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이밖에관악산의불기운을막기위한비방으로숭례문의현판이세로로쓰였다는점,광화문앞에불을먹고산다는해태를세운것,경복궁경회루앞연못에‘금동제용’을넣은것도모두이와연관성을갖는다고본다.
각기다른세월을겪어온이성돌들이하나의색으로조화를이루려면얼마나많은시간이흘러야하는지를생각하다보면어느새서소문로가걷는길을가로막는다.우리의중간기착지인
소의문터에서향할곳은서쪽의대문이었던
먼저정동거리에진입하기에앞서만나는배재학당동관건물은1916년에지어진것으로한국최초의근대식중등교육기관인배재학당의유구한역사를가늠케한다.이후로만나는정동거리는1897년에준공된정동교회건물과1915년에건축된이화여고심슨기념관,1930년대의구신아일보별관등이거리곳곳에서서구열강과동북아정세의소용돌이속에서혼란했던개화기와일제강점기의역사를그대로드러낸다.
한국을무대로각축전을벌이던서구열강의외국공관과신식병원,학교등이집중적으로들어섰던정동거리를구한말에방문했던영국의지리학자비숍은“경운궁(현덕수궁)이없었다면이곳은조선이라고볼수없다”고평했을정도로이곳은외국문물이넘쳐나던곳이었다.지금도미국대사관저와캐나다대사관,영국대사관,러시아대사관,노르웨이대사관등이가까운곳에자리한다.
돈의문(敦義門)은서쪽의큰대문으로새문,혹은신문(新門)이라고도불렸다.그이유는태조5년에지었던애초의서쪽대문이지금과다르게사직단부근에최초로세워졌기때문이다.이후로태종때이를허물고서전문(西箭門)이라는서쪽대문을다시지었으나결국세종때서전문도허물고지금의자리에돈의문을세우게되어새롭게세운문이라는뜻의별칭이붙은것이다.지금도그유래가새문안,신문로라는지명으로남았음을알수있다.
애석하게도돈의문은일제강점기당시도시계획이라는명목으로도로확장을위해완전히철거됐다.지금은그흔적을정동사거리강북삼성병원앞에설치된공공미술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