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낙산사로가는길.대포항과물치항이발길을막는다.두군데모두횟감이싸고흥정하는재미가넘치는시장이라관광객들에게제법인기있는항구다.시끌벅적한바닷가항구에서흥겹게흥정한뒤싱싱한회한쌈드는맛.이즐거움이없다면대체무슨재미가있으랴.
이렇게부둣가에서회한쌈맛보고길을나서면곧양양낙산사다.관동팔경뿐만아니라동해안팔경중에서도유일한사찰인낙산사는바다처럼크고너른절집이다.의상이관음을친견했다는이절집은오늘날우리나라4대관음성지로꼽히고있다.그러나2005년동해안지역에발생한큰산불로화를입었다.이때일주문과홍예문등건물16채가순식간에불에타버렸고,아름드리소나무로울창하던숲은잿더미가됐다.보타전과홍련암이화마를피할수있었던것은그나마기적이었다.
이후다시복원작업을시작해2006년홍련암요사체인연화당의상량식봉행을비롯해화재로녹아버린보물제479호동종(2005년7월보물지정해제)도원래모습으로복원해제자리를찾았다.또한홍예문누각복원,칠층석탑·공중사리탑보수처리공사등의불사를거듭했고,현재천년고찰의위용을되찾기위한막바지작업이한창이다.
대한민국국민이라면누구나한번쯤시도했을
의상대에서왼쪽의짧은해안길을따르면홍련암.의상이기도를끝냈을무렵관음굴에서갑자기붉은연꽃이떠오르면서관음보살이나타났다는곳이다.훗날의상대사가수도한절벽위에정자를세워의상대라불렀고,관음보살이나타난자리옆에절을지어홍련암이라했다.
귀띔하나하자면,
오대산동쪽기슭에있는 청학동에들어선날은굵은빗줄기가오락가락하는날씨였지만,전국각지에서모여든차량으로주차장은가득차있었다.기암괴석을휘돌아내려가는계류는수량이늘어나평소보다더우렁찼다.청학동소금강은폭우가내리면입산을통제하기도한다.관리사무소직원은“동해안일대에호우특보가내리면소금강은입산이통제된다”며“야영장도호우경보가발령되면안전을위해텐트를철수시킨다”고말한다.다행히호우경보도,호우특보도발령되지않은상황.느긋하게발길을내딛는다. 청학동은청학대피소부근의무릉계를경계로하류쪽을외소금강,상류쪽을내소금강으로구분한다.외소금강에는금강문·옥조대·십자소·옥수연등명소가있고, 지금이야산길이잘다듬어져서그렇지원래소금강산길은상당히거칠다.이산길에대한최초기록은율곡이이가남겨놓았다.1569년(선조2년)벼슬에서잠시물러나있던율곡은외할머니의병환을살피러강릉에왔다가이곳이비경이라는지인의말에따라시간을내탐승길에나섰던것이다.이때
<청학산기>를뒤적여보면율곡은청학동소금강의아름다움을학자다운필치로묘사하고있다.440년의세월이지났음에도느낌은어찌이리똑같을까.
“사방을두루돌아보니,모두석산(石山)이솟아있고푸른잣나무와키작은소나무가그틈바구니를누비고있었다.석산이양쪽으로병풍처럼둘러쳐진가운데냇물의근원이매우먼데,수세(水勢)가거센곳에폭포를이루어맑은하늘에천둥소리가계곡을뒤흔드는듯하였다.물이고인곳에는못이되어차가운거울에얼이없는듯하는가하면,깊고맑고아름답고푸르러낙엽이붙지못하고휘돌아흐르는구비마다암석모양이천변만화하였고,산그늘과나무그림자에이내가섞여어스레하여햇빛이보이지않았다.”
경포대로유명한경포호는그리넓지않으나오랜옛날부터동해안석호의대명사로서이름을널리날렸다.만약강릉에경포대가없었다면어떠했을까?강릉사람들은대부분“상상도할수없는일”이라고대답한다.경포대가강릉사람들의내면에차지하고있는위상은상상이상이다.
여기서는경포대호수길산책코스,그리고오죽헌까지다녀오는코스를간략히소개한다.
경포대해수욕장에서
경포대에서내려서면산책길은호수서쪽을돌아남쪽으로이어진다.서쪽끝에있는3·1독립만세운동기념탑을지나면중간중간시비산책길,홍길동캐릭터산책길등이반긴다.조선시대에중국에까지필명을드날렸던
허난설헌은우리나라최초의한글소설인<홍길동전>을지은교산허균(蛟山許筠·1569~1618년)의누이다.그녀는8세에상량문을지어신동이라는칭송을받고,허균의문장을봐줄정도로출중한솜씨를지녔으나14세에결혼해얻은두딸을잃고시름에찬세월을보내다27세에요절한불운한천재다.초당동허난설헌생가입구에는‘허초희시비’를비롯해당대허씨5문장을기리는시비를세워문학거리가조성돼있다.
허난설헌생가에서호수로되돌아나와동쪽으로걸으며경호교를건너면산책길시작지점인경포대해수욕장앞.만약호수길산책만으로성이차지않아오죽헌답사도도보로곁들이고싶다면경포호서쪽끄트머리의3·1독립운동기념탑주차장에서서쪽으로뻗은경포로를따르면된다.
아스팔트포장도로를걷다보면해운정을지나선교장(船橋莊·중요민속자료제5호)이다.3·1독립운동탑앞에서선교장까지의거리는1km.선교장은‘배다릿집’이라는뜻인데,이는경포호의물이이곳까지차있을때배가드나들던옛지명인‘
선교장에서매월당김시습기념관을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