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이해인과떠난지리산행복여행
여기는지리산이다.무거운비구름이산세를넘지못했는지모처럼햇살이반짝이던칠월칠석.앉은뱅이탁자위에선하동군에서재배된녹차가더운물에우러나고있었다.그너머에견우와직녀처럼사이좋게공지영작가와이해인수녀가마주앉았다.8월6일부터이틀간교보문고에서주최한‘지리산행복여행’,그여정에여성조선이동행했다.
우리는오늘처음만났다.공지영작가와이해인수녀도직접얼굴을마주하기는처음이라고했다.서울에서꼬박네시간을차로달려,지리산자락에도착했다.그런데이상하다.오늘서로를처음봤는데,오래알아온사람을만난것처럼반갑고한참이야기를나눈것처럼친숙하다.첫인사를나누는자리에서누군가말했다.그건두작가가닮았기때문일거라고.그런가싶어귀를기울이니그는두사람의공통점을하나하나꼽는다.
첫째,두분모두미인이다.나란히앉은두사람을보자고개가끄덕여진다.공지영작가가이목구비가서늘해눈길을끄는미인이라면,이해인수녀는‘인제는돌아와거울앞에선내누님같은’국화꽃(서정주의시,‘국화옆에서’중)을닮았다.둘째,두분모두싱글이다.이해인수녀는말할것도없고,공지영작가가세아이와함께씩씩하게삶을헤쳐가는모습은이미그의작품(《즐거운나의집》,《네가어떤삶을살든나는너를응원할것이다》)을통해지켜본바있다.
셋째,천주교신자다.이번에도긴설명이필요없다.이해인수녀는열다섯에사제로서원한후43년째수도의길을걷고있고,공지영작가는전세계수도원을돌아본후《수도원기행》이라는책을펴낼만큼수도의길에대한관심이깊다.가장중요한건마지막이다.두사람모두자연,그러니까산,들,바람,물,마음,이다섯가지힘에대해지대한관심을가지고있다.그래서자연은두사람작품에주인공으로빈번히등장한다.지금우리가이곳,지리산에행복여행을온이유다.
행복여행을온이유다.
누구든공지영씨와함께있으면이야기가될것같아요-이해인
이해인:제가지금암투병중입니다.(수녀는2008년직장암판정을받고4년째치료중이다.)수녀원원장수녀라이렇게자리를비우면안되는데도온건1박2일동안나쁜암세포가몇개도망갔으면하는마음에서예요.오기전엔걱정도많았어요.저희수녀님들도더운데어딜가려그러느냐고말리고요.보셔서아시겠지만이수녀복이이만저만더운게아닙니다.속치마도입어야죠,치마는길죠.저희가수녀원에있을땐(머릿수건뒷부분을들어올리며)이렇게올려서빨래집게를꽂고있기도해요.(일동웃음)근데여기선제가그러면안되잖아요?그래도오고싶었어요.이지리산여행이제생애처음이고또마지막일수도있잖아요.매번처음인듯,마지막인듯아름답게살고싶어요.
공지영:제책《지리산행복학교》를보신분들은아시겠지만,제가여길무척좋아해요.하동은특히더좋아하죠.오늘도제주도에갔다가광주를거쳐서하동으로왔는데가는곳마다참좋더라고요.나이가들수록외국에나가긴귀찮고(웃음)구례에서섬진강을끼고오는이길이스위스보다더아름다운것같아요.그리고여기가좋은이유는산이나강가에으레있는모텔이나가든이없다는거예요.그런건축물을허가하지않는게이곳하동군의원칙이라고하더라고요.
이해인:공지영씨와함께떠난다고해서안그래도《지리산행복학교》를읽고왔어요.무척재밌었고,한편놀랐죠.시인은늘어떻게하면압축해서쓸까를고민하는데,어쩜이렇게사소한순간들을재미있게풀어냈을까싶어서요.누구든공지영씨랑만나기만하면이야기가되겠구나.(일동웃음)그러므로당연히오늘이해인수녀와공지영작가의만남도이야기가되었다.두사람은열여덟살차이,이해인수녀의말대로‘일찍결혼했다면이만한이쁜딸이있었을지도모를’사이다.
수녀의시집《민들레영토》의세번째시‘해바라기연가’를외우며학창시절을보낸공지영과작가의소설《고등어》를보며눈물을흘리고《우리들의행복한시간》을보며‘이건수도자가봐도되는소설이구나.’싶었다는이해인수녀는함께하동녹차를우려내마시는동안“올해가가기전수녀원에서다시만나자”는약속을주고받았다.
공지영:수녀님이쓰신‘해바라기연가’는지금도외울수있어요.‘내생애가한번뿐이듯나의사랑도하나입니다’로시작하는데,수녀님은하느님을떠올리며쓰셨겠지만저는그때짝사랑하는오빠가있었거든요.(일동웃음)학창시절부터수녀님책은거의완독했던거같아요.그래서실은오늘뵙기전에좀두려웠어요.만나면잔소리하실까봐.직접만나뵈니,저만큼성질도급하신거같고(웃음)정말좋으세요.
이해인:실은제가오늘공지영씨만난다고해서선물을준비해왔어요.아까식당에서부터주고싶었는데,이렇게사람들보는데서줘야생색이나잖아요.(일동웃음)얼마전에저희수녀원80주년이었거든요.그때기념성가곡집을냈어요.수녀들이직접부른건데구하려면힘들어요.답례는않으셔도됩니다.
공지영:(선물을받아들고)수도자성가정말좋아해요.같은노래인데도뭔가하나가분명히있어요.평소에도혼자있고싶은아침에는꼭성가를들어요.정말고맙습니다.
이해인:(수줍게)내가시읊은것도있어요.
이해인수녀님이쓰신‘해바라기연가’는지금도외울수있어요-공지영
이해인:저는수도원에일찍들어간편이에요.중학교3학년때였는데,(광안리에있는수도원에들어가면서)처음해운대바다를봤어요.바다를보는순간반했죠.‘아,이게경상도의매력이구나.나중에꼭과묵한경상도남자랑결혼해야지.’생각했죠.결국영원히말없는하느님과결혼했지만.(웃음)수도원에서몇백명과함께짜인규칙속에서생활하다보니가끔마음이좁아질때가있어요.그럴때광안리바다를보면숨통이트이죠.‘하늘과땅을이어주는천사가되고싶다.’하는생각도들고요.모든자연이신과나를이렇게이어주고있구나싶어서요.자연을가만히보고있으면나를대신해서말해주는사제의역할을하는것같아요.가끔학교때동창들이그런이야기를해요.‘어유,결혼안하길잘했다.무자식이상팔자다.’그럼제가속으로그러죠.‘너도여기와서백명이랑살아봐라.그사람들이다시어머니다.’(웃음)수도자는정말자기마음대로할수있는게없거든요.나가서밥한끼를먹어도다허락을받아야하고요.그런데자연을보면다시마음이다잡아져요.그런말있잖아요.‘예쁘기위해너무아픈세월을보냈습니다.’
공지영:저는서울에서태어나아홉살때부터아파트에서살았어요.주변이온통회색빛이었기때문에드문드문피어있는꽃들이크게다가왔죠.이까만땅에서어쩜이떻게고운꽃이올라올까.아침에나팔꽃,저녁에분꽃이피는걸보면서는얘들이어떻게알고필까생각했고요.문학소녀시절엔겨울이되면아무색도없는회색정류장에앉아아파트전신주뒤로노을이지는걸보면서‘색깔이있는건노을밖에없구나.색이있는곳으로가고싶다.’하는생각을했어요.서른에인생의역경을지날땐,심한장마중이었거든요.제주도에혼자내려가서맑고환한햇살을받는데마음의상처에소독약을바르는느낌이었어요.그때알았죠,상처가있으면자연으로가야겠구나.햇살속으로가면치유가되는구나.자연은천연의사선생님이구나.
바람도아닌것에흔들리고뒤척이기싫어이곳에왔습니다-공지영
암에걸리고보니필요이상남에게영향을받았구나싶어요-이해인
이해인수녀는글을쓰기시작하면서자신의본명인‘명숙’대신바다해(海)자에어질인(仁)자를써‘해인’이라는새이름을만들었다.두사람은사람에게치이면자연으로갔다고했다.자연에소독약이있고,천사가있었다고했다.그경험을열심히글로옮겨사람들과나눴다.지리산을배경으로쓴공지영의《지리산행복학교》속등장인물들은이렇게말한다.‘바람도아닌것에흔들리고뒤척이기싫어도시를떠났다’고.단,도시에대한욕망도평안에대한갈망도버리지못한채자연을해치고만가는이들에게는이렇게단호히말한다.‘그대는나날이변덕스럽지만/지리산은변하면서도언제나첫마음이니/행여견딜만하다면제발오지마시라’
공지영:승효상건축가와해외에행사가있어서동행했던적이있어요.그분이말하길“푸른숲에아무것도짓지않는게자연보호가아니고,거기에가장어울리게서로이롭게만드는게가장좋은건축”이라고했어요.저는자연은그냥내버려두는게옳다고생각했는데,실은인류의역사도자연과인간의교감을통해일어났더라고요.그런측면에서보면선진국이란그교감을중시하는나라가아닌가싶어요.후진국일수록아무생각없이자연을훼손하고요.제가유럽의문화에감동하는건아무리가난한나라라도사람이사는곳은어디든꽃을키우고화분을둔다는거예요.사실집앞에화분을두고,문앞에꽃을두는건보는이를위한거거든요.수도원을다니다보면,밖과는전혀교류가없는봉쇄수도원도담을따라서바깥으로꽃을심어요.우리가사는곳에꽃한송이놓아두는것,꽃을심는그마음이귀한거죠.
이해인:저는수녀원에만살다보니다른나라에는많이가보지못했어요.요즘들어그런생각이들어요.아마죽기전에가까운곳도다못가보지않을까.유홍준선생님이책에이렇게썼어요.‘우리는전국토가박물관’이라고.끊임없이발견되는곳이라는거죠.저는가끔신혼여행을떠나는젊은사람들한테이렇게말해요.왜바다건너먼곳으로만가려고하느냐고.산티에고순례길도좋고,제주올레길도좋지만순례는발의기도인데,자기의마음을순례해보는게더중요하다고요.
공지영:관계에서아픔을겪을때,사람들로인해스트레스를받을때어떻게극복하느냐는질문을많이받아요.극복…못해요.(웃음)책에도썼지만몇년전부터는‘내비도’정신을고수하고있어요.폭력이나절도라면개입을해서막아야겠지만,저사람고유의궤도라면그냥내버려두고나는나의궤도로가는거예요.그러다보면멀어지기도하고떨어지기도하면서거리가생겨요.꼭필요한최소한의접촉만하는거죠.제일나쁜게가까이붙어서갈등을일으키는거라고생각해요.
이해인:암에걸리고보니필요이상남한테영향을받고살았구나하는생각이들어요.저도악플주는독자들많거든요.‘수녀가스님이랑교류를나누다니!’하면서요.하나부터열까지간섭하는분도있고,어마어마하게긴이메일을보내는분도있어요.책은왜내서안들어도좋을말을듣고사나싶어서도무지그냥지나쳐지지가않고,기도가안될때도있죠.너무힘들때는죽음을앞당겨생각도해봐요.‘나는지금관속에누워있다.지금내주변의나쁜것들은다나에게서나간거다.원인제공자는나다.’억울한일이생기고소문이진실이아닐때,‘내죄가돌아오는구나.’라고생각합니다.
나에게찾아오는일들을모두선물로받아안으면내죄가속죄되지않을까.그러면걱정이가시고평화가찾아와요.항암치료나방사선치료를하러갈때도소풍가는기분으로가요.오늘은어떤새로운체험을하게될까하면서…
이해인수녀는얼마전마음을나누던벗박완서작가를잃었다.생전에방사선치료를받으며“수녀님이참힘들었겠네.”라고말하곤했다는박완서작가는,지난1월22일세상을떠났다.이해인수녀의책《꽃이지고나면잎이보이듯이》를위해글을쓰겠다는약속도지키지못한채였다.대신그책의서문에는생전에박완서작가가보낸편지가담겨있다.‘당신(이해인수녀)은고향의당산나무입니다.내생전에당산나무가시드는꼴을보고싶지않습니다.나는꼭당신의배웅을받으며이세상을떠나고싶습니다.더도말고덜도말고나보다는오래살아주십시오.주여,제욕심을불쌍히여기소서.’라고쓰인.
이해인:오늘함께한시간은비록짧지만이순간만큼은인생에한번뿐인어마어마한시간입니다.이런어마어마한만남과시간이참소중하고,함께해서기쁩니다.저는지금죽음을구체적으로준비하고있습니다.저희베네딕토수녀원에‘민들레영토방’을만들었어요.거기에제책과물건들을좀가져다놓았지요.제가죽은후에혹여찾아오실분들을위해서요.만약,제가가기전에저희수녀원에오시면,그때는제가직접안내해드릴게요.
-취재유슬기기자/사진유진행/여성조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