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대 명산 덕유산(德裕山 /1,614m )을 가다.[4-1] *-

-*100대명산덕유산(德裕山/1,614m)을가다.[4-1]*-

◇지극히복된덕유산의동편조망.맨왼쪽소뿔처럼솟을가야산,

그오른쪽으로거창의산들이유감없이펼쳐진다.

덕유산은동으로경남의가야산(1430m),서로전북의운장산(1126m),남으로전남의지리산(1915m),북으로충북의속리산(1058m),그한가운데를우뚝솟았다.덕유(德裕),덕이넉넉하다는말이다.넉넉한덕은넓은품으로발현된다.전북무진장고을의무주와장수,경남의첩첩산마을거창과함양에제몸을부리고있다.덕유산의영역은많은사람들이종주하는향적봉(1614m)∼봉황산(남덕유산·1507m)구간에그치는것이아니다.백두대간의경전<산경표>에따르면‘삼봉으로부터봉황산까지모두덕유산이다’라는주석이나온다.

삼봉·적상·봉황이삼각형을그리다

삼봉산(1254m)은빼재(신풍령)의동북쪽봉우리이고,봉황산은남덕유의본래이름이다.따라서백두대간덕유산의주릉은남쪽육십령에서북쪽소사고개(도마재)까지장장35.9㎞에이른다.이구간의고도는빼재를제외하고는1000m아래로떨어지지않는다.하늘에서덕유산을내려보면북쪽의적상산(1034m)·남쪽의봉황산·동쪽의삼봉산이삼각점을이루면서그중심에솟은덕유산최고봉향적봉을수호하는형국이다.

백두대간이남하하면서덕유산이시작되는삼봉산은신장봉·칼바위·투구봉·노적봉·칠성봉등8개의암봉이치솟아있다.대간을타고남진(南進)하다보면대덕산(1280m)에서소사고개로아득하게추락했다가별안간치솟은삼봉산바위들로인해덕유입성식을톡톡하게치르게한다.이산은사방전망이뛰어나지만특히남서쪽으로요동치는덕유능선조망이탁월하다.또삼봉산아래금봉암부근의용바위는예로부터거창주민들이기우제를지내던영험한장소다.

붉은치마,그이름처럼가을단풍이화려한적상산(赤裳山)은국가공인천혜의요새다.숙종때우의정을지냈던이건명은“사면이깎아세운듯하고성안이넓고평평하니,실로하늘이설치한험조(險阻)다.<실록>과<선원첩>을이미모두여기에봉안하였으니,결코비워서버려둘수가없다.지금성첩이무너져서오랫동안수리하지못하였으니,진실로애석하다”고했는데,이기록은<증보문헌비고>‘여지고’편에나온다.적상산남쪽에는‘안렴대’라는유명한전망대가있는데,향적봉에서뻗어가는덕유능선과진안·장수의첩첩산들이장관이다.

◇북상면에서가장빼어난수승대.

지극히복된덕유의조망

전형적인육산(肉山)향적봉이여성적이라면봉황산은남성적이어서음양의이치를맞추고있다.중봉에서바라보면한없이부드러운덕유평전,뿔처럼솟은무룡산과삿갓봉너머신장(神將)처럼버티고서있는봉황산의웅장한모습을유감없이감상할수있다.이산을오르고내릴때는수백개급경사계단을각오해야한다.다시덕유산이양팔을벌리면삼봉산에서북서쪽으로뻗은거칠봉(1178m),갈미봉에서남쪽으로가지친호음산(930m),봉황산에서남동쪽으로이어진금원산(1353m)과기백산(1330m)이모두덕유의품에안기게된다.

이렇듯방대한덕유산은3개의후덕한계곡을품고있다.그중가장유명한것이25㎞에이르는구천동33경이다.이길은제1경나제통문(羅濟通門)에서시작하여학소대(鶴巢臺)·인월담(印月潭)·금포탄(琴浦灘)등의숱한소와담을지나32경백련사(白蓮寺)에서합장을한후,향적봉에서하늘로입적해버리는기묘한구성을가지고있다.덕유산서쪽칠연계곡(안성계곡)은용추·칠연폭포를품고있는빼어난계곡이다.구천동과달리차가들어갈수없어상대적으로자연그대로를유지하고있다.특히7개의소와담이연이어지는칠연폭포가장관이다.

마지막으로삿갓봉과봉황산에서발원하는월성계곡은동쪽으로흐르면서사선대,강선대와모암정을수놓으면서위천으로변신한다.또위천이시작되는농산리야산에는잘생긴석조여래입상이서있다.입가에잔잔한미소를머금고있는데,그미소는덕유산의후덕함에서나온것으로보인다.산자분수령(山自分水領)이라했다.덕유산주릉은전라북도와경상남도의경계이며금강과낙동강수계의분수령이된다.쉽게얘기하면덕유산주릉에서서쪽전북땅을향해물을버리면낙동강,동쪽경남을겨냥하면금강으로흘러가게된다.

북쪽구천동에서콸콸쏟아지는원당천과적상산에서흘러오는적상천은남대천과몸을섞어금강으로흘러간다.또칠연계곡쪽에서흘러나오는물줄기들은구량천이되어역시금강이된다.주릉동남쪽물줄기들은월성계곡으로모여서동쪽으로흐르다차례대로산수리의산수천·병곡리의분계천·송계사의소정천(갈천)의물을모아위천이된다.다시위천은빼재의신기천·소사고개의황강천을흡수,낙동강으로흘러간다.또한봉황산월성재남쪽100m아래참샘에서발원한남강역시낙동강을겨냥한다.

수승대를맴도는세편의시

덕유산은남한산줄기들의중심에놓인만큼탁월한조망을보여준다.향적봉대피소에봄여름가을겨울사진작가들이끊이지않는것은이런이유에서다.사방팔방조망중특히동쪽과남쪽이으뜸이다.가야산주변에서떠오르는해는가히남한제일의일출풍경이라는칭송이헛되지않는다.이풍경은산국(山國)거창의산들이서너겹깔려있고,그중심에가야산이극적으로솟아있다.우두산(牛頭山)이라고도불리는가야산은1430m의높이와여러개의뿔이돋친전설속에서나나오는소머리로주변산들을단숨에제압한다.

가야산바로앞에유독또렷한삼각형을그리는산은단지봉(1327m)이고,그왼쪽울퉁불퉁한산이수도산(1317m)이다.남쪽전망은중봉에서그진면목을보여준다.덕유평전·무룡산과삿갓봉·봉황산으로흘러가는덕유주릉의흐름은백두대간능선중에서도가장역동적이다.거기에다무룡산왼쪽멀리허공에는일필휘지로피어난지리산능선에입이떡벌어진다.날이맑으면천왕봉에서노고단옆만복대까지지리산주릉전체가아주선명하다.

모습은원경으로보는‘지리산의가장아름다운모습’이다.특히천왕봉은구름이물결쳐바다를이루었을때에도유일하게고개를내밀어‘천왕섬’으로변신하기도한다.덕유산의역사를이야기하는데빼놓을수없는인물이갈천(葛川)임훈이다.임훈은무룡산동쪽바로아래인거창북상면산수리마학골에서태어났다고한다.마학골은산수리에서3㎞더올라가고,무룡산에서도상거리2㎞아래이므로덕유산아래첫동네인셈이다.지금은사람이살지않은이곳에후손들이‘갈천선생유허비’를세워놓았다.

임훈은52세이던1552년에무려3000여자에달하는장문의기행문<등덕유산향적봉기>를남겼다.‘덕유산은내고향의진산이다.내가족또한그아래에있다.(德裕.吾鄕之鎭山.而吾家又於其下.)’로시작되는이기행문은덕유산의풍경과주변풍물,지명의유래등이자세하게나와있다.따라서이기행문이덕유산에관한가장방대하고상세한자료가된다.이글에서임훈은덕유주릉의흐름을자세히밝히고있는데,삼봉(三峯)을시작으로비스듬히서쪽으로내려오면서대봉(臺峯),백암봉(白巖峯),불영봉(佛影峯·무룡산),황봉(黃峯·남덕유산)이이어진다고했다.


또한구천동의원명은구천둔(九千屯).예전에이골짜기에서성불공자(成佛功者)9천명이살아서그와같이이름이붙었다고한다.오수자굴은계조굴(戒祖窟)로나온다.계조굴은백련사스님들이용맹정진하던도량으로추측되는데,훗날오수자의전설이얽히면서이름이바뀌었다.임훈이처음마학골에연서당은갈계리치내마을로옮기면서크게번창했다.서당앞을흐르는냇물이갈천인데,임훈은그이름을자신의호로취한다.서당건너편갈천(소정천)과위천의합수머리부근에는갈계숲이있다.

이숲에는임훈의후손들이선생과그형제들을추모해서세웠다는가선정·도계정·병암정이빽빽한나무그늘아래고즈넉하게자리잡고있다.덕유산동남쪽의물줄기월성계곡·갈천(소정천)·위천에는임훈과관련된유적들이흩뿌려져있다.그중가장빼어난곳이수승대(搜勝臺)다.수승대는일찍이벼슬길을포기하고낙향,자연에은거하던신권(1501∼1573)이머물렀던곳이다.그는거북을닮은거대한바위를암구대(岩龜臺)라이름짓고,그위에단을쌓아나무를심었다.그리고바위가잘보이는장소에요수정(樂水亭)을지었다.


수승대는본래‘근심을떨쳐버린다’는수송대(愁送臺)로불려오다가퇴계이황과신권,그리고임훈이주고받은세편의시로인해수승대로바뀌었다.사연인즉,퇴계가근처지방을유람하다가신권을찾아오겠다는연통을보냈다.그러나도착한것은퇴계가아니라한통의서찰이었다.퇴계는왕명으로급하게발길을돌리면서도시한수짓는것을잊지않았다.

‘수승이라대이름새로바꾸니
봄맞은경치는더욱좋으리라
뒷날한동이술을안고가
큰붓잡아구름벼랑에시를쓰리라’

이시를읽은신권역시답장을보낸다.

‘…서로떨어져그리움만한스러우니
속세에흔들리며좇지못하고
홀로벼랑가늙은소나무에기대봅니다’
시름에잠겨거북바위소나무아래서술잔을기울이는신권의모습이눈에선하다.

임훈역시기다리던퇴계를생각하며붓을든다.

‘…저무는봄빛밟고자네떠난다니
가는봄의아쉬움,그대보내는시름에비길까.’

◇예전에는해인사만한규모였다고하나지금은작고아담한절이된영각사.

상처받은덕유여신의선택

임훈의풍류이후덕유산은고난의역사로접어든다.이것은우리근대사가시련의역사로점철되었다는말이다.구한말함양·안의·거창·무풍등지에서봉기한의병들은모두덕유산에근거를두었다.칠연계곡에병막을차렸던신명선장군부대는전북지역을신출귀몰하며일본군을괴롭혔다.그러나안성에주둔중인일본군을공격하고자출전하던중매복에걸려전대원이장렬하게전사하고만다.칠연계곡매표소옆의칠연의총(七淵義塚)은그들을진혼하는합장묘다.

또구천동의인월담부근에는항일항쟁에혁혁한공적을남긴문태서장군의순국비가세워져있다.그리고1950년한반도는전쟁의시대를통과한다.전쟁이휴전된후남한의산과골을핏빛으로물들인빨치산토벌광풍이지나간다.덕유산역시그광풍을온몸으로두들겨맞는다.근래에들어덕유산은과거와는전혀새로운차원의시련을겪고있다.1993년향적봉북사면에무주리조트가건설되면서4000여그루의주목들이비명횡사했다.나아가1997년리조트는설천봉까지곤돌라를설치했다.

곤돌라에서내려15분걸으면1614m의향적봉에오르게된다.그것은덕유산자체의존재까지위협하는막강한위력이다.그것은산을유기적인생명체로보지않고개발과발전의대상으로만보려는인간의오만이다.그리고더이상북덕유,남덕유하는국적불명의산이름을쓰지말자.우리선조들은향적봉과봉황산이란아름다운이름을붙여줬다.모든사물은제본래의이름을불러주었을때서로교감하기마련이다.풍요로운덕을가진덕유의여신이제상처를치료하지못하면무시무시한마녀로변신할줄도모른다.그재앙을막을수있는사람은덕유산을사랑하는바로우리들이다.

-글진우석기자·사진김종권사진편집위원/월간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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