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히말라야 50년 등반사 [7] *-

[한국히말라야50년사특집|명등반가들]

‘8,000m14좌+위성봉2개봉’세계첫등정한엄홍길

김창선의등반이도드라지던시절,엄홍길(52·밀레고문)은조연인경우가많았다.특히시샤팡마원정때는루트개척과짐수송을앞장서했음에도정작정상공격조에끼지못해서운함이컸다.알파인스타일속공등반능력이김창선이나김재수보다못하다는대장의판단때문이었다.그때흘린피눈물은뒤에쓴약이돼주었다.엄홍길이이를악물고산만보고달릴수있도록‘힘을보태준보약’이었다.

엄홍길은경남고성에서태어났지만세살때부터결혼전까지도봉산망월사계곡에서생활했기에도봉산은그에게고향이나다름없는산이다.그는양주고시절바위꾼을만나며본격적인산꾼이되어갔고,1979년고교졸업후에는설악산희운각대피소에서2년간지내며30~40kg무게의물품을지어날라주기도하고설악산골짜기를누비는꿈같은생활을했다.그러다특수부대인해군수중폭파대(UDT)에입대해매일혹독한훈련이연속되는수중폭파대원생활3년을거치며강철처럼단단하게만들어나갔다.

그에게히말라야등반은1985년세계최고봉부터시작되었다.처음엔에베레스트하나가목표였다.그러다1988년에베레스트정상을올라서고이후고봉을하나씩오르는사이세계적인산악인이나가능하리라여겼던8,000m14좌도해볼만하다싶어졌다.그리고2000년K2등정으로목표가달성되자(해외히말라야관련웹사이트에는2001년가을시샤팡마등정으로14좌완등인정)그꿈을얄룽캉(8,505m)과로체샤르(8,400m)를더하는‘8,000m14좌+2개위성봉등정’으로키워나갔다.

2007년봄로체샤르등정으로꿈을달성한이듬해인2008년5월설립된엄홍길휴먼재단(www.uhf.or.kr)을통해네팔히말라야에학교세우기사업을펼치고있는엄홍길은지난2월말안나푸르나트레킹기점인비레탄티마을에네번째학교기공식을가졌다.엄홍길은“꼭살아돌아가야한다는일념으로산에다녔지만나를살려둔건분명세상에서뭔가좋은일을하라는산의메시지일것”이라며“이제는도전의산에서내려와내인생의산에도전해보고싶다”고말한다.

산악그랜드슬램+에베레스트남서벽신루트등반성공한박영석

지난해가을안나푸르나남벽등반중신동민,강기석대원과함께사고를당한박영석(1963년생·동국대OB)은14좌완등,7대륙최고봉완등,3극점도보탐험을일컫는산악그랜드슬램을2005년봄해낸데에이어2009년봄에는세계최고봉에베레스트남서벽에신루트를뚫은산악인이었다.히말라야관련웹사이트에서는박영석을아시아최초의14좌완등자로기록하고있다.

엄홍길이앞장서길을뚫는스타일의저돌적인클라이머라면박영석은팀운영을통해등정을이끌어내는전략가스타일이었다.1989년동국대산악부팀을이끌고랑탕리(7,025m)동계세계초등으로히말라야에화려하게데뷔한박영석은1993년남서벽을통해에베레스트를오르려던계획이남동릉노멀루트로바뀌었으나대신‘무산소등정’이라는,아직도국내에없는기록을세우면서세계최고봉정상에올라선다.

박영석은1997년다울라기리(8,167m),가셔브룸1봉(8,068m)·2봉,초오유(8,201m)등한해4개봉등정에성공하고,이듬해1998년에도시샤팡마중앙봉(8,012m),낭가파르바트,마칼루,마나슬루(8,163·동계)등정에성공하면서한발앞서14좌완등을향해등반을펼치던엄홍길과경쟁구도를형성하고,그로인해여러사람들에게관심의대상이된다.1999년봄시즌에는캉첸중가(8,586m)등정에성공하면서박영석이엄홍길을추월하리라는예상도됐다.

그러나1999년여름브로드피크(8,047m)는함께등반했던타대학팀대원1명이실족사하고,가을시즌을맞아세번째도전한시샤팡마는첫번째,두번째와마찬가지로중앙봉에머무는가하면두번째도전인마칼루(8,463m)역시셰르파가낙석에맞아사망하는사고를당하면서무산되고말았다.

박영석은2000년들어피치를올린다.봄시즌마칼루,여름시즌브로드피크등정에성공하고,가을시즌에는네번째도전에서남서벽을통해시샤팡마주봉에올라선다.그리고2001년봄1998년정상직전동상으로인해포기한로체(8,516m)를오르고,이어여름에K2를오름으로써14좌완등에성공한다.

박영석은이후2004년남극점도보탐험과2005년북극점도보탐험성공으로산악그랜드슬램을이룩한세계최초의인물이되지만그에만족하지않고젊은날꿈꿔왔던에베레스트남서벽신루트에도전한다.2007년봄첫도전에서친동생같은후배오희준·이현조를잃고,2008년가을두번째도전에서또다시실패했으나박영석은포기하지않고또다시도전해2008년봄에베레스트남서벽에새길을뚫는데성공한다.

그리고그여세를몰아14개고봉에새로운길을내겠다는목표하에안나푸르나남벽신루트등반에나섰으나2011년가을재도전에서후배인신동석,강기석대원과함께눈사태사고를당하고말았다.

▲(왼)박영석/(오)한왕용

14좌완등후청소등반가로변신한한왕용

국내에서세번째로14좌완등에성공한한왕용(46·신발끈여행사이사)은호남을대표하는고산등반가다.전주우석대산악부출신인한왕용은박영석사단의멤버로히말라야등반을시작했다.1994년초오유와시샤팡마중앙봉,1995년에베레스트,1997년로체,가셔브룸1봉은모두박영석과함께일궈낸등정이었다.이후그는독자적인등반대를꾸리면서도1998년안나푸르나와2000년K2는엄홍길등반대대원으로서등정에성공한다.

한왕용은2001년박영석이K2등정으로14좌완등을마무리지은뒤잠시회의에빠졌다.대한민국은1등만이존재하는나라이기때문이다.그래서2002년캉첸중가등정을마치고2003년마지막남은가셔브룸2봉과브로드피크원정에나설때에는‘성공하든실패하든이번이마지막’이라마음먹었다.

그마지막원정에서히말라야는그를제물삼으려는지순간순간그의발목을붙잡았다.가셔브룸2봉등정에성공하고베이스캠프로내려설때에는크레바스에빠져30분간헤매다동료대원들의도움을받아겨우빠져나오고,브로드피크또한등정에는성공했으나제3캠프(7,400m)에서내려서던중아이젠이바지를걸려넘어지는순간1,000m아래빙하로추락할뻔한위기의상황도맞는다.무의식중에휘두른피켈이눈에박히면서추락이멈추고허겁지겁안전지대로벗어났으나이번에는갑자기몰려온안개에사방분간이되지않았다.그의머릿속에떠오른방법은다시C3로올라서는것이었고,그의판단이맞아떨어져결국살아서돌아올수있었다.

그는14좌완등후다시14좌를찾았다.이번에는청소등반이었다.각고산의베이스캠프뿐아니라에베레스트사우스콜과K2제3캠프에서도이루어진그의청소등반은해외산악계에서도선행으로지금도회자되고있다.

▲박정헌

난이도추구하다촐라체사고이후창공의조인으로변신한박정헌

촐라체북벽등반후조난을당한다음극적인구조에이르기까지의과정을담은생환기<끈>으로일반인들에게도널리알려진박정헌(41·노스페이스)은첫히말라야원정부터난이도를추구하는등반을펼쳤다.

고교시절전국암벽등반대회고등부에서4위에입상했을만큼암벽등반기량이뛰어나고,인수봉연장등반에토왕성빙폭을선등해냈을만큼두각을나타낸박정헌이18세어린나이에삼천포산악회원정대대원으로서도전한봉이히말라야고봉에서도난이도가높고험하다는초오유남동벽이었다.

원정은실패로끝났지만그의능력은높이사졌고그로인해1994년제대직후경남연맹원정대대원으로서히말라야3대난벽(難壁)중하나인안나푸르나남벽에참가한그는그등반에서대원중홀로정상에올라선다.하지만전적으로셰르파들에의존한등반이었다며박정헌은오히려부끄러워했다.

더나은등반을위해몸부림친박정헌은결국이듬해한국산악인들이여러차례도전했으나모두실패한에베레스트남서벽보닝턴루트등반에성공한다.그리고그는이듬해1996년초오유와시샤팡마중앙봉을등정하고1997년낭가파르바트정상에오른뒤잠시주춤하는가싶더니2000년K2남남동릉무산소등정을기록하고,2002년에는시샤팡마남서벽에서오랫동안꿈꿔오던8,000m급고봉신루트등반에성공한다.

그는등로주의를추구했다.때문에8,000m급고봉만을고집하지않았다.2004년가셔브룸2봉등반을마친이듬해1월후배최강식과둘이서촐라체(6,440m)북벽에도전한다.수직고1,500m높이의촐라체북벽등반사상최초의동계알파인스타일등반에서뜻을이룬뒤그는하산길에후배가크레바스에빠지면서상황이어려워졌다.어렵사리두사람모두죽음의위기에서빠져나왔지만후배는손가락과발가락을,박정헌은손가락8개를잘라내는아픔을겪었다.

이렇게엄청난사고를당했음에도그는모험의세계를떠나지않았다.‘수직의세계’를추구하는등반가에서MTB라이더로변신해사고이듬해인2006년유라시아실크로드자전거투어를해내고,그뒤를이어‘창공의조인’으로탈바꿈해오랜세월꿈꿔온히말라야하늘을날았다.초오유6,500m높이에서,가셔브룸2봉7,400m높이에서의활공을경험삼고,3,4년동안히말라야활공을통해축적한노하우를밑바탕삼아지난해여름부터올해초에이르기까지6개월동안히말라야2,400km패러횡단을해냈다.

한국최초의14좌무산소등정기대주김창호

김창호(43·몽벨자문역·월간山기획위원)는파키스탄히말라야에관한한독보적인탐험가로통한다.그는2000년부터2008년까지여덟차례에걸쳐무려1,700여일동안파키스탄히말라야를탐사했다.크레바스에빠지거나눈사태가덮치는순간그의존재가소리소문없이사라질수있는위험한곳이었다.순간순간찾아오는험난함에,고독과공포에떨기도했다.귓가에총알이스쳐지나가기도했다.그런데도새로운봉우리와빙하를보고픈욕구를떨쳐버릴수없었다.그에게삶은미지에대한도전의연속이었다.

서울시립대산악부출신인김창호의히말라야등반은대학시절파키스탄의대암탑트랑고타워(6,283m)에서시작되었다.어렵사리정상에올라섰을때그를감동케한것은등정의기쁨이아니라발아래펼쳐진길고긴빙하였다.때문에그빙하의끝을찾아오랜세월탐험을했던것이다.

탐험도중그는수많은미등봉을관심깊게바라보고엉성한지형도에꼼꼼히집어넣었다.그리곤2001년멀티4원정대에참가해카체블랑사(5,600m)세계초등에이어혼보로(5,500m)와시카리(5,928m)에새로운길을내는성과를거두었다.김창호의등반력은2003년딜리상샤르등6,000m급4개봉세계초등정을기록하고2004년로체남벽등반에참가한이후나타난다.2005년낭가파르바트루팔벽중앙직등루트를1975년매스너의초등이후두번째로오르고반대편디아미르벽으로하산하는횡단등반에성공하고,2006년에는가셔브룸2봉과1봉연속등정을해낸다.

이후다이내믹부산희망원정대에합류한김창호는2007년K2,브로드피크연속등정,2008년마칼루등정에이어로체최단시간등정을이룩한데이어서울시립대원정대원으로서당시가장높은미등정봉인바투라2봉(7,762m)등정에성공한다.그리고다시부산희망원정대의주력대원으로서파트너인서성호대원과함께2009년마나슬루와다울라기리,2010년캉첸중가·낭가파르바트·시샤팡마등정에성공하고,2011년봄2009년가을실패한안나푸르나정상에올라서는가하면여름시즌가셔브룸1·2봉을다시오르고가을시즌초오유를등정함으로써다이내믹부산희망원정대의14좌완등에절대적인기여를했다.

김창호는올한해등반휴지기를가진다음내년봄시즌에베레스트원정에나서8,000m급14좌무산소완등을마무리지을계획이다.

▲(왼)김창호/(오)김재수

-글/한필석월간산부장/월간산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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