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과더불어백령회동지를중심으로발족한한국산악회가우리나라산악운동을선도적으로이끈다.대표적인사업은국토구명(國土究明)이었고동시에암봉등반은물론동계적설기등반도한다.1950년6·25한국전쟁으로인한어려움속에서해외고산에대한꿈은결국근대등산이시작된지한세대가지나히말라야로눈을돌리게된다.
다울라기리정찰후본대가나선것은,네팔이중국과의국경분쟁으로등반허가를금지했던1965~1969년이후1970년한국산악회의추렌히말동봉(7,371m)이처음이다.1,000m급의야트막한국내산의핸디캡을훈련으로극복해8,000m급자이언트봉에출사표를곧이어던지게된다.한국산악회가안나푸르나1봉에,대한산악연맹이1971년로체샤르(8,400m)에이어에베레스트(8,848m)를,그리고김정섭대장이마나슬루(8,163m)를목표로한다.
이들이등반무대로삼은
1962년한국사회는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의청사진을제시함으로써시작된수출주도형산업개발과경제발전우선정책을펼쳐곧한강의기적을일으키며아시아의용으로부상하려는걸음마를떼던해다.‘안되면되게하라’이것이당시의시대정신이었다.열악한장비와식량,그리고고산에서의
그집념의결과
또한국산악회가추진하던안나푸르나1봉은1975,1976년두번에걸친정찰등반과우여곡절을겪으며1978년당초목표했던안나푸르나1봉이아닌안나푸르나4봉(7,525m)에원정대(대장전병구)가도전,유동욱대원이등정에성공한다.이등정은같은한국산악회가파견했던7,000m급인추렌히말동봉(7,371m)의1970년등정이일본대로부터등정시비에휩싸인반면에시원한성과를거뒀다.
한국은이렇게1962년부터1979년까지히말라야에8개원정대를파견해2개의팀이정상등정하여낮은등정성공률을보인다.
한편,
동국산악회원정대는1976년토왕폭하단을완등한여세를몰아등정한다.한국인에게실패를거듭안겨주었던마나슬루에대한등반을일개단위산악회가성공으로이끌자국내산악계의해외진출은상황이크게바뀐다.히말라야를너무높게만생각해온많은산악인들에게희망을안겨주어새로운방식과새로운길을모색한도전정신을가진팀들이나타나기시작한다.
때를맞춰
이러한움직임은높낮이를가리지않았다.
이러한모험적인등반은실패의부담을안고서도꾸준히계속되어1994년가을경남연맹안나푸르나1봉남벽원정대(대장박주환·대원12명,등반셰르파7명)는1970년영국대루트를따라오르다가6,300~7,300m구간을변형루트로오르며박정헌대원과네팔인고소포터3명이성공한다.그리고2007년봄엄홍길로체샤르원정대(대장엄홍길·대원15명·등반셰르파11명)는남벽에변형루트를개척하며엄홍길·변성호·모상현·파상남걀셰르파가로체샤르등정에성공한다.
그리고
그런데국내의자축분위기위에검은그림자가드리운것은당시한국대와같은시즌에안나푸르나를등반하던프랑스대가등반후로이터통신기자로카트만두에있던엘리자베스홀리와의인터뷰에서불거져나왔다.결국이등정은안나푸르나중앙봉등정으로세계산악사에기록됐다.
이후여성산악인들의활동은상승곡선을그린다.
이것은한국산악계가매년한두팀밖에해외원정을나가지않던초창기에거둔성과라그의미가더욱컸으며히말라야고봉에세계초등정을노렸던1962년의다울라기리2봉과1971년로체샤르의소원을풀게됐다.8,000m급의초등은아니었지만고줌바캉은거의8,000m에가까운해발고도였고,특히악우회대가오른바인타브락은당시까지영국이8회,일본이3회도전했지만모두물리친악명높은봉우리여서한국의등반능력을세계에알린다.
이들의성공은1979년아이거북벽,1980년그랑드조라스와마터호른북벽의유럽알프스3대북벽을오른기술과저력이뒷받침됐고,1981년1차첫원정에서이정대대원을잃는아픔을이겨낸후에이루어졌다.
초등정은계속돼1985년울산합동대(이규진대장)히말출리북봉(7,371m)에도등정한다.이후한국산악계의초등열기는1995년까지급격히식는다.
1986년아시안게임과88서울올림픽,그리고1989년1월1일국민해외여행전면자유화를계기로한국내의스포츠열풍은후끈달아오르고자유로운출국편의로히말라야등반도동반활기를띤다.한국산악계는남아있는8,000m급‘한국초등’,또7,000~6,000m급‘한국초등’에목표를둔다.
한국의히말라야동계등반행렬은1982년12월푸모리(남선우·동계2등)로부터시작해서동계초등만열거해도1983년12월아마다블람(남선우임병길김영수)과자누(김기혁),1986년1월가우리상카르(최한조),1985년12월31일대구파라마운트산악회캉테가(이대석),1986년한일합동타우체(허영호),1987년겨울시즌광운고OB산악회로부제서봉(박재홍,최상현,심상일),1988년12월눕체북서봉(배현철김화곤오세철전봉곤),1989년12월랑탕리(박영석윤태영),1990년계명대히말출리서봉(7,540m)초등정,1991년명지대도르제락파(6,990m)등으로이어진다.이중혹독한겨울상황에서어려운루트를뚫고정상에오른경남연맹의1988년눕체북서봉(7,745m)등반이돋보인다.
이외에도1983년12월틸리초(윤대표·장봉완,동계2등),1988년1월고줌바캉(유광렬·최미호),1992년12월랑탕리룽(등정자김진현조난사),1991년12월아마다블람(유병철·박경이),1992년12월제주설암산악회랑탕리룽(김진현)이초등은아니지만동계에등정한다.
1984~1985년은벽산악회안나푸르나1봉동계등정은위에언급된바와같이등정의문이제기되었고,1987~1988년부산대륙산악회도해를넘긴1988년1월2일이정철대원이단독무산소로정상에올랐다고발표했으나후에정상사진을제시하지못해의문이제기된다.또1989년영남지봉산악회얄룽캉(8,505m)원정대의등정자진교섭은등정후동행한셰르파2명과실종됐다.한국의동계등반은1990년대이후급감해2000년후에는거의찾아보기어렵게된다.1998년12월6일동국산악회마나슬루를등정한박영석이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