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피니즘, 그들은 왜 오르는가 [3] *-

알피니즘,그들은왜오르는가[3]

쿠르티카의산악관은동양적사상까지도포함

쿠르티카가산을대하는모습은유럽인이지만동양적사상을포함하고있다.

“동양의종교적철학적전통들은‘도(道)’라고불리는아주명확하고도적절한개념을창조해냈다.도는식사나싸우는방식,그리고적절한중재와호흡등과같은그런실질적모든일상생활의다양한면들을지배하는기술적인지침들을가진한체제와윤리적인한양식에의해규정된삶과행동의한특별한방식을의미한다.도의법도를지킴으로인해좀더높은수준의지혜를얻는다거나결의가굳은요기들과승려들의경우,주변세계와인간본연의마지막통찰을얻는데도움이되는것같다.감히나는,등산이가지고있는놀랄만한본질로인해,아마도등산이육체적·정신적성장의한귀중한방도가될것이라고확신한다.도의전통을언급하면서나는이방도를‘산의길’이라부르고싶다”고하며등반은고통을이겨내는‘인내의예술’이라표현했다.

▲가셔브룸4봉.대담한등반의가장멋진예는1985년이루어진쿠르티카의이봉서벽등반이다.

또다른등반을살펴보자.1988년겨울시즌타워체(6,564m)북동벽에도전했던미국인제프로(JeffLowe)와존로스켈리(JohnRoskelly)는다음과같이등반의곤란함을표현했다.

“이벽에서의등반행위는제정신으로는도저히감당못할일이다.3분의2는미쳐있어야하고,3분의1은술에취해있거나루트에대해전혀무관심해야한다.등반할때전체구간을생각하지말고,바로앞에있는구간이마지막피치라고여기고등반하라.”

이렇듯극한의등반은이를뛰어넘을가능성이거의없기때문에동시대의등반가들에게용기보다장애물로작용하기도한다.

1990년대에는기술적으로더힘든벽과더낮은봉우리들을포함하는등반들이많아졌는데,어쨌거나이들은좀더안전한형태로이루어졌다.즉더많은지원을받으며,갑작스런문제가발생했을때하산이가능하다는점,보통좀더짧은루트나최소한좀더짧은구간에어려운지점이몰려있다는점,그리고팀의규모가크고변형된알파인스타일(캡슐방식이나하단부에부분적으로고정로프설치)으로이루어진다는점등을그특징으로꼽을수있다.

가셔브룸IV봉과같은등반의예외성은이런정도의업적을다시이루어내기가당사자들자신도힘들다는사실로입증이된다.예를들어샤우어는그이후로이렇다할등반을전혀하지못했으며쿠르티카또한그만큼훌륭하고중요한성과는이뤄내지못했다.

한편1991년안드레이스트렘펠리(AndrejStremfelj)와마르코프레제이(MarkoPrezelj)가이룬캉첸중가남봉(KangchenjungaSouthSummit,8,476m)등반에서는완전히다른무엇인가가있었다.스트렘펠리의이등반에대한생각은2년전시샤팡마남벽원정때처음든것으로꼬박2년간을이것을위해살았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그는이등반을간절히원하고있었고처음부터끝까지원정의모든것은이를가능하게하기위함이었다.이렇듯강렬한동기부여는성공에서매우중요한역할을한다.

이들은고정로프한조각으로확보를본짧은구간외에거의로프없이등반했다.앞서오른적이있었던지역을등반하면서도그사실을알지못했다.또한이토록힘이들것이라고도예상치못했다.완전히다오르고나서야이루트에서로프없이내려오기가너무힘들다는사실을깨달았지만어쩔수없이그힘든루트로하산해야했다.

캉첸중가등반후에안드레이와마르코는이와유사한어떤활동도할수없었으며2년후K2서벽으로갈기회가있었지만어떠한열의도느낄수없었다.캉첸중가에서와같은등반은몇년치의기력을모두소진시킨다.

다음해처음멘룽체를등반한것도이에비할수는없지만순수한알파인스타일로이루어진가장아름다운히말라야등반가운데하나로이들의기억에남아있다.이등반은1999년갸충캉(GyachungKang,7,952m)북벽등반과마찬가지로대상지선정이중요한역할을한등반에속한다.아직등반되지않은좋은알파인스타일등반을할수있는‘숨겨진’,혹은잊혀진봉우리를찾기란쉬운일이아니다.

알피니즘의발전에막대한영향미친토모체슨현상

이부분에서토모체슨(TomoČesen)현상을짚고넘어갈필요가있다.사람들이믿든믿지않든체슨은1990년대초반에매우큰영향을미친사람이다.그의등반증거에대해논란이있기이전에는대다수의사람들이그의말을믿었으며,일련의그의업적들은알피니즘의발전에막대한영향을미쳤다.

그는큰원정에참여하면서고소적응력을키웠다.그는슬로베니아의율리안알프스(JulianAlps)에서성장했으며,돌로미테와알프스의거벽에서기량을닦았다.언제나그는자신이원하는바를정확히알았으며최종목표를향해모든힘을집중시켰다.1989년에는쿰바카르나(Kumbhakarna또는Jannu,7,710m)북벽등반의성공으로알파인세계에일대파란을일으켰다.

그는육체적으로,정신적으로무장이잘돼있었으며속도를내기위해모든것을걸수있었다.그의친구들,특히솔로등반을시작하지않았을때그와함께했던친구들이그의강인함을입증할수있는산증인들이다.슬로베니아에는그의모방자들이생겨났으며,이는외국에서도또한마찬가지였을것이다.

체슨을가장가깝게따라한사람으로슬라브코스베티칙(SlavkoSvetičič)이다.1990년이루어진스베티칙의안나푸르나서벽등반은지금은거의기억되지않는다.그는순수한알파인스타일로사흘간혼자서거대한벽을올랐으며,일부루트는초등이었다.대부분의어려운지점들을통과하고정작날씨로인해정상에는도달하지못한채그는생소한북벽을따라하산했다.두사람의차이는체슨은솔로등반이라는위험한게임을그만두어야할때가언제인지를알고있었고스베티칙은그러지못했다는것이다.체슨은로체에서기력이소진됐음을,그리고다시는이런식의등반을할수없다는사실을알았다.인생에서고산등반만으로결코만족할수없었던그는중단을선택했다.

악명높은로체사건이후에어떤일이벌어졌느냐는여기서중요치않지만신뢰의문제는짚고넘어갈필요가있다.누군가의말을계속신뢰할수있는것은언제일까?많은후원금이걸리고난이도가높은등반에는믿을수있을만한증거가필요하다.앞으로시대를앞서업적을남기고자하는등반가들은이러한증거에대해좀더신경을써야할것이다.제2의체슨사건은밀레니엄에들어서터졌다.남성최초메스너에이어‘여성세계최초8,000m급14좌완등’이라타이틀이었다.그런데한국의오은선은캉첸중가등정의혹으로체슨의경우와같은결과를낳았다.

알파인스타일의등반에는몇가지한계가있다.8,000m급,특히최고봉들에서가장큰문제는높은고도에서보조산소없이장시간머물기가힘들다는것이다.또다른문제로등반의난이도를들수있는데,이는특히바위에서그러하다.극심한추위에서장갑이없이긴벽을등반하기란사실상불가능에가까운일이며장갑을낀채로는멀리까지등반할수없다.이러한까닭으로아주까다로운일부벽들은세미알파인스타일로성공적인등반이이루어졌다(1997년마칼루서벽의러시아등반등).여기서는루트하단부에약간의고정로프만설치하고,거의아무런장비도이용하지않으며고소포터도없었다.이러한방식은가능한한순수성을유지하면서훨씬더난해한알파인등반을가능하게한다.이후세대들은난이도의한계를훨씬더끌어올릴것이다.한계선의확장은언제나낮은봉우리에서시작되어높은산들로옮겨지며,발전을위한필수동반자는훈련방식의진보와등반가의마인드변화다.

▲동료의시신을운구해내려오고있는한국산악인들.

20세기최후의위대한알파인등반을빼놓을수없다.토마즈휴마르(TomažHumar)는1999년혼자서다울라기리(Dhaulagiri)남벽을올랐다.의심할나위없이이것은훌륭한알피니스트의뛰어난업적이지만이등반을생각하면두가지의문이떠오른다.

등반은과연어느정도까지의위험을감수할가치가있는것인가?다시말해객관적인위험에더많이노출되는식으로의위험이등반의난이도를어느정도까지높여줄수있을까,그리고이러한방식이또한등반의시장가치를높여주는것일까?

두번째의문은매체와후원사의압박아래서이루어지는등반보고의타당성에대한것이다.토마즈는자신의등반이이벽의초등이라고선언했지만사실상초등은18년전그의히말라야멘토인스테인벨락스라우프(StaneBelakŠrauf)에의해이미이루어졌다.두개의루트모두같은지점에서끝나며,정상바로아래인이지점에서불가피한환경적요인으로인해같은결정들을내리게된다.즉휴마르와슬로베니아팀모두생명을지키기위해정상을포기했다.

벨락의1981년등반또한소수전문가들에게만알려져있다.역사의저울한쪽에벨락과그의친구들의등반을,다른한쪽에토마즈의등반을놓고본다면거의같은무게로평형을이룰것이다.토마즈는2009년11월9일,다울라기리와같은단독등반으로랑탕리룽(7,227m)을등반하다조난사했다.

한국은1962년부터2011년까지히말라야등반에서80여명이목숨을잃었다.작년에안나푸르나남벽에서박영석·신동민·강기석과촐라체북벽에서김형일·장지명을잃어그슬픔이채가시기전올해에베레스트에서,아이거북벽에서조난사고는이어졌다.

등반가들에게가장깊은감정은죽음과연관된것

등반가들에게있어서가장깊은감정은죽음과연관된것이다.우리모두는언젠가죽는다는사실을알고있으며모든탐험과위대한등정,그리고위험한장소나어려운장소,노출된장소로나가는매순간,우리는죽음의가능성을실감하고우리의모든능력과열정,본능,그리고우리가가진모든것을동원해죽음을피하기위해애를쓴다.

그런다음우리는벅찬감정을느낀다.이때의감정은너무깊고강렬해서다시한번느끼고싶게만드는데어쩌면이것이가장큰위험인지도모른다.이러한등반,산악활동,모험들은스스로소멸해가고있기때문이다.우리는분명우리의가장깊은감정의내부가어떻게만들어져있는지정확히알지못하며모두들그답을찾고있다.

우리는또한산을,우리내면의지도를연구하기위한매개체로이용할수있으며,돌아온뒤의등반가의얼굴을보는것도중요하다.1953년낭가파르바트에서내려온헤르만불의얼굴이나1990년봄로체남벽을마친토모체슨의얼굴을본다면당신이알고자하는모든것을배울수있을것이다.우리의얼굴은지도와같으며특히등반을마친후,모험을끝낸후의얼굴은더욱그러하다.

히말라야에서대조난사고가발생하면언론매체에서나일반대중은왜죽을줄알면서그위험한곳에갔느냐고반문한다.마치산과의게임에지면죽음을의미하는러시안룰렛처럼일종의자살행위가틀림없다는가정하에근거한것같다.그러나내가만난국내외등반가에게생명을불어넣는것은죽고싶은희망이아니라완전하게,충만하게,강렬하게살고싶은삶에대한희망이었다.이들보다육체적으로,감정적으로,정신적으로더진실되게살아가고있는사람들의무리를만나기란드물다.

등반가는등반을위해위험을무릅쓰는것이아니라그들의인생경험을풍부하게하고깊이있게하기위해한계열정을불태운다.또그들은말이나글보다는행위로써자신의꿈을실천한다는건확실하다.

마지막으로우리들의산친구이였던윤치원을얘기하고자한다.그는2011년마나슬루정상등정시도중동료대원과실종·조난사했다.고소증세와탈진으로정신이혼미한동료와함께7,500m죽음의지대에치원은남았다.당시20여년간의히말라야등반경험이있던치원은거기에남는다는것이무엇을의미하는지분명알았을것이다.그러나그는동료옆에남는것을선택했다.우리는지금윤치원에게“당신은왜산에오르는가?”라는질문을할수있을까!또,치원이그이유를알고있었다면그는히말라야에또갔을까?

글·김창호·8,000m급13좌무산소등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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