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법·국악반등도9월개강예정
숲길걷기반을맡은남난희씨는1980년대세상을떠들썩하게한여성산악인이다.백두대간이란이름이생소했던1984년새해첫날부터76일동안태백산맥단독종주를감행해성공한인물이다.1986년엔여성세계최초로히말라야강가푸르나(7,455m)등정에성공했다.30세전후까지그녀에게산은오직오르기위해존재했다.그산으로인해마음의상처를받고잠적하다시피결혼과함께산악계를떠났다.지리산에서녹찻집도운영했고,정선에서자연학교교장도해봤다.다시지리산으로입산한지만13년이다.
욕망과도전의산에서내려와안정과평온의낮은산에서산과사람과함께살고있다.이혼의아픔도겪고아들이라는희망도얻었다.매일아침된장과녹차농사로정신없이바쁘지만쌍계사불일폭포가있는불일암에서108배하고내려와일과를시작한다.“나에겐산이라는큰신(神)이있어요.불교신도는아니지만108배는사색을하기위해올리는것입니다.불일암까지왕복2시간30분가량갔다오면몸과마음이가뿐해져일과가수월하게시작되죠.”
악양화개골야트막한산에숲길8개코스를개발해‘지리산학교’수강생들과같이다닐계획이다.무조건오르려던불씨를지녔던20대에서그불씨가따뜻한장작숯불로변한50대엔아담한산에서사람과함께하기를기대하고있다.
화가오치근은남원운봉이고향이다.그런데왜악양에있을까?
“어렸을때부터알고지내던판소리선생님이악양에계셨습니다.남원에있으면서판소리배우러악양에한번씩오갔습니다.당시받았던인상이너무좋았습니다.악양엔들과강과산이있고,조금만나가면바다가보입니다.모든자연을다만끽할수있는거죠.고향에서그림만그리고있으려니눈치도보이고해서1999년부터악양빈집에서개인작업을시작하면서아예눌러앉았습니다.이제내가디자인하고지은집에서애들둘을낳고키우니집과도정이들었어요.”
오치근은지리산에살지만세상과다양하게소통하고있다.책속의일러스트를계속그리고있다.서울에서그려달라는청탁이연이어온다.그가일러스트한책도벌써몇권나왔다.또일주일에한번동네유치원생과초등생,학부모를모아그림강습을한다.섬진강에나가서모래조각을쌓기도하고,계곡에서돌을관찰하고,나무와숲길관찰도한다.일종의자연체험그림그리기다.
가르치는걸통해스스로도느끼지못했던부분을동시에배우고있다.주민과소통하고세상과소통하고있는것이다.그와중에이창수씨로부터지리산학교강사를맡아달라는연락을받았다.다양한활동을기다리던차에선뜻승낙했다.“여태까지는백석시인의글에내그림을그려책으로냈으나앞으로는나만의악양이야기,귀농이야기,시골이야기를감동적인글로담아내그림으로그리는작업을할겁니다”
시골에서더불어사는삶을꿈꾸며,그꿈을하나하나씩현실화해가고있는그다.
목다구(木茶具)공예가김용회는이제40대중반에접어들었지만지리산입산햇수로따지면가장고참이다.1989년가을에입산했으니정확히만20년됐다.그는원래화가였다.1989년배낭에화구만넣고지리산여기저기를방황하고있었다.등산이라기보다그림그리기위한포인트를찾고있던중이었다.
5월초벌써48명수강등록마쳐
화개방향으로내려오다느낌이너무좋아‘한계절만이곳에서보내야겠다’고눌러앉았다.
그런데먹고살거리가없었다.화개에서차도구작업하는선배를만나일주일에세번나가일을도와주기로했다.그림그리러지리산에왔다목공예로전업하는순간이다.그렇게시작된목공예로인해1996년엔완전히그림을접었다.
그러나그림과접목된목공예가나오기시작했다.그림은구상이고디자인이다.이미훈련은돼있는상태였다.아름다운한국의선을살려목다구를만들었다.주변에선“야,너참대단하다.어떻게그렇게아름다운목다구를만들수있냐”는칭찬도들렸다.일본,중국에서까지반응이왔다.그는각오를새로다졌다.“우리나라만의차도구를만들어보겠다“고.그래서나온게코고무신,베틀북,한복치마등의모습을담은차도구였다.이젠그의차도구는기십만원하는정도의‘작품’이됐다.옛날에비하면정말괄목상대다.집도사고,그럴듯한작업장도지었다.그만의공간이다.지리산에입산한지20년만에마련한것이다.원래도시생활을부러워하지않았지만명실상부남부럽지않은수준이됐다.
그새결혼도했다.지리산시인이원규의팬이라는여성과그녀의친구가지리산에왔다.이원규시인은후배김용회를바로불렀다.그자리에서그녀의친구와그둘은바로‘필’이꽂혔다.주변의반대와곡절을극복하고끝내결혼했다.반대했던처가식구들도지금은흐뭇한표정으로바라보고있다.
그러나그도아쉬운점이있다.너무일찍지리산에입문하는바람에이론배울기회를갖지못했다.나무의결이어떤지,그결을살리는방법이없는지등에대한이론적지식이부족해아직시행착오를겪고있다.이번지리산학교에서수강생들에게목다구를가르치면서자신에겐이론을닦을기회를마련하자고만반의각오를다지고있다.
도예가류대원은지리산에입산한지만10년이됐다.경남양산의매형밑에서도자기를배웠다.지리산에납품하러다니다‘불편하게오가느니아예여기서살자’고한게지금완전히뿌리를내리게됐다.
“불편한점전혀없고경치도좋고사람도좋고너무만족스런생활을하고있다“고즐거워했다.지리산에서결혼도했지만그의부인은양산통도사부근에서그의도자기숍을운영하고있다.일종의주말부부다.지리산에서만든그의도자기를일주일에한번그가직접양산까지배달한다.돈이되는지안되는지는모른다.
“집사람이돈얘기를하지않는것보니먹고살만한가보죠.모든관리는집사람이하기때문에저는잘모릅니다.”
그도지리산의좋은사람들을만나지리산을위해서뭔가할일이없나찾고있던차에지리산학교에합류하게됐다.섬진강청소와악양동네밴드에이미가입,주민을위해봉사해오던터였다.악양의문화자급자족을위해매진할자세는벌써갖춘상태다.
소질있는사람이한둘이아닌,이렇게다재다능한사람들이모여지리산학교를개강한다는소문이벌써입소문을타고전국으로전해졌다.개강도하기전여기저기에서문의가들어오더니5월초8개강좌에48명이등록을마쳤다.옻칠반과천연염색반은9월부터하기로했다.또영농반과국악반이추가될지모른다.점점더규모가커질판이다.
강의실은따로없다.강사작업실이강의실이고,지리산이강의실이다.초대교장을맡은이창수씨는“영리를목적으로하는학교가아니기때문에단한명이라도수강신청하면개강한다”며“지역주민과귀농인이합심해지리산문화가확실히뿌리를내릴때까지,그리고꽃피울때까지기여하겠다”고포부를밝혔다.
밀려서온사람들이아닌,지리산을선택해서온사람들이지리산문화를일으키기위해서뭉쳤다.어떤문화의모습을보여줄지사뭇기대된다.토착민들과의보이지않는간극을여하히조정하고좁혀나가는것도그들의과제다.지켜볼일이다.
-글박정원차장/사진이창수사진작가제공/월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