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여저것이산장의불빛이다.
샤모니~투르~알베르산장~샹페~베르비에~몽포트~딕스산장
사람들은청첩장을내미는내게“이제8849m에서살겠수”라고농담을던지곤했다.아내곽정혜는에베레스트등정자였기때문이다.그에겐늘‘등정자’라는꼬리표가따라다녔는데,그말이곧알피니스트를가리키는건아니지만아내는늘하얀산을그리워했다.그리고그그리움이란게잠깐빛났다사라지고마는산정의메아리와같은것은아니라는걸나는이해할수있었다.경상도촌에서자라대학산악부를통해산을알게된아내는푸릇한20대의마침표를에베레스트정상에찍었다.어쩌면그는형광등뒤에빛나는태양을보지못하고청춘의종착점이그곳인양돌진하는하루살이처럼모든걸걸었던것인지도몰랐지만,나는적어도산에미친자라면,그래서에베레스트를목표로삼았다면그래야만했을것이라고생각했다.주례선생님은결혼식날주례사에서아내를일러“20대에에베레스트에오른독한년”이라고말해좌중의웃음을자아내기도했으니까.
아내는그곳에서내려오다손가락다섯개를잃었다.사우스콜로하산중장갑을갈아끼다200m를추락해정신을잃은것이다.마침정상으로향하던중동고산악회팀의눈에띄었길다행이지,그날그순간가속도붙은아내의몸이눈처마에걸리지않고캉슝빙하의절벽까지날아갔다면,마침산안개라도몰려와시야를가렸다면,그들이어둠속에서잠시길을잃어아내가있는쪽으로지나지않았다면,두사람이정상을포기하지않고줄곧발길을옮겼다면지금아내는여전히스물다섯살꽃다운모습으로차가운얼음속에잠들어있을지모르는일이다.지난4년여간아내가해온건손가락이모두떨어져나가고상처가아물길기다리는일이었다.그리고아내는다시암벽에매달렸고,바일한자루만으로도빙벽을오르고자했으며,하얀산에오르던날들을추억하며손때묻은장비들을꺼내어닦곤했다.
“신혼여행은알프스로가자.”
그와한코펠에밥해먹자고약속한후,진행되어온일련의사회형식적과정들은단하나의목표,신혼여행을목적으로했다.집을구하거나가구를들여놓거나예물이나예단같은걸넉넉하게준비한다는건능력도되지않았지만그런건함께줄을묶고알프스의설원을가로지르는일보다결코중요한게아니라고우리는생각했다.
연애시절아내는나와사계절을함께등반했는데,바윗길은나름의노하우를터득해쉬운곳은선등까지할정도로어렵지않게올라갔지만눈쌓인만장봉에서는등반을시작한지얼마되지않아손이아프다며내려가자고재촉했었다.동상은늘재발가능성이있었고,때문에만년설위에서예전과같은날렵한모습으로다시돌아갈수없다는것을확인한그의표정은사뭇어두워졌었던것같다.
알프스는어디를가도쉽지않은곳이다.그러나싱거운트레킹이나하려고그곳까지간다는건알피니스트를지향해온한사람으로서내키지않는일이었다.문득머릿속을스치는길이있었으니,그곳이오트루트(HauteRoute)였다.
푸른빙하호수를끼고있는오니산장.이곳부터스위스로스위스프랑이통용된다.
오트루트란프랑스샤모니에서스위스체르마트까지를잇는길이다.직선거리약70km,도상거리로는100km쯤되지만코스를어떻게잡느냐에따라150km까지도늘어난다.‘높다’는뜻의프랑스어오트(Haute)처럼말그대로2500~3000m고도가계속이어지는오트루트는1861년처음시도되어1911년에야마르셀쿠르츠와로제트두사람이스키로완전히연결했다고한다.크레바스만조심한다면다른고봉들이가진곤란보다는훨씬수월하면서도,좁은정상에서느낄수없는또다른세상이그길에펼쳐질것이라고나는생각했다.
오트루트를목표로삼고자료를찾아봤지만국내에서구할수있는건많지않았다.몇몇외국가이드산행웹사이트에서오트루트와관련한자료들이나왔지만정확한지도까지공개돼있는건아니라서대략적인루트표시만을놓고구글어스에서길을찾아보는게전부였다.이마저도각각의사이트들에서제시하는루트가달라어느게좋은지는직접봐야알수있을것같았다.외국서적판매사이트를통해가이드북도찾아봤지만영문판으로된건거의없었다.그마저도우리가가고자했던,눈과빙하가있는고도로의알파인오트루트는아니었고대부분여름엔평범한초원으로변하는동계스키루트위주였다.지금까지국내에서오트루트를시도한팀은두팀뿐이다.한차례알프스경험이있던아내는그동안‘익스트림허니문’이라는멋들어진제목의계획서를만들었고,원정대발대식같았던결혼식을마친후본격적인등반시즌이시작되는7월초그높은길을향해떠나게되었다.
샤모니에서체르마트까지100km달하는빙하트레킹
한국에서샤모니까지갈때가장가까운공항은스위스제네바를거치는것이다.유럽직항편을타면12~14시간이걸리지만우리는가장싼표를찾다가제네바행을못구하고오밤중에떠나중동에들러가는취리히행을탔다.그러나취리히에서열차를타고샤모니로가다허둥대는바람에10초차이로갈아탈열차를놓쳐결국마지막환승역인스위스마르티니에서샤모니행몽블랑익스프레스막차를보내고말았다.결국200프랑이라는거금을내고택시로샤모니역에내리자허긍열(본지알프스통신원)씨가마중을나와있었다.
샤모니거리는10년전과5년전에와보았을때와달라진게없어보였지만,세월을확인할수있는건빙하의모습에서였다.몽블랑이내민혓바닥같은보송빙하가한눈에보기에도제법짧아져있던것이다.10년째샤모니에살고있는허씨에따르면그전엔여름철에보송빙하에가서빙벽등반도하곤했는데이제세락이자주무너져내리고등반을할만한얼음벽도남아있지않아가지않는다는것이었다.
위도가높아여름철엔밤10시까지해가지지않는탓에어스름한샤모니슈드광장에서오랜만에만난조문행·조성주씨와늦도록술잔을기울였다.작년까지이곳에서기념품점과숙소‘알펜로즈’를운영하던조문행씨는사업을늘려한식당‘산마루’를개업하고,조성주씨는요리사로활약하고있었다.반가운마음에한국시간으로치면아침7시까지퍼마시는동안아내는닭살돋은팔뚝을비비며앉아꾸벅꾸벅졸고있었고나도곧이어골아떨어졌다.
우리는첫날오후늦게야샤모니에도착했기때문에다음날은장비와식량등을준비하고몇가지정보들을찾아본후출발하기로했다.서점에가보니오트루트와관련한자료들을한쪽에따로정리해구비하고있었다.사진집이나가이드북도있었지만가장중요한건지도였는데,스위스에서발행한2만5천분의1지도가가장정밀해보였다.대략적으로계획한루트로는중간에버스와열차로이동하는곳을제외하면7장분량이었다.
투르마을에서콜데발므로가는곤돌라에서본풍경.멀리몽블랑이보인다.
샤모니에서투르마을까지버스를타고이동한후콜데발므에서시작해알베르프리미어산장,오니산장,샹페,베르비에,몽포트,프라플리산장,딕스산장,비그네트산장,베르톨산장,쉐니벨산장을거쳐체르마트까지가는루트였다.처음엔중간에샹페마을로내려와생피에르에서그랑콩비엥(4314m)을넘으려했지만,허긍열씨가그곳을넘기엔너무위험할것이라고조언을해줘루트를베르비에로돌아가는것으로잡았다.
꼭필요한짐들만챙겼다고생각했는데도60리터배낭은꽉차서무게가20kg에육박하는것같았다.체르마트에도착하면마터호른도등반해야겠다는욕심에안자일렌용짧은로프를놔두고7mm60m로프와캠2개,카라비너몇개와연료도더챙겨넣었기때문이다.산장에서자면이보다훨씬가볍게지고갈수있겠지만한사람이하룻밤에10만원대에이르는산장비는큰부담이었기에아내와나는전구간야영을하며가기로결의했다.
다음날이른아침,오랜만에어깨에뻐근함을느끼며허씨에게빌려온샤모니버스카드를내밀고투르행버스에올랐다.샤모니계곡을오가는버스들은요금이2유로지만관광시즌인7~8월과스키시즌에시내숙박시설에묵는사람들은무료로태워준다.30여분만에투르에도착했지만곤돌라는9시부터운행한다고했기에정거장앞식당에들어가간단한아침을먹었다.이제막시즌이시작된것인데도곤돌라를기다리는사람들은제법있었다.정시운행을시작한곤돌라를타고중간역에서리프트로갈아탄후콜데발므에내리자시원한바람과함께드류,에귀베르트,몽블랑등하얀설산과침봉들이한눈에펼쳐졌다.
능선허릿길로난완만한초원은그리힘든곳은아니었지만배낭무게탓에발걸음이계속더뎌졌다.1시간여가로지르니빙하가시작됐고함께출발했던다른팀들은이미저앞에서개미만하게보이게되었다.눈위에난사람들의흔적을따라2시간여를더가니바위위에알베르프리미어산장이보였다.마침점심시간이라먼저도착한사람들은음식을주문해먹거나휴식을하고있었다.대부분은이곳에서하루를보낸후다음날투르빙하일대의산들을등반하려고온것같았다.오믈렛으로간단히식사를마친우리는이제부터안전벨트를차고가다가적당한곳이나오면로프를사용하기로하고산장을출발했다.
완만한오니빙하를따라내려오고있는사람들.뒤로보이는봉우리는포르탈레(3344m).
샤모니를떠나기전조문행씨는요즘매일오후만되면날씨가안좋아지니적어도오후4시전에산행을마치라고조언했었는데,투르봉을끼고돌아나가는동안정말로북쪽에서검은적란운이일고있었다.구름은침봉을휘감아돌기도하고가끔쿠르릉소리를내는걸로봐서엄청난소나기를지니고있는듯했지만바람은줄곧남동풍이불었기에별로걱정은하지않고있었다.첫날적어도투르봉줄기를넘어가는콜까지는올라서야다음날산행이편할것같았기때문에걸음을계속옮겼는데,갑자기바람의방향이바뀌며사방에서구름이몰려오기시작했다.
“안되겠다.오늘은여기까지.”
황급히조금전지나다보아둔평평한바위지대로걸음을몇발짝옮기는사이우박이쏟아지며돌풍이불어댔다.불과50m쯤떨어져있는그곳까지달려가배낭에서텐트를꺼내치는동안아비규환처럼얼음알갱이들이뺨을후려쳤다.천신만고끝에텐트를치는데성공했지만,그동안배낭속모든장비들이젖어버렸다.이제오후3시가지났을뿐인데컴컴한어둠속에서텐트안에축축한침낭을펴고있자니난감한일이아닐수없었다.‘이러다텐트가찢어지기라도하면어쩌지’,‘내일도날씨가좋지않으면어떻게하나’이런저런고민을하는사이어제의피로가몰려들고스르르눈이감겨왔다.얼음알갱이들은바람을타고날아와쉴새없이텐트를두들겨댔고샤르도네에선눈사태가쏟아져내렸다.무의식중에손을뻗어코펠을텐트밖에내놓았다.눈보다는빗물이먹기좋았기때문이다.
천둥속의하룻밤
5시면동이트기에일찌감치눈은뜨고있었지만침낭에서나오기란쉽지않은일이었다.그동안바로옆을지나는사람들의발자국소리가들리고,웅성거리는소리들이20번쯤되풀이된후에야텐트문을열고밖으로나왔다.사방산안개가둘러싸고있었지만위험한구름은아니라서운행은할만했다.배낭을꾸리고아내와안자일렌을한후앞장서오르기시작했다.이정표하나없는눈밭이지만발자국을따라나름대로길은나있었기에지도와대조해가며어렵지않게목표한곳을찾아갈수있었다.다음목적지인트리엥산장으로가는길은투르에서뻗어나온능선중하나를넘어야했는데,우리는가장가까운콜슈페리어드투르를오르기로했다.콜로향하는설벽은경사40도정도였지만지난흔적이있어어렵진않았다.허나문제는어제날씨로인해더욱무거워진배낭과아직적응되지않은고소환경이었다.
“100발자국오르고한번씩쉬자.”
속으로100을세고한번씩쉬어가다보니30여분만에콜에올라설수있었지만,키가작은아내는그동안150발자국씩을걷느라심장이터지는줄알았다고했다.콜에올라서본트리엥플라토는드넓었다.GPS좌표와지도를비교해보면,아래로난길이맞는듯했지만아내는마침투르에서내려오는사람에게트리엥산장에대해물었다.어린아들과함께줄을묶은그는서툰영어지만“10분만내려가면산장이보인다”고일러주었고,“우린허니문중”이라는아내의자랑섞인설명에감탄을내뱉었다.
허나그의말처럼10분을가도산장이보이는건아니었다.이곳은가끔이정표들이눈에띄었지만1시간거리라고쓰여있으면2시간을걸어야하는게맞았다.배낭무게와짧은다리가그원인이었다.계속되는가스속에가끔씩나타나는크레바스들을건너2시간을가다보니그제야안개사이로절벽위에산장이눈에들어왔다.아직시간이이르고,산장에들를특별한이유도없었기에바로지나쳐오니빙하로내려섰다.모레인이시작되며장비를풀고빠른걸음으로내려갔지만오니산장은나타나지않았다.30분을더내려가서이제뱃가죽이달라붙어후들거릴즈음에야푸른빙하호수옆에선산장이보였다.
산장은늘가파른절벽위에있었다.나중에안사실이지만,대부분100년넘은산장들은처음지어질당시엔빙하바로앞에있었지만그동안얼음이녹으며지금처럼바위위에올라서게됐다는것이다.산장발치에서헉헉대고있자니아내는먼저올라배낭을놔두고내려와내배낭을받아들었다.
“남들이보면가녀린여자를혹사시킨다고하겠군요.”
그러고보니지금까지난대부분아내의발자국만을따라온것이었다.
산장은천국이었다.우린화장실수도꼭지에서콸콸쏟아지는,그러나먹지말라고쓰여있는물을받아라면을끓여먹고부른배를두드리며한동안늘어져있다가다시발길을옮겼다.라프레야에는아래샹페마을까지리프트가다녔다.샹페에서다음마을베르비에까지는지도상으로그리먼곳이아니었기에인포메이션에들러택시를물어봤지만,안내데스크에있던여자는고개를저었다.너무비싸니타지말라는것이었다.대신그는대중교통편을알려주었는데,버스2번,열차2번을갈아타는스케줄로,차로20분이면갈거리를2시간에가는것이었다.우여곡절끝에스키리조트로유명한베르비에에내리자이미모든상점들이문을닫은시간이었다.
“형!생강먹고생각좀하세요.”
“알겠어!이마늘먹은마누라야.”
갈등의발단이된건숙소에서아내가이것저것체크하고준비하느라바쁜동안,땀에절어벗어놓은옷들중내것만내다널었다는것이었다.그로인해저녁을먹는내내아내는한마디도하지않았고,결국이틀만에팀워크에위기가닥쳤다.중요한건서로아무리삐치더라도다음날이면곧바로줄을묶을수밖에없다는사실.나는곧꼬리를내려야했다.
저기마터호른이보인다
베르비에에서는몽포트까지길게케이블카와곤돌라가연결돼있었는데,걸어간다면하루로도부족할길이었다.당연히케이블카를탔는데,1시간쯤걸려휑한눈밭에내리게되었다.지도상으론몽포트에서딕스산장까지거리가좀멀긴했지만고도가높지않고호숫가를따르는길이대부분이라거기까지가묵는걸목표로하고출발했다.그게바로오산이라는걸깨달은건얼마지나지않아서였다.이미해가중천에뜬상황의눈밭은몇발자국에한번씩크레바스를만난듯비명을지르며소스라칠정도로허리까지빠져들곤했고,허우적거리며빠져나오고나면기운은하나도남아있지않게됐다.멀리콜데샤우를넘는사람들이하도더디게올라가기에곧따라잡을수있을거라생각했지만막상설벽에붙으니우리도마찬가지였다.
“형,여기너무위험해요.”
마지막경사50도쯤되는설벽을가로지르던아내는걸음을옮기지못하고그자리에섰다.배낭에있던피켈을꺼내쥐어주고한발한발“단디(단단히)조심하라”고당부하곤바로뒤따랐지만나도긴장되는건마찬가지였다.아내는왼손이불편했기에특히왼쪽으로기운설벽에서는피켈을제대로사용하지못해공포에질리곤했다.그는“추락에대한트라우마가있는것같다”고털어놨다.콜을넘어서면그나마나은길이펼쳐질줄알았는데,아직시즌이이른탓인지눈쌓인곳들이많았다.2km를지나는데4시간이걸리고나서야오늘산장까지가기는글렀다는걸인정하게됐다.‘그랑데저트’라고이름붙은빙하호수옆에텐트를치고밤을보냈다.사방살아있는것이라곤파리한마리보이지않는적막한풍경이었다.
다음날점심무렵프라플리산장에,물론또‘떡실신’이돼서마지막몇십미터는아내가배낭을들어주어도착한후오늘은딕스산장까지가되몸을추스를겸산장에서자기로했다.산장지기아주머니에게전화로예약을부탁하니,그곳까진빨리가도6시간이라며걱정하는눈치다.표지판엔3시간거리라고나와있었는데.발걸음을서두를수밖에없었다.호숫가로난비포장도로는눈길이나돌길보다도훨씬지루하고힘들었다.호수가끝나고모레인지대의급경사오르막이시작되며아내는조금씩지친기색을보이더니마지막으로저고개하나만넘으면산장이보일것같은데주저앉아버렸다.멀리능선사이로마터호른이보였다사라지곤했다.나는아내가지고가던로프와크램폰을내배낭에옮겼다.
“하루종일들게하더니30분남겨두고인심쓰는군요.”
“우리도그냥남들처럼동남아나갈걸그랬다.”
아내는말이없었다.
“이길을혼자가라고했다면절대못갔을것.그리고다시가라해도안갈것”이라는게한참후돌아온그의대답이었다.딕스산장에불빛이하나둘켜지기시작했다.우리는나무십자가가선정상에서마지막설원을지나흐느적거리며그곳으로발길을옮겼다.
콜데룩스에서딕스호수로내려서며본풍경.딕스산장은저멀리검은삼각봉몽블랑드셰일롱앞에있다.
이곳에서꼬박6시간은걸린다.
-글\사진이영준기자-월간마운틴2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