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김정호는어떤사상을지니고있었을까.김정호는3대지지를편찬했지만자기의생애나사상을나타내는글을남기지않았다.
이처럼
최한기의가문은고조부최문징(崔文徵)대에이르러가세가나아졌다.최문징은효행과학행으로동몽교관에증직되었다.그는슬하에2남4녀를두었는데장자최지숭(崔之嵩,1710~1765)이최한기의증조부이고,그가무과에급제함으로써비로소최한기가문은양반의반열에속하게되었다.
이와같이지도와지리지를중시하는최한기는자신이
그는평생김정호의후원자였을것이다.김정호가순조34년(1834)에끝마친
여기서최한기는김정호를친우라고불렀으며김정호가전국을두루섭렵하고실측에의하여청구도를작성한것이아니라오랫동안여러지도를참고해간편한비람식을찾아내어배수의6체에의해<청구도>를그렸음을밝히고있다.
신헌의도움도많이받았다.
그의문집
신헌은무관이기때문에정확한지도제작에남다른관심을갖고있었다.그의이러한관심과지도제작에남다른열정을갖고있는김정호와의만남이어떻게이루어졌는지는알수없다.그러나현재에도규장각에상당량남아있는비변사의지도들,이지도들은방안도법에의한경위선식지도로서당시에는대단히정확성을기한지도들이다.
이지도들을김정호에게열람할수있도록조처해주고또지도제작을적극후원해준인물이바로신헌이다.김정호의지도가정확성을기할수있었던것은이와같이국가의기밀지도까지이용할수있었기때문에가능했다.위글에서알수있는또하나의사실은김정호가8도를두루섭렵한것이아니라여러가지지도등을광범위하게수집해대조해가면서완벽한지도인대동여지도를제작했음을알수있다.
최성환(崔煥)의도움도빼놓을수없다.
그의고향은양주였으나대부분의생활을서울에서보냈으며,서울중부허병문계(지금의조흥(우리)은행본점부근)에서살았다.이곳은주지하다시피중인들이주로사는곳이었고개화의선구자였던유대치등이살았던곳이다.그가벼슬을그만둔뒤에는한동안고향인양주로낙향했으나,말년에는현재의충북청원군강내면다락리로이주해생활하다가그곳에서죽었다.다락리에는그의무덤이남아있으며,그의직계후손들이살고있다.
최성환의신분은중인이다.그것은그의형과동생을위시해가까운집안에많은잡과급제자가있다는사실을통해짐작할수있다.최성환의조부인최윤상의자손중에는잡과급제자가15명이나된다.이러한중인의전통은최성환의7대조인최예남대에확립된것같다.그후에는잡과합격자보다무과합격자가더많았다.6대조인최준걸과5대조인최무백이모두무과급제자이다.
최성환과김정호의관계를알수있는기록은별로없다.최성환과김정호의만남은최한기가이어주었을것이다.그러나두사람이공동으로편찬한
최성환은김정호와함께<여도비지>라는지리지를같이편찬해출간했다.책을많이편찬하고출간한경험이많은최성환은김정호에게지리지편찬의방법과지도제작에많은조언을해주고협력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