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름 기행 바굼지오름 답사 *-

오름기행바굼지오름답사


남제주군대정읍절우리·바굼지오름답사

한라산북동쪽동부산업도로를따라북제주에진입하자무겁게흐려있던하늘에서후드득빗방울이듣기시작한다.절물오름가는길.김순이(54세)시인은절물오름은제주아낙들이물맞이가는곳이라며물맞이에대한사연을설명해준다.

“물맞이는음력칠월보름백중일이면결혼한해녀들이대여섯명짝지어해수에절은몸을닦고맑게해주기위해계곡을찾아가던풍습이지요.몸이시원찮아신경질을부리며물맞으러가야한다면이때만큼은남편도시부모도절대잡지않았어요.여자가경제권을쥐고있던때였으니까요.사실물맞이란핑계고하루쯤그렇게해서시집살이에시달린마음을해소토록마련된인간적인장치였죠.”

절물자연휴양림진입로를지나쳐얼마를가서차가멈춰선다.골짜기로김순이시인을따라걷던일행은갑자기발을어디에내려놓을지몰라공중에둔어정쩡한자세가되고말았다.며칠전내린진눈깨비를뒤집어쓴복수초군락.햇빛이들지않아몸을바짝오그린복수초는그렇게노오란꽃잎을수줍게보여주고있었던것이다.꽃구경을기대하고따라왔다는유혜리씨(40세)의입가에도함박웃음이노랗게피어난다.

“제주를여행할때비를만나도크게걱정하지않아도돼요.동쪽에비가오더라도서쪽이나남쪽은그렇지않기가쉽거든요.”차를돌렸다.오름이야제주도전역에퍼져있으니저한라산너머남쪽으로가자.바람이불든비가오든눈이오든오름산행이야제각각의맛이있다지만촬영을해야하는취재진에게비는좀곤란했다.하지만이또한제주도에서만겪어볼오름산행의독특함이지않은가.옷이그득한옷장에서마치그날의날씨와기분에따라원하는것을골라잡을수있는것처럼.산록도로를타고한라산북사면을횡단한다.거기서차는서부산업도로로바꿔달리는동안일행들은제주도에서도송전탑이가장많이설치되어훼손이심한서부오름군한가운데를지나갈것이다.

물결울음들리는오름‘절우리’

이틀전아부오름으로촬영갔다온서기자가‘도대체그럴수있느냐’며얘기를꺼낸다.‘이재수의난’영화촬영이한창인아부오름에는세트장설치는물론이고분화구안으로차가들락거리도록길까지낸것을두고하는말이다.“오름은여러사람이오래오래볼수있도록해야지한가지이유로그렇게파괴시켜서되겠느냐”며차안에선오름훼손자들에대한성토가잠시벌어진다.어느덧길오른쪽으로‘산방산10km’란표지판이다가선다.첫산행지는제주도대정읍최남단벼랑에위치한절우리(松岳山·104m)였다.‘절’은‘물결’이란뜻이라했다.물결이우는오름이라니….

‘추사적거지’지나바굼지오름(簞山·158m)의도드라진실루엣을비껴보며해안으로달린다.엷은구름막이드리워져날은밝지도어둡지도않아멀리산방산의옹골찬산세가희끄무레하게보인다.마라도행여객선이막출발하고산이수동선착장에선김순이시인이절우리로오르는해안도로와파도를향해시커먼입을벌린벼랑의굴들을가리킨다.

“절우리는일제강점기의뼈아픈상처를고스란히간직한오름입니다.해안벼랑에파놓은저굴들이그렇고산록의포진지와알뜨르일대의20개가량되는콘크리트격납고등이그흔적들이지요.”주차장에는사람들로붐볐다.정상이올려다뵈는너른평원에서자티셔츠를보색으로나란히맞춰입거나카메라멘택시기사를대동한쌍쌍의청춘남녀들이유채밭과절벽가장자리에둘러친담장사이를오가고있었다.

그제서야이곳이으레신혼여행의증거물로신혼집안방한켠에방문객을위해준비되어있던앨범속의단골배경임을알아차렸다.일행은출입금지구역인담장너머바다쪽으로길게튀어나간바위에자리를잡았다.참으로고요한날이다.바다는거대한절벽에애교를부리듯찰싹거릴뿐흰거품은금새사라지고바다는또와서찰싹거리는반복되는모습을여유롭게바라본다.아마도’절우리’란집채만한파도가저절벽과맞부딪칠때의소리쯤되지않을까.어쩌면더나아가일제가중국대륙침략을위한최후거점기지로이곳에뿌려놓은슬픈역사의울음이기도할것이고.

일행이앉은자리는바다에무방비로노출된곳이라거센바람이라도몰아치는날이라면몸은종잇장처럼힘없이이내파도속으로날려들고말것이었다.잠깐의상상에진저리가쳐져컵에남은따뜻한차를얼른들이킨다.유채밭사잇길로오르다꽃밭을유심히살펴보던김순이시인은이것은유채가아니라갈아내지않은배추에서올라온꽃대라고알려준다.갈색의다소퇴색한황금색의새밭을지난다.일행의몸이새와맞닿자새가속삭이듯서걱인다.“오름에는새,땔감,묘지등세가지의공동체문화가존재하지요.마을사람들은저새를잘라두세해마다한번씩초가지붕을갈아줬지요.또땔감을구하고조상의묘를모신곳이오름입니다.오름은제주사람들의삶터였지요.”

그로테스크한절우리의굼부리(분화구)

굼부리는얼마전폭발이끝난것처럼시커멓고붉은현무암이뒤덮인가마창이었다.특히가장자리의검붉은현무암들은손으로건드리면그대로툭!하고떨어져나갈것처럼위태로워보이기도했다.김순이시인의남편인고김종철선생의오름답사안내서「오름나그네」에는굼부리에대한인상이다음과같이적혀있다.

“깊숙이팬거무충충한분화구가막분화를그쳐지열을아직도간직하고있는듯이느껴졌음은찌는듯한더위탓만은아니었다.깔때기모양으로움쑥한데다검붉은화산토로하여,소가이속에빠져들어가면미끄러워올라오지못하고결국죽어서나온다는이야기가떠올라더욱그로테스크해보였다.

이글귀를읽고나면도무지이굼부리안으로내려가보지않고서는못배기게되어있는것이다.불을닮은여자들이굼부리속으로내려간다.굼부리바닥에앉으니시계가좁아져더욱심연한곳에든느낌이다.오름산행때마다꼭굼부리에들어가본다는김순이시인은“지열이있어겨울에는따뜻하고여름에는덥다”며바위에다닥다닥붙은콩짜개란을가리킨다.굼부리에도봄의생명이꿈틀거리기시작했다.10여분머문일행은내려온반대편사면으로덜컹거리는현무암을밟고오른다.

가쁜숨을몰아쉬며분화구가장자리에올라서자그새일행을내려다보며이곳에섰던30여마리의염소떼는바다가까운쪽으로이동중이다.굼부리최고점에세워진한시비(漢詩碑)로이동하는데갑자기‘농댕이’가뜀박질을시작한다.농댕이는김순이시인이데리고온7개월된마르치스종수놈강아지이름이다.강아지는무슨이유에서인지죽을힘을다해염소떼를향해내달린다.쫓아오는강아지의기세에눌린염소떼들이오히려도망가느라일대경주가벌어진다.

“농댕아∼!농댕아∼!”주인의외침에도아랑곳하지않고몸집이나수적으로도저보다우세한저염소떼를위협하는강아지의자신만만함은어디에서비롯된것일까.그건사랑이라짐작해본다.사랑을듬뿍받을때자연스레생겨나는겁없이맑은자신감.‘松岳山(송악산)’이라새겨진비석앞바위틈에는쑥부쟁이가보라색손을활짝펴고일행을맞는다.

“이꽃을두고서정주식표현을빌면‘미친년’이라하지요.”여인들의웃음이굼부리위로퍼진다.정상에는우리일행밖에없다.그냥돌아가는이들은오름이지닌매력을몰라서이기도하겠지만독특한암질구조를보여주는해안절벽과가파도와마라도의원경,그리고동쪽해안선을달려가산방산과형제섬을뛰어넘고시선이가닿는한라산그림자를감상하는것만으로도흡족할만한곳이이절우리이기때문이리라.이중분화를지닌복합화산인이산자락에는올록볼록무덤같은작은봉우리들이널려있는데그수는‘절우리안아흔아홉봉우리’로표현된다.

비석뒷면에는이런절우리(송악산)의아름다움을노래한대정의초대면장우영하씨의한시가새겨져있다.정상에오르니부드러운바람이훑고지나간다.김순이시인은오름에바람이없으면오히려불안하다한다.바람이없는제주를제주사람들이상상할수없듯.절우리의매력에공감한여인들은문득서로의나이가궁금해진다.

"저는3학년5반이예요.""전올해불혹이예요.""그러고보니3학년부터5학년까지차례로모였군요."여인들은이제점심을먹고박쥐가날개를펼친모양으로오름가운데서도최고령인바굼지오름으로갈예정이다.

오름나라의이단아최고령바굼지오름

바굼지오름의첫인상은“저것도오름일까”였다.바위가툭툭불거져나와그저좀기묘하게생긴바위산쯤으로여겨졌다.제주의오름가운데서도연령이가장많은이오름은사람으로치자면살은죄다빠져버리고뼈만앙상하게남은흉칙한몰골이었다.김종철선생은살이통통하게오른오름의일반적인모양과는전혀딴판인이오름을“오름나라의이단아”라불렀다.

또“누워있는긴괴물이머리를치켜들고꿈틀거리기시작할듯한인상”이라표현했다.산행을하기전잠시대정향교를둘러보던일행은담장위로몸을드러낸소나무한그루에시선이가머문다.기품있는이소나무는사람들에게종종추사의세한도에비유되곤한다.

추사적거지와불과10리떨어져있는이향교의동재(강당)에는추사의친필로‘疑問堂(의문당)’이라쓰인편액이한때걸려있었으니이래저래추사와관련된유적지임에틀림없다.향교뒤편바굼지서쪽봉우리로오른다.등성이엔스산한날씨에꽃잎을완전히접어버린까치무릇군락이하얗다.

10분만에척추쯤될바위지대가나온다.유혜리씨와서기자가바위지대로성큼다가선다.바위를딛는유혜리씨의몸동작이유연하다싶었는데알고보니그것은10년전쯤클라이머였던이력에서비롯된것이었다.암릉을타고동쪽으로가던일행은박쥐의왼쪽날개의어느바위턱에걸터앉았다.내려다보이는향교주변으로는온통파아란마늘밭이다.이곳에서생산된마늘은유난히맛이좋다한다.쉬는틈을타유혜리씨의산이력을물어보았다.

“연대고대서강대통합산악부써클인오씨씨(OCC)에가입하면서인수봉선인봉오르고포대능선도걸었지요.지금남편과만나89년에결혼하며제주로내려오기전까지10년정도다녔네요.그때후배들에게장비도전부물려주고이냅색만하나가지고왔어요.”그녀가메고있는빛바랜청색냅색에는산꾼이라면누구나한번들어보았을‘설악산장’이란흰글자가박혀있었다.그녀는제주출신으로제주대학교에서지질학을강의하는남편과살며제주여자가되어가는동안두아이의엄마가되었다.

박쥐의몸체에해당할거대한바위지대를조심조심넘어박쥐의오른쪽날개로진입한다.희뿌연산방산이성큼눈앞에다가오자어느새일행의발걸음은황금빛으로일렁이는억새밭으로내려서고있다.“바굼지는선생님께어떤메시지를주나요?”

“바굼지는욕망과허세를모두걸러버리고올곧은정신의정수만을간직한오름이랄까요.강직해보입니다.그래서이곳에오면힘을얻게돼요.또이오름과잘어울리는선비의곧은정신을연마하던대정향교가옆에있어서좋기도하고요.”일행은산행을시작한대정항교로돌아가날개죽지를퍼득이며막날아오를듯한바굼지를다시한번바라본다.

-<글·이정숙기자사진·서준영기자>/사람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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