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부산2010희망원정대는히말라야8,000m급14좌완등을목표로지난봄시즌네팔히말라야의
8,000m봉14좌중마지막까지오르지못한산이시샤팡마(ShishaPangma·Xixabangma)였다.
다시도로가개설됐다는소식을접하고12일오전6시경(네팔시각)임대버스편으로카트만두를출발했다.그러나밤새내린폭우로도로상에또다른산사태가발생,도로가다섯군데나끊겨중국-네팔국경마을코다리에서차량으로1시간못미친거리의바라비세(Bahrabise)에서하루를기다렸다.
13일오전,밤새복구작업으로소형차량통행이가능해지자지프차를임대해코다리~장무를거쳐시샤팡마등반기점인니알람에도착했다.3,750m의해발고도에위치한니알람(Nyalam)은또한냐낭(Nyanang)으로도알려져있었다.그뜻은예부터이용되어온캐러밴대상루트에서연유되었는데‘수라(Sura)로가는길(TheRoadtoHell)’이다.지금도그기능은살아있어장무와코다리는진정중국-네팔인들의장사꾼과무역상의파라다이스라할만하다.이곳은옛날에도네팔의카트만두와티베트의주도라싸의실크로드캐러밴을형성했는데,
니알람의모습이외부인의기록에자세하게알려진것은1921년영국에베레스트위원회가파견한제1차에베레스트정찰원정대에의해서다.이때의대장은하워드베리(Col.Howard-Bury)대령이었고대원중에는여행가이자자연주의자인왈라스톤(Wollaston)이있었다.그가탐험도중부인에게보낸서한에는이렇게적혀있다.
‘우리는오래된중국인막사에서생활하고있는데…묵은먼지와일상의오물이가득합니다.쿨리(coolie·하급노무자)들은천박한습관을갖고있어요.…이티베트사람들은친절하긴하지만아주돈을밝히는사람들입니다.이들은언제나지저분하고무지하며,미신에사로잡혀있어요.…이곳의사원과수녀원은기도로시간을보내면서생활은전적으로활동인구에게의존하는사람들로넘쳐나는곳입니다.지금지어진어떤건물보다더크고훨씬튼튼한건물의잔해들로보아영화롭던시절도있었던것같습니다.’
그후1980년시샤팡마가외부인에게개방되자니알람을찾은첫원정대는1982년영국대였다.등반을기록한<ShishaPangma>책에서더그스코트(DougScott)의느낌을들춰보자.
‘왈라스톤이니알람을떠나며결론내린-지금까지보았던어떤곳보다도더욱불결하고악(惡)의냄새가풍기는-마을이었다.더그가1982년경험한바로는-50년이지난지금도그다지많이나아진것같지는않다-고적었다.’
다음날티베트인누르부를키친보이로고용하고부족한식량장비를보충하는등하루만에등반준비를모두마치고15일
풀밭의계곡과평탄한초원구릉지대를따라걸었다.몬순의구름이몰려와마치안개비가내리는듯하고가스가자욱하다.이렇게첫날,시샤팡마는우리의눈앞에나타날만한데도사위는온통회색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