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의 ‘안나푸르나’ 라운딩 <4> *-

은둔의왕국’무스탕’에서

오름이있으면내리막이있는것이순리다.

새벽4시에시작한오름이세시간반의사투끝에토롱라(5,416m)에서끝이났다.

토롱페디(4,450m)에서시작했으니고소증세에시달리며1천m에가까운고도를올린것이다.내리막의끝은묵티나트(3,760m)이니1,600m를내려가야’안나푸르나라운딩’7일째일정이마무리된다.

하지만가장어려운고비인토롱라에올랐으므로‘안나푸르나라운딩’전체거리의절반을지나온것이고고소증에대한걱정도없어져서한결수월한여정이될것이다.

묵티나트에서토롱라로오르는당나귀행렬.이길이무스탕지역과마낭지역을연결하는

유일한통로였고무역로였다.

토롱라에서묵티나트로내려가는길이한눈에들어왔다.

풀한포기없는거친황토색언덕과설산들로둘러싸인하늘아래첫동네묵티나트.‘마지막남은은둔의왕국’이라고불렸던무스탕왕국으로통하는입구였다.

무스탕왕국은14세기에세워진왕국으로티베트에의해둘러싸인오래되고외로운땅이다.동쪽의돌포(Dolpo)에서시작해서쪽에있는라다크(Ladakh)까지펼쳐진거대한지역이다.

원래이름은로만탕왕국이었으나무스탕으로서방에잘못알려졌다고한다.

15세기에서17세기까지무스탕은티벳에서인도까지이어지는히말라야횡단무역을지배했다.황금기였다.이황금시대기간에무스탕은서부티벳전지역을지배했다.성벽으로둘러싸인수도로만탕은종교와문화의중심지였으며그때남겨진그들의문화유산은아직도곰파(사원)과곰파의화려하고도장엄한프레스코벽화로남아있다.

17세기가지나면서부터무스탕도쇠망의길을걷는다.무스탕왕국은종족과문화의뿌리가티벳이었음에도네팔과연합하여티벳과싸웠고곧네팔에합병되었다.무스탕의왕족들은티벳과의싸움에서네팔을지원하는대가로농토에대한권리를인정받았다.무스탕왕국은1951년네팔이외국인들에국경을개방하고방문을허락할때까지역사에서사라진‘은둔의왕국’이된것이다.

그러나무스탕왕국은티벳의분리독립운동의소용돌이속에휘말리면서다시한번역사에서사라지는운명을맞는다.1950년10월7일중국은중국본토를하나의정부가통치한다는공산당의구호아래티벳침략을감행했다.점령군이었던인민해방군은끊임없이티벳문화가봉건적이라며소수민족말살정책을폈고긴장이최고조에달한1959년3월10일,수도라싸를비롯해곳곳에서전개된독립시위는수만명이숨진채결국실패로돌아갔다.280만명의티벳인들은네팔과인도등지로탄압을피해뿔뿔이흩어졌다.티벳불교의정신적지도자였던달라이라마도이때히말라야를넘어인도로망명했다.

50년전오늘이었다.달라이라마도이험한무스탕의고갯길을넘었을것이다.

무스탕은티벳분리독립운동이무력진압된뒤중국의티벳점령에항거한사람들이많이넘어와무장게릴라캄파(Khampa)의근거지가되었다.인도로망명한달라이라마가녹음으로중국과무장투쟁을중지할것을호소하자많은캄파들이무기를내려놓고네팔난민촌에정착하기도했지만일부는죽을때까지항거하기도했다.이로인해무스탕으로들어가는루트는완전히폐쇄되었고수십년간의이어려웠던기간에무스탕계곡은외부와완전차단되었다.1960년부터1991년까지무스탕이외부인에게열린적은한번도없었다.

저땅은얼마나척박하고얼마나많은슬픔을간직한땅인가.

묵티나트의가을풍경.산허리를돌아가는길아래에카그베니가있을것이다.짚차가다닌다.

황량한언덕과계곡에유독묵티나트주변에만나무와풀이자란다.

‘룽다’가휘날리는마을뒤언덕위에곰파(사원).

토롱라에서4시간을내려오니급경사가끝나고계곡옆에서너개의롯지가자리잡고있었다.

포터기리가구운감자를먹으면서나를기다리고있었다.

시즌에만문을여는롯지란다.그동안무던히도나를괴롭혔던고소증세도말끔히사라졌다.페트병에든코카콜라한병을사서한번에마셔버렸다.평생잊을수없는맛이라면바로이런것일게다.베낭에기대서꿀같은낮잠에빠져보는여유도즐겼다.

임시롯지에서묵티나트까지는두시간거리다.

묵티나트에서도롯지잡기가쉽지않았다.여러군데를물어서외딴곳의롯지를잡았다.

4일만에처음으로세수를하고머리감고샤워를했다.마낭을지나면서부터는세수할여건도안되어서물휴지로얼굴을닦고컵에물을담아서겨우양치질만할수있었다.3,000m가넘는고산트레킹에서는머리를감지않는다.몸의열을뺏겨서감기에걸리면고소증세가심해지기때문이다.

묵티나트는칼리간다크나디(강)로흐르는협곡이시작되는곳에위치한제법규모가큰마을이다.

좀솜까지비행기로와서카그베니와묵티나트에서휴가를보내는여행객들도많았다.마을입구에서부터야크털로만든모자와옷감을파는노점이즐비하게서서여행객들을부르고있었다.마을주변에만나무와풀이자라고있었는데마을외곽에는제법큰논밭이있어서가을추수가한창이었다.

붉은옷을입은아낙들이가을걷이를하고있었다.카메라를들고나타난이방인에게노래를불러주었다.스무살이되었을까?수줍음많고앳된처녀들이었다.

칼리간다키협곡의바람은거세다.특히오후가되면강바닥에서올라오는

흙먼지로앞을분간하기어렵다.되도록오전에일정을마쳐야한다.

칼리간다키나디(강)을건너는당나귀행렬.세계최고의협곡이다.

안나푸르나트레킹8일째.

오늘묵티나트에서어디까지갈것인가가하산길의중요한결정이다.

이제부터는완만한내리막길뿐이다.묵티나트부터는중간에길이끊어지긴하지만짚차를이용해서내려갈수도있고하루거리의좀솜까지가서비행기로포카라까지바로갈수도있다.

4일이남았는데적당한속도로베니로내려가는것이일정상가장안전한선택인것같았다.

베니에가면포카라로가는버스를탈수있다.

그러나이를어쩌랴.

애초부터평범하고쉬운길을택한건아니지않은가.

고라파니까지가서푼힐의일출을꼭봐야한다는욕심이버리기어려웠다.

베니로내려가는것보다이틀이더필요하고타토파니에서푼힐까지는하루에고도를2,000m를올려야하는험난한여정이또기다리고있는곳이다.

일단가는데까지가보자.

속도를내기위해서는포터기리가문제였다.초반부터무리한것때문인지회복이더뎌나의속도를따라오지못했다.내베낭무게를줄이고기리에게나머지짐을모두맡겨짚차를태워보냈다.

좀솜,마르파를지나나르중까지이틀가야할거리를하루에마쳤다.하지만트레킹중가장아쉬웠던순간이었다.지름길을가다보니무스탕초입마을카그베니를보지못하고지나친것과칼리간다키강의광활한모습을보면서도사진찍을여유도없이지나가야한다는것때문이었다.

칼리간다키나디(KaliGandakiNadi)는동쪽으로안나푸르나연봉들과접하고서쪽으로다울라기리에접해형성된거대한협곡이다.세계최고의협곡으로알려져있다.8,000m급산군들사이에흐르는강이니그깊이를짐작하기도어렵다.칼리간다키는카트만두에서트라슐라강과만나고인도로흘러가면서갠지스강의원류가된다.카그베니에서부터강폭이넓어지기시작한칼리간다키강은좀솜에이르기까지광활하게펼쳐졌다다시툭체를지나나르중에이르러절정에달한다.강폭이1km가넘는다.건기의트레킹코스는이강을따라가는데우기때는강이넘쳐길이사라져버릴때도있다고한다.

길을버리고말라붙은강바닥을따라걸었다.오후가되면서칼리간다키강에모래바람이휘몰아쳤다.

나르중에도착할즈음강에는어둠이깔리기시작하고다울라기리(8,172m)와툭체피크(6,920m),닐기리(7,061m)의연봉들은붉은빛을내뿜으며또그렇게하루를마감하고있었다.

/바람처럼/-카메라와길을가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