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자로제정된이선서는1967년노산이한국산악회장취임첫해에제정했다.많은사람들이시조시인이자사학자로서의노산을기억하지만국내에서가장전통이오래된한국산악회의수장으로서의노산을기억하는사람은흔치않다.노산하면연상되는것은
문인으로서의노산이남긴업적은필자의졸견으로평가하기엔그세계가너무나깊고넓다.그는일제수난기에언론인으로활동하며한글사랑때문에조선어어학회사건에연루되어죄아닌죄값을치루며옥고를겪었다.그가옥중생활중에들려준구수한음담패설은동료들의지루한옥중생활에활력소가되었다한다.
그의말년은한국등산계의발전을위해산악단체의수장으로방점을찍는다.지난해필자는노산을기리기위해제정한한국산악회의
이는알프스고봉에서본격적인등산활동이시작되기전알피니즘의여명기에자연과학자인아가시,포브스,틴들과같은학자들이빙하와지질연구를위해탐사활동을하며산에올랐고,과학자뿐만아니라괴테,바이런,워즈워스,러스킨,쉘리,레슬리스티븐과같은문인들이알프스의산들을답사하며산을찬미하는저술을펴낸것과같은맥락으로보아야한다.
그는1969년에창간된한국최초의등산전문지<등산>(현월간산)이재정난으로폐간위기를맞자그와친교가돈독한사회명사들의모임인‘신우회(信友會)’가인수하여지속적으로발간할수있도록도움을주었다.이후이잡지는조선일보가인수하여오늘에이르도록가교역할을했다.
그의재임기간중에일어난가장충격적인사건은1969년2월에있었다.해외원정등반훈련대의설악산죽음의계곡에서발생한국내최초의눈사태사고다.이사고로10명의젊은대원이눈속에매몰된채최후를맞는다.현대한산악연맹이인정회장도훈련대의일원으로참가했던사람이다.당시이사건은사회적인물의를빚었고구조과정에서여러가지잡음이일었으며,산악회는비통한분위기에휩싸인다. 이사건의여파는열정적으로회무를집행해온그에게좌절을안겨주었고,조직의책임자로도의적인책임을지고스스로사퇴를했지만2년후그는회장직에재추대된다. 그는구미(歐美)선진국가의대표적인산악회를탐방하여국제적인견문을넓힌다.회의운영과활동상황,도서출간현황등을살펴보고정보를교류한다.1973년부터시작된각국산악단체탐방행보는프랑스산악회(1874년창립)와세계적인명성을지닌프랑스국립스키등산학교,등산의국민화운동을전개하고있는스웨덴산악회(1923년).정통성과폐쇄성을함께지닌채운영되고있는영국알파인클럽(AC.1857년세계최초로창립)과영국등반협회(BMC.1946년),등산의전도사를자처하는아메리칸알파인클럽(AAC.1902년)과‘미국의자연은미국의귀중한재산’이라고외치며환경보존운동을펼치는환경단체시에라클럽등을탐방하여많은정보를축적하고견문을넓힌다.당시그가각국에서교환해온귀중한자료와도서들은한국산악회도서관에소장되어있다.
또한선진등산강국의등반기술을습득하기위하여경제여건상해외진출이어렵던시기등산선진국프랑스의국립스키등산학교(ENSA)에회원을파견하여체계화된설빙벽등반기술을전수받아국내에보급한다.당초이계획은노산이회장재임시두사람을파견하기로했던일이무산되자이민재회장에게로이어져결실을본것이다.오늘날각급등산교육기관에서기초기술로활용하고있는‘프렌치테크닉’이그당시도입된기술이다. 그는히말라야고산등반에도열정을가지고추진하여1977년대한산악연맹의에베레스트한국초등에이어,1978년안나푸르나4봉(7525m)등정을성공시킨다.이등반은한국의히말라야등반개척기에있었던두번째의성과로기록된다.당시이등반대의대장을맡아등정을성공시킨장본인이현산악회장전병구다.
한국산악회는1945년조국이광복되던해에사회단체로는진단학회에이어두번째로정부에등록된단체로엄연한정통성을지녔음에도35년동안임의단체취급을받아왔다.조직의틀을다지고좀더활성화하기위해1980년사단법인화한다.당시단체의법인화등록이어려운시기에노산회장의끈질긴집념이이일을성사시켰다.또한그는체계적인등산교육의필요성을절감하고‘등산아카데미강좌’를개설하여수년간지도자급산악인들을양성하는데진력한다.
1969년2월설악산10동지눈사태조난당시한국산악회회장으로눈쌓인설악산을오르던노산이은상.‘해오라기나는산’이라는그의호처럼노산은평생을고고한시조시인으로,산악인으로살았다.
그의시조는국토예찬,분단의아픔,통일염원,우국지사추모등사회성을강조하는방향으로기울어있다.사학자요수필가인그는해박한역사지식과유려한문장으로
그는암울한일제치하와격변하는해방정국.6.25전란.5.16혁명등격동의시대를문인으로살았지만군사독재정권협력이흠이되기도했다.그의고향경남마산에서과거사의시비가일어‘노산문학관’이‘마산문학관’으로이름이바뀌기도한다.한사람이평생을살면서어찌한점그늘이없겠는가.
그분의등산관은요산요수에바탕을둔자연애호가중심이었다.시인묵객들의자연관을지닌그는산을사랑하는자연탐사적인성격의등산관을지니고있었다.서구근대등산의바탕이된알피니즘의행동양식인눈과얼음이덮인고봉의곤란성에도전하는서구적인개념과는거리가있었다.
그러나이점에대해한국근대등반의첨병이라할수있는김정태는그의자서전<등산50년(登山50年)>에서,민세안재홍의<백두산등척기(白頭山登陟記)>.육당최남선의<백두산근참기(白頭山覲參記)>와<조선의산수(朝鮮의山水)>.노산의<묘향산유기(妙香山遊記)>와<설악행각(雪嶽行脚)>.<한라산등척기(漢拏山登陟記)>등은조선시대의유산기와달리우리의명산을구석구석탐사하는학술적구명의탐사등산기라고평했다.산과관련된답사기는등산의대중보급에기여를했으니,이런형태의등산을한국근대등산을발아시킨등산의선구라고말한것이다.
몽블랑등정을제안근대등산의계기를마련했던소쉬르와같은학자도<알프스여행기>를펴내사람들의관심을산으로끌어드린다.특히당대최고의지성인영국의스티븐은<유럽의놀이터(TheplaygroundofEurope)>와같은명저를저술하여책을읽고많은사람들이유럽의고봉으로몰려오게한다.
노산은산악단체의수장으로척박한산악문화의활성화에역점을두고산악도서출간에힘을기울였다.1968년월보<산>을창간하여현재지령44년통권225호를기록하고있다.1975년부터<한국산악문고>6권을문고판으로제작하여시리즈로발간했다.이책은읽을만한산악도서가없던시절국내산악인들의지적갈증을해소시켜주었다.<한국산악문고>는<노산산행기(鷺山山行記)>(이은상·1975년).<별빛과폭풍설>(가스통레뷔파·김경호역·1975년).<산악소사전(山岳小事典)>(김원모·1975년>의발간에이어,<등산50년(登山50年)>(김정태·1976년).<8000m의위와아래>(헬만불·이종호역·1976년).<암벽등반기술>(백영웅·1976년).<산정수정(山情水情)>(이영희·1977년)등이나왔다.
같은해노산은한국산악회의국제적인위상과세계화의흐름에동참하고자국제산악연맹(UIAA)의일원으로정식가입하여회원국이된다.국제산악연맹가입은눈사태사고로10명의대원을잃은후더욱분발하려는의지를가지고국내활동에한정되었던산악회의시각을국제무대로확대해희생자의유지를기리려는의도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