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8경 [1] 경주 남산 월성 역사유적지 (1) *-

한국8경[1]경주남산월성역사유적지(1)

경주역사유적지구(KyongjuHistoricAreas)는2000년12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24차세계유산위원회에서’경주역사유적지구’라는명칭으로세계유산으로등록되었다.세계유산으로등록된신라천년(B.C57-A.D935)는신라의고도(古都)인경주의역사와문화를고스란히담고있는불교유적,왕경(王京)유적이잘보존되어있으며,한눈에파악할수있을만큼다양한유산이산재해있는종합역사지구로서유적의성격에따라모두5개지구로나누어져있다.

불교미술의보고인남산지구,천년왕조의궁궐터인월성지구,신라왕을비롯한고분군분포지역인대능원지구,신라불교의정수인황룡사지구,왕경방어시설의핵심인산성지구로구분되어있으며52개의지정문화재가세계유산지역에포함되어있다.경주남산은신라의역사와문화가살아숨쉬는야외박물관이라고할만큼신라건국설화에나타나는나정(蘿井),신라왕조의종말을맞게했던포석정(鮑石亭)과미륵곡석불좌상,배리석불입상,칠불암마애석불등수많은불교유적이산재해있다.

월성지구에는신라왕궁이자리하고있던월성,신라김씨왕조의시조인김알지가태어난계림(鷄林),신라통일기에조영한임해전지,그리고동양최고(最古)의천문시설인첨성대(瞻星臺)등이있다.대능원지구에는신라왕,왕비,귀족등높은신분계층의무덤들이있고구획에따라황남리고분군,노동리고분군,노서리고분군등으로부르고있다.무덤의발굴조사에서신라문화의정수를보여주는금관,천마도,유리잔,각종토기등당시의생활상을파악할수있는귀중한유물들이출토되었다.

황룡사지구에는황룡사지와분황사가있으며,황룡사는몽고의침입으로소실되었으나발굴을통해당시의웅장했던대사찰의규모를짐작할수있으며40,000여점의출토유물은신라시대사연구의귀중한자료가되고있다.산성지구에는A.D400년이전에쌓은것으로추정되는명활산성이있는데,신라의축성술은일본에까지전해져영향을끼쳤다.

신라의서울경주는신라천년의숨결이고스란히살아있는역사의무대로서귀중한문화유산이곳곳에널리분포되어있다.경주에는예술적인가치를지니는건축물과조형물,문화적인가치가높은역사적인유적과유물등이많아그야말로경주시전체가살아숨쉬는야외박물관이기도하다.석굴암,불국사등과함께경주역사유적지구가세계유산으로지정됨으로써우리민족문화의우수성을다시한번세계적으로인정받게되었다.

2000년에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24차세계유산위원회에서’경주역사유적지구’라는명칭으로세계유산으로등록되었다.이때등록된경주역사유적지구는불교미술관이라고도할수있는남산지구,천년왕조의궁궐터인월성지구,신라의왕릉을비롯한고분군분포지역인대릉원지구,그리고황룡사지구,경주방어시설의핵심인산성지구등5개지역이포함되어있다.경주역사유적지구는총면적이2,800ha에달하며관련된문화재가모두52점에이른다.

경주역사유적지구의지정

대릉원

신라미추왕릉사적175호

신라천년의고도경주가2000년에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24차세계유산위원회에서경주역사유적지구라는명칭으로세계유산으로등록되었다.이때등록된경주역사유적지구는세계유산에등록된불국사,석굴암과는별도로남산지구,월성지구,대릉원지구,황룡사지구,산성지구등5개지구가있다.경주역사유적지구는총면적이2,800ha에달하며포석정,안압지,미추왕릉,분황사석탑,남산칠불암마애석불등이포함되어야외박물관이라고해도될정도이다.

<경주포석정지>

경주역사유적지구에관련된문화재는모두52점으로남산지구는남산칠불암마애석불등보물13점,사적11점,지방유형문화재13점,월성지구는국보인첨성대와계림등사적4점,대릉원지구는미추왕릉등사적7점,황룡사지구는국보인분황사석탑과사적1점,산성지구는사적인명활산성이
있다.

경주역사유적지구의지정목적

세계유산이란인류전체를위하여보호되어야할문화적,역사적가치가있다고인정하여유네스코세계유산에등록한문화재를말한다.세계유산으로지정되기위해서는그문화유산의가치가탁월하고역사적으로중요한의미를갖고있어야한다.경주는신라천년의숨결이고스란히살아있는역사의무대로서전인류가함께후손에게전해주어야할소중한인류의문화유산이널리분포되어있다.경주에는독특한예술적건축물과조형물,아주희귀하고오래되어문화적인가치가높은역사적인유적과유물등그야말로경주시전체가살아숨쉬는야외박물관이기도하다.

경주역사유적지구가명실공히세계유산으로등록되어유네스코로부터문화재의보존을위해재정적,기술적지원을받을수있게되었으며,또한문화유산의보존과향상을위해정부의지원을받을수도있게되었다.게다가문화민족으로서자부심을고취하고문화재를사랑하는마음을확산시킬수있는좋은기회가되었다.그리고세계유산에대한국내,국외로부터관광객이증가하여국가의수입이증가하는등경제적효과도거둘수있게되었다.경주역사유적지구를세계유산으로지정한것은이러한귀중한인류의문화적자원이자연에의해파괴되기쉽거나되돌릴수없는사회문화적혹은경제적변혁의방향으로상처받지않도록보호하기위한중요한목적을가진다.

경주역사유적지구의분포

경주역사유적지구는신라의역사와문화를한눈에파악할수있을만큼다양한유산이산재해있는종합역사지구로서유적의성격에따라모두5개지구로나누어져있다.불교미술과유적들이곳곳에널려있는남산지구,천년왕조의궁궐터인월성지구,신라의왕릉을비롯한고분군분포지역인
대릉원지구,신라불교의정수인황룡사지구,경주방어시설의핵심인산성지구로구분되어있다.

<경주배리석불입상>

경주남산은야외박물관이라고할만큼신라의숨결이살아숨쉬는곳으로신라건국설화에나타나는나정,신라왕조의종말을맞게했던포석정과미륵곡석불좌상,배리석불입상,칠불암마애석불등수많은불교유적이널려있다.월성지구에는신라왕궁이자리하고있던월성,신라김씨왕조의시조인김알지가태어난계림,신라의삼국통일때만든임해전지,그리고동양에서가장오래된천문시설로짐작되는첨성대등이있다.

대릉원지구에는신라왕,왕비,귀족등높은신분계층의무덤들이있고황남리고분군,노동리고분군,노서리고분군등의지역을나누어부르고있다.또한무덤의발굴조사에서신라문화의수준을보여주는금관,천마도,유리잔,각종토기등당시의생활상을파악할수있는귀중한유물들이출토되었다.황룡사지구에는황룡사지와분황사가있으며,황룡사는몽골의침입으로불에타버렸으나그터를조사한결과당시의웅장했던큰사찰의규모를짐작할수있으며4만여점의유물은신라역사연구의귀중한자료가되고있다.산성지구에는400년이전에쌓은것으로짐작되는명활산성이있으며신라의산성을만든기술은일본에까지전해져영향을끼쳤다.

경주역사유적지구의유물과유적

<경주황남리고분군>

경주남산지구는신라시대의대표적인불교유적지구로사적제311호로지정되어있다.경주남산은신라가건국한이후줄곧신라인들에의해신성시되어왔다.골짜기마다절터와석불,석탑등불교유물들이온산에가득차있다.현재까지암자터를포함하여절터112군데,석불80구,석탑61기,석등22기,그리고왕릉등의유물과유적이발굴되었다.남산에있는석불의대부분은마애상이고,20여구정도가석상이다.여기에있는석탑의대부분은3층석탑으로되어있다.또신라진평왕때에쌓은남산신성과진덕여왕때쌓은것을문무왕때보수한남산성이있다.중요한유물로는청동기시대의것으로추정되는민무늬토기,간돌도끼,간돌칼등과함께고인돌이발견되었다.

<경주남산상선암마애불>

불교유물가운데보물급으로는남산미륵곡석불좌상(보물제136호),남산용장사곡석불좌상(보물제187호),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보물제913호),천룡사지3층석탑(보물제1188호),남간사지당간지주(보물제909호),남산용장사곡3층석탑(보물제186호),배리석불입상(보물제63호),남산불곡
석불좌상(보물제198호),남산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보물제199호),남산칠불암마애석불(보물제200호),남산탑곡마애조상군(보물제201호),삼릉계석불좌상(보물제666호)등이있다.

이밖에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보리사마애석불(지방유형문화재제193호),남간사지석정(지방문화재자료제13호),남산리3층석탑(보물제124호),남산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지방유형문화재제19호),남산삼릉계곡선각육존불(지방유형문화재제21호),남산입곡석불두(지방유형문화재제94호),남산침식곡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제112호),남산열암곡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제113호),남산약수계곡마애입불상(지방유형문화재제114호),남산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제158호),남산삼릉계곡선각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제159호),배리윤을곡마애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제195호),배리삼릉(사적제219호),신라일성왕릉(사적제173호),신라정강왕릉(사적제186호),신라헌강왕릉(사적제187호),지마왕릉(사적제221호),경애왕릉(사적제222호),내물왕릉(사적제188호),경주포석정지(사적제1호),서출지(사적제138호),나정(사적제245호),남산동석조감실(지방문화재자료제6호),백운대마애석불입상(지방유형문화재제206호)등유물과유적이수없이많다.

월성지구에는경주계림(사적제19호),월성(사적제16호),임해전지(사적제18호),첨성대(국보제31호),내물왕릉,월성지대(사적및명승제2호)등의유적지가있다.계림은신라왕의성중하나인김씨의시조김알지의탄생전설이있는숲이다.신라의신성한숲이라하여현재까지보존되어오며,물푸레나무,홰나무,휘추리나무,단풍나무등100여그루의고목이울창하다.월성은101년(파사왕22년)에건축된성이다.아래로는남천이동쪽에서서쪽으로흐르고,성밖으로뒤에축조한안압지와임해전지를굽어볼수있다.

성루는흙과돌을섞어동ㆍ북ㆍ서의세방향으로반달모양으로둘러쳤기때문에반월성,신월성등으로불려지기도한다.첨성대는높이9.17m,밑지름4.93m,윗지름2.85m로건축되어있다.밑에서부터4.16m되는곳의남쪽허리에한변이1m인정사각형문이달려있다.모양은원통형으로남쪽문에사다리를걸었던자리가있다.30cm높이의돌362개로27단을쌓아만들었다.

대릉원지구는1970년대초에조성된고분공원으로여러왕릉과고분이집중되어있는곳이다.’대릉’이란이름은미추왕이죽은뒤"대릉에장사지냈다."는「삼국사기」의기록에서따온것이다.미추왕은김씨로서는최초로신라의왕이된인물이다.대릉원지구에는황남리고분군(사적제40호),노동리고분군(사적제38호),노서리고분군(사적제39호),신라오릉(사적제172호),동부사적지대(사적제161호),재매정(사적제246호)등이자리잡고있다.

황남리고분군에는미추왕릉(사적제175호)을포함하여250여기의파손된고분들이있다.미추왕릉에서는금관을비롯하여화문옻칠그릇과은으로만든허리띠장식품등많은껴묻거리가나왔다.천마총에서도화려한금관등의장식물이많이나왔고황남총에서는금동관과은으로만든관장식품,금으로장식한둥근고리를가진큰칼등이나왔다.노서리고분군에는금관총,서봉총,호우총,쌍상총이있으며,노동리고분군에는금령총,식리총이있다.금령총에서는금관과금으로만든허리띠장식품과함께기마상토우1쌍이나왔다.

<분황사석탑>

황룡사지구에는황룡사지(사적제6호)와분황사석탑(국보제30호)이있다.분황사석탑은634년(선덕여왕3년)에세워진것으로짐작되며현재남아있는신라석탑중가장오래된작품으로생각된다.황룡사지는동서로288m,남북281m정도의넓은면적을이루고있다.황룡사는자장과원광이자주설법했던곳으로유명한화가인솔거가그린벽화가있었다.벽화속의소나무가실물과똑같이그려져서이따금새들이앉으려다미끄러지기도했으나절의중이새로색칠을한뒤로새들이다시는오지않았다고한다.


<명활산성>

황룡사에는높이가약80m에달하는높은목탑이세워져있었다.이탑은신라사람들이백제의거듭되는공격을부처님의힘을빌어막아내기위해서세운것이다.이탑은워낙높았기때문에여러번벼락을맞아부서졌고여러차례에걸쳐보수를했지만1238년몽골군의침략으로황룡사와함께완전히불타버렸다.마지막으로산성지구에는명활산성(사적제47호)이있다.명활산성은경주의동쪽에서왜구를방어할목적으로쌓은산성이다.산성의전체둘레가약5.6Km에달한다.

경주역사유적지구의의의

신라천년의고도로서경주는신라의역사와문화를고스란히담고있으며불교유산및왕릉유산이잘보존되어있다.경주역사유적지구가세계유산으로등록된것은경주의문화재를세계인류가공동으로책임의식을가지고보존해야한다는사실을전세계에알리는것이다.또한우리민족스스로도세계유산을보호해야하는막중한책임을안아야한다는것을뜻한다.우리문화에대한가치를국제적으로인정받은만큼국제사회에서신라문화의우수성과독창성을널리알리고후손에게고이물려주어야할중요한의무가있는것이다.

경주에는세계유산으로등록되지도못하고국보나보물로지정되지않은수많은유적과유물들도산재해있다.이미국보나세계유산으로지정된문화재뿐아니라그렇지못한문화재에대해서도아낌없는애정과관심이필요할것이다.경주하면석굴암과불국사,첨성대와왕릉등을둘러보는것으로경주를다녀오곤하였다.그러나세계문화유산으로지정된진면목을두루살펴보아야한다는의미에서이번에한국8경중의하나로경주역사유적지구의역사와문화유물을빠짐없이둘러보는계기가되었으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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