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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울텐데….아마도팬티바람으로자야할걸!”지리산에가기위해배낭을꾸리는사람에게참견을한다.하지만그는우직스럽게1500그램짜리침낭과고어텍스침낭커버까지챙겨무겁게떠났다.언제든산에서마주칠수있는최악의상황에대비해야한다는게그의고집스런원칙이었다.내가겨울종주배낭에똑같은1500그램짜리침낭을넣어간것은2006년덕유산이마지막이었다.
묵직한침낭덕에향적봉에서부터중봉,무룡산,삿갓봉을지나봉황산까지겨울덕유산의마른등뼈위를걷는동안배낭에수천마리거위떼를태우고가는양힘겨웠다.그럼에도겨울산에서그보다더든든한짐이있을까생각하며흐뭇했다.세상의모든근심은사라지고오로지첩첩이이어지는산과나그리고바람소리뿐인곳,인적이드문겨울산에서나는“산의비전을보았으며,대지와하늘의비밀을터득한인간”프랭크스마이드의<산의환상>에서인용한구절이된양감정이고양된채로걷고또걸었다.
끝이없을것처럼이어지던높고먼산길위에겨울해는속절없이짧았고,밤이되자골깊은계곡사이로겨울나무들이사납게울어대는소리가울려퍼졌다.외롭고추운밤이었다.딱딱한산장의침상에서두툼한침낭속에기어들어가느끼게될,고절하면서도가슴이꽉차오르는것같은충만함-겨울산행에서꿈꾸던로망은그런것이었다.
우리가산에서조금더편리하고따뜻하게지내기위해,무겁게산으로실어날라활활태워야하는에너지가과연얼마나될까.그런데향적봉대피소와삿갓골재대피소에서보낸이틀밤이편치만은않았다.침낭속이지만여럿이함께쓰는대피소침상이라등산복을껴입은채땀을흘려야했다.동계비박이가능한두터운침낭이기름난방을하는산장안에서는거추장스러웠다.그뒤로는아예겨울산에갈때도800그램짜리침낭을챙겨가게되었다.사실무거운침낭과취사도구,식량을가득채워등골이휘고가슴이뻐근해질정도로묵직해진배낭을메는일이쉬운것은아니다.
이제해외원정을위한훈련에나서는이들이아니고서야그렇게고지식하게배낭꾸리는사람들을만나기도쉽지않을것이다.아예대피소에서빌려주는담요만믿고침낭따위는준비조차하지않고설악산이나지리산에오르는이들이대부분이다.난방이잘돼있는국립공원대피소에서담요한장을빌려몸을누인다해도추위에떨걱정은없기때문이다.저자거리의편의점에서그렇게하듯전자레인지에‘햇반’도데워주고,2리터들이생수를파는대피소들도있다.이때문에샘터에서식수를길어오는수고도생략할수있다.
대피소에마구버리고가는쓰레기와분뇨를산아래까지헬기로실어나르는일도여간수고스러워보이지않는다.그럼에도대피소를찾는‘고객’들의불만은예전낡은산장시절보다도높은모양이다.산위에서조차납부한세금에대한권리의식을앞세우고산아래콘도에서처럼편리한시설과서비스를기대하는사람들도많다고한다.겨울은당연히춥고산에오르는일은고난을자처하는일인데도말이다.정도이상‘따뜻하고친절해진’대피소가산을찾는사람들을방심하게만들고,산에서갖추어야할예의보다권리를앞세우게하는것아닌지.
사람마다산을찾는이유는다양할것이다.속세의편리와번잡을벗어나산길을걸으면서고난을자처하며정신적충일을추구할수도있고또어떤이들은산에서즐겁고간편하게오락과휴식을기대할수도있다.그러나난방유드럼통과하룻밤에몇부대씩쓰레기가쌓여가는대피소의모습을보자면,우리의욕망을절제하지않고는산에서누리는행복은지속되기어려울것임을깨닫게된다.
옛산장의로망은이미추억이되어버렸다.지리산에서돌아온이역시해가다르게변하고있는대피소풍경을씁쓸한표정으로전했다.발아래섬진강을붉게적시며떠오르던천왕봉일출의장엄함과앙상한겨울나무에핀상고대의눈부심보다대피소에서눈살을찌푸렸던일들이먼저화제에올랐다.안내산악회를따라산으로몰려온사람들이우르르대피소로몰려와점령군처럼소란스럽게굴었고,곤히잠든다른사람들은아랑곳하지도않고전등불을환하게켠채짐을꾸리며떠들어대던이야기,취사장구석에아무렇지도않게쓰레기를한가득쌓아놓고가던모습들.
서늘한침상에서새우잠을자다일어날때도헤드램프조차다른사람들에게방해가될까바닥으로만불빛을비춰가며발소리죽여조심조심자리를빠져나가던사람들.부스럭거리는소리가잠든이들에게방해가될까염려해잠들기전에미리짐을정리해두던웅숭깊은태도.얼마전까지산에서는그런멋진이들을만나는일이그리어렵지않았다.산에게폐를끼치지않으려고삼가는마음그대로,산을찾는사람들사이에는그런속깊은배려가넘쳐났었다.처음산에다닐때는왜산에서만나는사람들이하나같이선량하고반듯한것인가의아하기까지했다.
“세상이필요로하는것,등산이필요로하는것-그것은낭만의부활이다.……중요한것은산이며,우리들은그사실을절대로잊어서는안된다.”국립공원에서산장이라는정겨운이름대신대피소라는딱딱한명칭을쓰는이유는숙박시설로서편리함보다산에서일어날수있는위기상황에대한‘최소한’의피난처를제공한다는의미일것이다.하지만그최소한의기준이너무헐거워진것은아닌지.난방발전을위해해발1500m가넘는산위로헬리콥터가석유를실어나르고있다.전깃불을환하게밝히고,겨울산에서침낭없이도따뜻하게자기위해끊임없이화석연료를태워야만하는것일까.
그래서국립공원의몇몇대피소들이친환경에너지로난방설비를개선하고있다는소식들이반갑기는하지만한편으론걱정스럽다.2007년지리산연하천대피소는벽체의단열시스템을개선해사람의체온으로데워진실내공기를이용한열교환기술과태양열전지만으로난방을해결하게되었다.2008년12월에는설악산중청과희운각,수렴동대피소역시친환경에너지로에너지원을바꾸었다고한다.석유대신목재칩을태우는펠렛보일러를쓰고,태양열과초초소수력발전을함께사용하는자가발전을한다고한다.
규모가큰중청대피소는1년에5~6차례씩헬리콥터로석유를실어날랐는데목재칩을쓰게돼비용이나빈도가준것은아니지만탄소배출량은현저히줄었다고한다.환경친화적인난방방식으로개선되는것이반갑기는하지만‘보다많은사람이보다따뜻하고편리하게’이용하는것만을추구하다보면결국산은상처를입을수밖에없을것이다.차라리조금춥고불편하더라도산에대한인간의간섭과피해를최소화하려는노력이선행돼야하지않을까.‘호사하는사람은풍부해도부족하나니가난할망정어찌검소한사람의여유있음만할것인가’산으로가는길에되새기고싶은<채근담>의한구절이다.
요즘세상을소란하게하고있는‘녹색성장’‘녹색뉴딜’이라는말이불편한이유도마찬가지다.‘녹색’의산에도‘성장’의상징인잿빛시멘트가뒤덮이지않을까염려스럽기때문이다.그래서번잡해진‘녹색’의산으로무거운배낭을꾸리는일보다책속의산으로혼자걸어가는일이나을때가많다.해묵은책속에새로밑줄을그은부분이다.“세상이필요로하는것,등산이필요로하는것-그것은낭만의부활이다.……중요한것은산이며,우리들은그사실을절대로잊어서는안된다.”-<산의환상-수문출판사펴냄/안정효옮김>의제3장‘등산인’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