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묘(宗廟)와 종묘제례(宗廟祭禮) [1] *-

종묘(宗廟)와종묘제례(宗廟祭禮)

1.종묘(宗廟)

종묘제례종헌관이복재님

종묘대제(宗廟大祭)는나라의제일큰제향(祭享)이어서종묘제례를이렇게부르는데,지난5월6일치룬종묘대제의영녕전제7실종헌관을맡게되어서야습의(習儀ㆍ종묘대제에참여하는제관등에대한실습교육)를받기위해제향하루전날인어린이날에종묘에첫발을들여놓게되었다.

5월4일,인터넷을통해서너시간동안종묘와종묘제례에대한대강을공부하다보니왠지모르게가슴이벅차올랐다.습의의등록이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오전10시까지여서좀게으름을피우다가집을나서도되겠다는생각이떠올랐다가어느순간에사라지고,일찍도착하여종묘정문인외대문에묵례(默禮)라도올려야기본도리라는생각에이른것이다.

토요일이면서어린이날인2012년5월5일오전8시40분.

지하철종로3가역에서내려종로4가방향으로5분정도가면종묘라는데5분을걸었어도종묘가보이지않아두리번거리다세운지얼마안돼보이는대리석기둥에붙어있는안내표시를보고서야들어가는입구를찾았다.

종묘입구

주변이종묘공원이라는데무슨공사를하는지울타리가쳐진직로를따라들어가니지주식안내표지판이이곳이세계유산종묘임을알려주며서있었다.

종묘지주간판과외대문

그러나한동안의아스러워하지않을수없었다.

앞에보이는문에종묘대제를알리는작은현수막이걸려있어종묘로들어가는문이확실해보이긴하지만거창할것으로생각했던예상과는달리정문의규모가작고,건물에있어야할간판(현액)이없는것이다.

종묘의정문인외대문은창엽문(蒼葉門)이라고도부르는데간판이없다.

간판은이곳이무엇하는곳인지누구나알아보기쉽고찾기쉽도록하기위해써붙이는것인데종묘는왕과왕비등이곳에모신신들의영역이고꼭드나들어야할사람들에게만출입이한정된곳이기때문에간판을만들어달필요가없기때문이다.외대문은간판도없지만단청도극히절제하여단아하다.

종묘를향해잠시묵례를올리고습의등록장소로향했다.

습의는오전에실내에서시청각으로이루어지고,오후에는종묘의정전에서현장교육으로이루어진다.오전과오후습의간에는넉넉하진않지만공백이있어종묘를미리둘러보기로했다.여러차례제관을경험하신분을만나안내와도움을받았다.

외대문을통과하여종묘에들어섰다.

수백년동안말없이종묘를지키며역사를지켜본고목들이울창하고아름다운숲을이루고있었다.불과몇백미터밖의복잡하고번화한거리를사이에두고서울의한복판에이런숲이보존돼있다는자체가신기했다.널찍한길가운데에돌을깔아만든또다른길이쭉벋어있다.

삼도(三道)

삼도(三道)이다.

거친박석(薄石ㆍ구들장처럼넓고얇은돌)을3단凸자형으로깔아만든돌길이도로한가운데로곧게나있었다.가운데의약간높은길은신향로(神香路)이고,동측의낮은길은어로(御路)서측은세자로(世子路)인데,어로는제사때임금이다니는길이고,세자로는세자가다니는길이며,신향로는신만이다니는길로,제향때향로와축.폐백등을받들고가는길이다.신향로(神香路)는신로(神路)와향로(香路)가합쳐진말로재궁(齋宮)인어숙실일곽(一廓)을거쳐정전과영녕전의신문(神門)을통해묘정(廟廷)월대(月臺)의신로(神路)에이어진다.신로는신만이다니는길이니결국삼도를제외한양쪽흙길이일반인의길인셈이다.

종묘에는신로(신향로).어로.세자로.일반로의구별이뚜렷하다.

조상을만나러가는길이기에왕을포함하여제사에참여하는제관들이경박하게빨리걷지못하도록하기위해거친돌을깔았다.조상을받드는몸과마음을경건히하라는의미이다.

삼도(三道)의의미를알고나니마음이한층엄숙하고경건해졌다.

종묘를둘러보는순서는외대문을들어서서오른쪽길을택하는것이일반적이다.

망묘루가는길

종묘는크게5개구역으로나누어볼수있는데,종묘제례를위한준비실인향대청(香大廳)일원.제를위해심신을정결히하던재궁(齋宮)일원.제례용음식을조리하던곳인전사청(典祀廳)일원,역대왕실의신주를모신정전(正殿)일원.왕실신주를모신별묘(別廟)인영녕전(永寧殿)일원이다.

외대문을들어서서삼도(三道)를따라조금더가다가오른쪽길로들어서니연못하나를만났다.

중지당이다.기록에의하면종묘에는4개의연못이있었다고하는데지금남아있는것은외대문을들어서면서좌측에있는작은못을비롯해서3개이다.이곳에서만난연못은사각형으로못안에는돌을쌓아둥근섬을만들었는데섬에는향나무가한그루심겨져있다.또한연못의물속에는아무것도기르지않고있었다.

중지당

연못의모양이직사각형인것은하늘은둥글고,땅은네모지다는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을나타낸것이다.즉연못의형태가네모인것은땅을상징한것이며,못가운데의둥근섬은하늘을뜻하여인간의생성과소멸이하늘에있음을나타내고,섬안의향나무는정신을맑게하고나쁜기운을물리친다는의미에다향내를맡고조상의혼이하늘에서내려온다고하여조상혼의영신(迎神)을나타낸다는의미가담겨있다.궁궐등의연못에는연꽃도심고비단잉어같은관상어도기르는데반해종묘안의연못에는아무것도기르지않는것은영혼을위한연못이기때문이다.

종묘라고하면서울의종로근처에있는왕가의무덤(墓·묘)을떠올리기쉽다.

그러나종묘에묘(墓)는없다.

여기에쓰는묘(廟)는사당묘자이다.묘는조상의신주를모시고제사를받드는곳이다.사서가(士庶家)에서는가묘(家廟)또는사당이라하고,왕실에서는그왕조(王朝)의조종(祖宗)을모시고제향(祭享)을받드는곳을종묘라한다.우리나라의종묘는조선시대역대왕과왕비및공신의신주(神主).토속신을모시고제사를지내는국가최고의사당이다.종묘사직이란말이있는데왕실과국가를일컫는말로도쓰인다.유교의엄격히규정된제도에따라한국가의도읍지의궁궐왼쪽(동쪽)에종묘와오른쪽(서쪽)에사직을두어야비로서국가로서의면모를갖추게되는것이다.1392년조선의태조가한양을새나라의도읍으로정한이후인1395년궁궐보다먼저종묘를처음짓도록한것도나라의면모부터갖추기위함이었다.

그러나지금내가들어온종묘가모두당시의것은아니다.지금의종묘는임진왜란으로소실되어1608년에중건한것으로건립후모시는신주의수가늘어남에따라수차례건물규모를늘려지어지금에이른것이다.

삼도가아닌오른쪽흙길을따라들어가면맨처음만나는건물이종묘제례를위한준비실인향대청이다.

향대청을들어가기전에망묘루바깥을따라가면망묘루의별채에고려의마지막임금인공민왕의신당이있다.

공민왕신당(내부)

망묘루(望廟樓)는’왕이묘를바라보며선왕과종묘사직을떠올리는곳’이란뜻으로,왕이종묘에도착하면잠시머물러쉬던곳이다.종묘를관리하는관청,종묘서가있기도하였고때로는왕의초상화나왕이쓴시를걸어관리하며의궤를보관하기도하였다.종묘경내에있는건물지붕모양이엄숙하고단아한맞배지붕을하고있지만이곳만은유일하게팔작지붕에건물의일부가누각의형태를띠고누각부분이나와있다.이곳에서앞에보이는연못이앞에서말한중지당이다.

망묘루

공민왕신당내부에는공민왕과노국공주가함께있는영정과함께공민왕이그렸다는준마도가봉안되어있다.조선왕조의종묘에고려왕의신당이있다는것이특이하다.종묘를창건할때공민왕의영정이바람에날려종묘경내로떨어졌는데조정에서회의끝에그영정을봉안키로하여신당이건립되었다는이야기가전해지지만,공민왕의업적을기리며태조가역성혁명에정통성을부여하기위한의도라는해석에무게가실린다.

향축폐(香祝幣)와제사어물을보관하고,제향에나갈헌관(獻官)들이대기하던향대청(香大廳)을돌아보고나와계속진행하면재궁에도달하게되어있었다.

재궁은정전의동남쪽에위치하고있는데국왕과세자가제사하루전에도착하여머물며제사를준비하던곳이다.북쪽에왕이머물던어재실이,동쪽에는세자재실이,서쪽에는어목욕청이있다.

어재실서쪽뜰돌위에는높이가낮고넓적하게생긴독,주로물을담아놓는데쓰는드므가하나놓여있다.드므는순우리말로그안에물을담아놓으면불귀신(火魔)이왔다가물에비친제모습에놀라달아난다는주술적의미가있으며,화재가났을때실제로사용하기도하였다는일종의방화수(防火水)다.

왕과세자가재궁정문으로들어와머물면서목욕재계하고의관을정제하여몸과마음을깨끗이한후,서협문으로나와서정전의동문으로들어가제례를올렸다.

재궁의어재실

정전의담장과동문

나도같은길을따라나갔다.다다른곳은정전의동문(東門).

정전의동문은왕과세자가제사를위해출입하는문이다.

그길을따라동문문지방을넘어안으로들어섰다.

묘정(廟廷·종묘정전의마당)의월대가넓게펼쳐있는모습이눈에한가득들어왔다.오른쪽으로보이는정전건물또한크고도길다.정전의정문격인남문을향해묘정을질러가니종묘정전의위용을점점더느끼게되었다.남문앞에이르러월대를내려서서뒤를돌아동서109미터,남북69미터나되는넓은월대와웅장한정전전체를정면으로바라보았다.중압감이크게느껴지는지붕,그지붕뒤를빙둘러우거진숲이하늘을바탕으로긋는금,긴지붕선아래검고깊으며짙은그림자가붉은색의긴열주와한데어울려만들어내는분위기가압권이다.

정전(1)

정전(2)

순간적으로무어라말할수없는위엄의분위기와절제와경건의마음이우러났다.드넓고거친월대바닥과그위로육중한지붕을떠받히고서있는크고긴정전모습은종묘의중심건물신전(神殿)으로서의위엄그자체였다.

정전은서쪽에있는별묘(別廟)인영녕전과구분하여태묘(太廟)라부르기도한다.

정전은역대왕과왕후신주를모시고제사를지내는곳이다.19칸이옆으로길게이어져조선을건국한태조의신위를맨왼쪽1칸(1실)에모시고,이어서19칸까지역대왕중에서공덕이큰19위의왕과30위의왕비신주등49위의신주를모셨다.조선시대초태조의4대조(목조,익조,탁조,환조)신위를모셨었으나,그후당시재위하던왕의4대조(고조,증조,조부,부)와조선시대역대왕가운데공덕이있는왕과왕비의신주를모시고제사하는곳이되었다.정전에모시는신위가늘어나고신실이부족해졌는데,불천위(不遷位ㆍ예전에,큰공훈을세워영구히사당에모시는것을나라에서허락한사람의신위(神位)를이르는말.본래종묘정전에다섯신위를모시기로하는오묘제를택하였으나,그뒤다섯신위외에다른신위를영녕전으로옮기지않는다는제도)가아닌신주를영녕전으로옮기다가결국건물을증축하는방법을택하게되었다.

여러차례의증축을거쳐현재의모습을갖춘정전은동.서월랑을포함해길이가101미터가되어우리나라단일목조건축물로는가장길뿐아니라사당건축물로서는세계에서도가장길지만이음새가매끄러워이어진표시가거의없으며,보는이로하여금그위엄과경건함을느끼게한다.홑처마에지붕은사람인(人)자모양의맞배지붕건물이며,기둥은가운데부분이볼록한배흘림형태의둥근기둥이고,정남쪽에3칸의정문이있다.이정문을남문이라하며신문(神門)으로서혼백이드나드는문이다.

종묘는제례를위한공간이므로단청도극도로절제하는등건축이화려하지않고지붕과기둥등최소한의건축요건만으로지극히단순하고절제되어있는데다전체공간이담으로둘러있고,규모의웅장함이신전으로서의위엄과경건함을동시에우러나오게한다.정전은선왕에게제사지내는최고의격식과검소함을건축공간으로구현한,조선시대건축가들의뛰어난공간창조예술성을찾아볼수있는건물로국보제227호이다.

동서로117미터남북으로80미터의담장에는혼백이드나드는남문,제례때제관이출입하는동문을비롯하여악공.춤을추는일무원.종사원이출입하는서문의3문이있다.담장안의건물로는정전을비롯해서정전의월대아래동쪽에는정전에모신역대왕들의공신83위의위패를모신16칸의공신당이있고,서쪽에는일곱의토속신을모신칠사당이있다.

정전의분위기를더욱위엄있고신성하게하는요소로작용하는것세가지가있다.

월대와지붕과기둥이다.

월대는견월대(見月臺)의약칭이다.

글자그대로달을바라보기위해올라서는축대라는뜻으로,일반적으로궁궐등에서각종행사가있을때사용하는장소다.이곳정전의월대는하월대와상월대로구성되어있는데제례때제관.악공.일무원등이사용하는공간으로하월대는1미터남짓사방이주변지면에서올려져있어세속과구별되며,남문으로부터하월대에서상월대로오르는가운데계단인태계(太階)로이어진신로가중앙을가로질러놓여있어동서의경계가되고,둘러친담장과그너머로뒤덮인울창한수목으로월대지역을비워진공간으로느끼게한다.제례때사용할목적으로만들면서도영혼들의영역임을나타낸고차원적인건축기법이숨어있는것이다.

정전에세운기둥이배흘림기둥임은앞에서언급했지만,원형기둥의몸을배불린형식으로시각적인착시에의해기둥몸이가늘게보이는현상을교정하기위한기법이다.이기둥들이육중한지붕을떠바치고긴열을만들며서있는모습이정전의위엄을더욱끌어올리는요소로작용한다.

정전의정문인남문을나와우회전하면제례악을하는악공들이악기를준비하고기다리며연습도하던건물인악공청(樂工廳)이있는데,정전의서남쪽담장밖에있다.

삼도가연결된악곡청앞길을따라들어갔다.

그곳에는1421년(세종3년)에정종의신주를정전에모시며정전의신실이부족하자정전에모시고있던신주를다른곳으로옮겨모시기위해새로지은별묘(別廟)인영녕전(永寧殿)이있다.왕실의조상과자손이함께평안하라는뜻이다.신주를정전에서모셔왔다(祧遷ㆍ조천)는뜻에서조묘(祧廟)라고도한다.

남문을통해영녕전안으로들어섰다.

규모가정전에비해적은데다하월대의높이도낮고,가운데4칸의지붕이더높고좌우에대칭인건물의지붕이낮아서인지정전에서느낀위엄의중압감과는다르게친근감같은것이느껴졌다.

얼듯보아도건물전체의지붕높이가다른것외에는규모나건물배치로볼때정전의축소판이라는생각을가졌다.

영녕전의가운데4칸(이4실을‘정전’이라한다)에는좌측(서쪽)으로부터차례대로목조,익조,탁조,환조등네분의신주가모셔져있다.이른바추존된사조(四祖)의신주를모신곳이므로,후대왕들의신위가모셔진곳보다더높고장엄하게보이도록하기위하여특별히고안된건축기법이다.원래영녕전은추존된사조(四祖)만을모시기위하여건립되어사조전(四祖殿)으로불렸으나,차차조천(祧遷)되어오는신주를모시는조묘(祧廟)로변화되었다.정전이서상법(西上法ㆍ남향한신전의향좌측제1실에시조의신주를모시고차례로동쪽으로제1세,2세,3세,4세의순서로신주를봉안하는법)대로신주를모신반면,영녕전에서는가운데4실과나머지좌우의협실각각6칸에는정전에서옮겨온왕과왕비및추존한왕과왕비의신주를서쪽부터서상법으로모시고있다.모두16감실에34위의신주가모셔져있다.영녕전은보물제821호이다.

영녕전

영녕전을건립하게된이유는묘제(廟制)와관련이있다.

천제의나라인중국의종묘에는7신실에신주를모시는7묘제를,제후의나라였던조선은5신실에신주를모시는5묘제로되어있었던당시에는이원칙때문에신실이모자라도함부로증축할수가없었다.신주를5신실에모시는오묘제(五廟制)는왕조를일으킨태조와현재왕의4대조상을모시는제도이므로논쟁끝에중국송나라의제도를참고하여사당을하나더짓기로하고정전옆에영녕전을세운것이다.

궁금한대목이있다.

예법에는임금의사당은’오묘제’를채택해야한다고했으나,현재종묘에는정전의신실이19칸에이르게되었다.앞에서말한불천위에따라신실을붙여늘리는방법을써서19신실에19왕과그왕비의신위를합해49위의신위가모셔져있는것이다.말하자면불천위의신위는모두정전에모셔져있는것이다.

한편,영녕전의신실은16칸으로합계35칸의신실이있으며모든신실에신위가모셔진상태이다.

그런데조선의역대임금은27분이었다.왕위에있었던임금27분가운데,연산군과광해군은폐위되었으므로25임금의신주만이종묘에모셔진셈이다.그렇다면나머지10개는누구의신주인가?추존된임금9분(목조,익조,탁조,환조,덕종,원종,진종,장종,익종)과마지막황태자영친왕의신주이다.

영녕전을나와습의장소인정전의묘정으로향했다.

오후습의는현장교육이었다.

홀을잡는집홀법(執笏法).홀을꽂는진홀법(搢笏法).꿇어앉는궤법(跪法).부복(俯伏).국궁(鞠躬).사배법(四拜法).걷는법(步行法).계단을오르내리는승강계법(陞降階法).손을씻는관세법(盥洗法).제복(祭服)의종류와착용법등기본부터각제관및제집사(諸執事)의봉무(奉務)요령.제례순서와요령등.

생소한용어와처음대하는제례절차를4시간쯤교육받고나니오후5시가가까워습의가끝났다.

습의

하루종일계속된습의와무더운날씨로피로하긴했지만울창한숲으로둘러쌓인길을나오며,난생처음종묘를보고느낀감회가새롭기만했다.

종묘의총면적은5만6,500여평에달한다.

종묘는울창한숲으로우거져있어이숲이영혼의공간으로서존엄하고신성한분위기를한껏더해준다.이숲을일컬어신림(神林)이라하는것도이때문이다.수종의2/3정도가갈참나무로갈참나무숲이라해도과언이아니다.나머지는은행나무,느티나무.귀롱나무.때죽나무.쪽동백등낙엽수가기본이다.잣나무도있고소나무도없는건아니지만종묘를화마로부터보호하기위하여불에잘타는소나무를배제한것만은분명한것같다.지금은서울의한복판에서허파역할을톡톡히하고있는살아있는보물이니나무가없는종묘,숲이없는종묘는상상하기조차어렵다.

종묘는사적제125호로지정되어국가에의하여보호되고있다.뿐만아니라1995년12월에유네스코(UNESCO)에세계문화유산으로등록되었다.종묘는한국,한국인의것이기도하지만세계,세계인의것이되었다.

외대문을나와종묘공원의느티나무숲아래서장기나바둑을즐기고더러는소줏잔을기울이거나둘러앉아이야기를나누는많은수의노인들사이를지나며,신의영역인종묘담장안에서의장엄한분위기와는너무다른분위기를느끼며귀가를위해지하철역으로향했다.

종묘공원

-출처/이복재님의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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