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베트 독립투쟁의 역사 *-

[티베트독립투쟁의역사]

중국과티베트의힘겨운‘독립’줄다리기
▲1지난2008년인도다람살라에서티베트청년의회가티베트독립을염원하는전세계횃불행진을하는모습.손에들고있는횃불은올림픽성화를모방한것이다./사진박종우제공.

지금티베트에서는‘소신공양(자기몸을태워부처앞에바침)’이줄을잇고있다.

2009년이후현재까지총46명의티베트인들이분신자살로목숨을잃은것으로집계됐다.사망자중대부분은출가한라마승들이다.이들은소중한목숨을담보로왜이러는것일까?이들이분신을하면서애절하게외치는구호는“자유티베트”와“달라이라마의귀환”이다.그런데이런다고티베트의독립과달라이라마의귀환이이루어지는것일까?이를바라보는달라이라마는지금무슨생각에잠겨있을까?

1950년10월11일,중국의마오쩌둥(毛澤東)은대중들앞에서다음과같이천명했다.“티베트(西藏)는중국영토이다.따라서인민해방국이반드시티베트에들어가야한다.”이때부터중국의집착적인티베트사랑(?)은시작되었고티베트는중국의손아귀로부터벗어나려는애절한사투가시작되었다.

중국이티베트에대해집착하는것은1996년소위‘서남공정’(西南工程)이라는국가(급)프로젝트를실시한것으로확인할수있다.이는중국에서티베트지역의역사,지리,민족,문화등의제반사항을국가차원에서연구하고재구성하려는거대한계획이다.이계획의중심에는‘칭장(靑藏)철도’라는불가사의한프로젝트가있다.중국베이징(北京)역에서티베트의수도인라싸(LaSa)역까지를48시간에주파할수있는지상최대의스피드를자랑한다.

해발4,000m이상의고원을달리는기차길을만든다는것자체가불가능할것처럼보였지만중국은결국해냈다.전세계에서가장거대한용(龍)의기차가설역(雪域)을달리게만든것이다.덕분에지금은이칭장철도를이용해서수많은이방인들이고원위의설산과야생동물들을창밖으로구경하며신나게티베트로들어가고있다.

중국의서남공정,티베트에대한집착

중국의티베트껴안기와이를애써벗어나려는티베트본토는오늘날까지공생의조건으로몇가지중요한시나리오를앞에두고협상해오고있다.먼저손을내민것은중국쪽이다.

1978년덩샤오핑은미국기자와의인터뷰에서처음으로달라이라마에게대화의신호를보낸다.

“달라이라마는언제든조국으로돌아올수있다.그러나중국공민(中國公民)의신분으로돌아와야한다.우리는단지하나만을요구할뿐이다.바로애국이다.”

▲1“StopkillinginTibet”란구호가적힌피켓을들고시위하는티베트인들.2인도다람살라에서티베트승려들이간디와달라이라마의사진을들고행진하고있다./사진박종우제공

이것을신호탄으로양측은1979년정식으로1차협상을가졌다.당시달라이라마가파견한대표단에게덩샤오핑은다음과같이요구했다.“근본적인문제는하나이다.바로‘티베트는중국의일부분’이라는것이다.티베트의지도자인달라이라마가공개적으로이부분만을인정한다면우리는그와무엇이든협상할수있다”는것이었다.이에달라이라마는응답하지않았다.

3년후,달라이라마는자신의친형인가락돈주(嘉樂敦株:달라이라마의둘째형)를베이징에파견했다.그는달라이라마의심중을전달하기에적임자였기때문이다.이때중국정부는총서기후야오방(胡耀邦)을담판의적임자로내보냈다.

당시후야오방은‘달라이라마를대우하는5조방침’에서“달라이라마의귀국을언제든환영하며,귀국후정기적으로티베트시찰은가능하나기본적으로베이징에거주할것”을요구했으며달라이라마에게“1959년망명전특권을똑같이부여할것”이라며친절하게밝혔다.후야오방의요구사항은달라이라마의귀국을우선촉구하는내용이핵심이었다.그러나달라이라마는‘우선귀국’이라는전제조건이마음에걸려거부했다.

1989년달라이라마는노벨평화상을수상하며중국정부를놀라게만들었다.그의이름이국제적으로급부상하는순간이었다.달라이라마는일약국제적명사가되었으며그의언행은무게감을얻게되었다.

이때부터달라이라마는국제사회에서중국을좀더강력하게몰아붙이기시작했다.예를들어1992년과1993년연속해서베이징에특사단을파견해티베트의‘진정한자치’(眞正自治)를요구하기시작한것이다.이전까지는전혀없던협상의내용이었다.

그러나협상은티베트자치구역경계선을인식하는데차이를보이면서결렬됐다.달라이라마가원하는진정한자치의범위는중국서부3구(칭하이·쓰촨·간쑤)를아우르는대장구(大藏區)의개념이었던반면,중국정부는티베트자치구만을인정하자는것이었다.만남은있었지만협상은아무런성과없이끝났다.중국이이를받아줄리없기때문이다.

양측이소통과대화에단절을겪으면서관계가소원해질무렵인1997년달라이라마는돌연대만을방문한다.대만을방문한것은일본을방문했던것과는다른의미를가진다.중국과대만의정치적외교적관계또한민감한시기였기때문이었다.

▲2008년베이징올림픽이열리기전의시위로티베트의독립은국제적관심을끄는데는성공했지만궁극적인목표인독립을이루는데는실패했다./사진박종우제공.

이를아는듯모르는듯,달라이라마는유유히‘종교여행(宗敎之旅)’이라는타이틀을걸고대만을영웅처럼방문했다.명분은‘종교의식과법문을통한티베트불교알리기’였으나이를그대로믿는사람은거의없었다.중국정부는달라이라마의여행을‘종교적탐방을위장한티베트알리기정치’라는‘불순한의도’로간주했다.

당시달라이라마는대만정권의수뇌부인이등휘(李登輝)총통과국민당주석인연전(連戰)의만남을연달아성사시키며국제여론의주목을받았다.이광경을본중국정부는티베트독립세력(藏獨)과대만독립세력(台獨)의만남이라며극도의긴장감과불쾌감을표시했다.그래서인지당해연도11월에중국주석장쩌민(江澤民)은미국의하버드대학교에서의연설에서공개적으로천명했다."티베트는중국의땅이다.어떤국가도건들지도,넘보지도마시오!"세상을향한으름장이었다.

협상…계속된결렬,그리고대규모시위

중국의누적된집착속에서티베트인들은결국분노했다.2008년3월14일,티베트라싸에서격렬한시위가벌어졌다.티베트인들이2008년베이징올림픽을앞두고전세계에티베트의존재를알리고자격렬하게시위와폭동을벌인것이다.

그러나생각보다강경한중국정부의진압과냉혹한국제사회의방관자적모습에결국시위는실패로돌아갔다.이때달라이라마는국제사회에서중국의위력과티베트의현실을크게깨닫게되었다.

절박한동기로시작한시위가허무하게진압되자인도다람살라에있는티베트망명정부는앞으로티베트독립을완전히포기하고베이징올림픽을지지하겠다는공식확약서를중국지도부에전달했다.

이서한에서달라이라마는“중국의올림픽개최를지지하고,티베트독립을추구하지않으며,폭력적수단의사용에반대한다는약속을지지한다”고밝혔다.이는중국이달라이라마측에게올림픽파괴및폭력선동,중국분열활동을중단할것을요구한것에대해정면으로화답한것이다.

기분이좋아진중국외교부는올림픽이무사히끝나면티베트망명정부와다시협상테이블에앉을것이며달라이라마측이협상의조건을주동적으로제시할수있을것이라고응수했다.화해무드가형성된것이다.

실제로3·14티베트사태이후중국정부와티베트망명정부사이에는화해의분위기와더불어비밀리에몇차례접촉이이루어졌다.그러나이번에도중국측이“어떤상황에서도티베트의독립과반독립,형태를바꾼독립을인정하지않겠다”고주장하는바람에결실을내지못했다.

▲달라이라마는현재인도다람살라에머물며티베트의앞날을고민하고있다.사진은지난2008년석천사주지진옥스님을접견한모습.

달라이라마측은항의의표시로중국당국이성의있는협상의지를보일때까지대화를중단할것이라고선언했다.올림픽을무사히마친중국으로서는다시칼자루를잡은상황이기에굳이성의있게협상할필요가없었을것이다.

이렇게티베트문제는베이징올림픽을앞두고발생한대규모시위덕분에국제적인관심을모으는데는성공했지만독립을포기하는대신진정한자치를원하는대안조차도중국에받아들여지지않았다.이에티베트망명정부내부에선달라이라마의평화적대화노선을비판하고강경하게대응해야한다는급진적노선이나타나게되었다.

달라이라마의정치은퇴,티베트의새로운길

현재달라이라마는인도에은거하면서티베트의현재와미래에대해고민하고있다.예를들면,티베트의전통적정교합일제도와민주화의문제이다.그동안계승되어오던정교합일(政敎合一)제도와활불의연속성(달라이라마의환생)문제를자신의시대에서마감하고새로운정치체제를구상하겠다는것이다.

오래된고심은최근그의행보에서발견되었다.2011년인도망명정부에도세대교체바람이불었다.이는달라이라마와티베트1세대원로들이오랫동안고심하고기획한결과이다.

달라이라마는과감하게정치에서은퇴하겠다고선언했고,망명정부는40대의새로운지도자를선출했다.그가바로롭상상갸이(43)이다.이것은매우획기적인변화라할만하다.그동안티베트는철저히‘정교합일’을따르며종교와정치의1인수장시스템으로유지되어왔기때문이다.더구나새로선출된지도자는승려가아닌민간인이다.이로써1642년에제5대달라이라마가정식으로티베트의최고통치권을획득한이래300년넘게이어온독특한티베트신정(神政)전통이역사의뒤안길로사라지게된것이다.

어떤이들은이런달라이라마를향해“세계를돌아다니며유명인과담화하는것말고도대체당신이성취한것이뭐가있소?”라고퉁명스럽게의문을던진다.심지어노벨평화상수상자인루마니아의엘리비젤(ElieWiese)은달라이라마를향하여“존경하는성하,기도만으로는충분치않소”라고공공연히말하곤했다.그러나달라이라마는성내지않았다.오히려그들을달래고침착하게말했다.“그래도비폭력을견지해야합니다.폭력은폭력을낳을뿐입니다.”

오늘도어김없이달라이라마는떨어지는태양을바라보며깊은명상에잠기며혼자중얼거릴것이리라.“내가죽기전에중국이티베트에대한짝사랑을멈추었으면….”

인도다람살라의티베트망명정부

1959년중국이티베트를침략하자라싸에머물던청년달라이라마는인도로망명했다.이후반세기동안티베트의독립과자치를위해노력하는사이그는어느덧할아버지가되었다.그는인도의작은티베트로불리는‘다람살라(Dharamsala)’에서티베트민중과외국인순례객들을맞아들이고있으며,매년전세계의티베트신자들을위해서종교법회를열고있다.

티베트망명정부는망명자신분인다람살라의티베트인들에게그들의정체성과불교문화를유지하고온전히향유할수있는유일한‘운명공동체’다.지금도티베트본토에서목숨을걸고히말라야를넘어이곳으로야반도주를시도하는티베트인이적지않다.

또한이곳은매년달라이라마가주관하는‘칼라차크라’,즉티베트불교식의가르침과명상축제가열리는종교의성지이다.매년외국의여행객들은이곳을찾아종교축제와법회를향유한다.명상축제가진행되는기간에는달라이라마를친견하러가는인파로발걸음을옮길수없을정도다.몸수색이철저하지만살아움직이는티베트의부처를볼수있다면그까짓몸수색이무슨대수이겠는가.여행객들은이곳에서티베트명상센터나라마승들을통해영적인세례를받을수도있다.육신보다영혼을사랑하는티베트불교에잠깐이나마빠질수있는절호의기회이다.

글·심혁주명지대학교연구교수/사진·박종우,조선일보DB/월간산-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