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도 경영도 나무처럼 *-

인생도경영도나무처럼‘비밀의정원’

  • 60년맞는화승그룹현승훈회장
    성철스님과화승원_"여기가천국"두세달씩칩거
    "나자신을바로보라"_힘들때마다스님말씀되새겨

‘산은산,물은물’이라한성철스님이말년에머물렀던’비밀의정원’이있다.’중보러절에가지말고네마음속부처를찾으라’고일갈하던그버럭스님이’여기가천국이다’칭송하며두세달씩칩거했다는곳이다.천년주목과아름드리노송이울창하고사시사철맨드라미,봉숭아가지천으로피는언덕.입적하던1993년에도스님은봄과여름을이정원에서나고해인사백련암으로마지막작별을하러떠났다고했다.

정원의문패가’화승원(和承苑)’이다.부산금정산자락,오륜대가건너다보이는언덕배기에오롯이숨은동산.1만평에이르는비밀의정원에는아무나들어갈수없다.부산시장도,내로라하는정치인,지역유지도이정원한번구경하기가하늘의별따기란다.주인장의고집탓이다."나무를알지못하는사람들은들일생각이없다"는게주인장현승훈(69)의원칙이다.

현승훈회장은’나이키”르까프’로유명한화승그룹의소유주다.쓰레기더미였던언덕을30년간정원으로일궈온’농부’이기도하다.재계에서는골프안치고,비서를두지않고,부동산이없다고’삼무(三無)회장’이라고한다.경영리더십을연구하는이들은그를’덕장(德將)’으로분류한다.

정신과이시형박사는’기차표고무신’에서출발해신발은물론자동차고무부품업계1위가되기까지화승의신화를구축한현회장의덕치경영리더십을‘걸어가듯달려가라'(중앙북스)는책으로펴냈다.운이좋게도여름의끝자락,화승원에입성했다.백일홍붉게물든뜨락에앉아성철스님이남기고간이야기,그리고창업60년을맞는화승의산역사를들었다.

나무의힘

―저까마득히크고웅장한나무는무엇입니까.

"향나무예요.오래살고,이름그대로향이나고요.굽이굽이흐르는자태가아름다워정원수로많이쓰이지요."

―부채처럼땅에서여러줄기가올라온저나무는소나무인가요?

"밥상을닮았대서반송(盤松)이라고하지요.사람도소나무처럼품위있게늙어야하는데,그게참어려워요.(웃음)"

―기업하느라바쁘실텐데나무는언제키우셨습니까.

"골프안하고술안하면키울수있지요.(웃음)"

―정원디자인도직접하신건가요?

"디자인이랄게있나요.지형에맞게축담도쌓으면서,햇빛잘드는곳에한그루씩심었지요."

―33년전첫삽을뜨셨다고들었습니다.왜이곳입니까.

"근방의호수로낚시하러다니면서오다가다바라보는이언덕배기가좋았어요.원래는밭이었는데돌이많아농사짓기불편했대요.내가구입한뒤돌은그대로두고주위에나무를심었어요.괜찮아보이지요?(웃음)"

―정원을만드신특별한사연이있습니까.

"어릴적살던집에나무가많았어요.열세살에어머니여의고서른여섯살에아버지마저떠나시니외롭고허전했나봐요.나무를키우고싶데요.일본출장을가도늘정원만눈에들어왔어요.작은마당에나무한그루를심어도정성껏가꾸는모습이좋더라고요.흔들림속에서도나를바로세워준게이나무들이에요."

―나무가어떻게힘이됩니까.

"저포구나무를보세요.둥치가뻥뚫릴만큼만고풍상을견뎌낸흔적이위대하지요.제아무리잘난척해도사람의수명고작해야100년인데저들은1000년을묵묵히살아요.겸허해지지않을수없지요."

“나무를보면좋지않은마음가질수가없어요.”33년을공들여가꾼‘화승원’에서현승훈회장이활짝웃었다.향나무,포구나무,적송,반송등1만여평동산에아름드리고목들이우아한자태로서있다.동영상보기/김용우기자조선일보-

나를바로보라

―말년에성철스님이화승원에머물렀다들었습니다.

"입적하실때까지8년간드나드셨지요.정원에조그만암자를지어드렸어요.따님인불필스님이산청생가에붙인이름과같은’겁외사’예요.백련암에계시면신도들이몰려오니스님이이곳으로피신해와서는’여기가천국이다’하셨지요.(웃음)"

―스님과는어떻게알게되신겁니까.

"생전의아버님(창업주현수명)과교유하셨고,유언또한성철스님을아버지처럼모시라는거였어요.49재때큰스님뵈러백련암에갔더니삼천배를해야만나주신대요.도무지엄두가안나돌아섰다가,한번해보자했지요.절을할때마다온몸에고통이퍼져나가요.1000배를넘기니포기하고싶은마음이굴뚝같아지데요.한데신기하게도어느순간부터는고통을느낄수가없어요.삼천배가끝나는순간온몸에평화가찾아옵디다.고통은고통으로이겨야한다는걸스님이알려주셨어요."

―지금도매일새벽4시에일어나108배하는것으로일과를시작하신다들었습니다.

"5년전까지만해도오백배를올렸는데이젠체력이안돼108배만해요.(웃음)절을하면하심(下心),마음이낮아지지요.교만을물리치게되니마음수행으로참좋아요."

―성철스님은괴팍하기로유명하셨지요.

"삼천배를해야만나준다하시니거만하고괴팍하다했겠지요.당신을위해삼천배하라는뜻이아니고,그사람의의지,불심을보고자했던것인데이런저런오해가많았어요."

―인간적인분이셨나요?

"그럼요.아이들을참좋아하셨어요.시중사람들은스님을도인으로알고그분의옷자락을만지면업장이해소된다하고따랐는데그걸싫어하셨어요.하루는아내와함께백련암에갔더니솔잎가루,불린콩,김몇장에밥한술을드세요.’내가좋은것은다먹제’하고겸연쩍게웃으시던모습이눈에선합니다."

―입적하시던해봄,큰스님의마지막모습을사진으로여러장담으셨다들었습니다.

"카메라싫어하시던스님이5월어느날사진을찍고싶다하시니다들놀랐지요.언제떠날지아시고미리인연을정리하셨던가봐요."

―스님이생전에남기신말씀이있습니까.

"대중에게늘하시던말씀,‘나를바로보라’는그말씀.힘들때마다,자기를바로보고처신하라는큰스님말씀떠올리며견뎌냅니다."

1993년봄,성철스님과함께화승원에서찍은사진.그해11월스님은세상을떠났다./화승그룹제공

기차표에서르까프까지

화승그룹의모태는1953년부산에서출범한동양고무산업이다.50~60대중년은누구나기억할’기차표고무신’을만든회사다.장남현승훈이가업을물려받은것은1977년.3년뒤회사명을’화승’으로바꾼현회장은나이키·리복등세계적인스포츠용품브랜드를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생산하면서국내최대신발업체로부상한다.이에힘입어현회장은자동차부품,정밀화학등으로사업을다각화하지만,1997년IMF파고에휩싸인다.

모회사인㈜화승과화승상사가부도처리되면서창업이래최대위기를맞았다.화의신청을한화승은뼈를깎는구조조정,밀착형영업체제를구축하면서7년만인2005년법정관리에서벗어나고,2010년에는3조3000억원의매출을달성하는기염을토한다.화승R&A를비롯해계열사만국내외24개.주력사인화승R&A는미국·중국·인도등6개국에진출,현대·기아·GM·크라이슬러·도요타등세계유수자동차기업들에자동차부품을공급하는글로벌기업으로성장했다.

―모태인동양고무산업이6·25전쟁직후설립됐지요.

"충북괴산이고향인데부산으로피란왔다가큰아버지,작은아버지네는서울로올라가시고,아버지만부산에남아기차표고무신을창업하셨어요."

―왜기차표고무신이라고이름붙였을까요?

"기차는달려가잖아요.내추측이그래요.(웃음)아버지는새로운것에도전을많이하셨어요.하이힐고무신도아버지아이디어예요.키작은한국인을위해고무신에힐을붙인거죠.케미컬슈즈도만드셨는데일본교포들에게선풍적인인기를얻었어요."

―80년에나이키를,83년에리복을OEM으로생산하면서국내최대신발업체로급부상합니다.

"화승의기술로만든나이키가전세계로수출됐지요.국내신발산업의고급화가시작됐고요.1억달러수출을달성했으니대단하지요?"

―하지만86년나이키와사업제휴를종결하고’르까프’라는토종브랜드를만듭니다.

"세계적인수준의우리기술로남의국적신발을만든다는게자존심이상했어요.OEM의한계도절실히느낀터라86아시안게임,88올림픽을앞두고르까프로모험을시작했지요.우리에겐국내최고스포츠브랜드라는자부심과노하우가있었어요."

―결국르까프가나이키를뛰어넘지못했습니다.

"초반의선풍을이어가지못했어요.투자만많이해놓은상태에서IMF가터졌지요.디자인싸움에서도밀렸고요."

―인건비급등으로신발산업이사양화하고있는데도포기하지않는이유는무엇입니까.

"가업이고,우리그룹의뿌리니까요.신발산업에서닦은화학분야의기술력을토대로화승인더스트리,화승R&A를설립할수있었어요.고무를다루는기술,내구성을높이는노하우가자동차부품생산에서빛을발한거죠.IMF를넘길수있었던것도그덕이었고.튼튼한나무둥치에서화려한가지들이자라나갈수있어요."

3無경영의비법

―이시형박사는책에’화승의가장큰재산은인화(人和)’라고썼더군요.촌스럽고투박하지만순수한사람경영59년의역사가오늘의화승을있게했다고썼습니다.

"좋게봐주신거죠.(웃음)언제고사람마음을얻는게가장중요하고생각해요.IMF라는거대한파도를이겨낼수있었던것도그덕분이죠."

―화의상태에들어간뒤임직원4명중3명을자르는대대적인구조조정을단행했는데,노조의반발은없었나요.

"내형제,친인척부터정리했어요.내식구들남겨놓고다른직원들을해고할수없지요.회사가본궤도에올라돌아오신분도적지않고요.아마도그런노력덕분일거예요."

―2007년자동차산업불황으로화승R&A가경영위기에처했을때,노조가임금동결은물론인원감축을포함한모든임금·단체협상결정권한을사측에위임한다는결정을해서뉴스가됐습니다.

"회사가어려울때힘을합쳐살려야겠다는의욕을직원들이갖고있으면무너지지않습니다."

―덕치경영의비법이있습니까.

"참으려고노력하지요.막성질날때있지만참고견디면직원들이그마음알아줘요.(웃음)잘났거나못났거나그들이가진능력에맞게설자리를만들어주면서다함께끌고가지요.내겐고객보다직원이더소중하거든요.경영학하는분들이나처럼회사하면망한다고하던데,구닥다리소리들어도나는그렇게하고싶어요."

골프안치고,비서없고,부동산투자안하는’3무경영’으로유명하십니다.다른건몰라도부동산이없다는건믿기지않습니다.

"아버지대부터그런데는관심이없었어요.땅은자기가필요한만큼가지는거지그걸로돈번다는생각은못했어요.남들부동산으로부를축적할때나는화승원가꾼다고취미생활한셈이니반성은좀돼요.(웃음)조금가지고있던부동산은IMF때회사에다넘겨줬지요.사람이죽어서빈손으로간다생각하면그리아쉽지도않아요."

―정치권로비에서는자유롭지않았을듯합니다.

"옛날에도대통령후보로나온어떤분이나랑학교선후배라고해서우리가뭘주지않았는가했는데,설령요구를받아도단호히거절했어요.로비같은거했으면회사규모가요것밖에안될리가없지요.(웃음)내역량도부족하지만,정도(正道)를가는게옳아요.기업은로비로하는게아니에요.규모는작지만그분야에선최고가돼야한다는게내경영원칙이에요.그덕에화승이지금껏외면당하지않고부산의향토기업으로생존할수있었고요."

굴뚝산업이좋다

―두아드님은어떻게가르치십니까.

"나의단점은버리고장점만가져가라고하지요.(웃음)편하게돈벌면안된다고해요.기업주2세들이펀드하고주식하다가엇나가는경우많지않나요?굴뚝산업이왜소중한지가르칩니다.딴얘기지만,정주영·이병철같은분들이참대단한분들인데교과서에는전태일같은노동자만실리는게나는이해가안돼요.기업인들의부정적인모습도있지만우리나라를이만큼키워온그들의노고도인정해줬으면좋겠어요."

―청년실업이계속되고있습니다.

"젊은이들은반발할지모르지만,사실일자리가없는게아니에요.젊은이들이무조건큰기업,에어컨잘나오는멋진회사만선호하고어려운일은안하려고하는것도문제라고봐요.작은기업이라도자기뜻을우직하게펼칠수있는좋은회사들이많습니다."

―글로벌금융위기에화승은안전한가요.

"IMF로공부를세게해서그런가,아직은괜찮아요.(웃음)군살을불리지않으려고항시노력하지요."

―이정원에서특별히아끼는나무가있습니까.

"다아끼지요.자식이다좋아보이듯이."

―화승원에매일들르신다들었습니다.일꾼들이어련히알아돌볼텐데요.

"주인이봐야지요.병이들었나,물이부족한가.일꾼들과는관심의차원이달라요."

―자연그대로둬도아름답지않습니까.

"며칠만방치해도엉망되고흉해져요.사람도,기업도마찬가지예요.일으키는것도어렵지만지켜가는일은더더욱어렵지요."

-곧창업60주년을맞습니다.

"선대보다기업규모가커졌으니’잘했구나’생각해요.(웃음)하지만여유를부릴틈이없어요.다왔다싶어쉬려고하면새로운위기가오니까요.페달을항상구르고있어야자전거가굴러가는것과같지요.‘논어’에나오는’공관신민혜(恭寬信敏惠)’라는말을좋아해요.공손하고너그러우며신의가있고민첩한사람,더불어은혜를베풀줄아는사람이성공하지요.젊은이들에겐고리타분하게들릴까요?(웃음)"

-김윤덕기획취재부차장/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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