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운트 휘트니(Mt. Whitney·4421m)! *-
BY paxlee ON 8. 25, 2011
마운트휘트니(Mt.Whitney·4421m)!
저산꼭대기의‘뱀파이어걸’이부러웠던이유
초심자이슬람친구들과휘트니마운티니어스루트등반
▲마운트휘트니의동벽에서는1930년대부터고난도암벽루트들이개척되기시작했다.우측부터마운트휘트니,킬러니들(4346m),크룩스피크(4325m).마운티니어스루트는제일우측설사면이다.
“투표합시다!”
가장연장자인비쇼르(46)가다급하게외친다.정상까지는고작100여m.하지만막판에닥친구간은자칫발을헛디디면한참을굴러떨어지게생겼다.비쇼르와마흐무드(34)에게는이렇게살떨리는구간은물론,크램폰에피켈마저처음써보는산행이다.
‘이사람들,막판에돌아서면평생후회할건데그걸모르는군.’
내감으로야고도감이꽤느껴지긴하지만실제로위험해보이지는않았다.한국사람들이었다면밀어붙였겠지만일단어떻게하는지지켜본다.찬성,반대가각각하나씩,기권이둘.내차례다.투표라니?산에오르는데투표가웬말이냐.
“한명이라도안올라가겠다는사람이있으면나는등산안해요.”그러자노를외쳤던자말(28)이진땀을흘리며우물거린다.“아니,나는그런뜻은아니었는데.좋아요좋아,찬성!갑시다.”
처음접해보는급경사에잔뜩얼어버린비쇼르는딱하게도겨우한발짝떼어놓기를반복할뿐이다.모른척그를마흐무드와함께로프로연결시키고잡아끌었다.
마운트휘트니(Mt.Whitney·4421m)!저외딴알래스카주를빼고는미국에서제일높은산이다.미국서부캘리포니아주복판에위치해인기있다.하지만오르기는쉽지않은데,까다로운입산절차때문이다.하루등반인원을100명이내로제한하고있고,허가를받으려면수개월전부터신청을해놓고추첨까지거쳐야한다.산에발도내밀기전부터운이따라야하다니,복권놀이같은건질색이었던나는언제가보겠냐고침만삼켰을뿐이다.
그런데미국인친구로부터이산에오르자고연락이왔다.“허가서는?”하루전에미리가서어떻게해보겠다는것이다.담타넘는개구멍이라도파놓겠다는것인가.“그럼,루트는?”마운티니어스루트!
▲1정상에선이슬람친구들과필자.2정상의방명록을작성중인필자.
마운티니어스루트(Mountaineer’sRoute)는미국의유명한자연주의자존뮤어(JohnMuir)가1873년단독으로개척한루트다.도대체어떤루트길래‘산악인의길’이라는이름까지붙었을까?여길오르면진짜산악인이라도된다는뜻인지.
밤길을꾸벅꾸벅졸면서운전한끝에6월27일새벽녘공원입구인휘트니포탈(WhitneyPortal)에도착했다.하루먼저왔던일행셋이일어나짐을챙기고있었다.이키,근처엔진짜곰이어슬렁대며돌아다닌다.랜턴을비춰도도망갈생각을안한다.덕분에늦게도착한유수프(28)와나는너무피곤해딱한시간만차에서눈을붙이기로했다.
자말은친구동생으로알고지내던터였고나머지셋은처음보는이들이다.수염이텁수룩한유수프는자신을“반만미국인”이란다.알고보니부모시절이나어렸을때미국으로넘어온이민자들로모두시리아,파키스탄등이슬람권출신이다.무슬림은하루다섯번사우디아라비아의메카쪽을향해기도하는데,첫째기도는동틀무렵인지라새벽부터부지런을떤다.뭐라고기도문을외는지나는도통관심은없지만,“새벽5시출발!”하면떠억준비를마치고정렬해있으니이슬람과등산은분명상통하는부분이있다.서로부대끼며사는모양새가전형적인미국인들보다친근감이간다.
휘트니를오르는길은크게두가지다.하나는남쪽으로휘돌아오르는일반등산로를따르는것(왕복35km)이고,다른하나는동쪽계곡인노스포크(NorthFork)계곡을따라오르다가전문등반기술이필요한휘트니동벽쪽으로오르는것이다.먼저도착한일행이받아놓은허가서는당일입장권으로그것만으로는야영을못하게되어있다.그런데다들별걱정을하지않는다.알고보니일반등산로에는국립공원출장소가등산로중간에있어입산증을확인하는데,노스포크계곡길은확인하는곳이없다.오르내리며마주친여러사람들도입산허가증없이등반하고있었다.대신잡히면벌금이꽤세고징역을살거라는경고판이곳곳에서으름장을놓는다.
▲마운티니어스루트의트래버스구간을마지막으로올라서는비쇼르와마흐무드.
깊은계곡길답게내내가파른오르막이다.해발2,500m의휘트니포탈에서출발,세개의호수를지나올라야한다.보통등반가들은두번째호수나마지막호수인아이스버그(Iceberg)호수근처에서캠프를한다.거리는10km도안될것같은데,고도차가만만치않다.아이스버그호수는해발3,800m에위치해있다.즉고도1,000m이상을올려야한다는얘기다.
계곡을서너번건너야하는데물이적지않다.한사코신발을적시지않으려고스틱으로온갖기교를부려보다가실패했다.눈녹은물이만들어낸우렁찬폭포를지날때는다젖기도했지만오히려시원하다.바위사면을아슬아슬하게기어오르기도한다.경치는또어떤가!마땅히눈둘곳을찾기어렵다.눈,손,발이각자바쁘니지루하지않다.
내려오는팀들이여럿이다.눈상태가어떤지,캠프지로는어디가좋은지,그리고무엇보다도‘마지막400피트’상태가어떤지한쪽은묻고,다른쪽은말해주고싶어안달이다.마운티니어스루트는마지막400피트구간이가장어려운구간인데,다들인터넷으로충분히검색하고온모양이다.눈상태가좋다고다들엄지를치켜세운다.우리는답례로등정축하인사를아끼지않는다.
마루금사이로휘트니동벽과침봉들이하나둘고개를내밀다가마침내쏟아질듯위압적인자태를드러낸다.잠깐씩선채로숨을고르다보면오후의마른햇볕에벽이반짝인다.쳐다만봐도마음을뺏기고만다.웅장한벽과그속의크랙들앞에선시간가는줄모른다.
동벽바로아래인아이스버그호수까지가능하면올라보려고은근히일행들을재촉했는데비쇼르가자꾸만아이스버그는물을구하기어렵다는얘기를한다.가만보니다들지친기색이역력하다.둘째,셋째호수중간즈음에캠프지를정했다.해발3,600m.슬슬숨이가빠오긴한다.여기저기에서눈녹은물이졸졸졸흘러물은구하기어렵지않겠다.다들고산등반경험은별로없어배낭내려놓고숨쉬기에바쁘다.
등반초짜인무슬림들을이끌고앞으로
이튿날새벽녘나를제외한네명은어김없이뜨는해를바라보며기도한뒤출발했다.저렇게단체로기도까지했는데오늘모두무사히잘올라가겠지?동쪽을면한등반루트는해를직접받지만그래도오전중에는눈상태가괜찮다.뽀득거리는적당히굳은눈에경쾌한발걸음을옮긴다.빙하가없으니크레바스걱정은없다.
마지막호수까지오르니올라야할루트가보인다.700~800m가량의쿨와르,일명‘슈트(chute)’는말그대로꽤고역이다.40도정도되는경사가계속이어진다.나는제일처지고겁이많은비쇼르를로프로묶어끌다시피올라갔다.자꾸쉬어가자하고,얼마못가힘들다고눈속에얼굴을파묻고몇번이나구역질을하는모습이안쓰럽다.
“내가너희들에게방해되는거같아.내가먼저내려가는게낫지않을까?”
비쇼르는어느새비관적으로변해있었다.어느정도남았는지자꾸묻는다.나도처음이지만“저기만오르면다왔다”고동료들을격려한다.
“난46세야.이런거하기에는너무늙었어.”
그나이로나이탓이라니,한국산에서그런소릴했다간기필코봉변을당하리라.어쨌든저울질을시작한비쇼르는내려가야할이유를계속찾는다.
“에베레스트최고령등정자가몇살인줄아세요?76세예요.아저씨는나이가많아서못올라가는게아니라고요!”
▲1휘트니포탈은거대한협곡으로양쪽벽에암벽등반루트들이개척되어있다.2해발3600m지점에텐트를쳐놓고망중한을즐기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