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산은겨울의끝자락에서봄을기다리는시기이므로실상삭막하기그지없다.산끝자락에는물오른가지마다색색의봄꽃들이꽃망울을터트리지만산의품속은봄의싱그러움이나연두빛의산뜻함과는아직거리가멀다.잎조차다떨어뜨린작년늦가을의모습을겨울이란냉동고에꽁꽁얼려뒀다이제막3월봄햇살아래꺼내해동시키는참이기때문이다.그러니겨울산의황홀한설경에한껏높아진심미안에도무지성에안찰풍경이다.3월중순펑펑내리는눈을보고‘눈부신설산을다시보는구나!’싶어입가에웃음이자꾸삐져나왔다.다음날제가이시절의주인공인양화사한미소를지으며눈꽃이피어올랐다.눈속에덮여버린매화꽃에대한애석함은아주잠깐이었다
눈이내린다음날은온종일찌뿌듯하더니산행날은일기예보대로최상의날씨였다.파란하늘아래흰산이빛을발하고있었다.구미에몇년만에이렇게많은눈이내린것이라그런지산을찾은등산객들이제법많았다.금오산도립공원관리소청원경찰현영길씨와구미케이블HCN새로넷방송의‘김상사의아웃도어’촬영팀김영규박정묵김현애씨가함께했다.탐방안내소가있는입구에서부터시작되는케이블카를타면해운사까지5분만에닿지만걸어가도30~40분이면너끈하다.
돌을깔아잘정비된등산로우측으로돌탑들이이어진다.‘21C돌탑’이라이름붙인이것들은1999년3월부터21세기를앞두고구미시민의화합과힘찬도약을기원하고탐방객들에게새로운볼거리를제공하기위해21기의돌탑을축조한것이다.금오산에흩어진자연석들을이용하여세웠다는데높이가작은것은2m부터큰것은7m까지그크기와높이가매우다양하다.계곡을따라등산로가이어지는데케이블카종점주변에영흥정(靈興井)이있다.바위산인금오산은가뭄이들면물이귀하다.
사시사철충분한식수확보를위해지하수맥을탐사해4번의시추끝에지하수를개발했다.그지하수가얼마나귀한것이었는지영흥정이라이름짓고표석도세워놓았다.금오산은강우기를제외하고계류의흐름이풍부하진못해도각지역마다샘이많아서식수에곤란을겪지는않았다.다만금오산에묘를쓰면1년간비가안온다는말이있어오래도록비가내리지않으면마을사람들이몰려가서묘를파내거나주인에게파내라고시킨후금오산에기우제를지내곤했다고한다.
신라말도선이창건한대혈사가임진왜란때소실되어철화스님이지금의절을복원했다는기록이전해지는해운사를지나면곧우렁찬소리를내뿜는거대한폭포를보게된다.깎아지른절벽에서떨어지는대혜폭포는그높이가27m라규모도커대단한볼거리다.“아무래도바위산이되어서이계절에이정도의수량을구경하기힘든데올해는눈도많고봄비도많이내려서수량이풍부하다”며설명한현영길씨가“좋은때에왔다”고덧붙인다.금오산관리사무소청원경찰인탓에현영길씨는매일같이금오산을오르내리는것이그의일이다.
금오산정상까지얼마나걸리냐는질문에“워낙자주다니기에1시간5분정도”라고대답한다.쉬엄쉬엄오르긴했지만대혜폭포까지거의한시간이걸렸던터라일행들은화들짝놀랬다.대혜폭포오른편으로병풍처럼늘어선바위벼랑을끼고북쪽으로가면도선굴이있다.구미공단과낙동강,그멀리해평의냉산까지도조망되는곳으로,도선대사가이곳에서참선하여도를깨우친곳이라고한다.그넓이가16척,높이가15척,안으로깊이가24척에얽어만든집이두칸이었다고하는,내부가30평정도되는꽤큰굴이다.임진왜란때인동과개령의수령과향민들의피난처였는데길이워낙험해왜군들이빤히보고도접근하지못했다고한다.
대혜폭포부터는나무계단이이어진다다.김영규씨가“2년전만해도바위벼랑을따라할딱고개를올라야해서오르기꽤나힘들었는데공단에서나무계단을설치하면서많이수월해졌다”고한다.계단을한참올라가니‘할딱고개’라는안내판이나오는쉼터다.정상까지이제1단계지점이다.금오산등반코스중가장숨이찬지점이라해서예로부터할딱고개라불려졌다.안내판에는눈앞에펼쳐진아름다운경치를감상하면서다시한번숨을고르라권유한다.그말대로앞쪽이탁트인조망처라금오산저수지와그너머구미시가지가내려다보인다.
계속해서이어지는계단에일행들의호흡은가빠지고말수는줄어든다.계단이끝나도만만치않은경사길이계속된다.이쯤되면평소등산을자주한사람과그렇지않은사람들이구분된다.선두그룹은어느새꽁무니도보이지않을정도로빠른속도로가버렸고후미그룹은부지런히걸음을옮겨도영속도가시원치않다.대혜폭포에서오른지1시간이조금못미처갈림길이나온다.좌측은마애석불0.6km,우측은성안을지나정상까지는0.9km라알리는안내판에서아직보이지도않는정상이건만아주지척처럼느껴진다.성안을지나정상까지는많은이들이지나간터라러셀이되어있는데,좌측의길은러셀이거의안되어있다시피하다.
보물490호인마애보살입상이있는곳까지가보고더나아갈지다시돌아올지결정하기로했다.무릎이상푹푹빠지는눈길을헤치며가노라니허공을향해불쑥튀어나온암반위에돌탑이여러기서있었다.오형돌탑이라는팻말을매단여러무리의돌탑은21C돌탑과달리돌탑을손보고있던한중년남성이6년을걸쳐만든것이었다.금오산을다니다돌탑을쌓다보니하나둘늘게되었다며속사정은얼버무리며다말하지않아도자신의작품들은하나하나자세하게설명해주었다.돌탑들은꼭대기에저마다다른모양으로무언가를형상화해놓았다.
꼭대기에동굴처럼만들고불상을갖다놓은석굴암탑,뫼산자모양으로돌을쌓은산탑,사자모양사자탑,알을품은암거북이탑,우리나라최초의우주인이소연씨가탔던우주선로켓모양의탑등등만든이의정성과수고로움이그대로나타나는한편그모양도아주기발했다.특히석굴암탑의부처님얼굴에서광채가나는데,이는동굴바닥에십원짜리동전을두어밖에서들어온빛이반사돼부처님얼굴에어리도록해놓은것이었다.오형돌탑을구경한후10여분정도더가니마애보살입상이그모습을드러냈다.제법넓직한터가있고암벽에남향으로조각된보살상은특이하게도모서리를중심으로좌우벽에걸쳐부조로조각되어있었다.
풍만한인상과천의자락을조각한수법으로는10세기이후로조성이된듯한데,편편한면을두고굳이보살이모서리에조각된예는아직어디에서도발견되거나조사된바가없을정도로특이한경우라고한다.이곳부터약사암으로향하는등산로는발자취가전혀없는것은아니나거진눈밭이었다.현영길씨가“이곳은계곡길이라눈이많아위험할수도있고,돌아가더라도레셀이잘된길로오르는것이더빠를것”이라고했지만눈앞에약사암이빤히보여다시돌아가는수고를하고싶지않았다.
게다가약사암에서점심공양을하기로한터라시간을단축할필요도있었다.잠시동안고민한후러셀을해서라도바로약사암으로나가기로했다.백운봉을중심으로살짝돈후약사암을향해바로계곡을올려치는것인데수북한눈으로때때로허벅지까지도닿기도했지만길은생각만큼험하지않았다.이제껏올라오면서몸이풀렸는지뒷사람들과간격까지벌여가며생각보다빠른속도로가볍게치고올라가기시작했다.러셀이힘들어도올해마지막심설산행이다고생각하니아쉬운마음에즐겁기까지했다.
고개를올라서니약사암이그모습을드러냈다.천길낭떠러지벼랑위에지어진약사암은의상대사가수련하고득도해이절을세웠다고전하나기록은없다.다만약사암의모습에관한기록이있다.최인재의<일선지>에의하면‘약사봉은천애낭떠러지아래있으며나무판자다리를놓아들어갈수있으나그아래는아득하기만하여가히굽어볼수없다’고했다.점심공양을달게먹고약사암앞뜰에오르니뒤도벼랑,앞도절벽이다.정면에는금오산의절벽과능선이늘어섰고좌측에는구미시가지가펼쳐진다.
약사암건너편에큰바위하나로이루어진절벽위에범종이걸린누각이들어서있다.누가어떻게저절벽위에아슬아슬한누각을짓고종을달았을까싶은데감탄이절로나온다.1년에두번,1월1일자정과사월초파일에타종을한다.약사암의주지성관스님은“30년동안여기서살면서이번같이눈이많이온건처음이인데거의50cm정도쌓인것같다”며뜰에쌓인눈을쓸어내기에여념이없었다.절벽위에매달린절인데절아래는모두물탱크라고한다.바위산정상에자리한절이라물이아주귀하기때문이다.약사암에서2.2.km떨어진성안에서물을급수하는데겨울에는얼어서물이안나오기에여름에받아놓은물로겨울을난다고한다.
왜물도없는곳에절을세운것인가물어봤다.“의상스님은수행중에땅에서솟는물을안먹었어요.천수,하늘에서내리는빗물내지는이슬을먹고살았던겁니다.그래서의상스님이창건한사찰은물이부족합니다.영주부석사도물이넉넉지않은절이지요.대개의상스님이창건한사찰은물이귀하고,원효스님이창건한절은물이풍부한데,물이서쪽에서동쪽으로흐른다고알려져있죠.”그야말로경치가빼어난약사암에물이부족한문제점이있으니다좋을수는없는가보다.
약사암에서바라본풍광도좋지만맞은편조망바위에서바라보면벼랑좁은틈사이에세워져흡사공중에떠있는것같고범종누각과약사암까지걸린흔들다리도멋진데,그뒤로구미시내까지한눈에들어온다.지상에속해있으되지상에닿아있지않는모순된절,허공에떠있는모습이세속에서벗어난듯하다.조망바위는정상에서헬기장을지나5분정도돌아가면나온다.약사암에서동국제일문을지나10분을걸어오르면금오산현월봉정상이다.사실엄밀히말하면정상은지금은철수하고없는미군송신탑이철조망을두른채남아있어일반사람들의발길을막고있다.
주인없이버려진흉물들의모습에눈살이찌푸려졌지만,그언짢은기분이오래가지않을풍경이눈에들어온다.한점구름없이파란하늘을향해뻗은눈덮인나뭇가지들이흰산호초군락같은모습이었다.이제껏구미만보여주던조망은남쪽칠곡과김천쪽으로도비로소트인다.하산길에서대혜폭포를지나자갑자기눈이없어지기시작해금오산입구주변은언제눈이왔냐는듯따뜻한햇살에모두녹고없었다.800m남짓내려오면서눈은봄날의아지랑이처럼순식간에사라졌지만지난겨울에서본그어떤것보다더화려한눈꽃은어떤봄꽃보다찬란했다.금오산품에들어갔으나그것은짧게피고진눈꽃처럼사그라질겨울의품이었고,그품에안겨미련없을작별인사를나눈것이었다.
–글김난기자/사진양계탁기자/월간마운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