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묘(宗廟)와 종묘제례(宗廟祭禮) [2] *-

종묘(宗廟)와종묘제례(宗廟祭禮)

2.종묘제례(宗廟祭禮)

2012년5월6일일요일

종묘대제가거행되는날이다.

조선시대의종묘제례는정전에서정월,4월,7월,10월,각계절의첫달과음력12월에좋은날을정하여1년에5번을지냈고,영녕전에서는봄과가을두번지냈다.일본침략으로중단되었던것을1965년부터는지금까지매년5월첫째일요일에먼저영녕전에서지내고,나중에정전에서지낸다.또한예전에는밤에제향을올렸던점도변화된부분이다.

종묘제례는다른제사들과같이유교식절차에따라서진행되는데크게보아신을맞는절차,신이즐기도록하는절차,신을보내드리는절차로나눌수있다.신을맞는절차에는영신(迎神)과전폐(奠幣)가있고,신이즐기도록하는절차로는진찬(進饌).초헌(初獻).아헌(亞獻).종헌(終獻)이있으며,신을보내드리는절차에는음복(飮福).철변두(撤邊豆).송신(送神).망료(望療)가있다.

오전9시30분.

영녕전제7실의종헌관으로서제향을모시기위해종묘에들어섰다.종묘대제를관람하시겠다고하는고장향교의유림어르신들7분도동행했다.아침나절이지만제향준비가한창인종묘는제관과제집사는물론방송등각분야의스탭들과관광객들로이미북적이고있었다.제관들의집결시간전에동행하신분들을안내하여종묘일원을둘러보았다.

제향준비중인정전

올영녕전제향은오후1시시작하여오후3시에끝이나고,정전제향은오후4시반에시작하여오후6시반에끝난다.

영녕전제관들과제집사들은오전10시30분부터준비가시작되었다.평상시엔열어놓지않는전사청에서제복(祭服)을입었다.초헌관.아헌관.종헌관에게는당상관의제복이나머지집사들에겐당하관제복이지급되었다.어제제복입는법을교육받았지만제대로입는사람이별로없었다.여러사람의도움으로13가지에이르는복색을갖춰입는데무척이나복잡하고힘들었다.

종류도여러가지이고이름도생소하지만소개하면홀(忽).양관(梁冠).상의(上衣).상(裳ㆍ치마).중단(中單).대대(大帶).혁대(革帶).패(佩ㆍ패옥).후수(後綬).방심곡령(方心曲嶺).폐슬(蔽膝).말(襪ㆍ버선).이(履ㆍ신)등이다.이중에서홀.양관.혁대.패옥.후수.신이당상관과당하관의것이다르다.

헌관및제집사

왕께서입으시는제복이또다름은말할나위없다.제왕이제례나즉위식등에착용하는예복을면복(冕服)이라하는데,왕의제복은9장복(九章服).황제의제복은12장복(十二章服)을입는다.여기서장(章)은옷에새겨진문체의수를나타낸다.면류관(冕旒冠)은황제의대례복에갖추는면관으로앞면과뒷면에각각12류(旒:줄)를느렸기때문에붙인이름이다.조선시대에는구장면복에9줄의면류관을썼으나대한제국시대부터는황제국임을감안하여12장복에12줄의면류관을착용하고있다.

점심으로도시락이지급되어적당한자리를잡고끼리끼리둘러앉아도시락을먹었다.

12시10분.

제관과전사청안에서인원과복장등최종점검을한후문을나와영녕전제향에참여하는제관등157명이1열을유지하며영녕전으로향했다.전사청의앞마당을비롯한종묘안에는이미수많은관중이구름처럼몰려와있었다.

가슴이뭉쿨해졌다.세계가인정하는우리의자랑스러운문화유산을사랑하는이들이이렇게많다는사실이놀랍고뿌듯했다.그중심에내가섰다는점에큰자부심을느껴콧등이시큰해지기까지했다.

어가행렬.정전과영녕전의제관및제집사.종묘제례악단및무용단.자원봉사자와방송스탭등종묘대제를봉양하는데참여하는인원은2,000여명에달한다.

그중에서제사를모시는일은중요무형문화재제56호종묘제례보존회에서맡아한다.제관과제집사등인데보존회는전주이씨대동종약원안에있다.제관은첫째잔을올리는초헌관(初獻官),둘째잔을올리는아헌관(亞獻官),셋째잔을올리는종헌관(終獻官)3명이다.그밖에홀기(笏記·)를읽는집례(集禮),초헌관을모시는사람인찬례(贊禮),조(俎·익힌고기)를올리는사람인천조(薦俎),조를받들고가는사람인봉조(捧俎)가있다.

또한축문을읽는사람인대축(大祝),오른쪽에서작(爵·술잔)을올리는사람인우전(右奠),향합을받드는사람인봉향(捧香),향로를받드는사람인봉로(捧爐),신실안에서작을전해주는사람인내봉(內奉),준상에서내봉에게잔을전해주는사람인외봉(外奉),술을따르는사람인사준(司樽),집사와헌관을인도하는사람인찬의(贊儀),손씻는대야를둔곳에서도와주는사람인관세위(盥洗位)가있다.발디딜틈없이늘어선군중사이로제향을모시기위해전사청에서영녕전으로향하는157명이란바로이들을두고하는말이다.

영녕전동문을들어서하월대로내려서서지정된자리에정렬했다.월대아래와월대위의허용된일정공간에도제례를참관하러온수많은사람들이운집하여있었다.

영녕전제향을참관중인관람객

제례는집례가부르는홀기에따라엄격한격식으로진행되었다.제관등이정해진자리에나가각자맡은바역할을할준비를하면서오후1시에시작되었는데이를취위(就位)라한다.

마침내각신실의감실신주장안의신주가내모셔지고독이열렸다.다음으로혼을맞이하기위해향을피우고바닥의관지에울창주를부어백을모신후신에게흰색모시를바치는신관례(晨祼禮)가이어졌다.취위와신관례가진행되는동안홀기에따라악사들은보태평지악을연주하고,일무원은보태평지무를추었다.

이어서제사에사용할희생의털과피,익힌내장등을올리고간과기장,피,쑥등을기름과섞어숯불화로에서태워조상신을즐기게하는천조례(薦俎禮)를올렸다.제1실의대축관이간을조금떼어내신위전밖으로나가화로에먼저태우고난후,서직(쑥.조.기장)도조금씩덜어기름에버무려화로에태웠다.간과기름에버물인서직이화로에서타며나는연기와냄새가영녕전일원에퍼져나갔다.천조례가진행되는동안악사들은풍안지악을연주했다.

보태평지악이연주되고,보태평지무를추는가운데신이즐기도록초헌관이첫잔(예제·감주)을올렸다.대축관에의해축문을읽는초헌례가올려졌다.축문의내용은간단하다.

정전제1실축문의내용을풀어살펴보면…

생각하옵건대

때는임진년5월6일,

효현손황사손은감히아뢰옵니다.

태조고황제와

조비승인순성신의고황후

조비순원현경신덕고황후께

삼가엎드려생각하오니

세월이바뀌어이좋은때를맞아

느끼고사모하는마음에정결하게예를갖추고

삼가

희생과폐백과예제와도량서직(벼,조,기장,수수)등

법도에따라올리오니

바라옵건데흠양하시옵소서.

축문의끝부분에희생(犧牲)이라는말이들어있다.여기서희생이란종묘와사직에제물로바치는소,양,돼지따위의산짐승을말한다.우리가흔히쓰는의미는다른사람이나어떤목적을위해자신이나가진것등을포기함,또는예기치않은재난이나사고로목숨을잃음으로종묘제례에제물로올리는희생의의미와다르다.그러나종묘제례를위해죽임으로희생당하는희생들(소,양,돼지)의입장에서보면그뜻이상통하니재미있다.종묘제례에올리는희생이현재우리가사용하는희생의어원이아닐까?

이어서정대업이연주되고정대업무를추는가운데아헌례와종헌례가이어졌다.

영녕전제향

제례는수많은관람객이지켜보는가운데엄숙하게진행되었다.나는종헌관으로서찬의의인도에따라관세위로나가손을씻고,동계(東階)로올라가준소인제7실로향했다.

제7실은단종과정순왕후송씨의신위를모신곳이다.

신위전에나가꿇어앉아집준관이희준에담긴청주를따른작을받들어올린다음부복했다가일어나제자리로돌아왔다.조선6대왕으로서아버지문종이재위2년만에승하하자12세의어린나이로왕위에오르지만숙부인수양대군에게3년만에왕위를빼앗기고죽임을당한질곡많은어린임금.서인(庶人)으로까지강봉되었다가243년만에복위되어단종의묘호를받아신위가영녕전에모셔진비운의왕이다.

영월로귀양떠나는왕과생이별하고왕을그리며60여년을홀로지내다간정순왕후의절개와충절을되뇌이면서결코길지않은순간의종헌례였지만두분의혼이나마함께만나즐겁기를가슴깊이빌었다.어제와오늘이틀에걸쳐생애두번째들어온종묘에서신실안까지들어와왕과왕비의신주에잔까지올리는영광을누렸다.

정대업악이그치고종헌례가끝났다.

종묘제례가엄숙하고장엄하며독특한멋과아름다운분위기가나도록작용하는것이종묘제례악이다.제례의각절차마다편경,복고등전통악기의연주와노래,그리고팔일무(八佾舞)가시연되는것이다.

1447년세종이처음만들고세조때이르러제례악에걸맞도록보태평(保太平·역대왕들의문덕(文德)을칭송하는내용)11곡과,정대업(正大業·역대왕들의무공(武功)을칭송하는내용)11곡으로정비하였다.죽은신령과인간,왕과백성을한데결속시켜주고후손에게한없는복을내려나라가창성하게해줄것을기원하는내용이간절하게표현되어있다.제례의각절차마다악기를연주하며,종묘악장(宗廟樂章)이라는노래를부르고,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와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라는일무(佾舞)를추는기악과노래와무용의총칭이다.

종묘제례악은중요무형문화재제1호로지정되어있고종묘제례와함께2001년5월에유네스코인류구전및무형유산걸작으로등재되었다.종묘제례악은조선시대의기악연주와노래·춤이어우러진궁중음악의정수로서우리의문화적전통과특성이잘나타나있으면서도외국에서는볼수없는우리만의것이다.

영녕전제향에참여한종묘제례악단

종묘대제에는4가지의제주(祭酒)를쓴다.

혼을맞이하기위하여향을피우고바닥의관지에술의일종인울창주를계이(鷄彝ㆍ닭이그려진술통)에담아부어백을모신다.이절차를신관례라한다.여기서혼(魂)과백(魄)이라는말이나오는데혼백이란사람의정신과육체를가리키는말이다.사람이죽으면정신인혼은하늘로돌아가고,육체인백은땅으로돌아간다고한다.즉땅으로돌아가신조상님의백을모시기위해쓰는술이울창주다.울창주는울금향(鬱金香)을넣어빚은향기나는술로서제사(祭祀)의강신(降神)에쓴다.신관례는제사의강신과같은절차이다.

조상에게는세번에걸쳐술을올린다.

세번의의미는최고의정성으로모심을뜻한다.

종묘제례에서초헌에는감주의일종인예제(醴齊)를희준(犧罇·소형태의술통)에담아올린다.아헌에는막걸리인앙제(盎齊)를상준(象罇·코끼리형태의술통)에담아올리며,종헌에는청주(淸酒)를산뢰(山罍·산과구름이새겨진술통)에담아올린다.

술의종류로보아서는친서민적이고값이싼것들이다.종묘등의대제에서는질박함을숭상하고최고로쳤기때문에종묘제례의명품주기준은질박함과소박함,단순함이었기때문이다.(왕의영혼,조선을말하다.이상주저)

술과고기를먹음으로서조상이주는복을받는다는음복례(飮福禮)가이어졌다.

황사손이술과고기를받아음복했고,옹안악이연주되었다.그리고나서는홍안악이연주되는가운데변(籩·과실을담는제기)과두(豆·국을담는제기)를옮기는철변두(撤籩豆)가진행되었다.철변두란결국제사음식을물리는절차다.

제례를지낼때신주를옮겨모시는신탑(神榻)위에있는궤(机)에의지해있던신주도당초모셔져있던자리로돌아갔다.

정전과영녕전의건물안1칸씩이신실이다.

말그대로신의방으로신주(神主)를봉안한곳이다.

신실안에는신주를모셔두는작은방인감실(龕室)이있고신주를봉안하는신주장(神主欌)이북쪽벽한가운데에있다.신주위쪽은건(巾·작은수건)으로덮여있는데왕은백색건을,왕비는청색건이덮혀있다.신주장앞에는발이드리워져있다.

신주장좌측에는어책(御冊)과국조보감(國朝寶鑑)등을보관하는책장(冊欌)이,우측에는어보(御寶)를보관하는보장(寶欌)이있다.

신주장앞에는제례를지낼때신주를옮겨모시는신탑이있다.

감실앞에는주렴(珠簾)과노란명주천으로만든휘장인면장(面帳)이드리워져있고,감실전면위쪽에는구름과연꽃조각으로장식된닫집이설치되어있다.

신실과신실사이에는우렴(隅簾ㆍ발)을내려공간을구분하며신실바닥에는지의(地衣ㆍ돗자리)를깐다.오늘처럼제례를지낼때에는감실앞에제상4개를설치하고,감실앞쪽의건물바깥에준소상(신실밖에놓는제사상)을놓는다.신실입구양쪽에는용선(龍扇ㆍ용이그려진부채)ㆍ봉선(鳳扇ㆍ봉황이그려진부채)ㆍ용개(龍蓋ㆍ용무늬덮개)ㆍ봉개(鳳蓋ㆍ봉황무늬덮개)등의의장구를세운다.

태조와왕비의신실

신주는몸을떠난혼령이의지할수있도록밤나무로만든상징물이다.종묘신주는윗면이둥글고아랫면이네모난직육면체로,혼이드나드는규(窺)라는구멍을내었다.신주앞면에는왕의묘호(廟號).시호(諡號).존호(尊號)를세로로썼다.여기서묘호(廟號)는임금이죽은뒤에그공덕을기리어붙인이름으로왕의3년상이끝나고신주가종묘에들어가면종묘에서그신주를부르는호칭이다.묘호는신료들이돌아간왕의업적을평가하여왕의치세를나타내는글자하나에공이많다고여기면조(祖)자를붙이고,덕이많다고여기면종(宗)자를붙였다.태조(太祖),세종(世宗)이대표적인예다.

그러나여러정치적인이유로다른군주에게도조를사용하는경우가있었다.시호(諡號)는임금이죽은뒤에그들의공덕을칭송하여주던이름으로황제중국에서받았다.존호(尊號)는임금의덕을기리는뜻으로올리던칭호다.이중중국에서받았던시호는고종이대한제국의황제에올라제후국체제를청산함으로서그전에받았던시호는더이상사용하지않았다.

종묘신주는임진왜란.병자호란같은전쟁이일어나면제일먼저안전한곳으로옮겨모셨을만큼신성시하였다.‘신주단지모시듯한다’라는말에서신주의상징성을알수있다.

혼이드나드는구멍이나틈은신주뿐아니라종묘의신실문에도있다.정전과영녕전내부로출입하는문은각칸마다두짝씩이달렸는데,한쪽문짝이약간뒤틀려딱맞지않고틈새가벌어졌다.이틈새역시혼이드나들수있도록하기위해만들었다고하는데,단지상징적인것이고,실제목적은공기가통하게해서내부에습기가차지않도록하기위한것이다.

신실

종묘제례의마지막절차는망료례(望燎禮)다.

제사에올렸던축문과폐백을모두모아요대(燎臺)에가서태워혼을보내드리는것으로2시간에걸쳐엄격한규칙과장엄한분위기속에서진행된영녕전의제례는끝났다.

지나간왕조의역대왕과왕비의신주(神主)를그대로모셔놓고,옛격식대로제향을올리고있는곳은세계에서우리종묘밖에없다.종묘의이런문화적가치가인정되어불국사석굴암,해인사의대장경판판고와더불어1995년에세계문화유산(제738호)으로지정하였다.이와함께종묘에서거행되는국가제사의식인종묘제례(중요무형문화재제56호)와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재제1호)이2001년5월유네스코로부터무형유산걸작으로선정되어우리문화유산의우수성과독창성을국제사회에널리알리고인정받았음은앞에서도설명한바있다.

내가참여한소감으로는종묘제례가제례라고하여슬프거나경직된분위기가아니었다.종묘가지니고있는신전으로서의여러요소들에다가제례악과일무,또한제관등이한데어울려만들어지는장엄함은국가의위엄을과시하고국민들로하여금돌아가신왕을기리고나라와왕의신성함과존엄함을깨닫게하며,국가의안녕을기원하는국가적의식이다.

제관등이입는옷이의식용예복이며,신하들도품계에따라정장을하고참여한다.임금도면복을입고집전한다.면복은황제의권위를상징한다.종묘제례악은본래세종29년(1447)회례연(매년1월1일과12월22일에왕과신하가정과뜻을나누기위해베푸는잔치)에사용하기위해창작하였으며세조10년(1464)제사에적합하게고친후지금까지전승되고있다.종묘제례가길례(吉禮)라는증거다.길례를요즘말로표현하면결국축제다.

영녕전제관참가를바탕으로정리하다보니종묘대제의일부가된어가행렬에대한내용이빠졌다.

임금께서종묘대제를봉행하기위해경복궁에서종묘까지행차하는과정을1,200여명이재현하는어가행렬은큰볼거리로자리잡은지오래다.임금을중심으로문무백관과호위부대인현무대(玄武隊)가앞뒤에서뒤따르며취타대등이함께이동하는행렬로학생과일반인이참여한다.종묘대제를대내외에홍보하고현대적의미의세계적인축제로승화시키는데큰역할을하고있다.

종묘와종묘제례를더많은국민들이이해하고나라의안녕을기원하는국가적축제로발전시켜야한다.이는곧세계문화유산인종묘를보존하고,인류구전및무형유산걸작으로등재된종묘제례및종묘제례악을인류의미래에전승하는대한민국의책임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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