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크다.지리산의‘큼’은물리적인길이와높이,넓이따위가정도를넘는다는것만을의미하지않는다.동서를가로질러100여리에달하는주능선과거기에서갈래친15개의크고작은지능선이남북을향해뻗었다.부챗살같은산줄기의주름사이로는수백갈래의크고작은골들이흐르고흘러섬진강과낙동강으로모여든다.백두대간의마지막용틀임으로우뚝선이산자락은호남과영남에두루걸쳐남원과구례,하동과산청,함양까지5개군과15개면과읍에그발치를드리웠다.
둘레만자그마치8백리에달하는이‘크고도큰’산은해발1400m가넘는봉우리만도20여개를넘게거느리고있다.최고봉천왕봉(1915.4m)과동쪽으로이를옹위하여부복한중봉(1874m)과하봉(1781m),써리봉(1602m)이이어진다.도저한산줄기의흐름은내처서쪽으로이어진다.연하봉(1730m)과촛대봉(1703.7m)을지난주능선은영신봉(1651.9m)에서낙남정맥을분기하고도여전히굵은선으로굳건히서진한다.
덕평봉(1521.9m)과명선봉(1586.3m),토끼봉(1534m)을지나면전북전남경남3도를가르는삼도봉이다.이어주능선에슬쩍비켜선반야봉(1732m)을지나노고단(1507m)과종석대(1356m)에서북쪽으로방향을돌린산줄기는고리봉(1248m)과만복대(1433.4m)로짓쳐흐른다.백두대간으로불리는이산줄기는북으로북으로이어져마침내는이땅모든산하의조종백두산에이른다.
산이높으면물이깊은법.동서로가로누운주능선에서거의수직으로분기한지능선사이로는이름난계곡들이사시장철풍성한계류를쏟아낸다.뱀사골,한신골,칠선골등북으로흐르는물줄기들은낙동강의지류인엄천강으로흘러들고,왕시리봉능선과불무장등사이로흐르는피아골과대성골등남쪽으로흐르는물은모두섬진강으로흘러든다.지리산에서흘러나온이물줄기를따라사람들이모여들었으니남원과구례,하동,산청,함양고을이산을가운데두고빙둘러자리잡았다.
그보다더오래전마한의유민들은반야봉아래달궁에자신들의왕궁을짓고살았다고한다.지리산은산자락에깃들어사는사람들을오래전부터먹여살렸다.구례와남원,하동은지리산에서비롯한섬진강덕분에비옥한들판이펼쳐진다.섬진강은참게와은어,재첩으로도이름자를떨치고있다.산청군단성면에는고려공민왕때문익점이원나라로부터붓두껍에숨겨온목화씨를처음심었던땅이었다.또신라시대부터이산자락에는당나라에서전해진차가심어졌다.또고로쇠수액이나거나매화나산수유,벚꽃,철쭉이필때면수많은인파가산자락을찾는다.
지리산을일컬어서산대사휴정(休靜)은“웅장하나수려함은떨어진다(壯而不秀)”고평했다.그러나지리산은수려함대신반역조차도기꺼이끌어안는한없는모성을가졌다.산자락에깃들어사는사람들은물론이고상처입고피흘리며자신의품으로숨어든사람들까지도모두그러안아숨겨주고보듬었다.조선시대정여립의난과이몽학의난,의적임걸년과이인좌의난이이산을거점으로일어났고,구한말동학농민군과항일의병들이숨어들었다.그리고여순사건과한국전쟁으로입산한빨치산의주활동무대가지리산이었다.
탐관오리의학정과관군을피해숨어든민초들과동학군에게그곳은푸른학이사는이상향청학동이었을것이며,징병과징용을피하고조국독립의열망을꿈꾸던항일결사와한국전쟁전후의빨치산에게지리산은온전한‘산사람’의터전이자변혁의거점이었으며,유일한해방구였다.그리고종래에는그들의사지(死地)였다.헐벗고굶주린민초들의상처를보듬고치유하고또그들의최후를묵묵히지켜본지리산은바로한국현대사의처절한현장이었다.모든게산이‘큰’탓이었다.
1953년빗점골에서남부군총사령관이현상이토벌대에의해사살되었다.그의수첩에는시한편이적혀있었다.
伏劍千里南走越검을품고남쪽으로천리길을달려왔네
一念何時非祖國뜻은한시도조국을생각지아니한적없고
胸有万甲心有血마음속엔끓는피가솟구치네.
지리산은그이름부터전래하는이칭과별칭이많다.백두산에서부터그맥이흘렀다는두류산(頭流山),백두산의맥이잠시머무른다는두류산(頭留山),중국전설의삼신산중하나인방장산(方丈山),한자로도地理山,地異山등이제각각쓰였다.이성계가왕위를찬탈하고자명산을두루찾아치성을올릴때백두산과금강산은이를수긍했으나지리산만은끝내거절하여그뜻이다르다는뜻으로지리(智異)라불렸다는속설도전한다.
1967년우리나라최초의국립공원으로지정된지리산내에는동물2718종과식물1372종이서식한다고하니이자리에서일일이그종류를헤아리기란부질없는짓이다.2000년도에는멸종된것으로알려진지리산반달가슴곰이촬영되기도했고,최근에는반달가슴곰을방사하기도했다.산자락명승마다에는대가람이자리를틀어곳곳마다문화재와유적지가즐비하다.우리나라31본산의하나이자10대사찰중하나인구례화엄사는신라진흥왕(544년)연기조사가창건했다.
화엄사에는화엄사각황전(국보67호),화엄사석등(국보12호),사사자삼층석탑(국보35호)등국보3점과화엄사대웅전(보물299호)등보물4점이있다.화엄사와같은해창건된연곡사에는우리나라부도중최고의걸작으로손꼽히는연곡사동부도(국보53호)가있다.하동의쌍계사와칠불사,유평리대원사와천왕봉아래법계사,마천의벽송사,남원산내의실상사와백장암등신라시대세워진고찰들이빙둘러늘어선지리산자락에는총7점의국보와23점의보물이있으며,한때400여개의암자가산속에있었다고전해지니지리산은그자체로거대한가람이었다.
이제산으로든다.
지리산에는이름난10개의경치가있다.노고단의구름바다(老姑雲海),피아골의단풍(稷田丹楓),반야봉의해넘이(般若落照),연하천의선경(煙霞仙境),벽소령의달(碧沼明月),세석철쭉,섬진강의맑은흐름(蟾津淸流),불일폭포,칠선계곡,천왕봉해돋이(天王日出)가바로그것이다.예나지금이나지리산을찾는사람들은노고단에서부터천왕봉까지이어지는주능선종주를꿈꾼다.이틀이나사흘쯤걸리는이산행을위해그들은경건하게배낭을꾸려밤혹은새벽기차를타고남원이나구례를거쳐노고단을올라지리산에든다.
노고단고개에오른그들을기다리는것은동쪽끝아스라이물러선천왕봉.긴여정의종착지가아득하다.그러나갈길멀다고한숨먼저쉴일은아니다.사방을둘러보라.눈앞에펼쳐진구름바다는그대로뛰어들고만싶다.심원골과산동면일대를뒤덮은구름바다는노고단고개에선그들을선계의신선으로만든다.구름바다에슬몃슬몃잠긴노란원추리꽃밭도노고단의여름얼굴로이름을떨치고있다.주능선에서살짝비껴앉은반야봉은갈길먼종주객들에게외면받기십상이다.그러나그곳에서바라보는낙조는일부러발길돌린그들의노고를단박에보상한다.
구름바다위로황금빛으로물들어사그라지는낙조는오래도록잊지못할장엄한감동으로남는다.반야봉아래삼도봉은전남,전북,경남삼도의경계가된다.과거날날이봉이라부르던것을격이맞지않는다며바꾸어부르고있다.그곳에는삼도를구분하는삼각형의커다란황동표지탑이있다.삼도봉에서남으로뻗어가는헌칠민틋한산줄기가바로그이름도흔연한불무장등이다.전라도와경상도를가르는이우람한산줄기는통꼭봉(904.7m)과황장산(942.1m)을불끈돋우고화개에서잦아든다.경상도말로장등이는큰덩치를이른다.
명선봉과연하천을지나면벽소령이다.이곳에는빨치산토벌을위해닦았다는군사도로가아직도남아있다.지리산을동과서로구분하는기준이되던벽소령은달밤에지나가는것이제격이다.달빛은그들의발걸음에차곡차곡부서져세석평전까지따라올게다.
‘호야’와‘연진’의전설이서린세석평전에는다른산에서는볼수없는놀라운풍광이펼쳐진다.약30만평에이르는산상평원에온통철쭉이흐드러진장관은실로경이로운것이다.이산상평원에서는신라화랑도가수련을했고,청학동으로통하는비밀통로가있다고도전해진다.
지리산의경이로움은또있다.해발1000m를넘어이어지는주능선곳곳에서적당한간격으로샘이솟는다.임걸령샘과총각샘,벽소령샘,선비샘,세석샘,장터목샘과천왕샘이그것이다.남부능선상에도딱맞춤한자리마다음양수와한벗샘이솟으니그길을지나는그들에게는무한히느꺼운일일뿐이다.방화와전화로인해불탄고사목이송곳처럼꽂힌제석봉넘어통천문을지나면마침내천왕봉이다.
온통바위로무장한천왕봉에는사시장철거센바람이휘몰아친다.천왕봉에서해돋이광경을보려면삼대가덕을쌓아야된다는데그것이결코쉬운일은아니다.주능선종주의마지막을천왕봉일출로삼아야하는이유다.한발한발상봉을향하는발걸음은진지한수행자의그것이어야한다.발걸음하나역시그들이쌓아가는작은덕에다름아니다.
천왕봉에선그들이온천지를물들이며떠오르는해를봤다면이제는다음대를위해다시덕을쌓을일이다.그러나설령해를보지못했다하더라도그리아쉬워하지말자.발아래깊이잠든세상이여명속에서서서히깨어나는그신통방통한광경은언제나펼쳐질것이며,남한내륙의최고봉에서맞는신새벽의신선한공기는오직그곳을오른그들만의차지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