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수(金在洙·50)대장이4월26일오후1시50분(현지시간)안나푸르나정상에서며14좌완등행진에마침표를찍었다.
그의히말라야거봉등정의레이스는1990년에베레스트등정을시발점으로봤을때총21년이걸린셈이다.그러나
그는1990년대에국내고산등반가가운데특히주목받던인물이다.
그의고봉등정은초오유이후로체를오르기까지10여년의공백기가있었다.이기간중에도등반은꾸준히계속했으나8,000m급거봉과는인연이없었다.
고미영씨사고이후김재수씨는그녀의14개봉완등목표를대신하겠다는약속을지키기위해등반을계속한다.하지만
그의첫번째히말라야등반은에베레스트였다.부산산악인들과일본산악인들이합동으로추진한에베레스트(8,848m)원정대였다.산밖에모르는시골사람에게에베레스트를오를수있는기회는분명흔치않았을것이다.이런사실을누구보다도잘알고있던그는정상에오르기위해엄청난노력을쏟아부었다.
이런노력끝에그는당시함께등정한대원들보다무려2시간이나먼저에베레스트정상을밟았다.그리고10월8일남동릉루트로정상에오른다음다른동료를기다리며2시간30분간머무르는진기록을세우기도했다.
에베레스트에서뛰어난고산등반능력을자랑한그는곧바로중앙무대로진출한다.대한산악연맹에서주관하는시샤팡마(8,027m)남벽원정대에참가한그는당시최고의고산등반가로손꼽던김창선(51·성대OB)씨와짝을이뤄남벽을돌파했다.
당시이들은10월6일C2(5,820m)를출발해7일7,400m지점에서비박을하고,8일7,800m지점에서또다시비박을했다.9일오전9시40분두번째비박지를출발한이들은오전10시에정상에섰다.두사람은정상에서잠시머물다곧바로하산해오후3시경무사히C2로돌아왔다.그는이등반을통해히말라야거봉에대한자신감을얻게됐다.
1993년그는초오유(8,201m)에도전한다.당시부산에서초오유원정대가결성됐는데,고소적응을위해칸텡그리를다녀오고보니원정자체가무산된상태였다.허무한마음을달래기위해혼자라도가겠다는각오를다지는그는주위선배들의도움을받아히말라야를찾았다.
단돈700만원을들고초오유베이스캠프를찾은그는사실믿는구석이있었다.당시그곳에는초오유를등반하는한국원정대가있었기때문이다.그는당시이곳에머물던거봉산악회초오유-시샤팡마원정대의강태선단장을만나베이스캠프에머물수있게만해달라고간청한다.그리고원정대의등반이끝난뒤에초오유를오르겠다고약속했다.그는이약속을지켰고홀로9월20일오전8시30분경(현지시간)초오유정상에섰다.
그의초오유등반은네팔등반허가를받지않은불법등반이었다.산을오르고싶은열정은하늘을찔렀지만허가받을경제적여유가없었기때문이다.그는등반을마친뒤조용히귀국해국내에만이사실을알렸다.불법등반이발각되면입국금지를포함해향후등반에큰지장을받을수있기때문이었다.
그러나무허가등반도정상에오른사실만큼은변할수없다.쿠쿠츠카의브로드피크등정이나허영호씨의에베레스트종단등반도무허가등반이었지만그기록은인정되고있다.단이를확인할수있는확실한증거가뒷받침되어야함은물론이다.김재수씨는초오유정상사진이있어이를입증하는것은문제가없다.
청소등반나선김에정상도올라
1993년초오유이후네번째8,000m봉우리인로체(8,516m)를등정하기까지제법시간이흐른다.그렇다고그시기에등반을포기했던것은아니다.8,000m봉우리와인연이닿지않았던것뿐이다.포베다,엘부르즈,아콩카구아,매킨리등세계곳곳의여러봉우리를오르며공력을쌓았다.하지만이상하게도14개거봉과는인연이닿지않았다.
그러던가운데2002년봄시즌일본의산악환경운동가노구치겐(野口健·37)이꾸린청소등반대에참가하게된다.일본인4명과한국인4명,이란·그루지야산악인각2명,네팔인셰르파30명등이참가한다국적원정대였다.이들은에베레스트와로체의루트를오르내리며수거한쓰레기를베이스캠프로옮기는일을도왔다.4월부터5월까지이어진이등반에서김재수는청소등반을하며5월16일오전7시30분이상배,최병우씨등과함께로체정상에올라또하나의14개거봉등정의성과를거두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