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주 봉황산(鳳凰山/740.8m) *-

상주봉황산(鳳凰山/740.8m)

화령고갯마루는2차선포장도로로화령재를가로로내려서면정면길건너에키보다더큰"화령재,해발320m"라고새겨진표지석이듬듬하게자리하고있고그뒤언덕위에화령정(化寧亭)이보인다.비록예스러운빛은없으나고갯길의내력을친절히적어편액대신으로걸었다.아득하게는성읍국가시절부터삼국의싸움터였다,고려와조선을거쳐오늘날에이르기까지화령에쌓인이야기를알리는데공들인흔적이역력하다.

화령은상주에서출발아여도화령재(320m)를올라와야하고,보은쪽에서와도장고개를올라와야하는고지대(高地帶)이다.이렇게고지대인되도화령앞에한들평야는한없이넓기만하다.지금은당진-상주고속도로화서IC가바로화령재옆에있어교통이매우좋아졌다.서울에서도2시간이면갈수있는거리이다.고속도로가없을때는기차를이용하여서울,부산을가려면추풍령으로나가는버스를타고다녔다.

봉황산은화령의역사를간직한산이다.백두대간이일반화되기전까지는겨우화령인들에게만알려진산이었지만,백두대간이등산인들의각광을받으며봉황산은백두대간줄기의하나로이름이알려지기시작하였다.가야할백두대간이빚어올린봉황산이저만치에헤아린다.중종의태를묻었다는전설에힘입어화령인들이태봉산(胎封山)이라부르는봉황산은송천을발원시키는화령의진산(鎭山)이였다한다.

조선시대연산군(燕山君)의아들(胎子/중종)胎를묻었던곳이라하여태봉산(胎封山)이라불렀다는태봉산이석곽으로만든높이90Cm,둘레110Cm,태실이화서면상현2리에있다.그밖에도가뭄이들면이곳에가서산돼지의피를내어바위에붉게칠을한뒤정성을들여기우제를지내면반드시비가온다는붉은바위(일명-기역자바위)화서면봉황산중턱에있고,1000년묵은"이무기"가살았다는탑송(塔松)이화서면상현1리에있다.

또빈곤에비유하여소쩍새(두견새)도열매없는볏집을보고이리저리날아다니다가바람결에빈이삭만흔들거리는것을보고울며사라졌다는"한들"이화서면달천리,사산리,봉촌리,율림에있어청주한씨(淸州韓氏)들이굶주림에지쳐고을을떠났다는설화가전하기도한다,그러나지금은곡창지대로변하여이곳에서생산되는쌀(한들미)은품질이높고밥맛이좋아많은사람들이선호하고있다.

이곳의특산물은고냉분지문장대포도가당도가높아인기가좋다,백두대간의한축이며속리산과봉황산으로이루어진청정지역송이버섯은전국에서최고로인정받고있으며,백두대간의정기와해발300m이상의일교차가큰옥토에서재배되어과육이단단하여저장성이타지역보다월등히좋은화령사과가전국에서유명하다고한다.고냉지감자씨앗도장려하고있으며,중화지구에서화령중,고교는교육의산실로인정을받고있다.

대간길우측으로낙동강-금강분수령안내판과상주시화서면에서설치한"백두대간등산로"안내판이고개우측에보이고넓은주차장도같이있다.고갯마루를카메라에담고서쪽으로25번지방도청주,보은과49번지방도괴산,문장대로이어지는푸른색이정표가머리위에걸려있었다.이곳이상주의화령이라백두대간의절절한고개로【증보문헌비고】의기록에는“송천은상주의구봉산(九峯山)에서발원하여화령(化寧)과중모현을지나황간현에이른다”고하였거늘화령의화서땅을한번둘러보고가지않을수없다.

화령재에서상기하는6.25

화서면신봉리산2-1번지에1980.11.8일교통부주관으로준공한면적2,177평비높이8m로한국전쟁(6.25)화령장지구전적비를세웠다.화령은6.25때칠곡군다부동전투다음으로치열한화령장전투가벌어졌던곳이다.1950년7월17일인민군제15사단이백두대간을넘어문장대계곡으로남하하여상주를점령하려한다는첩자로부터그정보를입수한국군은미리적의작전을파악하게된다.적을알면백전백승이라하였다.

국군제17연대(연대장김희준중령)는화령장북쪽의금곡리와동비령일대에서매복작전을펼쳐남진하는인민군과격열한전투를하여격퇴하였다.개전후계속밀리기만했던아군은낙동강전선구축에6일이라는시간을벌게되어반격의실마리를잡을수있게되었고,인민군은상주에서국군의퇴로를차단하고자했던계획이수포로돌아가큰타격을입게되었다고한다.그때의총성때문인가.화령재에서의백두대간들머리는조금색다르다.

총알을피해아래쪽으로도망간것인가?보통은재에서시작하면건너편이바로들머리가되곤하지만,이곳의들머리는화령재에서도로를따라화령읍내방향으로300m정도내려가면우측으로길이열린다.즉,갈령에서넘어오는49번도로와25번국도가만나는코너에있다.초입에는백두대간안내판이설치되어있고봉황산까지4.6km,1시간10분거리라고표기되어있다.산문에는백두대간길의리본이주렁주렁매달려반겨준다.

고도가조금씩올라갈수록새벽공기가차갑지만시원하게느껴진다.산세도야산지대를벗어나는느낌이든다.늘씬하게뻗은소나무숲길이운치를더한다.중화지구대와는달리소나무도품위가있고멋있게쭉쭉뻗었다.경사도급하지않아오르기가수월하다.아침햇살이방긋방긋숲속을비집으며파고든다.새들의울음소리도친구의정겨움을느끼게한다.빛을받아낸나무들의그림자가너무나곱다.

소백산맥을가로지르는삼국시대의고전장인이곳화령장요새지에서붉은침략의무리를섬멸한눈부신전공을청사에전하고투철한반공정신을기리며호국의의지를심어주기위해승전의그현장에전적비를세웠다한다.아직도시골티를면치못하는화령(化寧)5일장과후백제의초대왕(재위900~935)견훤(甄萱)이말년에웅거하면서무술을연마한곳이였다는대궐터(大闕攄)가화서면하송1리에있다.

▶산불감시초소-(570m)-3.3km


화령재머리위에걸린이정표를따라좌측으로비탈길약500여m를내려가면좌측으로청주,보은우측으로괴산,문장대로이어지는이정표가보이는포장도로삼거리에도착한다.포장도로삼거리길에서49번국도진입로2차선포장도로를건너"산불조심"간판이있는민가한채를우측으로끼고북쪽능선으로붙어소나무숲길을따라1시간여를지루한오르막능선길을오르면산불감시초소가있는570봉능선마루턱에도착한다.

▶봉황산(740.8m)-1.7km

봉황산은이름이말해주듯이정상은머리를곧추세우고양날개를펼친봉황을닮았다.1300년전봉황새가나라와30여년을살았다는전설이있는산이다.봉황산정상에올라서면멀리바위두개가다정하게기대어있는형제봉도보이고그너머속리산라인이들어온다.화령읍내너머로독불장군처럼오똑하게보이는저산은천택산일것이다.날개가휘어지는방향으로구병산의기세가만만치않다.그암릉미또한청계산(대궐터산)에뒤지지않을성싶다.가을에멋진산이구병산이다.


봉황산에서바라보는청계산(대궐터산)은조금전보다더고압적인자세다.아직도아자개의기가남았나보다.적당한암릉이서로조화를이루며뻗어내린산줄기는가히환상적이다.더군다나명산치고대찰없는곳이없듯이극락정사,문수암,청계사..무려절이세개나붙어있다.두리봉에올라서면속리산구석구석이한눈에다들어올것같다.청계산(대궐터산)두리봉은속리산을가장가까이서볼수있는최고의전망대이자파수꾼으로보인다.


산불감시초소에올라저물어가는북쪽대간길을바라보면멀리나란히2개의봉우리가보인다우측으로살짝비켜앉은봉우리가있고,좌측으로높게보이는봉우리가봉황산이다.저산을넘어야한다니아찔하다그래도가야만한다하고생각하면천근같은발길도단근같이움직인다발바닥에물집이생겨터졌는지따갑다.봉황산을오르는능선길은바위벼랑위로나있어조망을즐기며오를수가있고낙랑장송이서로멋자랑을하고있어힘들지만즐겁다.

이생각저생각하면서급경사의오르막을단숨에올라정상에서니하얀표지목과상주시청산악회의"白頭大幹鳳凰山740.8m"표지석이나란히서있는좁은정상이지만확트인조망은아름답기만하다해떨어지는서쪽으로멀리속리산천왕봉과형제봉이희미하게보이고흰백색의암릉으로된청계산(대궐터산)도희미하게시야에들어온다.일행은잠시휴식을취하며하루의여정을뒤돌아본다

▶비재도착-(120m)-3.1km(화남면)


봉황산의산줄기는계속이어진다.암릉지대가있는산길은굴곡이높지않아능선길을걷는되는불편함이들하다.그러나비재로하산하는길은경사가가파른곳도있다.백두대간의봉황산코스는속리산을향하여고도를점점높여가는추세이다.봉황산과형제봉을연결해주는비재를지나형제봉을넘으면피앗재에서부터는속리산천왕봉을향해올라가는백두대간길이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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