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산행 한라산(Mt. Halla) *-

신년산행한라산(Mt.Halla)

성판악~사라오름~백록담~삼각봉~관음사19km

제주도탐방객100만명시대세계자연유산이손짓하다

서설(瑞雪)이살포시내려앉은초겨울의한라산은은은한빛이감도는한폭의수묵화다.솜털풀어놓은듯산자락을휘감은운해(雲海)가달팽이걸음으로느릿느릿흘러갈때,구름바다위로도도록이솟아오른한라산은동화속신비한나라의궁전같다.하늘금을그리며해안선까지완만히이어지는부드러운산세는궁전을떠받치는성채(城砦)와도같다.공항으로착륙하는비행기차창밖으로펼쳐지는초겨울의수묵화는제주도가곧한라산이요,한라산이곧제주라는걸더덜없이보여준다.

국토의마침표같은섬의한가운데극적으로솟아오른한라산의높이는1950m이다,남한최고봉으로바다에서곧추솟아오른한라산정상으로가는들머리는해발고도700미터의성판악에서시작한다.한라산허리를가로지른5·16도로의정수리인성판악은일년내내한라산을찾는나그네들로북적인다.외딴섬제주의고갱이이자세계자연유산으로등재되면서한라산은올해처음으로탐방객100만명시대를열기도했다.

매년1월1일에만야간산행허용

가을을구가하던단풍잎이낙화한들머리의숲에는겨울을몰고오는바람이나목사이로윙윙소리를남기며흘러간다.나목(裸木)사이사이앙상한숲곳곳엔마치고개를숙인듯푸른잎사귀를늘어뜨린굴거리나무가엷은햇살을받으며졸고있다.상록수이면서도소나무와달리넓은잎을가진굴거리나무는제몸을움츠리며혹독한겨울을난다.눈녹이는봄햇살이숲속으로스며들때쯤이면굴거리나무의축늘어진잎들도꼿꼿하게선다.누가시키지도않아도자연스레이루어지는자연의섭리(攝理)앞에선늘경건해지는법인가.먹이를찾아숲을분주히오가는곤줄박이와박새의간지러운노랫소리벗삼아숲길로들어선다.

돌계단과목재테크가번갈아이어지는길은낮은산의호젓한숲길처럼평탄하다.성판악에서사라오름과진달래밭을지나정상에이르는코스는한라산의등산로중에서가장길면서완만하다.사방이훤히내다보이는전망대도없이숲길을따라이어지는밋밋한길은어쩌면설악산의호쾌한암릉이나지리산의장엄한첩첩산줄기에익숙한이들에게는시시해보일듯싶다.그래서가능한지모르겠다.외면의풍경보다한발두발내딛으며내안에솟아오른능선과계곡을더듬는사색같은산행이.숲길을가득메운조릿대댓잎을스치는바람소리와나목의울림,단순한풍경속에서오히려더선명히떠오르는지나간삶의풍경이되살아난다.

우거진숲길따라간간이하늘이열린다.잎떠난가지에홀로싹을틔우고빨간열매를피운겨우살이는눈여겨바라보아야비로소제모습을보여준다.기생초라불리는겨우살이는암을이겨내는성분이있다는입소문을타고수난을당하는식물이다.열매를먹은새가소화시키지못한배설물속의씨앗이나무줄기에붙어아슬아슬한생명을이어간다.제스스로광합성을하면서도그양이부족하여,들러붙어사는숙주(宿主)나무의양분을야금야금빼앗아저혼자겨울에도푸른빛을발한다해서동청(冬靑)이란이름도가지고있다.참나무가빼곡하게숲을이루고텃새가서식하는성판악등산로는겨우살이생육에천혜의조건을갖춘셈이다.

숲길은성널오름자락을끼고삼나무조림지인속밭을지나사라오름으로이어진다.성널오름과사라오름은한라산의동서를잇는산줄기에이웃해서솟아있다.덩치로치면성널오름이훨씬우람해서숲속에서도그존재감을느낄수있다.등산로가이어지지않지만사라오름정상에서면둥그스름하게솟아오른덩치를실감할수있다.본래성판악코스의지명은바로저성널오름에서따왔다.서귀포시남원지경에서바라볼때오름어깨춤에수직절벽이병풍처럼산자락을휘감으며솟아오른모양새가마치나무판자로성을두른것같다고해서붙여진이름이다.이를한자로차용하면서성판악(城板岳)으로불린다.

2010년11월1일공식적으로개방된사라오름자락에이르면밋밋하던등산로가제법가파른경사를이룬다.사라오름안내간판이있는곳에서등산로를버리고10여분남짓오르막나무계단을올라선다.턱까지차오르던숨이멎고잠시평탄한길을걷노라면눈앞에색다른풍경이파노라마로펼쳐진다.확트인산정호수가와락안겨들듯다가서기때문이다.낮은구릉으로둘러싸인분지는갈수기엔마르지만비가내리고나면아담한산정호수를이루고겨울이되어얼어붙은표면은영락없이천연스케이트장으로변신한다.

호수의둘레는어림잡아250여미터,시계방향으로반원을그리며목재계단이놓여있다.한여름이라면물위를걷는호사를누릴수있다.호수가장자리엔물속에서자라는수초들이마른몸을비틀며누워있고군데군데화산폭발당시분출한둥그스름한화산석들이박혀있다.지나는이들마다쌓아놓은듯보이는탑이정겹다.나무계단을따라호수맞은편비탈진언덕에올라서면사라오름전망대다.시야가확트인곳이라서귀포앞바다의섶섬과지귀도가손에잡힐듯가깝게다가선다.섶섬정상에는글월문(文)자를닮은문필봉(文筆峰)이솟아있어섬과마주보는보목리마을엔글쓰는문사들이많이나온단다.또한천연기념물인파초일엽의유일한자생지이기도하다.

고개를돌려한라산정상을바라보면한겨울에도초록빛을띠는구상나무주단을깔고백록담외벽이부드러운능선을이루며솟아있다.맞은편으로는성널오름과논고악,동수악을비롯한제주동부지역의오름이한눈에잡힐만큼전망이시원스럽다.수평선맑은날에는성산일출봉과우도가아련하게다가온다.호수맞은편엔새색시볼처럼불그레한흙붉은오름이수면위로머리를빼꼼내민개구리처럼하늘금을그리고있다.

다시발길을돌려호수로내려서는곳에돌담에둘러싸인무덤에살포시눈이내려앉아있다.통정대부(通情大府)라는벼슬까지지낸걸보면꽤나지체있는집안의유택이다.본래‘신성한곳’을뜻하는고어(古語)‘’에서유래된사라오름은예로부터제주최고의명혈로손꼽힌다.풍수지리학에서도사라오름은제주의6대명혈가운데으뜸으로쳤다.관음사코스의개미목과영실코스의영실(靈室)기암이사라오름의뒤를잇는다.

최근개방된사라오름은필수코스

사라오름을내려서면제법등산로가가팔라지기시작한다.끊임없이이어지는돌계단을오르노라면이마에땀방울이맺히는데,잠시다리쉼을하며주변을둘러보면색다른풍경이다가선다.한겨울에도풋풋한초록의향기를풍기는구상나무때문이다.해발1300고지에서정상까지울창한숲을이루는한라산의구상나무군락은세계최대규모다.10여미터높이까지자라는구상나무는균형잡힌삼각뿔모양새를지녀서크리스마스트리로각광을받는다.구상나무는국내에서자생하는2000여종식물중유일하게‘코리언’이라는학명(AvisKorean한국산전나무)을지니고있다.

일제시대한라산의구상나무종자를유럽에가져간서양인들에의해우수한형질을개량하여트리를만들었는데,현재서양에서유통되는크리스마스트리시장의90퍼센트를점유하고있다.구상나무는보기에도좋을뿐더러숲속에들었을때상쾌한기분에젖어들게하는피톤치드함량이편백나무다음으로높다.오름길에지쳐잠시쉴때,구상나무이파리를살짝비벼서코끝에대고들숨을쉬면피로를씻어주는향기가핏줄을타고흐른다.한라산에폭설이내리는겨울이면구상나무이파리마다하얀눈이덮여마치설의(雪衣)를걸친동장군같다.성판악코스는한라산의5개등산로중에서가장울창한구상나무숲을관통한다.

연이어지는돌계단을올라갑자기시야가트이는평원에들어선다.해발1500고지진달래밭이다.성판악에서정상을거쳐관음사에이르는코스중유일한유인산장이자뜨거운커피와사발면국물을맛볼수있다.봄철이면구상나무풋풋한향기대신털진달래와산철쭉붉은물결이어지러이피어난다.진달래밭대피소를지나정상까지는한시간남짓끝없는계단을오른다.고도가높아지면서시야가트이는곳에서는산허리를휘감은운해가발아래서달팽이처럼기어간다.부드러운초가집모양의백록담정상이손에잡힐듯가까워지면서귓불을때리는바람이거칠어진다.

몸가누기조차힘들게휘몰아치는맞바람을헤치며도착한정상.발아래로백록담의드넓은분화구와능선이구름바다위에‘서울우유’왕관처럼떠있다.수직깊이100여미터남짓한분화구는그야말로바람의도가니다.고대로마원형경기장의힘찬함성이바람으로들끓어오른다.분화구사면의골짜기엔서설로생긴주름살이그로테스크한조각같다.왕관을휘감은운해가수평선으로구름이랑을갈아내며검은바위와하얀눈이빚은백록담수묵화에자막을긋는다.

왕관능선을따라관음사로내려서는길에는구상나무고사목무리가길을안내하듯도열해있다.나무계단을따라구상나무숲에들자바람이잦는다.구상나무는거친바람마저도제몸으로갈무리해서구상나무숲에서는겨울에도푸른이끼가시들지않는다.저녁노을에반짝이는바위벽이마치왕관처럼빛난다고해서왕관바위라불리는왕관능에이르자용진각계곡을둘러싼암릉이백록담을호위하듯당당한위세를드러내고있다.

한라산에서가장험하고깊은계곡을지닌용진각일대는백록담북벽과장구목에서발원하는탐라계곡의원류이다.히말라야원정대원들의훈련장소이자사랑방역할을했던용진각대피소가바로이곳에있었다.2007년태풍‘나리’때백록담북벽에서흘러내린바위가급류에떠밀려내려오면서용진각대피소건물을강타,지금은흔적만남기고사라져버렸다.급류가흘러내릴때는건너기조차힘들었던용진각에는지난해완공된현수교가걸려있다.

사라진용진각대피소대신생긴삼각봉대피소

현수교를건너삼각봉바위벽허리를관통하며오르막길을오른다.하얀수피를드러낸고채목들이아찔한절벽자락에서허공을향해가지를뻗어가녀린겨울햇살을마신다.폭설이내려나무의줄기까지눈이쌓이면고채목들은필경지나는나그네들에게제몸통을폭설속의징검다리처럼내어줄것이다.

낙석방지펜스를재빨리통과하여도착한삼각봉아래에는사라진용진각산장을대신해지은삼각봉대피소가나그네를반겨준다.솔개의머리를닮아조선시대에는연두봉(鳶頭峰)이라불리던삼각봉을뒤로하고본격적인내리막길로들어선다.수년전까지만해도사람키만큼이던보득솔이이젠제법자라숲을이루며햇살을가린다.

관음사코스의소나무는꾸부정히자라는해송과한치의흐트러짐없이곧추하늘을향해뻗은적송(赤松0이모두혼재한다.특히1300고지일대의적송지대소나무는금강송보다형질이우수한소나무임이연구결과밝혀져지나는산객의눈길을잡아끈다.이일대는1980년대초,당시쿠데타로정권을잡은대통령의호위를위해제주도로파견되었던공수부대원들의비행기가추락한곳으로유명하다.제주공항으로향하던수송기가한라산의난기류에휘말려적송지대에추락했는데,당시비행기가떨어진자리엔샘이솟고지금은후배공수부대원들이‘원점비’라는비석을세워해마다추모행사가치러진다.

원점비를지나제법경사진능선을내려서면용진각에서흘러내리던탐라계곡과만난다.이곳에도계곡을건너는현수교가놓여급류가내리치는날에도계곡을건너는수고를덜게되었다.오히려급류내리치는한라산계곡의진면목을볼수있게되기도하거니와가을에는계곡양안의나무들이아치를그려내며불타오르는단풍을만끽하기에도적격이다.

탐라계곡을건너관음사코스의들머리인야영장까지는3킬로미터,기복없이평탄한숲길은옛사람들의흔적이도처에널려있다.숯을굽던가마터와버섯재배지,제주의옛선인들의얼음조달처인빙장고역할을했던구린굴이있어고된산행의지루함을말끔히씻어준다.또한등산로곳곳에생태탐방을위한안내판이친절한설명까지곁들여진다.

글|오희삼기자사진|정종원기자/사람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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