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은역대왕과왕후신주를모시고제사를지내는곳이다.19칸이옆으로길게이어져조선을건국한태조의신위를맨왼쪽1칸(1실)에모시고,이어서19칸까지역대왕중에서공덕이큰19위의왕과30위의왕비신주등49위의신주를모셨다.조선시대초태조의4대조(목조,익조,탁조,환조)신위를모셨었으나,그후당시재위하던왕의4대조(고조,증조,조부,부)와조선시대역대왕가운데공덕이있는왕과왕비의신주를모시고제사하는곳이되었다.정전에모시는신위가늘어나고신실이부족해졌는데,불천위(不遷位ㆍ예전에,큰공훈을세워영구히사당에모시는것을나라에서허락한사람의신위(神位)를이르는말.본래종묘정전에다섯신위를모시기로하는오묘제를택하였으나,그뒤다섯신위외에다른신위를영녕전으로옮기지않는다는제도)가아닌신주를영녕전으로옮기다가결국건물을증축하는방법을택하게되었다.
여러차례의증축을거쳐현재의모습을갖춘정전은동.서월랑을포함해길이가101미터가되어우리나라단일목조건축물로는가장길뿐아니라사당건축물로서는세계에서도가장길지만이음새가매끄러워이어진표시가거의없으며,보는이로하여금그위엄과경건함을느끼게한다.홑처마에지붕은사람인(人)자모양의맞배지붕건물이며,기둥은가운데부분이볼록한배흘림형태의둥근기둥이고,정남쪽에3칸의정문이있다.이정문을남문이라하며신문(神門)으로서혼백이드나드는문이다.
종묘는제례를위한공간이므로단청도극도로절제하는등건축이화려하지않고지붕과기둥등최소한의건축요건만으로지극히단순하고절제되어있는데다전체공간이담으로둘러있고,규모의웅장함이신전으로서의위엄과경건함을동시에우러나오게한다.정전은선왕에게제사지내는최고의격식과검소함을건축공간으로구현한,조선시대건축가들의뛰어난공간창조예술성을찾아볼수있는건물로국보제227호이다.
동서로117미터남북으로80미터의담장에는혼백이드나드는남문,제례때제관이출입하는동문을비롯하여악공.춤을추는일무원.종사원이출입하는서문의3문이있다.담장안의건물로는정전을비롯해서정전의월대아래동쪽에는정전에모신역대왕들의공신83위의위패를모신16칸의공신당이있고,서쪽에는일곱의토속신을모신칠사당이있다.
정전의분위기를더욱위엄있고신성하게하는요소로작용하는것세가지가있다.
월대와지붕과기둥이다.
월대는견월대(見月臺)의약칭이다.
글자그대로달을바라보기위해올라서는축대라는뜻으로,일반적으로궁궐등에서각종행사가있을때사용하는장소다.이곳정전의월대는하월대와상월대로구성되어있는데제례때제관.악공.일무원등이사용하는공간으로하월대는1미터남짓사방이주변지면에서올려져있어세속과구별되며,남문으로부터하월대에서상월대로오르는가운데계단인태계(太階)로이어진신로가중앙을가로질러놓여있어동서의경계가되고,둘러친담장과그너머로뒤덮인울창한수목으로월대지역을비워진공간으로느끼게한다.제례때사용할목적으로만들면서도영혼들의영역임을나타낸고차원적인건축기법이숨어있는것이다.
정전에세운기둥이배흘림기둥임은앞에서언급했지만,원형기둥의몸을배불린형식으로시각적인착시에의해기둥몸이가늘게보이는현상을교정하기위한기법이다.이기둥들이육중한지붕을떠바치고긴열을만들며서있는모습이정전의위엄을더욱끌어올리는요소로작용한다.
정전의정문인남문을나와우회전하면제례악을하는악공들이악기를준비하고기다리며연습도하던건물인악공청(樂工廳)이있는데,정전의서남쪽담장밖에있다.
삼도가연결된악곡청앞길을따라들어갔다.
그곳에는1421년(세종3년)에정종의신주를정전에모시며정전의신실이부족하자정전에모시고있던신주를다른곳으로옮겨모시기위해새로지은별묘(別廟)인영녕전(永寧殿)이있다.왕실의조상과자손이함께평안하라는뜻이다.신주를정전에서모셔왔다(祧遷ㆍ조천)는뜻에서조묘(祧廟)라고도한다.
남문을통해영녕전안으로들어섰다.
규모가정전에비해적은데다하월대의높이도낮고,가운데4칸의지붕이더높고좌우에대칭인건물의지붕이낮아서인지정전에서느낀위엄의중압감과는다르게친근감같은것이느껴졌다.
얼듯보아도건물전체의지붕높이가다른것외에는규모나건물배치로볼때정전의축소판이라는생각을가졌다.
영녕전의가운데4칸(이4실을‘정전’이라한다)에는좌측(서쪽)으로부터차례대로목조,익조,탁조,환조등네분의신주가모셔져있다.이른바추존된사조(四祖)의신주를모신곳이므로,후대왕들의신위가모셔진곳보다더높고장엄하게보이도록하기위하여특별히고안된건축기법이다.원래영녕전은추존된사조(四祖)만을모시기위하여건립되어사조전(四祖殿)으로불렸으나,차차조천(祧遷)되어오는신주를모시는조묘(祧廟)로변화되었다.정전이서상법(西上法ㆍ남향한신전의향좌측제1실에시조의신주를모시고차례로동쪽으로제1세,2세,3세,4세의순서로신주를봉안하는법)대로신주를모신반면,영녕전에서는가운데4실과나머지좌우의협실각각6칸에는정전에서옮겨온왕과왕비및추존한왕과왕비의신주를서쪽부터서상법으로모시고있다.모두16감실에34위의신주가모셔져있다.영녕전은보물제821호이다.
영녕전
영녕전을건립하게된이유는묘제(廟制)와관련이있다.
천제의나라인중국의종묘에는7신실에신주를모시는7묘제를,제후의나라였던조선은5신실에신주를모시는5묘제로되어있었던당시에는이원칙때문에신실이모자라도함부로증축할수가없었다.신주를5신실에모시는오묘제(五廟制)는왕조를일으킨태조와현재왕의4대조상을모시는제도이므로논쟁끝에중국송나라의제도를참고하여사당을하나더짓기로하고정전옆에영녕전을세운것이다.
궁금한대목이있다.
예법에는임금의사당은’오묘제’를채택해야한다고했으나,현재종묘에는정전의신실이19칸에이르게되었다.앞에서말한불천위에따라신실을붙여늘리는방법을써서19신실에19왕과그왕비의신위를합해49위의신위가모셔져있는것이다.말하자면불천위의신위는모두정전에모셔져있는것이다.
한편,영녕전의신실은16칸으로합계35칸의신실이있으며모든신실에신위가모셔진상태이다.
그런데조선의역대임금은27분이었다.왕위에있었던임금27분가운데,연산군과광해군은폐위되었으므로25임금의신주만이종묘에모셔진셈이다.그렇다면나머지10개는누구의신주인가?추존된임금9분(목조,익조,탁조,환조,덕종,원종,진종,장종,익종)과마지막황태자영친왕의신주이다.
영녕전을나와습의장소인정전의묘정으로향했다.
오후습의는현장교육이었다.
홀을잡는집홀법(執笏法).홀을꽂는진홀법(搢笏法).꿇어앉는궤법(跪法).부복(俯伏).국궁(鞠躬).사배법(四拜法).걷는법(步行法).계단을오르내리는승강계법(陞降階法).손을씻는관세법(盥洗法).제복(祭服)의종류와착용법등기본부터각제관및제집사(諸執事)의봉무(奉務)요령.제례순서와요령등.
생소한용어와처음대하는제례절차를4시간쯤교육받고나니오후5시가가까워습의가끝났다.
습의
하루종일계속된습의와무더운날씨로피로하긴했지만울창한숲으로둘러쌓인길을나오며,난생처음종묘를보고느낀감회가새롭기만했다.
종묘의총면적은5만6,500여평에달한다.
종묘는울창한숲으로우거져있어이숲이영혼의공간으로서존엄하고신성한분위기를한껏더해준다.이숲을일컬어신림(神林)이라하는것도이때문이다.수종의2/3정도가갈참나무로갈참나무숲이라해도과언이아니다.나머지는은행나무,느티나무.귀롱나무.때죽나무.쪽동백등낙엽수가기본이다.잣나무도있고소나무도없는건아니지만종묘를화마로부터보호하기위하여불에잘타는소나무를배제한것만은분명한것같다.지금은서울의한복판에서허파역할을톡톡히하고있는살아있는보물이니나무가없는종묘,숲이없는종묘는상상하기조차어렵다.
종묘는사적제125호로지정되어국가에의하여보호되고있다.뿐만아니라1995년12월에유네스코(UNESCO)에세계문화유산으로등록되었다.종묘는한국,한국인의것이기도하지만세계,세계인의것이되었다.
외대문을나와종묘공원의느티나무숲아래서장기나바둑을즐기고더러는소줏잔을기울이거나둘러앉아이야기를나누는많은수의노인들사이를지나며,신의영역인종묘담장안에서의장엄한분위기와는너무다른분위기를느끼며귀가를위해지하철역으로향했다.
종묘공원
-출처/이복재님의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