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피니즘, 그들은 왜 오르는가 [4] *-

알피니즘,그들은왜오르는가[4]
내성(內聖)과외왕(外王)의길.외왕이고개를돌리면내성이된다

동양의고전을보면내편(內篇)과외편(外篇)으로나눈경우가있다.‘장자’(莊子)를보아도내편이있고,외편이있다.‘황정경’(黃庭經)이라는도교의경전을보아도내경(內徑)과외경(外經)으로나뉘어있다.갈홍(葛洪)이라는연금술사가쓴‘포박자’(抱朴子)를보면신선이되는데있어서두길이있다고하면서내단(內丹)과외단(外丹)의길로나누어설명한다.

왜안과밖을나누었을까?그리고이안과밖은각기따로노는것인가하는의문이든다.이러한안과밖의분류는어떤공통의목표지점을향해가는데있어서안과밖이라는노선이각기다를수있다는사실을나타내는것이다.그노선차이는결국‘내성외왕’(內聖外王)이라는경지로결합된다.

내편은인간의내면세계를닦아성인이되는길을암시하는것이고,외편은통치를하는제왕의길을제시한것이다.다시말하면내편은내면적수양의세계이고,외편은외부세계를정복하고통치하는길을제시한셈이다.

▲크레바스를건너는산악인들(사진양정산악회).
이러한맥락에서서양의알피니즘을보자면알피니즘은등산(登山)의길이고,동양에서도를닦기위하여산에들어간행위는입산(入山)의길이었다.이를좀더밀고나가면서양의등산은외왕(外王)의길이라고한다면,동양의입산은내성(內聖)의길이라고나할까.

등반에서기록의의미는사라져

필자가보기에알피니즘은스포츠,예술,탐험의3가지의미가중첩되어있다.

8,000m급고산에오르려면강력한체력이있어야한다는점에서스포츠의측면이있다.그렇지만등산이스포츠와다른부분은등산가가지니는고유의이데아,즉‘산이거기있기때문에간다’는명언에서나타난바와같이대가(代價)를바라지않는이상주의를내포하고있다는점에서예술가적면모가있다.그리고인간이도달하기어려운지점을가본다는점에서는탐험가와같다.이3가지측면가운데알피니즘은세번째인탐험가의측면이가장높다.사실은이게중심이다.

유럽에서알피니즘은18세기후반부터눈덮인만년설의산몽블랑을등정하면서부터시작되었다는사실이암시하는바는무엇인가?18세기는유럽이본격적으로영토를확장하고미지의세계를탐험하기시작한시기다.이때부터제국주의가시작된셈이다.식민지를확장하려면강한체력,대의를위해자기를희생하는정신,불굴의용기를아울러갖추어야한다.등산은이러한삼박자를훈련하고고양시키는데에최적의방법이었다고보인다.스포츠,예술,탐험이모두결합되어있으니까말이다.

그렇지만21세기에들어와인간이지구상에서가보지않은곳은없다.오대양육대주의극적인장소를모두밟아보았다.이제탐험은끝났다.그리고서양이아프리카와아시아를정복하던제국주의도끝이났다.알피니즘을지탱하던탐험가의기록주의,즉몇개의고산을올랐고,몇미터의고산을올랐다는기록의의미는예전보다급격하게그의미를상실해가고있는시점이다.

인간이가보지못한곳이많았고,정복해야할영토가많았던시대에는등산이그러한욕망을대신해서성취해준다는만족감을주었지만,이제는그러한시대가지났다고본다.바꾸어말하면식민지를확장하던외왕의시대가가고내성의시대로전환되고있다는게필자의관점이다.스포츠와예술의면모는아직유효하지만탐험가가중시하는기록의의미는사라졌다.

내면의히말라야를정복하는것은내성의길

갈홍이쓴‘포박자’를보면외단과내단이야기가나온다.외단은수은과납을제조하면불사약을만들수있고,인간이이약을복용하면신선이될수있다는노선이다.그러나많은도사들이이불사약을제조하고,복용하다가수은과납중독으로사망했다.당(唐)나라때에는수천명의불사약제조도사가수은중독으로죽었다는설이있을정도다.

이후부터내단으로방향이전환된다.내단은인체내의기(氣)를함양시켜장생불로하자는노선이다.그비결은심장의불(火)기운과신장의물(水)기운을절묘하게결합시키는방법이다.이것이내단이추구하는노선이었다.내단으로전환하고나서는수은과납중독으로사망하는도사는거의사라졌다.

불사약은외부의약물에있는것이아니고,자기내면의오장육부에있다는통찰이었다.고로신선이되려면약물을만들것이아니라자기내면세계를주시해야한다.등산에서입산으로전환할필요가있다는말이다.

동양에서는알피니즘(등산)이발달하지못했다.유럽의조산(祖山)인몽블랑이없어서그랬던것일까.그대신동양에서는입산이발달하였다.입산은도를닦기위해산에들어가는것이다.예를들면히말라야산이있다.

불교에서인간의제7식(識)인에고(ego)를‘말나식’(識)이라고부른다.도닦는다는것이이에고,즉7식을녹이는일이다.아상(我相)소멸이도통이다.

히말라야의‘말라’는‘말나식’의‘말나’와발음이거의비슷하다.필자의주관적인해석에의하면히말라야는인간의에고와업장(業障)을상징하는산이아닌가싶다.인간내면의업장크기가히말라야처럼쌓여있다는말이다.히말라야를삽으로몇번파낸다고해서흔적이나있겠는가.등산은외부의히말라야를정복하는게과업이라고여겼다면,동양의수행자들은내면의히말라야를정복하는게수행이라고생각했다.외부의히말라야를정복하는것이외왕의길이었다면,내면의히말라야를정복하는것은내성의길이다.

그러나외단에서내단으로전환이무엇을말하는가?외단에서수많은도사들이목숨을잃었다.그래서내단으로전환했듯이내면의히말라야를정복하는입산의길이21세기에들어와서는더바람직하다.

입산에대해서우리선조들은어떤생각을가지고있었을까.조선후기장동김씨(壯洞金氏)로서최고의명문가였지만,권력보다는제자양성과산수유람으로한세상을보내고자했던김창협은“산수를보는것은마치성현군자를보는것과같다”고고백했다.금강산을모든산가운데최고의성인으로간주했던것이다.

근래에중국황산(黃山)과금강산(金剛山)을비교하곤하는데,두산을모두올라가보니금강산이한수위다.왜냐하면금강산에는동해바다의수기(水氣)가밀려와바위산의화기(火氣)를달래주기때문이다.필자가보기에운무에쌓인황산의경치는대단하지만수기가부족한것이흠이라면흠이다.

김창협의동생김창흡은한발더나아가“산천은나에게진실로좋은벗이며또한훌륭한의원이다(誠一好友也亦一良醫也)”라고했다.

등산이야말로병을치료해주는의사라고까지생각한것이다.그런가하면어유봉(1672-1744)은“유산은독서와같다(遊山如讀書)”고했다.책상앞에앉아서책을보는것만독서가아니고명산을노니는것도또한독서와같다고생각한것이다.바위에오르고,노을을감상하고,소나무밑에앉아있는것자체가독서라는것이다.이런지점에서인생이무엇인가를생각안할사람이어디있겠는가.이민서(1633-1688)는“등산은술마시는것과같다(遊山如飮酒)”고했다.산에오를때너무많은일행이함께가면시끄럽고서너명이가면단촐하면서분위기가집중되어좋다는뜻이리라.

‘영웅이고개를옆으로돌리면성인이된다’는말이있다.이문법대로하자면외왕이고개를옆으로돌리면내성이된다.외부세계의정복과기록달성을중시하는등산이고개를옆으로돌리면내면수양을중시하는입산이된다.많은희생을겪은후에도교도외단에서내단으로전환했듯이말이다.

너무외왕의길로만매진하는것은문제가있다.이제시대가바뀌었다.서양이동양의영토를지배하던제국주의의시대도끝났고,이제는동양의입산(入山)사상이서양에소개되어야할시기라고본다.

글·조용헌·칼럼니스트·동양학자-

[대한산악연맹창립50주년기념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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