렵하고떼지어찾아오는청둥오리가족들을향해엽총을난사하고오디오기계로떠들어대고쓰레기투기로자연이몸살을앓게한다.봉고차를대기시켜놓고남의집연못수련을뿌리째훑어가고야산에심어놓은더덕과미삼,할미꽃등야생초,토종밤,두릅을싹쓸이해간다.도시인들의기호에맞춘알량한돈벌이를위해그들은남의집자물쇠까지부수고들어가패물과현판,가구,돌확,토기들을빼내가고농산물판매대금까지훔쳐간다.

»어느지식인부부의‘귀농20년’일기장

지은이가사랑해마지않는땅들이돈을위한막개발로파괴당하고결국오지까지포장대로가들어서자도회로떠난자들이값오른땅소유권을주장하며하나둘나타나고리조트건설로강물은오염되며농민들은제초제와비닐과돈에물들어간다.그런묘사들은최교수의20년파란만장한체험의일부분에지나지않는다는것을<홍천강변에서주경야독20년>은보여준다.

무크지글과는달리책은일기체로돼있다.지은이가홍천강변으로들어간1990년4월부터2009년12월26일까지주로논골마을에서쓴일기들을추려만든책의무게중심은그일부를요약정리한무크지글과는달리지은이가주로노인들만남은현지인들에게‘주말에나찾아오는서울젊은이’로비치다가점점본격적인농사꾼이되고정년퇴임뒤엔아예거주지이전까지한뒤현지농협조합원자격을얻어어느새논골원로로변모해가는과정에맞춰져있다.

폐허로변한집을인수해하나하나고쳐가면서거기에딸린논밭들을지렁이와미생물,그리고그들을먹이로삼는곤충과동물들이함께번창하는무공해유기농옥토로바꾸고이웃들과도소통하며흔들림없이자신의세계를착착확장해가는과정의고투와성취,깨침과보람이그날그날의일기에별다른꾸밈없이사실위주로담겨있다.

그럼에도깨끗이맨땅에그다음주에가보면또다시무성해지는잡초들과사투를벌이고되풀이되는홍수와가뭄,외부침입자들에시달리면서도도예가로역시대학교수인부인과본업인학문활동을병행하면서호흡을맞춰서로를다독이며결코낙담하지않고한발한발전진하는모습은사실의산만한나열이아니라줄거리를지닌한편의소설처럼읽힌다.처음부터그랬지만,이들부부의인간과자연에대한남다른이해는20년의세월동안점점더깊어지고풍부해지는발전적궤적을그린다.그림솜씨도그렇지만만만찮은문학적자질과한쪽으로치우치지않으려는균형감각도거기에기여했다.

외부인의행패,그들이대변하는우리일상적삶의어두운그림자,신자유주의문명의우울한전망이도드라져보이는것도이런낙관과성취,균형감각과절제가저변에일관되게깔려있기때문이다.무엇보다그들이자신들의정체성을휴식처·재충전지로서의전원생활을그리는도시인이아니라아직전업농은못되지만점점거기에근접해가는농경인쪽에서찾고있다는점이중요하다.“내기력이다할때까지땅과함께하는생활은계속될것이며나는하루하루진정한촌사람으로변해갈것이다.”이책이전망없는자본주의도시문명에염증을느낀지식인들의단순한현실도피가아니라대안문명을추구하는또하나의진지한탐구로읽힐수있는것도그때문이다.탐구는지금도계속되고있다.

비록최근에정년퇴임했지만부부모두대학교수라는,한국사회에서평균이상의소득과안정성을지닌‘사회적신분’의소유자라는사실은그들의산골오지정착에분명히큰장점으로작용했겠지만그게그런식의대안적삶모색에대한일반인들의평가에는약점으로작용할지도모르겠다.‘돈과신분’없이그런식의시도를해보기는쉽지않을테니까.하지만최영준교수부부의시도가그자체로더없이성실하고진지하다는건의심할여지가없어보인다.그게사람들에게감동을주는가장확실한요소일지도모른다.

〈홍천강변에서주경야독20년〉/최영준지음/한길사·1만8000원

-글/한승동한겨레신문기자/그림한길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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