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운트 휘트니(Mt. Whitney·4421m)! *-

마운트휘트니(Mt.Whitney·4421m)!

저산꼭대기의‘뱀파이어걸’이부러웠던이유
초심자이슬람친구들과휘트니마운티니어스루트등반
▲마운트휘트니의동벽에서는1930년대부터고난도암벽루트들이개척되기시작했다.우측부터마운트휘트니,킬러니들(4346m),크룩스피크(4325m).마운티니어스루트는제일우측설사면이다.

“투표합시다!”

가장연장자인비쇼르(46)가다급하게외친다.정상까지는고작100여m.하지만막판에닥친구간은자칫발을헛디디면한참을굴러떨어지게생겼다.비쇼르와마흐무드(34)에게는이렇게살떨리는구간은물론,크램폰에피켈마저처음써보는산행이다.

‘이사람들,막판에돌아서면평생후회할건데그걸모르는군.’

내감으로야고도감이꽤느껴지긴하지만실제로위험해보이지는않았다.한국사람들이었다면밀어붙였겠지만일단어떻게하는지지켜본다.찬성,반대가각각하나씩,기권이둘.내차례다.투표라니?산에오르는데투표가웬말이냐.

“한명이라도안올라가겠다는사람이있으면나는등산안해요.”그러자노를외쳤던자말(28)이진땀을흘리며우물거린다.“아니,나는그런뜻은아니었는데.좋아요좋아,찬성!갑시다.”

처음접해보는급경사에잔뜩얼어버린비쇼르는딱하게도겨우한발짝떼어놓기를반복할뿐이다.모른척그를마흐무드와함께로프로연결시키고잡아끌었다.

마운트휘트니(Mt.Whitney·4421m)!저외딴알래스카주를빼고는미국에서제일높은산이다.미국서부캘리포니아주복판에위치해인기있다.하지만오르기는쉽지않은데,까다로운입산절차때문이다.하루등반인원을100명이내로제한하고있고,허가를받으려면수개월전부터신청을해놓고추첨까지거쳐야한다.산에발도내밀기전부터운이따라야하다니,복권놀이같은건질색이었던나는언제가보겠냐고침만삼켰을뿐이다.

그런데미국인친구로부터이산에오르자고연락이왔다.“허가서는?”하루전에미리가서어떻게해보겠다는것이다.담타넘는개구멍이라도파놓겠다는것인가.“그럼,루트는?”마운티니어스루트!

▲1정상에선이슬람친구들과필자.2정상의방명록을작성중인필자.

마운티니어스루트(Mountaineer’sRoute)는미국의유명한자연주의자존뮤어(JohnMuir)가1873년단독으로개척한루트다.도대체어떤루트길래‘산악인의길’이라는이름까지붙었을까?여길오르면진짜산악인이라도된다는뜻인지.

밤길을꾸벅꾸벅졸면서운전한끝에6월27일새벽녘공원입구인휘트니포탈(WhitneyPortal)에도착했다.하루먼저왔던일행셋이일어나짐을챙기고있었다.이키,근처엔진짜곰이어슬렁대며돌아다닌다.랜턴을비춰도도망갈생각을안한다.덕분에늦게도착한유수프(28)와나는너무피곤해딱한시간만차에서눈을붙이기로했다.

자말은친구동생으로알고지내던터였고나머지셋은처음보는이들이다.수염이텁수룩한유수프는자신을“반만미국인”이란다.알고보니부모시절이나어렸을때미국으로넘어온이민자들로모두시리아,파키스탄등이슬람권출신이다.무슬림은하루다섯번사우디아라비아의메카쪽을향해기도하는데,첫째기도는동틀무렵인지라새벽부터부지런을떤다.뭐라고기도문을외는지나는도통관심은없지만,“새벽5시출발!”하면떠억준비를마치고정렬해있으니이슬람과등산은분명상통하는부분이있다.서로부대끼며사는모양새가전형적인미국인들보다친근감이간다.

휘트니를오르는길은크게두가지다.하나는남쪽으로휘돌아오르는일반등산로를따르는것(왕복35km)이고,다른하나는동쪽계곡인노스포크(NorthFork)계곡을따라오르다가전문등반기술이필요한휘트니동벽쪽으로오르는것이다.먼저도착한일행이받아놓은허가서는당일입장권으로그것만으로는야영을못하게되어있다.그런데다들별걱정을하지않는다.알고보니일반등산로에는국립공원출장소가등산로중간에있어입산증을확인하는데,노스포크계곡길은확인하는곳이없다.오르내리며마주친여러사람들도입산허가증없이등반하고있었다.대신잡히면벌금이꽤세고징역을살거라는경고판이곳곳에서으름장을놓는다.

▲마운티니어스루트의트래버스구간을마지막으로올라서는비쇼르와마흐무드.

깊은계곡길답게내내가파른오르막이다.해발2,500m의휘트니포탈에서출발,세개의호수를지나올라야한다.보통등반가들은두번째호수나마지막호수인아이스버그(Iceberg)호수근처에서캠프를한다.거리는10km도안될것같은데,고도차가만만치않다.아이스버그호수는해발3,800m에위치해있다.즉고도1,000m이상을올려야한다는얘기다.

계곡을서너번건너야하는데물이적지않다.한사코신발을적시지않으려고스틱으로온갖기교를부려보다가실패했다.눈녹은물이만들어낸우렁찬폭포를지날때는다젖기도했지만오히려시원하다.바위사면을아슬아슬하게기어오르기도한다.경치는또어떤가!마땅히눈둘곳을찾기어렵다.눈,손,발이각자바쁘니지루하지않다.

내려오는팀들이여럿이다.눈상태가어떤지,캠프지로는어디가좋은지,그리고무엇보다도‘마지막400피트’상태가어떤지한쪽은묻고,다른쪽은말해주고싶어안달이다.마운티니어스루트는마지막400피트구간이가장어려운구간인데,다들인터넷으로충분히검색하고온모양이다.눈상태가좋다고다들엄지를치켜세운다.우리는답례로등정축하인사를아끼지않는다.

마루금사이로휘트니동벽과침봉들이하나둘고개를내밀다가마침내쏟아질듯위압적인자태를드러낸다.잠깐씩선채로숨을고르다보면오후의마른햇볕에벽이반짝인다.쳐다만봐도마음을뺏기고만다.웅장한벽과그속의크랙들앞에선시간가는줄모른다.

동벽바로아래인아이스버그호수까지가능하면올라보려고은근히일행들을재촉했는데비쇼르가자꾸만아이스버그는물을구하기어렵다는얘기를한다.가만보니다들지친기색이역력하다.둘째,셋째호수중간즈음에캠프지를정했다.해발3,600m.슬슬숨이가빠오긴한다.여기저기에서눈녹은물이졸졸졸흘러물은구하기어렵지않겠다.다들고산등반경험은별로없어배낭내려놓고숨쉬기에바쁘다.

등반초짜인무슬림들을이끌고앞으로


이튿날새벽녘나를제외한네명은어김없이뜨는해를바라보며기도한뒤출발했다.저렇게단체로기도까지했는데오늘모두무사히잘올라가겠지?동쪽을면한등반루트는해를직접받지만그래도오전중에는눈상태가괜찮다.뽀득거리는적당히굳은눈에경쾌한발걸음을옮긴다.빙하가없으니크레바스걱정은없다.

마지막호수까지오르니올라야할루트가보인다.700~800m가량의쿨와르,일명‘슈트(chute)’는말그대로꽤고역이다.40도정도되는경사가계속이어진다.나는제일처지고겁이많은비쇼르를로프로묶어끌다시피올라갔다.자꾸쉬어가자하고,얼마못가힘들다고눈속에얼굴을파묻고몇번이나구역질을하는모습이안쓰럽다.

“내가너희들에게방해되는거같아.내가먼저내려가는게낫지않을까?”

비쇼르는어느새비관적으로변해있었다.어느정도남았는지자꾸묻는다.나도처음이지만“저기만오르면다왔다”고동료들을격려한다.

“난46세야.이런거하기에는너무늙었어.”

그나이로나이탓이라니,한국산에서그런소릴했다간기필코봉변을당하리라.어쨌든저울질을시작한비쇼르는내려가야할이유를계속찾는다.

“에베레스트최고령등정자가몇살인줄아세요?76세예요.아저씨는나이가많아서못올라가는게아니라고요!”

▲1휘트니포탈은거대한협곡으로양쪽벽에암벽등반루트들이개척되어있다.2해발3600m지점에텐트를쳐놓고망중한을즐기고있다.

궁색한이유에교과서같은훈계지만,이런대화를통해그는힘든것을,나는나대로답답함을잠시잊는다.결국어느새슈트정상부노스콜이다.한숨내려놓기무섭게,하얗게펼쳐진서쪽과북쪽의시에라네바다산맥이눈앞에닥쳐온다.

마지막인듯한다음구간을보니훨씬가파르다.여기가사람들이말한마지막400피트다.하단부는얼음이뒤섞인바위지대고상부는설벽이다.“크램폰에프런트포인트가없어서왼쪽바위로로프를써서올랐어요”어제만난사람이해줬던얘기가머리를스친다.저설벽구간은프런트포인트로찍어올라야할정도로경사가급하다는뜻이로군.혼자라면후딱오르겠지만이일행들이과연올라갈수있을지걱정이다.자세히보니우측으로설사면을트래버스하는발자국이뻗어있는게눈에든다.

“자말,저가파른쪽보다는이쪽으로돌아가는게낫겠지?”

“맞아…그런데여기도너무가파르지않나?저설사면끝에는뭐가있는데?”

“이정도면괜찮아.로프로연결하고갈건데뭘.조금만가면저뒤완만한등산로와연결될거야.”

자말에게물어보지말걸그랬다.결국망설이는자말을보고비쇼르가겁을낸다.그가투표를하자고하니자말은“No”에한표를던진다.산에서투표는무슨투표,한명남김없이모두동의해야만간다고내가생떼를부리니결국군말없이모두내뒤를따른다.과연트래버스는정상까지완만하게이어지는서면까지300m가량으로곧끝났다.다들긴장에떨었는지완만한서면에올라서자희색이만연하다.“아직끝난게아닙니다.내려갈체력을비축해야해요.”그외에도“재킷을입어라,간식을먹어라물을마셔라”,내간섭을이제는잘도따른다.

▲노스콜에서만난체코출신여성야나.그녀에게뱀파이어걸이란별명을붙였다.정상에서비박하려고해가지기를기다리는중이다.

뱀파이어걸과의만남


12시반,출발한지일곱시간만에드디어정상이다.생경한낮은기압에다들헐떡이며정상의기쁨을함께만끽한다.산의정점도,장엄한파노라마도,힘들게올라온보답으로기쁘다.그것뿐이랴,서로의기쁨속에서각자의기쁨을확인한다.

“둘만이리로가고셋은등산로로내려가서오늘밤차에서만나면어때?”

아까올랐던가파른사면을도로내려가려고로프를묶던유수프가갑자기딴소리를한다.비록로프로연결하긴했지만미숙한비쇼르나마흐무드가미끄러질까봐걱정이되는가보다.하지만다들이구동성으로“아냐!왔던길로끝까지내려가야지!”“더는따로운행하지말자”는둥,오를때와는딴판이다.결국다섯명모두로프로연결하고가파른트래버스구간을내려왔다.“로프로연결하니까뭔가하나가된느낌이야”하고자말이감탄한다.

노스콜에내려오니웬여성이홀로앉아쉬고있다.그런데그에게다들반갑게아는척을한다.알고보니대단한여성이다.체코슬로바키아에서온야나라는이로,나와마흐무드를제외한세명은3주전에로스앤젤레스근처의3,500m고산을훈련차등반했는데,이때정상에서만나함께내려와알게됐다고한다.그런데야나는그때산정상에서홀로비박했다.

“이번에도정상에서잘거예요?”

자말의질문에당연하다는듯이그럴거란다.

“도대체왜그러는건데요?”

이번엔내가물었다.

“석양과일출보는게좋아서요.”

대답한번멋지다.정상에텐트를치려고정상바로아래까지느지막이올라해가지기를기다리고있는것이었다.

며칠뒤페이스북에휘트니등반사진을올리니한지인이댓글을남겼다.“자유로운영혼…”정말내등반이자유로웠나?높은산올라간것만두고마냥자유로웠다고할수있을까?나보다는이야나라는아가씨야말로진짜자유로운영혼의소유자가아닐까.저먼바다위를홀로나는새알바트로스처럼.갑작스레먼나라에서온여자의머릿속이대체무슨생각으로차있는지알고싶어졌다.

▲그림같은첫번째호수를지나면서부터는가파른설벽을차고올라야한다.

오후가되면서슈트가온통질퍽해졌다.유수프와자말,마흐무드에게간단하게글리세이딩과활락정지기술을가르쳐주고는알아서가라고하니금세눈앞에서사라진다.

“아저씨는절대미끄러져내려갈생각하지마세요.”

불쌍한비쇼르는지쳐다리가풀린나머지가파른설사면을걸어내려갈힘이없다.슬링으로가깝게묶어미끄러질때마다잡아채면서함께내려왔다.

“아저씨평소에운동좀하세요.”

슬며시짜증이일어,툭튀어나온아랫배를보다못해잔소리를던졌다.

“내가원래는안이랬어.그런데두달전에….”

늦둥이를봤는데그만태어나면서부터3주일동안병을앓다죽고말았다는것이다.그동안꼬박병원에서밤을지새우느라몸이망가졌다는얘기.그런사정이있으셨군.투잡을뛰느라바빠운동할시간은없는데가끔산에라도오지않으면스트레스로미칠것같다고한다.스트레스속에산채로미쳐가는일상,그속에죽을고생을다해올라갔다온정상.비쇼르의휘트니등반이야말로진정자유로워지고픈영혼의몸짓이리라.

텐트로먼저돌아와휘트니꼭대기에걸린해를겨우잡아신발을벗어말려놓고다른이들을기다렸다.모두들완전히진이빠졌는데,특히마흐무드는오자마자텐트에드러누워음식도제대로못먹는다.한국라면을끓여주니다들맛있다고감탄한다.

“한국라면은국물이회복에아주좋아.”

허풍을치며마흐무드에게는그짠국물을실컷먹였다.문득석양이걸린휘트니정상을바라보며묻는다.

“저여자안추울까?”

“뱀파이어걸이라안추울지도몰라.”

흡혈귀가동유럽전설이라서,그녀가체코에서왔기때문에금세뱀파이어라는별명이붙었다.뱀파이어걸이왜저리도높은산꼭대기에서홀로자려드는지다들아리송해하긴하지만,적어도그쪽캠프지가갑작스레부러워지는것은사실이다.그녀가그곳에서맞을일몰과일출은과연어떨지.아마도그붉어진햇살아래서대지를높이,멀리박차고날아가는자기깃털을찬찬히확인하고싶었을것이다.깃털사이로흐르는바람에온신경을집중하면서말이다.다만필시몹시도외로울텐데.지는해는그녀의자유보다도외로움을전해줘안쓰럽다.

이튿날하산길은금방이다.생고생을한비쇼르는기분이좋았는지연신“자네없었으면우린모두못올라갔어.자넨정말성실한친구야”라고한다.20여년전미국에온뒤로나쁜사람들을많이만났는데한국에서온젊은친구가자기를끝까지도와줬다고고마워한다.그러더니아내가요리를잘한다면서집에초대하겠다는것이다.고생속에얻은정상의기쁨이그를조금이라도자유롭게해주기를.휘트니의날카로운동벽이돌아가는차창안에서도올려다보인다.

마운트휘트니산행정보


동벽에6개루트있어
마운티니어스루트는등반입문코스


마운트휘트니(4,421m)는미국본토최고봉으로캘리포니아주의시에라네바다산맥남부에위치한다.이산맥을남북으로가로지르는341km의존뮤어트레일상에있다.특히북미에서가장낮은해저86m의데스밸리국립공원(DeathValleyNationalPark)과고작136km만떨어져있어대조를이룬다.인요국유림(InyoNationalForest)관할아래있다.

휘트니의동벽에는6개의루트가있는데이중에마운티니어스루트,이스트페이스(III,5.7),이스트버트레스(III,5.7)가자주등반된다.마운티니어스루트는이름처럼전문등반의입문코스처럼여겨진다.보통아이스버그호수에서2박을하지만휘트니포탈에서출발해당일로등정을마치고내려가는경우도있다.등반시즌은5월에서10월이며,난이도가높지만동계등반도행해진다.공원입구인휘트니포탈에는몇몇야영장이있고주변은거대한협곡으로이루어져있다.이양쪽벽에10피치이상되는암벽등반루트들이있다.암벽등반가들에게이지역은등반대상지로서더인기있다.암벽등반을위한별다른허가는필요없다.

등반허가등반허가는꽤미리부터준비해야한다.11월2일부터4월30일까지는예약이필요없고현장에서허가를받을수있다.하지만본격적인시즌에는예약을해야한다.예약은6개월전부터할수있는데,미국국유림홈페이지(http://www.fs.fed.us/)에서서면을출력해직접우편으로부쳐야한다.취소등으로여분이있을경우등반당일이나전날아랫마을론파인(LonePine)에위치한사무실에서즉석으로허가서를받을수도있다.입산료는1인당15달러이며1팀최대15명까지예약할수있다.

글·사진/오영훈서울대농대산악부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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