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악인 한계를 넘어선 사나이 *-

산악인한계를넘어선사나이

산악인에게는한계가있다.능력의한계요무대의한계다.그것은당연한이야기고누구도이것을부정할수없다.그런데최근에이한계를넘어선자가나타났다.박정헌이바로그사람인데,그는지금까지히말라야고봉(高峰)에서활동하다가이제고공(高空)으로그무대를바꾸었다.그리하여그는이름도‘FlyingtheHimalaya2400km’라는대장정에올랐다.이것은무대의이행(移行)이아니고말그대로비상(飛翔)이다.

등산의역사는무대의변천사다.무대가바뀌면서등반의형식과내용이따라바뀌고새로운역사를기록해나갔다.250년에걸친세계등반사의커다란분수령은19세기후엽에유럽알프스4,000m고소에서일약히말라야8,000m고소로무대가이행한일이다.윔퍼의마터호른등반으로알프스의황금기가막을내리고,머메리의낭가파르바트도전으로간것은그상징이다.

물론세계등반사가그런이분법(二分法)으로정리될수는없고,알프스는알프스대로,히말라야역시그안에서새로운등반의식과행동이그때그때창출되며오늘에이른것을우리는잘안다.머메리즘과단독행이며,알파인스타일의소수정예주의,그리고무산소등정과8,000m고봉의연속등반등이세계등반사를기록해나갔다.오늘날우리는지구상고산군에미답봉이없어졌다고하지만,그저시간이흘러거기까지온것은아니다.

외국의과학사상사가(思想史家)가‘유럽근대화는과학기술성립과등산으로비롯했다’며,제임스와트의증기기관의완성과카트라이트의역직기(力織機)발명은알프스몽블랑의초등정(1786.8.7)과동시였다고구체적사례를들었다.다시말해서과학기술도등산도인간의디모니슈한(마력적인)활동의양극을대표한다는그사상사가의말은매우시사적이다.

그러나자연에대한인간의도전을반드시과학의도움덕으로만볼수는없다.몽블랑을초등하는데4반세기가걸렸고,윔퍼의마터호른등반도5년이나시간을요했다.알프스3대북벽의하나인아이거의경우,메스너가10일동안고투한데를최근에한두시간에오른기록이나왔다.무슨일인지어안이벙벙하다.에베레스트도예외가아니다.1953년영국대가초등할때까지10차도전,32년만의성취였다.그런데오늘날그정상에는하루100여명의사람이운집했다.

지구상오지중의오지인곳이이지경이된것은등반가들의능력이전에과학기술을바탕으로한현대문명에힘입고있는것은물론이다.즉,교통과통신과정보를비롯해식량과장비등등산에필요한절대적요소와여건이엄청난발달을했다는이야기다.

지난1970년대만해도우리는히말라야를거의몰랐다.산사나이들은오직설악과지리와한라에서살았다.그런데지금은세계의오지를마치국내의산가듯오가고있다.산악인들의기량도기량이지만사회의여건이그만큼달라졌다.이제는오랜세월선두주자였던등산선진국을바라만보지않고우리들스스로갈길을가고있다.

그러나여기우려와고민이없는것은아니다.언제까지전통과모방속에머물고있을수없는일이기때문이다.지구상의고봉과거벽과오지가더갈곳이없다면이제우리알피니즘이맞을운명은어떤것일까.

등산은처음부터미지의세계에대한도전이고고도지향을그요체로하고있다.페터하벨러가목표는정상(DasZielistderGipfel)이라고했지만,그것은반드시정상만을노린다는등정주의를뜻하지않으며,언제나앞을보고높이높이오른다는그의등산정신이리라.그런데더오를데가없으니어디로갈것인가하는것을우리들산악인으로생각하지않을수없다.나는이런문제로철학에서말하는아포리아(aporia)에부딪쳐거기서벗어나지못하고혼자고민하고있었다.

그러던어느날메스너의책을들추다정신이번쩍들었다.그가오랜세월극한의세계를독무대로살아온자기인생을정리하며한말이다.즉‘자유에는단념이있어도한계는없다(InderFreiheitgibtesdenVerzicht,abericeineGrenzen)’가그것이며,그는또한한계도전의과정을기록한책(마인베크,MeinWeg)에서‘사람들은오늘날지상에월더니스,황무지가없다고하는데,각자마음속의공백이바로윌더니스다’고했다.공백이란남이했어도자기가못했으면그것도공백이다.요는자기가그빈공간을메워야한다는뜻이다.메스너가말하는‘한계’와‘공백’은서로관계가있으며,그것은등산가들의의식의문제일것이다.

그런데등산세계의이러한추상론이어느날구체성을띠며내마음을자극했다.박정헌이히말라야상공2,400km를날아간다는이야기가산악계일각에서들려왔을때였다.물론패러글라이딩으로난다는것인데,산에서이런장비로내려온일은그전에도있었다.

1970년에일본의프로스키어가에베레스트를사우스콜에서낙하산을달고로체페이스를하강했고,1978년에는오스트리등반대가역시에베레스트등반때패러글라이딩하강으로세계기록을세웠다.

그로부터한세대가흘렀는데,이번박정헌의시도는그세계를한마디로뛰어넘고있다.그는이달8월에서오는1월에걸쳐,12번의비행으로히말라야전역2,400km상공을비상한다는이야기다.이길고긴여정은지상에서상공으로올랐다가다시내려와,국경을넘으며트레킹하고,빙하횡단과비박그리고고소캠프설치,그때그때식량구입과포터고용등일반등반대가거쳐야하는이른바‘로지스틱’전술이입체적으로다양하게전개된다.알피니즘역사상처음있는일이다.

세계탐험의역사는수평과수직이동의역사였으며,20세기초엽의남·북극점탐험과최고봉에베레스트도전이그상징적사건이었다.그리고21세기로이행하면서우리앞에더이상갈곳과할일마저없어진듯이보였다.7대륙최고봉이나8,000m급14봉완등,지구의양극과제3극을모두답파한다는과제들이나온것도이를테면더이상갈곳,할일이없다는증거나다름없다.그런데여기히말라야전역의상공을난다는기상천외의발상이나왔다.메스너의말대로한계를모르는자유의세계가있었던것이다.

박정헌의비전은무엇인가.그는남들이저마다히말라야고봉에집착하는동안혼자고봉아닌거벽을응시하더니그촐라체시련과부딪쳤다.그보다앞서조심슨의남미시울라그란데시련이당시세계산악계를놀라게했는데,사실박정헌의경우는남다른의미에서조심슨보다더놀라운사건이었다.

박정헌은그뒤한동안조용했다.그때입은심신의상처와피로가격심했을터이니당연하겠지만,그것으로익스트림클라이머로서의그의생애도마감하는줄알았다.그런데그것이전부가아니었다.그는산사람에게없는날개를남몰래기르고있었다.박정헌은극한등반가이며자유인이었다.

나는언젠가독일등산잡지에서어느산악인의글한토막을보고눈이번쩍뜨인적이있다.그것은이런글이었다.

‘나는가지고싶은것이없다.
내게필요한것은자유뿐이며,그자유가내게있다.’

메스너의책가운데<가고싶은데로떠나는자유>라는것이있다.박정헌이야말로가고싶은데로떠날수있는자유를가지고있는보기드문산악인이다.

-글=김영도77에베레스트원정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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