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寸鐵로 뚫는 남자’ 송호근 사장 *-

‘寸鐵로뚫는남자’송호근사장

‘寸鐵로뚫는남자’송호근사장_절삭공구’엔드밀’로세계시장1위…强小기업YG-1일군송호근사장의’집념30년’

YG-1본사는인천부평(富平)변두리에있었다.지도를꼼꼼히읽지않으면찾기힘든외진자리였다.’제품을만드는곳’,공장은이런정의(定義)를일깨워주는것같았다.세계최고의물건을만드는기업답지않게허식없는공간을기계음이채우고있었다.

YG-1은엔드밀세계시장점유율1위다.탭은2위,드릴은6위다.엔드밀링커터,약칭엔드밀(Endmill)은산업의필수공구(工具)다.연필없는학생없듯엔드밀없는제조업체를상상하는건불가능하다.

드릴은구멍만뚫는다.엔드밀은직선과곡선가공을한다.밑면,옆면에날이달려있어작은휴대폰부터대형항공기금형(金型)을다만든다.몇시간작업하면날이닳는데이는엔드밀의수요가그만큼크다는뜻이다.

송호근사장이갓만들어진엔드밀을검사하고있다.오른쪽가운뎃손가락에붕대를감은그는치열한도전정신으로무장한,우리시대의‘마지막기업가’다./김용국조선일보기자

한우물파서최고가된송호근(宋鎬根·59)을만나기가만만치않았다.9월에만중국두번,독일과미국에한번출장을다녀왔다.1982년회사를세워내년이면창업30년을맞는데그간쌓인항공기마일리지가400만을넘는다.

‘최고’에이른변(辯)은간명하면서도단호했다."마음먹으면누구나다1등될수있어요.문제는편한길만찾게만드는우리교육에있죠.제서울고동창중의사·교수·법조인이100명씩입니다.기업인은저하나뿐이고요."

촌철(寸鐵)은고단한삶을자양분삼는다.그는부잣집아들이란팔자를배신했다.지금도뭔가대들지않고는못배긴다.그렇다.그는정주영,김우중류(流)의마지막후예인지모른다.그’산업의광인일기(狂人日記)’를공개한다.

농부에서기계공학도로

소년의꿈은농부(農夫)였다.그희망이기계공학에서기업인으로바뀌었다.고대상과(商科)나와금융통화위원,서울상공회의소부회장에대기업임원을두루지낸아버지때문이었다.아버지는그에게있어’거름’같은존재였다.

―그게무슨소립니까.

"아버지가공직이나기업일은잘하셨어요.그런데꼭자기사업만은실패하셨습니다.그걸옆에서지켜보며전이렇게결론내렸어요.‘오너가기술력이없으면결국망하는구나’."

―무슨사업을하셨길래요.

"처음엔비누만들다망했습니다.두번째는영사기사업에손댔다망했습니다.새마을운동이한창일때였는데지금보면시대를너무앞서간측면도있었지요."

―기업에서일잘하는이들이왜자기사업은못할까요.

"아버지는대한전선상무시절그룹을키웠어요.예전의고려화재에서도능력을발휘하셨고요.전이렇게생각합니다.중소기업사장은밑바닥부터뚫고올라오면서모든걸알게되잖아요.대기업은그렇지않거든요.윗사람이할일있고아랫사람이할일이따로있으니까요."

―아버지때문에삶이바뀐겁니까.

"집이꽤부자였습니다.60년대에일제승용차가있었을정도니까요.초등학교때농부가되려한것은당시선생님께서농촌말씀을많이하셨기때문이고부모님은의사되길원했죠.전아버지가사업에서고전하는걸보고상경계아니면공학을전공하려했어요.그런데아무래도공학이좋을것같더라고요."

―서울대기계공학과에진학했는데졸업을앞둔1977년묘한인연이찾아왔습니다.

"당시아버지가부산태화의부사장으로경영책임을맡고계셨어요.그회사가운동화,고무장갑같은것으로유명합니다.이미고무산업이사양(斜陽)길로접어들고있던때였습니다.그해설날세배드리러갔는데회장님께서그러시더군요.’막절삭공구를생산하려는프로젝트를준비하고있는데자네가와줬으면좋겠다’고."

―서울대나오면대기업을택하는게상식인데요.

"잠시고민했지만학자될거아니면일찍직장생활을해보는것도좋겠다는생각이들었어요.솔깃한조건도있었어요."

―뭔데요?

"미국의한회사와기술제휴를맺고있었는데1년정도보내주겠다고했거든요.그래서그해3월입사해공장설계,자재감독을맡다가이듬해1월미국으로갔지요."

―33년전미국생활은어땠습니까.

"영어독해(讀解)는자신있는데회화는역시안되더군요.말한마디못하는데어떻게기술을도입하고차관을얻겠어요.은행하고거래도해야하는데압박감이보통이아니었습니다.고민끝에밤마다영업하는드럭스토어(Drugstore)를기웃거렸지요.남들은TV로배운다지만그건대화가안되잖아요.밤늦은시간엔손님이없으니점원들이쉽게얘기상대가돼줬거든요.그러다보니회화뿐아니라다른소득도있었어요."

―다른소득?

"전미국인이모든분야에서세계최고인줄만알았어요.알고보니그게편견이더라고요.서류에오류가생각보다많았어요.은행원이계산도못했고요.그들이저지른잘못을번번이잡아내니나중엔기술제휴맺고있던미국회사의부사장이절찾아왔어요.그사람눈엔제가천재로보인모양인데웬만한한국인이면다할수있는정도였어요.미국에머문1년9개월간제가진짜얻은것은영어가아니라자신감이었죠."

―실력을키우고왔지만정작발휘할데가없었습니다.

"저는의욕이넘쳤지만회사의다른분들은회의적이었거든요.1년간회사로날아온수출관련편지가전부무시되고있었습니다.전그걸다뒤져일일이답장을보냈어요.원가를낮추려관련서류도재검토했고요.당시제밑에직원이2명뿐이었는데셋이회사매출의80%를냈어요.2계급특진도했고요.그런데도주위에선’송호근이가회사를말아먹을것’이라고수군댔습니다."

―그래서회사를그만둔겁니까.

"그런건견딜수있었어요.문제는엔드밀이었습니다."

■엔드밀이준창업

엔드밀은규격에따라종류가8만가지나된다.그정교한부속이산업을먹여살리는‘쌀’과같은존재다./YG-1제공

송호근은절삭공구가운데엔드밀에주목하고있었다.다른공구와달리원자재가가격에서차지하는비율이3%밖에안되는고부가가치제품이었기때문이다.그런어느날외국에서엔드밀25만달러어치를보내달라는주문이왔다.

―당시로선’대박’이었겠네요.

"그걸회사가2년넘게우물대다포기하고만겁니다.분통이터졌어요.충분히만들실력이있었는데’근성(Spirit)’이부족했던거죠.회의가밀려오던참에우연한사고도일어났어요."

―어떤사곱니까.

"남이섬에서열린회사야유회에서족구를하다발이부러졌어요.전치8개월의중상이었습니다.병원에누워있으면서생각해보니‘이렇게월급쟁이하느니차라리회사를차리는게낫겠다’는생각이들었어요.엔드밀을꼭제손으로만들어수출하고싶다는생각을버릴수없었습니다.그래서회사에사직서를냈지요."

―처음차린회사이름이‘양지원(養志園)공구’였습니다.

"양지원은원래아버지가경기도이천에서하시던목장이름이었어요.그이름을우리형제가지었는데사업자등록할때마땅한이름이떠오르지않더군요.그게나중에YG-1이된겁니다.1은최고라는뜻도되고요."

―회사차리려면돈이필요하지요.

"월급은얼마안됐고어머니가제앞으로대치동은마아파트31평짜리를사주신게있었어요.1982년이었는데그걸2000만원에팔고지금의본사부근부평에공장을세웠지요."

―그아파트지금10억가까이하는데2000만원에….

"하하.그거팔고어머니께싫은소리많이들었어요.회사하다잘안되면마지막에집이라도한채있어야하는데왜상의도없이덜컥팔았느냐며아쉬워하셨지만제눈엔공장만드는거밖엔아무것도안보였거든요."

―회사를차리고나니엔드밀을곧만들수있었습니까.

"사업자등록마친후직원12명으로시작했습니다.원래경험많은사람들을모았어야했는데전공고(工高)갓졸업한신입사원들을채용했어요."

―모험아닌가요.

"거긴장단점이있어요.처음엔시행착오가있겠지만그것만이겨내면더단결되거든요.첫6개월동안은24시간일했어요.밥도공장에서먹고잠도공장바닥에깐슬리핑백속에서잤습니다.그렇게여러고비를이겨내니마침내제대로된엔드밀이나오더군요."

―그다음은바이어를끌어오는건데.

"전에다니던회사에서포기한주문을낸사람에게연락을취했어요.‘아직도엔드밀수입을원하느냐’고.그랬더니얼마뒤똑같은25만달러어치주문이오더군요.그쪽도마땅한구입처를못찾았던거지요."

―그건우연히굴러온행운같은건데요.

"하루종일공장에서기계돌아가는소릴들으며제머릿속에의문이끊이지않았어요.‘미국바이어들이비행기1등석타고와최고급호텔에머물다가는걸보면그만큼남는장사를하는것아니냐’는.결론은제가미국에가서주문받아오면더많은이윤을남길수있다는것이었습니다.그래서곧장미국으로날아갔지요."

―무슨비책(秘策)이라도마련해놓고떠났습니까.

"그런게어디있어요.대한무역진흥공사(지금의코트라)에서얻은공구상리스트5000개뿐이었지요.현장에가부닥쳐보자는마음뿐이었어요.아!또하나있었다.당시동생이시카고에서유학중이었습니다.가방에샘플잔뜩넣고그냥떠나버렸습니다."

송호근사장을만난날은일요일이었다.그날도공장은돌아가고있었다.‘품질,혁신!’이란구호가걸린공장에서그가직원들과대화하고있다./김용국조선일보기자

■종횡사해(縱橫四海)

송호근이구한비행기표는노스웨스트에서판것가운데가장쌌다.350달러만내면정해진기간안에이항공사가취항하는도시를1번에한해어디든갈수있는조건이붙었다.43일간23개도시를도는살인적인일정이시작됐다.

―스케줄짜는데만도머리에쥐가났겠습니다.

"예를들면뉴욕은라과디아로갔다가다음엔뉴어크공항을이용하고중부쪽은시카고,밀워키,매디슨을한번씩이용하는식이었어요.숙박은10달러짜리모텔을이용하거나동생집에서신세졌어요.밥은굶거나저녁늦게디스카운트되는닭다리몇개로해결하는식이었고요.젊었고무엇보다’해보겠다’는생각이머릿속에꽉차있을때여서별로힘든줄몰랐습니다."

―무작정공구상에들어가면어떤반응을보이던가요.

"가지고있던리스트뿐아니라차타고가다가간판이보이면무조건들어가는식이었지요.물론10곳중9곳은대꾸한마디없이박대하죠."

―몇번그런꼴을당하면포기하는게사람심리인데요.

"그런데꼭한군데씩은오라는곳이있었어요.그렇게찾아간공구상가운데한곳에서샘플을보내달라며500달러짜리수표를받았을때는정말….돌이켜보면좌충우돌했던그시절이제사업인생중가장흥미진진한시간이었습니다.처음만난사람들로부터믿음을얻었을때는안먹어도배가불렀지요."

―말씀을듣다보니성공만한것같습니다.

"미국에서돌아온직후큰위기가있었어요.수출용엔드밀을선적(船積)까지마쳤는데바이어가저희가보낸샘플에문제를제기한겁니다.며칠간잠을못잤어요.사실사소한결함이어서가격을조금깎아주면합의할수도있는사안이었거든요.선적을마친물량을도로국내에들여오는것도보통일이아니었지만…,’세계최고의엔드밀을만들겠다’는원칙을처음부터쉽게타협할수는없다는생각이들었습니다."

―전량회수했습니까.

"전부들여오고다시만들었지요.그러느라자금이달렸는데아버지께서당신집을담보로해대출을받아주셨어요.비싼수업료를치른셈이었는데다행히직원들이묵묵히제몫을다해줬습니다.저도힘들었지만뿌듯했고요.무엇보다원칙을지킬수있었잖아요."

―그런데문제의그수출물량이두고두고말썽을부렸죠.

"6개월쯤지나다른바이어에게그얘길한적이있어요.그가그러더군요.’품질에크게문제가안되면지금이라도싸게팔아주겠다’고.그래서무심코넘겼는데얼마뒤다른바이어에게모골이송연한얘길들었습니다.‘훨씬값싸고품질좋은한국산물건이있다’며우리회사제품가격에불만을제기한겁니다.’아차’싶었어요.하자가있는제품은무슨일이있어도폐기한다는원칙을세운게그때부터였습니다."

―’새옹지마’란말이생각납니다.

"정말그래요.독일이원래기계공업의본산같은곳인데제가그나라를뚫은것도사실은우연한계기때문입니다.사업초기한국공작기계전시회가열릴때였어요.한독일인이의사소통을못해애먹는걸보고가서도와줬거든요.그랬더니고마웠는지제회사샘플2개를달라고하더군요."

―그가나중에귀인(貴人)이된겁니까.

"별기대도안했는데얼마뒤우리회사에와30마르크어치물건을사가더군요.두번째와선500마르크어치를사갔고요.2년뒤에그가사간물량이얼만줄아세요?무려4만~5만마르크나됐어요.그렇다고독일인들이절대허술하진않습니다."

―무슨일이있었길래요.

"한번은제품1만5000개를사가더니하자의경계선쯤에있는물건3개를도로가지고온거예요.1만5000개를전부조사한것에놀랐고역으로우리회사제품의품질이그만큼높았다는뜻도됐지만더분발해야겠다는생각이들더군요.지금우리회사가유럽에서독일에가장많이수출하는데는그런사연이있었던겁니다."

―독일못지않게까다로운나라가일본이죠.

"일본은독일보다훨씬외국에대해배타적입니다.심지어’한국이절삭공구를만드느냐’며노골적으로무시하기도하고요.그래서제가일본공구유통업체를찾아가’블라인드테스트’를해보자고했어요.회사마크가달리지않은상태에서겨뤄보자는거였죠."

―어떤결과가나왔습니다.

"최고일제제품과품질이동등한것으로나왔어요.그런데도그들은이러더군요.’아직은깎이는맛이틀리다’고.그게무슨소리겠어요,한국을인정하기싫다는거겠죠."

■세계최고의비밀

YG-1은국내7개공장뿐아니라중국·인도·독일·캐나다·미국에도공장이있다.제품은70개국이넘는나라에수출한다.IMF때도40%가깝게성장했다.매출이준건글로벌금융사태가난2009년뿐이다.

―출근시간이오전7시50분이라고들었는데직원들이불평하지않습니까.

"저는오전6시50분까지회사에오는데요?지금은집에서회사까지20분정도걸리지만불과얼마전까지10분거리에있었어요."

―돈도벌었겠다,예전에판강남아파트다시살생각이들진않던가요.

"전회사와집이떨어져선안된다고생각합니다.그래야스피디하게경영할수가있어요.우리회사는기안(起案)에서결재까지평균0.7일걸립니다.제가외국에있을때는전자결재를하고외국공장과는전화번호4자리로연결하지요."

―노조도없지요.

"열심히일하고제대로대우해주면노조생각할겨를이없을거라고전생각합니다.일할시간도부족하잖아요."

―IMF같은때정리해고를안했기때문인가요.

"인적구조조정이꼭나쁜건아닙니다.긴장감을불어넣을수있고비용을아낄수있거든요.하지만그것보다더중요한건직원들의마음일거예요.한번잘라내면누구나마음속으로회사를불신할것아니겠어요?우리회사가IMF때도,2001년뉴욕테러때도괜찮았는데2009년글로벌금융위기때해외매출이30%감소했어요.중역들이구조조정이야길꺼내길래막아버렸어요.급여를10%반납하겠다는것도’전그런것원하지않는다’고했고요."

―혹시접대같은건하십니까.

"제가한때는양주2병까지비울정도였지만우리회사엔접대문화란게없습니다.정치권과도거리를두고요.처음엔섭섭해하지만원칙을세우면다음이편합니다.바이어가오면밥은사줘도술은절대안사줘요."

―그럼무슨재미로삽니까.

"제항공사마일리지가400만마일이넘습니다.지금은1년에200일남짓이지만한때는300일가까이머문적도있어요.전김우중(金宇中)전대우그룹회장의’세계는넓고할일은많다’는말에동감해요.돈쓸시간이어디있습니까,일하기바쁜데요."

―꼭그렇게말하다나중에정치판기웃거리는분도있습니다.

"안철수교수?저도그분이왜그리됐는지모르지만실망했어요.그가말한’기업가정신’에는동의하지만.제가기업을떠날일은없을겁니다."

―그리무미건조하게살면가정에도소홀하시겠네요.나중에더나이들면부인이나자식들에게괄시당할텐데.

"전아이들졸업식에도한번가본적이없어요.그래도아이들은별불평없던데요."

―본인은기계공학을전공하셨는데자제들은?

"큰아들(송시한·31)은인천과고나와서카이스트기계공학과나왔고둘째(송지한·28)도인천과고나와서카이스트산업공학전공하다가수학으로바꿨어요.조기졸업하려면수학과가야한다고해서그러라고했지요."

―70년대만해도기계공학이한국의미래라고했는데요즘은천대받습니다.

"정말그래요.카이스트기계공학과교수가80명인데학생은20명뿐이라니.우리교육이잘못된거지요.무조건안전한길로만가라고하니."

―그래도안전한삶이좋은거아닌가요.

"제가서울고23회졸업인데동창중의사가제일많아요.기업하는사람은저뿐이고요.그인재들이더많이기업에뛰어들었다면좋았을텐데.우리회사목표가2014년에수출10억달러하는거거든요.물론좋은점도있어요.어디아프면찾아갈사람많으니까,하하."

-[Why][문갑식의하드보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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