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500m이상으로등산을할수있을만한독립된산이약1500개정도된다.그중등산할가치가있고안내할만한산은약1000개정도이다.따라서산을1000개이상오른사람이라면국내의산을대부분섭렵했으며,등산전문가로대접할만하다.등산을직업으로하지않으면서휴일마다산행을한다면25년이상걸린다.젊음을온통산과함께해야만가능한세월이다.
나이서른여덟이던1978년,나는동일방직산하대리점을운영하면서사업에분주했다.하지만몸은만신창이였다.호흡기질환,위장병,요통등온갖병이나를괴롭혔다.마침주변에서산행(山行)을해보라고조언해준게계기가돼산을오르기시작했다.1년이지나면서호흡기질환이없어지고,3년이되자위장병과요통이거짓말같이말끔히없어졌다.건강을회복하면서자신감이다시생겼고,뭐든지하면성공할수있다는꿈을갖게되었다.
이렇게시작한산행이33년간이어지면서국내산1400개에오른산악인이됐다.산행에입문한지5년만에바위산행을하다가북한산원효능선에서3m아래로추락하기도했다.6개월간꼼짝못하고누워있을만큼고생했다.그러나몸을움직일만하자다시산에올랐다.내등산인생최대의위기는산행10년정도됐을때왔다.바위산행을함께하던선배가
후배들을위해바위에서내려갈길을찾던선배는순식간에눈앞에서사라졌다.등산객들이모여들고구조대가오면서주위가떠들썩했다.싸늘하게식은선배의시신을보고눈앞이캄캄해졌다.그충격으로한동안산을쳐다보지도못했다.목숨까지걸고할일인가싶었다.1년쯤지나자발걸음이다시산으로향했다.하지만그후로바위는거들떠보지않았다.
▲ 일러스트=이철원기자
산행을시작한지20년이지난1998년5월백두대간종주에도전했다.친구와함께지리산자락중산리를출발하여30일만에진부령에도착했다.매일평균12시간씩27km를걸었다.그중열흘은우중(雨中)산행이었다.백두대간산행중비오는날황철봉진부령쪽에진입한다음하산길을찾지못하고2시간정도헤매고있었다.6월이지만저(低)체온증에걸릴만큼추운데다배가고파서기진맥진한상태였다.
그때우연히짐승들이다니는길흔적이보였다.무조건그길을따라가다가미시령으로가는하산길을찾아겨우조난을면하게되었다.친구를붙잡고"죽는줄알았다"고했더니그도나와같은생각이었다고했다.그친구는작년겨울혼자경기도
"왜우리는산에오르는걸까."오랜세월알고지낸산친구들이하나둘씩산에서세상을떠나는것을볼때마다마음이무겁다.
산행초기에는친구,중반에는아내가동반자가되어주었다.비교적멀고깊은산은혼자오른적이많았다.오지의산을혼자들어갈때는긴장과부담이더하다.하지만일단산에들어서면마음이바뀐다.모든것에최선을다하고그다음은하늘에맡기면마음이편하다.산행은뜻하지않은수확을내게줬다.2008년7월그간의산행일지를모아’한국700명산’을출간했다.
그후로도등산안내서몇권을냈다.국내에산재한대부분의산을섭렵하고백두대간을종주하고또다시산행안내책을쓰기위해재답사를하고,전국방방곡곡의교통편,식당,등산주변산행안내에필요한사항을조사하고나니우리나라지형이머릿속에생생하게그려진다.33년전건강을위해시작한등산덕분에등산작가라는새직업까지얻게됐다.나는오늘도배낭을메고산으로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