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대는장기영회장의급서로예비비1,000만원도준비못한채출국했는데,네팔을떠날때현지대사가원정성공후파티비용을내놓고가라고해서화를낸적이있다.위험지대로많은인원을데리고가는데무슨소리냐고대들었던것이다.에베레스트에서돌아오니까,대사는축하비용을외무부로부터받았다고알려와서한편미안한생각도들었다. 세상이란알다가도모를일이많다.KBS가지원을거절하면서슬그머니취재기자를보내서출국후방콕에서만난나는놀랐다.그일을알고한국일보편집국장이나한테그특파원을받아들였다고항의전화를했다.한국일보로서는원정뉴스를독점하려던참이니화도날만했겠지만,난들어찌할것인가.헌법에취재·보도의자유로돼있으니.이번엔내가화가나서“그런문제는한국일보가KBS에항의할것이지원정길에있는대장에게무슨소리냐?”고대들었다.
KBS특파원은남산도오른적이없다고실토하더니,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에서심한탈홍증세로쓰러져죽는줄알았다.의무대원말로는1주일내돌아가지않으면생명에지장이있다고까지했었다.
에베레스트원정에서제일고생한것은포터들도망사건이었다.그들은카트만두에서영국인마이크체니가차출한것인데인부들은나이케라는일종의십장을보스로하고있는조직들로서,이십장이부하들의돈을가지고자취를감추는바람에주인을잃은인부들이도망친것이다.다행인것은그들이짐을두고갔다는것이다.
우리는하는수없이주변에서일손을그때그때구해서뒤늦게짐을날랐다.원정이끝나고카트만두에서그영국인을만나포터도망사건에대한보상을요구했더니그는모르는일이라고했다.나는신사라는영국인에게6·25때일선에서미국장교들과살면서배운욕을퍼부었다.
그것뿐만이아니다.우리가등정을끝내고베이스캠프에내려오자,캐나다푸모리원정대장이찾아왔다.그는“포터들이장비를훔쳐달아났다”며,원정이끝난한국대의장비를양보해주었으면했다.마침예비품들이있어주었더니,그값을카트만두영국인에게받으라고지불증서를서명해서주었다.그런데그가바로마이크체니여서증서를보였더니자기는그런돈맡은적이없다고했다.사인으로통하는그들문명사회가이런식이었다.나는귀국후캐나다에연락해서그제야그문제를결말지었다.
원정대가네팔로출국할때(1977년7월2일),국회에서나더러9월20일국회개원일까지반드시돌아와야한다고했다.나는대원들에게원정대를장문삼대장에게맡긴다고했더니모두받아들이지않았다.장대장은지난날,로체샤르원정에서돌아와오랫동안산악계를떠나있다가최수남이가고나서하는수없이원정대일을같이하자고부탁해서결국뒤늦게참가한편이다.
그러나장대장은2차정찰대에서미국대를만나산소통을교섭하는등큰역할을했다.나는하여간이러저러경험이많은장문삼등반대장을나대신내세우고싶었던것이다.
나는조용히떠났다가기회를봐서국회말대로일찍혼자돌아올생각이었다.그런데1차공격에서박상열공격조가8,700m죽음의지대에서고립된소식이국내에전해지면서사회가온통에베레스트에쏠리게됐다.사실우리가서울을떠날때국내에서는거의무관심했었는데,이소식에국회가놀라,현지에유종의미를거두라고격려의전보를보내왔다.
역설적인이야기지만,1차공격조의박상열부대장의실패가없이그것으로등정이끝났더라면우리사회는에베레스트원정에그다지관심을가지거나그토록환성을울리지않았을지도모른다.
생각지도않았던일들이터지는가운데도머리를쓰게되는것은에베레스트정상에성공적으로무사히오르는일이다.어느원정대건그생각이제일앞서고가장중요하겠지만,사실대원들가운데누구를공격조로내세울것인지는결코간단하지않았다.그러나이문제만큼은절대로남과의논할수없어나는그기회만보고있었다.
원정대가베이스캠프에서행동에들어가면서대원들의움직임이활발해져무척마음이놓였다.그런데그선봉은언제나대구출신박상열이었다.그는지난날로체샤르멤버이기도했지만평소말이없고조금도지치는기색이없었다.
셰르파우두머리사다인라크바텐징에물어보니,셰르파들도대원중박상열을높이평가한다고했다.나는어느날조대행의무대원에게박상열에대해물어보니,그는폐활량이6,000cc라고했다.보통4,000cc인데,박은스쿠버다이빙을하는베테랑이라는이야기였다.그제서야그가언제나선봉에설수있었겠다는생각이들었다.
나는베이스캠프(5,400m)에서ABC(C2·6,500m)로올라가장문삼대장과이야기했다.그리고박상열을1차공격조로내세우기로합의했다.우리는9월9일한글날을기해역사적인등정을기록할생각을했다.나는박상열에게새삼부탁할이야기도없고다만산소를취침시에잘마시라고강조했다.
그리하여1차공격조의진출은순조로웠다.드디어C4최종캠프까지무사히진출해서새벽2시에깨워줄테니일찍자도록했다.우리는그날밤ABC에서밤을새웠다.그리고새벽2시가되자무전기를들었다.그러자컨디션이어떤가묻기도전에박은간밤에산소를제대로마시지못했다는뜻밖의이야기를했다.힘이들어도가겠다고했을때나는눈앞이캄캄해졌다.거기는해발8,500m고지다.간밤에눈이많이왔다.박은우리와다른세계에있다.그리고더이상연락이없었다.
에베레스트정상을오르고내리는시간대는낮12시에서늦어도오후2시사이다.공격조는지금쯤어떻게됐는지알수없었는데늦은오후가되어무전기가울렸는데그것은박이아니고같이간셰르파였다.어떻게된것인지다급히묻자,“노악시전(NoOxygen)!나는죽는다!”하고,이두마디에나는“당장내려오지않으면죽는다!”고소리질렀다.무전은그것뿐이었다.
나는가본적도없고상상조차하기어려운8,700m죽음의지대를생각했다.걸친방한복외아무것도없다.있다면오직죽음의비박!그렇다고구조대가갈수도없다.
이것으로기대했던1차공격은무(無)로돌아갔다.그런데그저고마운것은다음날그들이살아내려왔다는것,그것은기적이었다.동상으로수족을절단하는일도없었으니까.
나는장문삼대장과2차공격조를검토했다.원래는고상돈·한정수로했던것이마음이안놓여,셰르파를동행케했다.한대원에게는못할짓을했지만하는수없었다.그저한정수가원정대를위해조용히물러나주어그저고마웠다.
고상돈은선배의실패원인을알고있으니더이상주의하거나강조할것도없었다.다만정상에중공대(中共隊)가남긴철의삼각대가있으니꼭사진에넣으라고만했다.
고상돈의진출은순조로웠다.다행히날씨도좋았다.이제산소는여기서끝이니이번에성공못하면우리원정은끝이었다.그엄연한사실을고상돈은알고도남았을것이라본다.그는자기에게원정대의,그리고국민의눈이모두쏠린것에힘입고장도에올랐다고본다.
그리하여그가정상에선것은9월15일12시50분.그는두평도안되는설봉에삼각대가보이지않았다고한다.그래서여기저기손발로눈을헤쳤다고한다.
그리고그의첫마디,“여기는정상,더오를곳이없습니다”에우리는ABC에서순간두팔을들고만세를불렀다.눈물이났다.그때한정수가“우리는8,849m에올랐다!”고소리쳤다.무슨헛소리인가?눈이1m더높았다는괴변은사실이었다.나는이사실을1년뒤메스너등정기에서확인했다.고상돈사진에는그가우뚝선발밑에삼각대가약간보였으나,메스너는1m나설상에나온삼각대옆에앉아있었다.
박상열은8,000m고소사우스콜을지나로체페이스를내려오며더이상걷지못하겠다는무전이왔다.나는옆에셰르파를바꾸라고하고,박을침낭에넣고끌고내려오라고강하게말했다.
그날밤ABC에서는모두울었다.박상열은발뒤축이시커멓게동상을입고있었다.조대행의무대원이식염수주사를밤새도록놓았는데,나는그만큼이야기한산소를자며마시지않은박상열의뚝심에화가나서그의병상을들여다보지도않았다.
원정이란무엇이며,원정대운영의문제점은무엇인가?필경은인간의모임의소산인가?고상돈은혼자올라원정대의생명과명예를살렸지만,캠프를철수하며외톨이가되어나와장문삼과셋이서맨뒤에서말없이천천히그먼길을내려오고또내려갔다.그러면서내머리를떠나지않은것은고상돈의성공은박상열의실패의덕인아닌가하는역설이었다.
인간은남의비운에동정하고,역경을이기고넘어섰을때감격한다.우리의에베레스트원정이이렇다할두드러진기록도없었는데당시언론들이대서특필하고전국이환영일색으로우리를맞아준데는또다른사회적·정치적분위기가있었다고본다.그것은소위미국에서벌어진박동선로비사건이었다.그국가적치부가빈곤하고무력한한국이세계최고봉에올랐다는사실로상대적으로상쇄됐던것이아닐까싶다.
사실우리에베레스트원정은기적에가까운일이었다.1970년대우리나라는1인당국민소득이1,000달러정도였는데,1977년에베레스트에서돌아오니까마침내수출100억달러를달성했다는보도가있었다.그때나는바로일본의경우를생각했다.패전에서겨우고개를든일본이,마나슬루(8,163m)를초등했을때그들의수출이100억달러였다.나는대원정과국력의함수관계를본다.
나는후기인생30여년을산악인으로살아왔다.그러나실은설악산이나지리산도제대로모르면서느닷없이에베레스트로비상하게된묘한인생을살아온셈이다.이세계최고봉에이어북극권그린란드까지체험하며수직과수평의세계를알게되고남달리대자연의특수성을인식하게됐다.
나는산보다책으로그특수세계에들어가서비로소개화하고결실했으며,그것도에베레스트가계기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