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채꽃보다 먼저 피는 제주도 수선화 *-

제주도…수선화…그향기…

아무도알아주지않을지라도…유채보다먼저봄을기다린다

봄은남쪽에서온다.남쪽이라면제주도.제주도의봄꽃으로는유채가유명하지만,사실제주에는유채보다먼저피어나봄을기다리는꽃이있다.수선화다.수선화는겨울이반환점을돈1월하순부터피어나기시작해2월이면고혹한자태를뽐낸다.그렇게겨우내언땅을꼿꼿하게지키던수선화는춘삼월이되면노란유채꽃과봄의전령역할을교대한다.한겨울부터애타게기다리던봄이오면그햇살을얼마누리지도못하고지는,어찌보면애석한꽃이다.

꽃을피우다…고개를떨구다

제주에내린봄비에말갛게얼굴을씻은수선화가검은현무암돌담앞에서
봄바람에실랑대고있다.제주의수선화는겨울의한복판에피어나봄이올때
까지제주의길가와돌담밑을지킨다.누렇게마른겨울풀숲사이에서홀로
푸른줄기를뻗어낸뒤,젓가락만큼얇은줄기끝에네댓송이꽃봉오리를한
움큼피워낸다.

제주에서수선화를보려면대정(大靜)읍으로가야한다.1840년(헌종6년)55세의추사김정희가모함을받고유배를왔던곳이다.이름난관광지라기보다는제주의소박한마을중하나인대정읍에서는검은현무암돌담아래나좁다란시골길옆누렇게마른풀섶에서수선화가솟아오른다.

수선화는줄기만보면난(蘭)과비슷하게생겼다.녹색줄기가일자로매끈하게뻗어나,청초한느낌을준다.이들줄기사이에서젓가락굵기의대가솟고,그끝에네댓송이꽃이달린다.꽃에서는아카시아꽃과풍란을닮은향기가풍겨나온다.벌과나비가없는겨울에꽃가루를옮겨줄매개체를유혹해야하는비정한운명때문인지,그향기가아득할정도로짙다.한줄기를꺾어차안에놓으면처음에는달콤하던향기도5분이면어지럽게느껴질정도다.재미있는것은줄기와꽃대를시원하게뻗어올리며시종일관꼿꼿하던수선화도꽃망울을터뜨릴때는고개를숙인다.꽃이바닥을향하는이모습을두고그리스신화는물가에비친자신의모습을하염없이들여다보는나르시스로표현했다.

사실제주에피어나는수선화는두종류다.제주토속어로’몰마농‘이라고하는것과‘금잔옥대(金盞玉臺)’라고부르는종류다.몰마농에대해서는’말이먹는마농(마늘)’이라서이름붙었다는이도있고,마농뿌리처럼생겼지만그것보다훨씬크다는뜻이라는사람도있다.유래야어찌됐든토속어이름이있다는것은그만큼오랫동안제주에수선화가있었다는의미다.몰마농은흰꽃잎위에여러개의노란꽃잎이있으며노란꽃잎사이에는흰꽃잎이섞여있다.길이나해안가에제멋대로피어나는수선화중에서많이볼수있다.

금잔옥대란꽃모양이백옥으로만든받침위에황금빛잔이놓인형상이라고해서붙여진이름이다.실제금잔옥대를보면꽃안쪽에술잔모양으로노란색꽃잎이있고,바깥에하얀꽃잎이이를감싸고있다.사람들이정성들여심어놓은수선화는대부분금잔옥대다.

수선화의두풍경,초가집과돌담

이대정읍일대의수선화는170여년전추사를사로잡았다.제주에서유배생활을하던추사는지인권돈인(權敦仁)에게보낸편지에서"산과들,밭둑사이가흰구름이질펀하게깔려있는듯하고,흰눈이광대하게쌓여있는것같다"라고이곳의수선화를예찬했다.

제주수선화는봄이오는길목에일찌감치자리를잡는다.봄마중을나온듯
수선화가제주돌담길을따라피었다.

수선화를그림에담기도했고,수선화를신선으로표현한시도남겼다.

一點冬心朶朶圓(일점동심타타원)
品於幽澹冷雋邊(품어유담냉준변)
梅高維未異庭(매고유미리정체)
淸水眞看解脫仙(청수진간해탈선)

한점의겨울이송이송이동그랗게피어나더니
그윽하고담담한기품이냉철하고도빼어나구나
매화는고상하지만뜰을벗어나지못하는데
맑은물에서해탈한신선을보게되는구나.

대정읍안성리에있는추사적거지(謫居址)에가면뜰에가득한수선화를볼수있다.추사적거지는추사가제주로유배와서두번째로머물던강도순의집터.추사가‘세한도(歲寒圖)’를그리고‘추사체’를완성했다고알려진이곳에2년전기념관이문을열었다.이곳에는지붕에들풀을올리고밧줄로묶어복원한옛집이있는데,그집앞에수북하게수선화가피어있다.3월이면꽃이마르기시작할때이지만,여전히“흰구름이질펀하게깔려있는듯”하다.

추사적거지가‘초가집수선화의풍경’이라면,성산읍삼달리에있는두모악은미로처럼얽힌‘돌담수선화의풍경’이다.두모악은사진작가김영갑(2005년작고)씨가루게릭과싸우며2002년만든사진갤러리다.김씨는20여년간제주바닷가와중산간,한라산과마라도등을다니며담아낸제주의풍경을이곳에전시해놓았다.제주의오름을사랑했던자신의갤러리에도한라산의옛이름인‘두모악’을따서이름붙였다.

구상나무와제주조릿대가넓게펼쳐진한라산백록담남벽아래쪽풍경.

이곳마당에는성인남자허리높이의나지막한돌담이미로처럼펼쳐져있는데,청초한수선화가돌담을따라줄지어서있다.봄비가내리는날구부러지는돌담한쪽에서서보면봄이오는길목을따라수선화가봄마중을나간것처럼보인다.두모악박훈일관장은“제주의수선화는원래남쪽해안가가유명하지만옛날에는중산간지역에서도많이볼수있었다”며“제주중산간지역의농로(農路)를두모악앞마당에표현하면서수선화도옮겨심었다”고했다.

우연히마주치는꽃

꽃모양이백옥받침위에올려진황금빛잔을닮았다는‘금잔옥대’.

상춘(賞春)이짧은것도한(恨)이지만,아무도알아주지않는것은수선화의더큰한이다.제주봄꽃의자리는유채에내준지오래고,제주에서는길가에피어나는‘흔한꽃’으로여겨진다.집근처담벼락에수선화서너분이피어있는데도“수선화를많이볼수있는곳이어디냐”는질문에“난수선화가어떻게생겼는지모르오”라고답하는주민도있었다.170여년전추사가“이고장사람들은이것(수선화)이귀한줄을몰라서소와말에게먹이고발로밟아버리기도합니다.또보리밭에많이나는까닭에마을의장정이나아이들이호미로캐어버리고는하는데,캐내도다시나기때문에마치원수보듯합니다”라고한탄했다는것은유명한이야기다.

들녘에서야생으로피어나는‘몰마농’.

사실수선화의매력은예기치못한곳에서우연히마주치는것이다.성산일출봉계단을오르다가잠시숨돌리는곳에서만나기도하고,산방산앞바다를향해걸어가는길가에서두세송이피어난꽃을보기도한다.제주의오름중에가장아름답다는다랑쉬오름에도한때몇곳의야생수선화군락지가있었지만지금은거의남아있지않다.

여행수첩

◇제주도관광객들이가장많이찾는게해산물요리다.대정읍인근과산방산근처에서수선화를즐기며출출해진뱃속을신선한해산물로채워보자.산방산과송악산을잇는해안도로변음식점들도좋고,‘산방산초가집’의전복해물전골도맛이좋다.가볍게바다의맛을즐기려면칼칼한고등어조림이나전복·새우·조개등다양한해물을듬뿍넣은해물뚝배기를추천한다.김영갑갤러리인근에는주민들이추천하는제주흑돼지맛집‘제주길흑돼지’가있다.오겹살·목살등다양한돼지고기를숯불에구운뒤묵은지에싸서먹는다.주민들은살살기름을바른듯윤기가흐르는목살을청고추를넣은멸치젓갈에찍어먹는것을추천한다.

◇섭지코지에위치한휘닉스아일랜드를이용하면제주도의매력을총체적으로즐길수있다.섭지코지는작은반도라3면이바다인데다동쪽으론세계자연문화유산인성산일출봉이큼직하게보이고서쪽으로눈을돌리면바다건너한라산이우뚝하게펼쳐진다.안도다다오·마리오보타등쟁쟁한해외건축가들의작품감상은물론,수영·스쿠버다이빙등다양한수상레포츠도즐길수있다.

◇송악산에서용머리해안으로이어지는해안도로는사진애호가들이라면놓치고싶지않을절경이다.해안을따라길게뻗은도로한쪽끝에있는현무암해안가에는쉴새없이파도가부서지고위치에따라산방산이나송악산이보이기도한다.송악산쪽으로는일제강점기일본군들이해안가절벽에파놓은진지굴을배경으로사진구도를잡는것이좋고,반대쪽으로는바다한쪽끝에서튀어나오는산방산의모습을포착하는것도운치있다.파도가흐르는모습을잡고싶다면해안가에트라이포드를받치고장시간노출을주면된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추사적거지·추사관

◇서귀포=글·이영민조선일보기자/사진·김승완영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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