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간다는기대만가득찼을뿐,실전을생각하니걱정이한두가지가아니었어요.북한산도못가본제가히말라야를….다행인지몰라도동네뒷산조차못가본사람들도있었어요.”(주광재)
히말라야등반을4개월앞두고일명‘사전체력훈련’시간표가세워졌다.주말마다북한산으로,도봉산으로등반훈련이이어졌다.강원도산악훈련도두차례다녀왔다.
“히말라야에간다는기대만가득찼을뿐,실전을생각하니걱정이한두가지가아니었어요.북한산도못가본제가히말라야를….다행인지몰라도동네뒷산조차못가본사람들도있었어요.”(주광재)
히말라야등반을4개월앞두고일명‘사전체력훈련’시간표가세워졌다.주말마다북한산으로,도봉산으로등반훈련이이어졌다.강원도산악훈련도두차례다녀왔다.
이갑녀씨도히말라야등반3일째되던날,속이메스꺼워졌다.고산병의전조였다.
“일행들이하나둘정상에오르는모습이보이는데,저는창자가꼬이는것처럼뒤틀리듯아팠어요.그래도참고걷다도저히못참겠기에몇번이나토하고또토하며기다시피적당한바위에앉아하늘을봤어요.
고산병은누구나겪은병이었지만,단원마다조금씩차이는있었다.어떤단원은고산병으로인해일치감치산행을포기하고내려갔고,또어떤단원은여느때와다름없이산행을했다.
“고산병이심했을무렵,프랑스에서온트래커들과어울릴기회가있었어요.제병으로단원들에게누를끼친것에대한미안함을보답하고자네팔민요를부르기시작했죠.노랫소리에네팔포터가일어나춤을추기시작했고,사람들의환호소리에저도나서서춤을추기시작했어요.노래를마치자프랑스트래커들은노래를했고,저희는‘아리랑’으로화답했어요.그렇게댄스배틀을벌이다보니,어느새고산병이사라져있더군요.”
동신영씨역시고산병으로고생하면서암투병당시를떠올렸고힘을낼수있었다.
“처음에는고산병인줄몰랐는데,너무도고통스럽더라고요.그걸겪으면서‘내가병으로고통을겪었지만,산행에서도겪을수있구나.’하는생각을하게됐어요.”
이병림합창단대표는고산병을이겨낸단원들의이야기를이렇게정리했다.
“한줄도대필하지않고노력과땀으로썼어요.머리에쥐가날정도였죠.그동안치료비영수증에만올라가던제이름이책에올라가서감격스러워요.제이름이적힌책이시골이든어디든있을수있다면좋을것같아요.
“책을내게되면서그간있던일들을다시한번생각하게됐어요.어려움속에있는환우들이저희책을읽고한줄기작은빛이라도발견하면좋겠어요.그렇게된다면정말감사한일이죠.”
김명자씨는최근트레킹을하다가넘어져이가빠졌다.그런데부러진이를들고기념촬영을할정도로여유가생겼다.히말라야등반이후달라진점이다.
“이가부러진건아무것도아니에요.지난번에는넘어져서얼굴에상처가났어요.여기보세요.화장을하지않으면코흘린것처럼보여요.(웃음)
노원장에게도히말라야행은큰용기가필요한일이었다.그러나아무런준비나계획이없는결정이었다.“컴퓨터처럼리셋할시간이필요하다는생각외에는아무생각이없었다”고했다.그는환우들과함께사전체력운동에도참여했다.지리산,설악산,한라산,백두산….천지가폭발한다는뉴스에백두산산행을주저하고있는단원들에게“수백년만에화산이터지는데,그순간우리가함께있다면얼마나영광인가?”라는말로설득한사람도그였다. “가보지않은사람은느낄수없는청결하고도깨끗한느낌이있어요.또고지에올라섰을때의성취감과충만감은아마단원들모두똑같이느꼈을거예요.일상에서벗어나전혀색다른경험을했어요.하늘을바라보면빈공간이없을정도로별이가득했죠.자연의순수함을느낄수있는소중한시간이었네요.”노원장은암환자들에게등산을적극추천하면서,자신의건강이허락하는한에서도전할것을권했다.
노동영서울대학교암병원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