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천강변서 20년째 농사짓는 ‘농사꾼 교수’ 최영준 [2] *-
BY paxlee ON 9. 14, 2010
“농사는내삶과학문을깊이들여다보는수신의길입니다”
이가을,곡식과과일이마지막땡볕에여물어가는풍경도,황금들판과강물위로쏟아지는빗소리도인연이닿지않았다.강원춘천시홍천강변에서20년째농사지으며사는역사지리학자최영준고려대명예교수(69).그를서울에서만나는것이영마뜩잖았다.
지리학자최영준교수는농부의땀냄새,흙의향기,거름냄새를사랑하는진짜농사꾼이다.그의산골생활흔적이검게탄얼굴과굳은살박인손바닥에고스란히새겨져있다.|김세구선임기자.
지난9일그의연구실인서울강남구서초동의한고층오피스텔을찾았다.건물앞에마중나와있는그를한눈에알아볼수있었다.새집처럼엉클어진회백색머리,가득한잔주름과검게그은얼굴은평생대학강단을지켜온노교수라기보다는영락없는촌로의모습이었다.악수를하기위해잡은손은두툼하고거칠었다.그가보여주는손등은쭈글쭈글했으며,손톱에는비누로도잘닦이지않는흙때가진하게남아있었다.
그는얼마전<홍천강변에서주경야독20년>이라는책을냈다.지난1989년강원춘천시남산면산수리홍천강변의궁벽한오지에집과땅을마련한뒤써온농사일기다.그는주중에는고려대에서학생들을가르치고주말과방학에는시골에서직접집을고치고땀흘려농사를지으며자연속에묻혀지냈다.농사꾼반교수반의‘이중생활’이었다.
그의농사는많은이들이꿈꾸는은퇴후의낙향이나전원생활과는다르다.부동산투자나귀농목적은더욱아니다.골치아픈도시생활의탈출구가아닌,땀냄새와생명의가르침을따르는대안적인삶의모습이다.그럼에도첫질문은좀삐딱하게나갔다.
–정년퇴직한교수로서지금의농촌생활이휴식이나현실도피의의미가없지는않지요?
“바깥세상소식에귀를막고조용한곳에서땀흘려일하며공부한것을더욱다듬겠다는생각은있지요.그렇지만나에게농촌은막연한이상향이아닙니다.생산과노동의삶이지요.농사야말로욕망을내려놓고자연에순응하면서겸손하게사는법을실천하는일이자내삶과학문을깊이들여다보는수신(修身)의길입니다.밭갈고,씨뿌리고,김매고,거두면서팔다리에알이배는힘든노동은‘무소유’만큼이나가치가있다고생각하지요.”
그는이날참깨를털고오는길이라고했다.빗소리가거세진창밖을바라보며한숨을내쉬었다.“농사는굉장히잘됐는데세워놓은참깨단이태풍에쓰러져떨어지고썩어서참깨소출이절반으로줄었다”며농촌의비피해를근심했다.그는일기에이렇게썼다.
‘나는시골집과밭이잡초속에파묻힐까안타깝고,폭우가쏟아지면산사태로연못이망가질까두려우며,겨울철혹한으로보일러가터질까걱정되어거의매주시골에간다.내가뿌리고키운작물이제대로돌보지않아죽게한다면그것이비록말못하는식물에지나지않을지라도가슴이저리는고통을느낀다.’
그가처음들어간홍천강변골짜기는차량출입은커녕농로2㎞를걷고,마을나룻배의삿대를저어홍천강을건너,다시1㎞정도고개를넘어가야겨우닿는곳이었다고한다.다쓰러져가는함석지붕집벽은수수깡이드러났고,마당에는잡초가우거져있었다.
그는한해평균120일이상씩이곳에머물면서농사를지었다.직접밭을갈아고추,고구마,토란,도라지,호박,수박을심었다.처음7년동안은전화도놓지않고지냈다.그러면서도학자답게열심히책읽고논문과책을썼다.
정년퇴임을한뒤에는대부분의시간을시골에서보낸다.비슷한시기에정년을맞은부인손정리한국교원대명예교수(68)와함께이른새벽새소리에잠에서깨어하루종일밭일,논일을한다.논300여평,밭700여평,과수원400여평은부부가감당하기에는꽤큰농사다.먹을거리를자급자족하고도남아가까운사람들에게나누어준다.
-그래도밥벌이를위한귀농자나전업농부보다는호화로운생활아닙니까.
“부부가모두대학교수라는신분과경제적인여유는분명히큰장점으로작용했을겁니다.그러나나는지금까지집을현대식으로고치지도않았고,생각과생활도진짜농사꾼이되어가고있어요.아예주민등록까지이전하고마을사람들의추천으로농협조합원자격을얻었거든….”
-<택리지와풍수>논문을쓴지리학자로서홍천강변에서이상향의모습을찾은겁니까.
“처음부터가장발전이더디고개발가능성이없어보이는곳을물색했어요.내가연구한택리지와풍수는길지가따로있는것이아니라만들어가는것이라는결론입니다.우리집은대한제국말기에참봉벼슬을하던사람이낙향해지은집으로낡았지만기품이있었어요.풍수이론에따라연못을만들고벚꽃과철쭉을심어비보(裨補)를했지만그건조경의관점이죠.풍수상난을피할수있는피병피세지(避兵避世地)라고는해도서향인데다좌우비례도좋지않은곳입니다.사랑채에앉으면멀리홍천강이내려다보이고,늦봄이면100년이넘는철쭉꽃이아주아름답게피는경치는자랑할만하지요.”
-책의서평을보면호숫가에오두막을짓고땀흘려일한노동으로소박한밥상을차리던헨리데이비드소로의<월든>을언급하고있던데요.
“생활은비슷할지몰라도소로의문장과철학에는비교할수없지요.대신소로보다는내가더행복하다는생각을합니다.소로는외로움때문에2년2개월만에숲속의생활을접었지만나는평범하고평화로운시골마을에서이웃과어울려편안하게생활하고있으니까요.그리고나는소로보다농부철학자피에르라비를더좋아합니다.”
-라비의어떤점을좋아하십니까.
“라비는프랑스시골마을에서부인미셸과함께농사일을하면서생명농업을전파하고있어요.인간성회복과자연과의조화로운삶을실천합니다.나도왕겨,음식물찌꺼기,낙엽,오줌등을섞혀발효해퇴비를만듭니다.도시에서는지저분하다고하는것들이농촌에서는다소중한거름이되는겁니다.비료나농약을쓰지않으니지렁이와미생물이살아납니다.논밭은온갖곤충과새와동물들이몰려와요.올해도고라니가족이홍천강을헤엄쳐와서콩과고구마,단호박을많이갉아먹었어요.사과,배는까치가못쓰게만들지요.이제고약한퇴비냄새가향긋하게느껴져요.”
-처음농촌생활하실때가장어려웠던점은무엇인가요.
“3년동안은비포장농로와고갯길을걷고작은배로강을건너다니며솥,밥상,식량,침구등을날랐어요.벌에쏘이거나팔이부러졌는데도병원이멀어발을동동굴렀지요.무엇보다도그때는농사가뭔지전혀몰랐어요.이웃사람들을따라하면서일일이농사일을배워야했어요.처음10년은농사의기본을익히는시간이었습니다.”
-고향이농촌이아닌가요.
“도시출신으로평생공부하고가르치는일만했으니농사와거리가먼사람이지요.”
-시골집에많은사람들이찾아온다던데….
“불편하다면서돌아서는사람들이더많지요.벌레가많고잠자리가불편하니못견디지요.이곳은휴식을위한곳이아니라농사일을하는곳이거든요.”
-시골생활이나귀농을꿈꾸는사람들에게꼭필요한마음가짐은무엇입니까.
“진짜농사꾼이되고싶다면과거를싹잊어야합니다.도시에서의직업이나대우등을내세우면안돼요.부지런하고겸손하고인내심을가져야해요.진심으로예의를갖춰대하면마을어른들이농사의지혜를가르쳐준다거나더많은도움을줍니다.우리마을사람들이내게마음의문을열기까지는5~6년이걸렸습니다.10년이지나서야내가외지인이아니라진짜마을사람이됐어요.”
-지리학자로서땅의의미와자연에대해어떤생각을갖고있는지요.
“지리학이란학문이땅과땅위의문화유산을연구하는것이죠.땅에서나서땅이베푸는대로살다가땅으로돌아가는것이인생이잖아요.농사짓는사람은남에게보이기위해땀을흘리는것이아닙니다.자신의마음속에들어앉아있는지모(地母)에대한애정과감사때문에땀을흘리는겁니다.일본농부들은평소에농사짓던땅에서쓰러져그곳에묻히는것을최고의행복으로여긴다고합니다.내가떠나면밭모퉁이에묻어달라고아들들에게말했어요.땅과자연을살아있는존재로인식하면함부로훼손시킬수없습니다.”
결국이야기는오지까지스며든과소비적인삶의문제,무분별한개발에대한비판으로이어졌다.인터뷰하는동안그는여러차례책을펼쳤다.그가지리학자의꼼꼼한관찰력으로직접홍천강주변을돌아다니며그린조감도와약도를일일이손으로짚어가며변화를설명했다.
-20년동안홍천강주변환경이많이바뀌었지요.
“이곳도개발바람을피해가진못했지요.거의자연상태였던이곳이최근5년사이에완전히성형수술을당했어요.홍천강변둑방길과벼랑길이콘크리트로포장됐고,집뒤로양평에서춘천가는도로가개통됐습니다.이제는밤마다질주하는자동차소리에시달리고있어요.개발업자들은지도에직선으로줄을긋고,마구산을깎고,굴을뚫어요.강변의아름다운굴곡과산과들의구릉은중장비를동원해단며칠만에평탄화,직선화시켰어요.기하학적으로정리된토지는부동산이되고말았어요.”
말이나온김에‘한반도대운하’등현정권의핵심정책을설계한류우익주중대사이야기를꺼냈다.류대사는최교수의서울대지리학과후배이자지리학자라는같은길을걸었다.류대사가대통령비서실장을지내는등정권의실세로활동하는동안그는홍천강변에서삽을들고땅을팠다.
-류대사를어떻게생각하십니까.
“문제는좀있다고보지만…후배니까….”
-그런입신양명을생각해보신적은없나요.
“나는교수로오랜세월을살았지만사람들모이는자리에서떠드는걸싫어해요.아늑하고고요한골짜기에틀어박혀낮에는김매고밤에는작은방느티나무책상에앉아글쓰는것으로충분합니다.”
-지리학계에서도대운하에대한논의가있었나요.
“내가80년대초<남한강수운연구>라는논문을썼어요.그후한사립대학이사장이한강과낙동강운하와관련된학술심포지엄에나와달라고해요.한강과낙동강을어떻게운하로연결하느냐며거절했어요.그때부터대운하계획이세워졌다고하더군요.가뭄과홍수를분산,조절시키기위한도수로라면몰라도운하는문제가많은계획입니다.”
-4대강사업은어떻게보십니까.
“하상이높아졌기때문에토사를어느정도준설을할필요가있어요.다만너무한꺼번에하는게문제지요.자연의주인은인간이아닙니다.업적을위해자연을함부로파헤치면큰일납니다.”
-홍천강주변이개발되면서어떤문제가생겼나요.
“오지까지포장도로가뚫리고몇천원하던땅값이몇십만원씩오르니까갈등이끊이지를않아요.도시로떠나땅을거들떠보지도않던사람들이소유권을주장하며나타납니다.농촌에서는땅과길의경계가명확하지않아요.그런데땅을사서들어온외지인들이30년넘게왕래했던길에구역표시를하고막아버리는겁니다.이래저래볼썽사나운싸움이끊이지않습니다.농촌은그나마우리삶의아름다운전통이남아있는곳이었어요.그것이폐기처분되지않도록해야합니다.”
-농촌이어려운것이개발때문만은아니지요.
“승용차가몰려들어온갖도구를동원해물고기의씨를말리고오리같은야생동물을사냥합니다.숙주인다슬기를마구잡으면서반딧불이도사라졌어요.가져온쓰레기를아무데나버려서몸살을앓지요.도둑들은야산에심어놓은장뇌삼을캐가고더덕,두릅은물론붓꽃과할미꽃같은야생화까지싹쓸이해갑니다.농사일로집을비운사이패물,농산물판매대금까지훔쳐갑니다.우리집도현판,가구,돌확,토기들을도둑맞았어요.”
–농사가주는가르침은무엇인가요.
“뿌린만큼열매를거두는것이땅의정직한진리입니다.많은사람들이노동을신성하다고말하면서땀흘려일하기를꺼립니다.체육관에가서흘리는땀은고급스럽고노동으로흘리는땀은천한것으로여기는사람들이많잖아요.저는농사일을하면서세속의명리보다훨씬귀한것들을얻고있습니다.”그는“농사도하나의창작이고땅위에만드는하나의예술”이라고했다.참아름답고멋진낙도(樂道)의경지다.
최영준교수는누구
한국역사지리학의뛰어난성과로꼽히는‘영남대로’대표적저술
1941년서울에서났다.해방전부모를따라평양에서살다가개성,서울을거쳐인천에서중·고교를다녔다.중학교때조회시간에전교생앞에서‘반도국가인이탈리아와한국의공통적인운명’에대해발표했다.교장선생님의칭찬과권유로지리학자의꿈을품게됐다.서울대학교사범대학지리학과와루이지애나주립대학교대학원을졸업했다.고려대학교사범대학지리교육학과교수를지냈다.2007년정년퇴임했고,지금은명예교수이자문화재청문화재위원이다.
부인은도예가인손정리한국교원대명예교수.학술원회원이자성균관대명예교수였던불문학자손우성선생이장인이다.홍천강변그의집에서<손우성의유럽여행기>를펴냈으며2006년102세로별세했다.
서울에서부산까지옛길의역사를연구한<영남대로>는한국역사지리학의뛰어난성과로꼽히며그의이름을널리알렸다.72년에연구를시작해90년에야책을냈다.그가처음쓴‘영남대로’라는용어는학계의공식명칭이됐다.또답사과정에서낙동강내성천합류지점에있는백포나루의삼강주막을처음발굴해세상에알렸다.
이후‘남한강수운에대한연구’등우리국토의역사를인문지리학의관점에서살펴본<국토와민족생활상>,사라져가는짚가리의모습을글과사진,스케치에담은<한국의짚가리>등중요한저서를잇달아발표했다.이두권은홍천강변시골집에서원고를정리했다.
이밖에공저로<담론과성찰1><용인의역사지리><경기지역의향토문화><경상남도의향토문화>,주요논문으로<풍수와택리지><무카디마를통해본이븐할둔의지리학><천수만지역의어업환경변화와어촌>등이있다.
요즘은‘개화기(開化期)경상남도의가옥과취락연구’를위해답사여행과자료조사를하고있다.합천군·산청군·진남군등3개군의가옥과농토,지주,소작농들을조사해조선시대농촌생활을분석중이다.또한틈틈이실크로드답사여행을다녀온다.실크로드를통한농업문명의전파경로를한권의책으로정리할계획이다.
–-[김석종이만난사람]김석종문화에디터/경향신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