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봉인기덕분에‘울릉도노래한곡만들겠다’고방송에서말했더니,동네사람들이만날때마다‘그노래언제나오느냐’고물어요.그래서하루는바닷가를거니는데죽은개라코가생각나는거예요.라코를울릉천국에묻었으니까나도죽으면여기묻혀야겠구나하는생각이들었어요.그래서‘나죽으면울릉도에묻어주오’라는가사가나왔어요.그가사가나오니까금방노래를쓸수있었죠.”
그는노래‘
“초등학교5학년때죽음에대해심각하게생각한적이있어요.그때‘드라큘라’라는영화를보고죽음의공포를느꼈어요.그래서죽음에대해깊이생각하다보니마구비약을해서결국내가죽어도아무것도변하는게없고세상은그대로흘러가는구나하는것을깨달았어요.그때서울창신동에살았는데,앞집에살던할머니가나랑무척친했었는데돌아가셨어요.그할머니가돌아가신지한사흘만에나는깨달았어요.그할머니의죽음이내게아무런영향을미치지않는다는사실을말이죠.그래서그때아,죽음이란게이런거구나하고생각했죠.그래서그때
“하하하.콧수염은오토바이사고때문에기른거예요.오토바이를타다가사고가나서앞니가다부러지고입술을크게다쳤어요.의사가입술이흉하니수염을기르는게좋겠다고했지요.나는아무의미없이필요에의해서길렀는데그게그시대의아이콘이된것같아요.나는아무것도아니었는데사회가거기에의미를부여했죠.”
“나는행크윌리엄스(1940~50년대미국컨트리가수)노래를무척좋아했어요.그사람노래의가사와리듬,분위기가굉장히직설적이었어요.그영향을많이받았죠.그런노래들가사는내가의도적으로그렇게쓴거예요.그런데나중에생각해보니까신중현씨가나보다먼저였던것같아요.‘커피한잔을시켜놓고’이런유의가사만봐도그렇죠.나는내가무슨대단한상징적인물인것처럼비치는게싫었어요.유명인이되는것도싫었고,자유를속박당하는것도싫었어요.그때는부자나권력자가와서노래하라고하면가야하는분위기였지만나는그런데한번도가지않았어요.”
“그래요.1절만쓴상태에서인호형한테‘2절한번만들어볼래?’하고전화했더니한30분만에쓰더군요.”‘그건너’의2절은“전화를걸려고동전바꿨네/종일토록번호판과씨름했었네/그러다가당신이받으면끊었네/웬일인지바보처럼울고말았네”다.
이장희는
“그게너무황당한사건이에요.내가박지만(박정희대통령의아들)씨한테대마초를가르쳤다고소문이난거예요.나는그사람과알고지내긴했지만친하지는않았어요.나중에누군가그걸해명하라고하는데,뭐좋지도않은이야기를해명한다고또꺼내겠어요.그래서관뒀지요,”
“좀거북한얘기인데…구치소에20일간있다가벌금형을받고끝났어요.그러고나서는이제연예계를뒤도돌아보지말아야겠다고생각했어요.한때는대한민국의스타였는데그게아무것도아니구나하는것을깨달았어요.부를가진것도,명예를누린것도아니죠.남들은말리기도했지만,어렸을적부터생각한것처럼‘내가하고싶은대로’결정하고떠났지요.”
“그때기성복이막유행할때였어요.럭키상사에서반도패션이란기성복을내놓았죠.그래서지금광화문우체국옆에반도패션대리점을냈어요.그게잘됐죠.‘이장희가옷가게한다더라’하는소문도장사하는데도움이됐고.”
이장희는그러나음악계를아주떠나지못했다.‘대마초파동’직전그는‘사랑과평화’를자신의밴드로새롭게출발할계획을갖고있었다.의류판매사업을시작한그는그계획을포기한대신
―그때미국에처음간겁니까.
“
그는LA한인타운의작은라디오방송국에찾아가“무보수로일할테니취업비자를내달라”고부탁해미국체류자격을얻었다.마침그곳에와있던작가최인호와한달간미국서부를자동차로여행했는데,
“그걸나중에배창호감독이영화로찍을때에서야알게됐어요.‘대마초사건으로활동을중단하고미국에온가수’가주인공인데,누가봐도내이야기잖아요.그런데소설에나오는내용은전혀사실과달랐으니까너무황당했죠.그때인호형한테전화해서‘어떻게이럴수가있느냐’고무척화를냈었죠.사과를받았지만그땐석연치않았어요.인호형이비겁하다고생각했죠.”물론두사람은나중에알래스카여행도다녀올만큼다시가까워졌다.
이후‘라디오코리아’를설립해크게성공시킨그는2003년12월방송국사장자리를마치고은퇴했다.‘라디오코리아’는스튜디오와장비만갖추고전파송출권을임대해서방송하던회사인데,송출권료를두배로올려달라는요구를받았기때문이었다.그는“애초에50살에은퇴하고싶었지만못했는데,무리한요구를받으니이제정말은퇴해야겠다고생각했다”고말했다.그리고이듬해‘울릉천국’으로주소지를옮긴것이다.
“남들보다못하지는않았어요.음악이든사업이든똑같은거예요.벽돌을누구보다완벽하게쌓는사람이그림을정말잘그리는사람과다를게없어요.
‘울릉천국’에는쉬지않고손님들이찾아왔다.외지에서온관광객도있었고,인근초등학교교장도들러안부를물었다.어떤이들은멀리서인사만하고돌아갔지만,대개는다가와악수하고사진도찍고싶어했다.그는“여기가관광지처럼된것까지는할수없는데,덮어놓고들어오니까곤란하기도하다.마당에서빨래하고있는데들어오면좀민망한것아니냐”며웃었다.
“나의시대는나를요구했었다고생각해요.내가음악적으로뭐그리특별했어요.형주,창식이,영남이형,세환이노래도다좋고,그사람들인기가엄청났었다고요.그시대가내음악을필요로했었던거죠.베토벤시대에는헨델보다베토벤을원했던거예요.그리고베토벤은파가니니에게그자리를물려줬지요.나는다만,까맣게잊고있었던음악을30년만에다시할수있게돼서정말행복해요.내나이가60이훌쩍넘었는데말이지.”
그의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