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선성12성문종주
문하나열때마다역사한장넘어가네
많은사람들이북한산을처음오를땐우이동이나북한산성계곡에서백운대를찍고돌아오는걸전부로여기곤하지만차츰산행이력이늘수록능선종주를하고싶어한다.12성문종주는북한산의대표적인능선산행으로,꽉채운당일치기코스로여전히각광받고있다.한국인이가장선호하는산행스타일은조망이좋고위험하지도않은능선을걷는것이라고하는데,북한산성문종주는이런경향과가장잘맞아떨어지는곳이기도하다.
성문은빙둘러가며폐곡선을그리고있어열두개의성문중어느쪽을기점으로삼아도관계없지만,대부분자신이가장접근하기쉬운곳에서시작하는게일반적이다.그중대서문에서부터시계반대방향으로돌며대남문,대동문,위문을거쳐북문과서암문(시구문)으로내려오는코스는접근이편리하고산행이아기자기한맛이있어가장많은사람들이12성문종주의기본코스로여긴다.북한산성을축성한뒤낸보고서인<비변사등록>‘북한축성별단’에는지금과같은13개의성문이있는것으로전해지지만이후나온<북한지>에는수문을포함해16개의문이있는것으로나온다.
지금과는부르는이름이다소다르고높이,규모도달라어느쪽이정확한것인지는밝혀지지않았지만어쨌든지금우리가확인할수있는성문은중성문을포함해모두13개다.이것말고도북한산성계곡하단에수문의흔적이있지만지금은북한동철거공사로접근이막혀있다.어쨌든북한산의등줄기를타고넘어가는12성문종주는내내장쾌한풍경이이어지고가파른구간이많지않아초보자도쉽게도전해볼수있는산행코스가되었다.
대남문에서대성문사이의성벽에서바라본서울시내.12성문종주내내시원하게전망이트인다.
북한산역사따라가는12성문종주
북한산성의축성은이미삼국시대때부터있었다고하나,지금과같은모습을갖춘건임진왜란과병자호란을겪은뒤인숙종37년(1711)때이다.말하자면두차례엄청난시련을당한뒤만든,소잃고난뒤의외양간인셈인것이다.성이란적으로부터자신을방어하는기능이첫째목적이라고한다면북한산성은수도를보호하는기능에서는별소용이없다.당시의한양에서부터한참이나외곽에지어졌기때문이다.
성문을자세히들여다보면문을닫을경우문짝이걸리게되어있는문지석(門持石)에서그까닭을찾을수있다.북한산성의성문들은모두폐곡선의안쪽에서잠글수있도록되어있는데,전쟁이나면수도를버리고산성안으로피신하기위한용도였기때문이다.왕과지도층들의이같은생각이지금의기준으로보면한심하기이를데없지만,어쨌든북한산성은공사를시작한지6개월만에모든성벽과문들이완공되기이르렀다.그러나이후한국전쟁때를제외하곤이곳에서한번도전란이일어나지않았으니한편으론다행이면서도성문공사에동원됐던민초들의고충을생각하면더욱답답한일이아닐수없다.
12성문종주의첫번째인북한산성계곡안쪽깊숙한곳에자리잡은대서문은성안북한동주민들이대대로이용해오던문이다.북한동에서사람들이거주하기시작한건600여년이나된다고하는데,씨뿌릴밭한뙈기찾아보기힘든가파른비탈에서사람들의삶역시궁벽하게이어져왔을것이다.1950년대까지주민들이나무를해달구지에싣고내려가서대문까지내다팔았다고전하는이곳의역사를대서문은고스란히기억하고있다.일제시대때다른문들처럼문루가파괴되어방치되어있던것을1958년최헌길경기도지사가복원하고오솔길을확장해지금과같은차가다닐수있는길로만들었다고전해진다.
대서문에서오른쪽능선을따라가파르게솟은의상봉을오른다.‘의상능선’이라고도하는이길은과거김신조일행침투사건으로1990년대초반까지막혀있었지만이후관리공단에서몇몇위험구간에난간을설치하는등정비해개방했다.벌떡선의상봉은오르기전부터한숨이나오게하지만,막상길로접어들면아기자기한바위를오르내리는맛이있어간간히트이는전망과함께재미를더한다.의상봉정상까지는40여분.이후론줄곧북한산을빙둘러싼산성을따라크고작은바위봉우리들이한눈에펼쳐지며산의속살을보여준다.
대성문에서바라본대남문.보현봉과문수봉사이안부에자리잡은대남문은
12성문중가장먼저복원된곳이다.
의상봉에서내려서면두번째로만나게되는곳이가사당암문이다.성밖으로나가면중골이있는백화사쪽으로내려가게되고,성안으로는최근증축한국녕사로이어지는계곡안부에자리한문이다.이곳은대서문과달리문위에누각을설치하지않았는데,‘암문’이라불리는곳들의공통점이다.다른큰문들이성의주된방어를목적으로지어져양반이나세도가들이드나드는데쓰였다면,작고초라한암문들은밖에선드러나지않아비상시이용하는비밀통로였던한편,평민들이오고가는문으로쓰였다.
이제용출봉과용혈봉,증취봉으로이어지는암릉이계속된다.북한산의암릉들은천연성곽으로이용돼누구도허물수없는자연이만든요새였는데,의상능선뿐아니라만경대구간,염초봉구간등거대한바위능선들은인간이만든낮은담장에비할바가아니다.몇해전낙뢰사고가나기도했던용혈봉을넘어부왕동암문으로내려서다보면바위아래쉬어가기좋은널따란안부가나온다.예전에모산악회에서코스를개척해놓은곳으로야영을했던흔적들도있지만지금은그저잠시둘러보고갈뿐이다.
부왕동암문은삼천사계곡과부왕사지를잇는다.이역시암문이지만다른문들에비해규모가크고형태가단순한사각형이아닌위쪽이둥근홍예문형태를하고있다.또내부성돌틈도석회로마감해놓아이문이다른암문들에비해공을많이들였다는걸알수있다.이제길은나월봉과나한봉으로이어진다.지금은나한봉일대암릉에우회로가나있어9부능선으로돌아가도록되어있지만,그보다실제암릉에올라서는게경치가훨씬좋다.마치‘작은공룡능선’을지나는듯한이구간은시원스레트인조망과기암이어우러져북한산에서볼수없던또다른풍경을보여준다.하지만길이가팔라다소위험하기도한구간이다.
나한봉에서문수봉까지는아예8부능선으로돌아가도록길이나있다.청수동암문을지나가게되지만,문화재인성벽을보호하기위해서다.청수동암문은의상능선에서승가봉~비봉과연결되는부분에위치하는요충지로,성안쪽으로는군의지휘소였던남장대지와연결된다.문수봉을뒤로돌아오솔길을따라나아가면가파른오르막을10여분올라대남문의웅장한모습이눈에들어온다.비봉능선과사자능선이학의날개처럼펼쳐진가운데몸통부분에자리잡은대남문은마치서울중심부를두날개로껴안고있는것처럼보인다.
대남문은북한산의모든성문들이누각이없는채로방치되던때가장먼저복원을시작한곳인데,1991년복원계획이알려지자시민들이산행길에봉사하며기왓장을나르는등정성을다한끝에지금과같은모습을찾게됐다.대남문에서바라보이는두봉우리문수봉과보현봉은12성문종주중몇손가락에꼽힐만큼경치가빼어나다.특히문수봉아래자리잡은문수사에서바라보는풍경이그만인데,고려시대창건한천년고찰인문수사는이승만대통령이태어나기전그의어머니가백일기도를한곳이라고해1958년이대통령과프란체스카여사도들러참배한곳으로유명하다.
위험할것없는암릉과오솔길의앙상블
대남문에서위문까지는산성주능선이라불리는구간으로지나온곳과같은바위구간은거의없고평탄한오솔길이줄곧이어진다.성곽을따라걸으려면대남문문루에서계속능선으로난길로가야하며,문아래쪽엔대성문까지우회로가따로나있다.
대성문은12성문중가장큰규모를자랑하며성밖길은형제봉능선을지나북악터널위보토현으로이어지고성안쪽으로는행궁터로닿는다.
북한산성을연구해온조면구씨는<북한산성>에서‘대성문은그주변여건을검토해볼때중요성이크지않지만가장크게지어진까닭은경복궁과가장가까운경로이기때문에유사시임금이행궁으로통하는관문이되었을것’이라고보았다.대성문에관해서는다소엇갈린기록들이남아있다.<비변사등록>에는대성문이란이름이없을뿐더러,지어진연도도나와있지않다.다만대성문안쪽벽에새겨있는건설책임자의이름과기록상현재대동문의책임자가일치하고규모도같아대성문의본래이름이대동문이었으며,지금의대동문은소동문이라불렸을것이라고추측하고있다.
원효봉에서바라본대서문.북한동주민들이오랫동안이용해오던문이다.
‘왕의문’을지나면보국문이나온다.나라를돕는다는거창한이름에걸맞지않게다른암문들과같은초라한사각통로인보국문은과거보국사라는사찰이있었기에그렇게불린다고전해지며,처음엔동암문이라고명명됐다는기록이남아있다.북한산성축성전인1707년성호이익이쓴<유삼각산기>에는이곳을석가령이라부르고성밖정릉계곡을조계라고했다는기록이남아있다.보국문에서20여분을더가면대동문에닿는다.
문안쪽엔너른광장과도같은공간이있어여러사람들이쉬어가곤하는이곳은언뜻보면대성문보다규모가더커보인다.북한산성내부대들의사령부였던금위영을옮긴기록인금위영이건기비에는‘당초금위영을소동문안에세웠으나비바람에무너질염려가있어옮겼다’는내용이담겨있는데,때문에대동문의본이름이소동문이었으며,너른광장은금위영터였다고추측해볼수있다.축성이후왕조가몰락하기까지한번도전란을겪지않은북한산성이지만곳곳에서한국전쟁의흔적은찾아볼수있다.대동문바깥쪽에나있는,비행기에쏜듯한총탄의흔적들은깊은상처로여전히남아있다.
대동문에서10여분거리능선엔멀리서도확인할수있는높은누각이서있다.북한산성내에주둔하던군대를지휘할목적으로세운동장대다.동장대를지나면노적봉,만경대인수봉의절벽이한눈에들어오며장쾌한풍경이펼쳐진다.과거19야영장으로사용되던,현재북한산대피소가있는공터는본래용암문부근의수비를담당했던용암사라는절이있던곳이다.1968년엠포르산악회에서세운엠포르산장과,70년대신축해주능선을지나는이들이쉬어가곤했던북한산장은이제무인대피소가되어아쉬운모습으로남아있다.그옆에허물어진돌덩이들에서용암사의흔적을찾아볼수있어쓸쓸함은더한다.
용암문또한암문으로성내중흥사와태고사를연결하는통로가된다.쉽게쓸수없었던용(龍)자가암문에들어가의아하지만문위쪽,만경대능선상의용암봉에서해답을찾을수있다.본래용암봉암문,또는용암암문으로불리던곳이다.용암문을지나면노적봉과갈라지는능선고갯마루를지나위문까지작은바위들을지나야하는구간이나타난다.위문거의다가서철주난간이박힌사면에서바라보는백운대남면의모습은웅장하기그지없다.
가파른계단길을오르면백운대로향하는마지막관문위문에닿는다.위문이라는이름은일제시대에붙여진것으로,본이름은백운봉암문이었다.지킬위(衛)자를썼으니그뜻은나쁠것이없는데그래도백운봉암문이라는말이더입에감기는맛이있다.위문양옆으로는성벽을복원해놓았지만,굳이그벽들이아니라도만경대와백운대의가파른바위들이천연의요새역할을해주는곳이다.백운대정상을들러도좋고,북적이는것이싫다면다시발을돌려북한산성계곡쪽으로내려가면된다.
빠듯한하루코스로계획하기좋아
위문에서북문까지는또다시원효능선이라는이름으로불린다.이곳은염초봉구간이전문장비가필요한암벽구간이라쉽게걸어가기힘들기때문에계곡으로내려갔다가다시북문으로올라서는게좋다.약수암터를지나계곡길로줄곧내려가다보면표지판이있는삼거리가나오는데,이곳에서상운사와북문방향오른쪽으로길을틀어야한다.모노레일이깔린곳을지나가파른계단길을20여분오르면북문에닿는다.
지금까지지나왔던다른문들과달리북문은훼손상태가심각하다.본래다른문들처럼문루가있었던것으로보이나,오래전에소실돼흔적을찾기힘들고,문위쪽도구멍이뻥뚫려노출돼있어을씨년스럽다.지난1988년에는큰비로성벽일부가붕괴되기도했던곳이다.이문을지나면효자동쪽으로내려갈수있어지금도주말이면많은사람들이오간다.다른문들이새롭게복원돼문짝이달려있는데비해북문은이같은시설이없어오솔길사이로들여다보면옛날생각이나기도한다.
북문을지나원효봉에오르면,12성문종주의보너스같은마지막선물이남아있다.원효봉정상에서바라보이는백운대와만경대,노적봉의모습은전국어느명산에서도찾아보기힘든장엄한스케일의파노라마다.마침성문종주를마칠즈음이기에서쪽하늘에석양이물들기시작한다면온통낯을붉히는거석들을마주할수있으리라.서암문으로향하는길,내리막중간에갑자기나타나는서암문도북문과같이문루가소실됐지만,시구문이라불리며성내시신들이나가던곳이라는말과는달리포근함이느껴진다.오히려뻐근한다리와지친육체를달래줄무한한평화가찾아오는걸느낀다면,12성문을걸으며그이름과역사를다외진못한다한들아쉬울것없다.
원효봉을오르다뒤를돌아보면백운대와만경대,노적봉의파노라마가한눈에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