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히말라야 50년 등반사 [3] *-

[한국히말라야50년사특집|현주소]

한국히말라야의현주소와나아가야할방향
‘세계적산악국가’성취했으나등반스타일의과감한변화필요

한국산악인이히말라야에첫발을내디딘지어느덧50년이지났다.아니,불과50년밖에안됐다.그런데이짧은기간에이룬업적은가히놀랄만하다.다양한등반경험의축적,노하우등우리는어느새산악선진국대열에당당히끼었다.참대단하다.마치우리나라의경제발전속도가그러하듯이한국산악인들의활동은눈부시게발전하였다.

잠시더듬어보자.우리의1962년은가난했다.근로자월평균임금이고작20달러일때니얼마나살기어려웠을까.군사정권은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을막출범했다.이암울한시절히말라야로향한분들은분명선각자였다.모두들가면죽는다고말렸지만박철암대장은자택을팔았다.최선을대해성실히정찰활동을폈다.또돈이없어배타고귀국했지만보고서‘다울라기리산군의탐사기’를펴냈다.시작이참순수했다.

거짓등정으로,인명사고로초장엔침체분위기

그러나당시대원이던김정섭씨가1970년추렌히말(7,371m)에도전해세계초등했다고거짓발표했으나(1988년중동산악회가이들이거짓임을입증함)일본대에의해등정의혹이제기됐고,1971년마나슬루(8,163m)에선대원1명이추락사했으며,1972년재도전때는대원5명과셰르파10명이눈사태로목숨을잃었고,세번째는대원들간의불화로등반을포기했다.고용인들의임금체불등김씨는여러면에서바람직하지못한선례를남겼고,이러한영향으로국내의해외원정분위기는초장부터다소침체됐다.

1977년대한산악연맹의에베레스트등정은커다란획을긋는일대쾌거였다.4년에걸쳐일관성있게추진한결과로국민들에게‘하면된다’는자긍심을심어주었다.이에힘입어1980년대에들어히말라야원정은서서히불이붙었다.1980년동국대팀이단일산악회로는처음8,000m등정의개가를올리더니1981년에는악우회가카라코룸의문을열었다.1982년에는부산학생산악연맹과대전자일클럽이한달차이로7,000m급등정에성공함으로써지방산악회의히말라야막을열었다.대전팀은세계초등정도이룩했다.이해선경여자산악회의람중히말(6,986m)등정도있었고,양정산악회가7,000m급동계등정의막을열었다.1983년에제천산악회의8,000m단독등정이있었고,1984년에는한국외국어대팀이등로주의의막을열었다.이해부터매년10여팀이히말라야에도전했다.바야흐로히말라야전성시대가도래한것이다.

앞서가는산악인들이선진국대열의기록을세우기시작하자상당수의대학과일반산악회가너도나도히말라야로방향을잡았다.산의높이와루트,도전시기,팀의규모등이점차다양해져갔다.1988년대한산악연맹팀은최초로8,000m급2개봉을이어두자리수의등정자를배출했고,울산팀은6,000~7,000m급3개봉을연속등정했다.

세계적인기록도제법나오기시작했다.그러나반대급부로현지적응력미숙으로인한셰르파의높은의존도,거짓등정발표와등정의혹의불신도심심치않게나타났다.원정비용마련을위해네팔경제사범의우를범하는팀도있었다.

1990년대는가일층성숙되어갔다.네팔에서탈피해인도,티베트및카라코룸,파미르,톈산으로등반대상지가확산되고,외국팀과의합동등반,동계및거벽등반,소수정예등등반스타일도폭넓고빠르게변천되어갔다.매년20개안팎의팀이대거히말라야로향하다보니실패도잇달았고사고도많이발생했지만곳곳에서‘코리안루트’가탄생했다.난공불락의거벽에도한국인들은도전을멈추지않았다.시대적적응력은실로놀라울정도다.

21세기가되자초장부터8,000m완등자를세명이나배출한유일한국가가됐다.한국인의저력을세계만방에펼친일대쾌거로,본격적인히말라야붐이분지불과10여년만의일이니세계산악인이경악할수밖에.여기에멈추지않고경험많은선두대열들은더넓은세계를향해거벽등반,연속등반으로흐름을주도해나가더니급기야작년(2011)에부산시산악연맹팀이5년4개월만에알파인스타일로14개8,000m봉을마무리하는대기록을세웠다.

최고봉높이가해발2,000m도안되는조그만나라가불과50년짧은역사에이처럼산악선진국반열에올랐다는것은실로대단하다.우리민족이예로부터산을경외하고산에의지하며살아온산문화민족이기때문일까.우리민족특유의근성과도전정신이강해서일까.둘다일까?그러나우리의자랑스러운업적을분석해보면반성해야할점도제법발견된다.앞으로진정한선진국이되려면계속노력해야하는데몇가지우려도있다.

아직도몇원정대를제외하곤셰르파의의존도가심하다.이를해소하려면등반스타일의과감한변화가요구된다.새로운루트를개척하려는의지도많지않다.동계,직등,단독등다소무리한도전은오히려줄어든듯싶다.산정의수도중요하겠지만,‘언제,어디로,어떻게’가더중요해야산악선진국이다.또무엇보다히말라야에선진실이가장중요하다.

혹자는일본보다우리가앞섰다고하는데,일본에8,000m완등자가없을뿐이지등정자수는우리의두배다.6,000~7,000m급등정자수는우리보다몇배나많다.5,000~6,000m급의미답봉을찾기시작한지도20년이훨씬넘었다.야마노이야스시처럼“등산은자신의즐거움이기에타인의지원을받아산에갈수없다”는상업주의와영웅주의를배제한순수산악인도우리에겐아직안보인다.

등산의내면세계를사랑하고서로를존중하고아끼며격려해야

오늘날우리나라의국민스포츠는등산이다.1,000만명이상이매달산에오르며,등산의류업체는매년호황을누리고,일반시민의아웃도어패션도우리만큼세련된나라가없다.그러나‘양(量)에서질(質)이나온다’는진리를그대로믿고있으면안된다.산악인대부분이중장년층이상이기때문이다.

땀흘리며산에오르는10대청소년들이과연얼마나될까.전국대부분의대학산악부가신입회원이없어대가끊기기일쑤고벽등반전문산악회도신입회원수가감축일로에있다.인천-카트만두왕복KAL편이주2,3회에이를만큼히말라야트레킹은넘쳐나지만정작등반대는줄어드는실정이다.삶이윤택해질수록권투,레슬링등헝그리스포츠가약해진다는데히말라야등반도예외가아닐까하는우려도크다.

그럼에도불구하고우리의등반잠재력은무한하다.인재도많다.하지만앞으로더욱꽃을피우려면몇가지노력이절실히요구된다.

국제무대에서아직약하기에서둘러국제화에눈을돌려야한다.세계화를통한진취적이고가치높은문화공유가필수적이고,앞서가는외국산악인과의정보교류및합동등반은필연적이다.지방자치단체와기업체의범사회적지원도절실하다.다행히최근몇등산장비업체가전도유망한젊은산악인들을육성하고있어참고무적이다.

등산잡지등관련매스컴들도적극동참해야한다.제아무리사회인지도가높아도현재히말라야도전에서한발물러난영웅보단장래가촉망되거나,떠오르는스타를발굴해주안점을맞추는안목을지녀야한다.산악인과는서로를함께필요로하기에상부상조만이있을뿐이다.

그러나무엇보다산악인스스로가대자연을경외하면서도전정신에충만해야한다.등산의내면세계를사랑하되자신을과신하지말고서로를존중하고아끼며격려해야한다.

-글·김병준전대한산악연맹감사/월간산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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