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죽음은운명인가,확률인가
알프스에서가장어려운북벽6개를꼽는다면아이거,마터호른(Matterhorn·4477m),그랑드조라스(GrandesJorasses·4208m),드류(Dru·3754m),트레치메디라바레도(Trecimedilavaredo·2998m),피츠바딜레(PizBadile·3308m)북벽을들수있다.이여섯중가장악명높은벽이아이거북벽(EigerNordWant)이다.
아이거(3970m)는그이름이도깨비를뜻하는‘오우거(Ogre)’에서왔다.알프스의미봉(美峰)마터호른과는달리오지에있지도않고관광지가까이에위치해있으며,묀히(Monch·4107m)나융프라우(Jungfrau·4158m)와같이우아하거나고귀한자태와는거리가먼도깨비같이못생긴모습을하고있다.아이거는그모양이볼품없고4000m가채안되는산이지만움푹파인지형때문에햇빛이안들어어둡고침침하며,으스스한분위기때문에공포감마저자아낸다.클라이네샤이데크(KleineScheidegg)의푸른초원위로무려1800m나솟아있는노르드반트는쳐다보는것만으로도기가죽을정도로위협적이지만,이점이산악인을북벽의품으로끌어들이는매력으로작용한다.
끊임없이쏟아지는낙석과낙빙,신설이내린뒤쏟아지는눈사태와눈녹은물이폭포처럼흐르고,예측불허의벼락과폭풍우,추위등이등반의변수로작용한다.등반가들은이런갖가지위험요소를극복해야정상을얻을수있다.아이거북벽은1935년막스세들마이어와칼메링거가첫희생자가되면서비극의서막이열린다.이후수많은등반가가희생되면서아이거살인벽(MordWant)또는아이거공동묘지라는무시무시한이름이생겨났고,숱한비극의역사가시작된다.
평균연령58세였던대원들은노익장을과시하며최난의거벽을올랐다.특히허욱은아이거북벽한국초등33년만에재등에성공했다.
첫희생자인칼메링거의시체는27년뒤완전히건조된채로발견된다.그후사람들은그가최후를맞은현장을‘죽음의비박지’로명명한다.아이거는1938년초등반이후77년의세월이흐르는동안수많은등반가들의영광과비극이점철된무대가된다.아이거의비극가운데가장안타까웠던사건은1936년에있었던토니쿠르츠의죽음이다.쿠르츠가추락하여자일에매어달린지점은구조대와장대하나만큼인5m도채안되는거리였다.쿠르츠는탈출을위해하강하던중자일의매듭에하강용카라비너가끼어멈춘상태에서더내려가지못한채구조대의피켈이쿠르츠의아이젠발톱을겨우건드릴수있는가까운거리에서탈진하여사망했다.
결국5m라는짧은거리가삶과죽음을가르는운명의분기점이되었다.그후그의시체는구조대가긴막대에칼을묶어자일을끊어북벽밑으로떨어트려회수한다.추락자의시체가2년동안북벽의로프에매어달린채방치되어이곳을찾는관광객들의호기심어린볼거리가된일도있었다.이사건의전말은이랬다.1957년북벽하얀거미의좌측상단부에거의도착했을때쯤마지막등반자인롱히가오버행밑으로추락한다.그는두다리에골절상을입고생의마지막밤을자일에매달린채고통과추위,굶주림속에서비참한최후를마쳤다.그후2년동안롱히의시체는처음자리에서미끄러진채5m아래의허공에대롱대롱매달린채로호기심가득한관광객들의구경거리가되고있었다.그의시체는2년후인1959년에회수된다.
아이거북벽에서일어난수많은비극중가장미스터리했던사건은북벽에서디렛티시마(direttissimaclimbing)의첫막을연1966년3월에일어났다.아이거북벽에서직등루트를시도하던영미합동대와독일등반대가등반을하던중이었다.독일의로젠조프가막‘거미’로올라가려할때누군가옆을스치며떨어졌다.이때아이거기슭에위치한관광지클라이네샤이데크에서망원경으로아이거북벽을지켜보던영국기자피터질맨은눈앞에펼쳐진광경에깜짝놀란다.아이거북벽중앙필라에서빨간물체가허공을가르며떨어지는것을본것이다.
잠시후북벽밑고정자일이시작되는지점까지구조대가접근해확인한결과그것은존할린의시체였다.존할린은아이거에서직등루트를시도하다고정로프가끓어지며1000여미터를추락한것이다.이날5명이같은로프를사용하면서올라갔다.다섯번째등반자존할린이같은로프에주마를써서하얀거미를향해오르던중로프가예리한바위모서리에쓸려끊어지면서이런변을당한것이다.이런상황을어떻게설명해야할까.같은시간같은장소에서똑같은로프를사용한네명은무사했고뒤에오른한사람은로프가끊어져목숨을잃은것이다.
금년8월일주일의시차를두고한국대두팀이북벽을오르면서도희비가엇갈리는일이일어났다.1979년한국인최초로윤대표와함께아이거를오른허욱(60).한국산악계에허욱이라는본명보다‘까욱’이라는별명으로더알려진그는시퍼런나이스물일곱에이벽을오른후33년만에북벽재등에성공했다.이들은등반중에신들의트래버스에서최고령대원유동진(65·코오롱등산학교동문)이낙석에맞아10미터를추락하면서부상을당해등반속도가늦어졌고,2박3일동안비좁은비박사이트에서폭포와같은물벼락을맞으며온밤을추위에떨며선채로비박을했다.식량마저떨어져굶주린상태에서투혼을발휘해정상에섰고무사히귀환했다.
아이거북벽에서생명의줄을함께묶었던이팀은네사람모두북벽을오르기엔노장에속하는실버들이었다.암으로대장을절제하고2년이안된채장애를딛고우뚝선허욱,지병인당뇨병을달고사는최고령자유동진.두달전암벽에서추락,복숭아뼈골절로발목에쇠못3개를박은채통증에시달리며북벽에매어달린한필석(55·월간산부장)과막내김명식(53).이팀은평균연령58세의실버등반대이자,장애자등반대였다.
정상에서협찬깃발을꺼내든진명식씨.그는출발부터등정까지모두선등을맡았다.
젊고시퍼런청춘들이할거하는아이거북벽에서이들의열정은장애와연령을극복한인간승리였다.건강한정상인도감히엄두를내지못할일을그들은열정하나를무기삼아험난한벽에도전했고오르는데성공했다.실버들의투혼에기립박수라도보내야할것이다.다른한팀인‘2012알프스원정대’는정상등정후서릉으로하강중공업용볼트가빠지면서700m를추락,사망했다.이들은두명의대원이먼저하강했고하강을완료했을무렵하강지점에서확보를하고있던정진현(45·열린캠프)이갑자기추락했다.그들이사용한볼트는일주일의시차를두고앞서이벽을오른허욱팀4명이사용했던볼트였다.그볼트가빠지기전에는이미6명이이볼트를사용하고난후였다.
동일한장소에서몇분의시차를두고똑같은장비를사용한사람이어떤사람은로프가끊어져죽고,어떤사람은볼트가빠져죽고,어떤사람은살아남는결과를우리는어떻게이해해야할까.존할린과정진현의죽음은러시안룰렛게임같은확률의문제였을까?아니면운명이었을까?이거북벽.어쩌면그곳은위험한곳이기때문에더매혹적인곳인지모른다.저자에게선물받은<영광의북벽>을읽고아이거의꿈을키워왔던정진현을산으로유도했던사람은직장선배이기도했던정광식(외국어대OB)이다.그는1982년이죽음의벽을남선우(월간마운틴대표·중앙대OB),김정원(한양대OB)과함께올랐고,이벽과맞섰던극한의체험을<영광의북벽>이라는기록으로남긴사람이었기에아이거의위험을누구보다잘알고있었다.때문에출발전정진현의아이거등반을강하게만류했다.
정광식의아이거등반기는마땅히읽을거리가없던시절한국산악계의많은독자들에게감명을전해준책이다.1983년<영광과죽음의벽아이거>(한국대학산악연맹)라는제호로보고서를냈고,1989년<영광의북벽>(수문출판사)이란제호를달고유가지로서첫선을보인후2003년<아이거북벽>(경당)으로재간행됐고,2011년이산미디어에서<영광의북벽>으로복간본을펴낸다.한권의산서가네번씩이나복간을한일은한국산서출판사상유례가없었던일이다.이책은아이거를오르려는산악인들에게지침서이자필독서였다.
아이거북벽은성공한사람에게는‘영광의북벽’이,실패한사람에게는‘죽음의북벽’이될수있는곳이다.등반의어려움은죽음으로가득한무시무시한북벽의신화들을극복해야자유롭게그곳을오를수있다는것이다.공포는등반가들내면의평정을무너트릴수있기때문이다.북벽은수많은등반가들에게정복되었지만,수많은사람들을죽음으로몰아넣었다.책을통해아이거를간접경험한산악인들에게힌터슈토이서트래버스,아이스호스,죽음의비박,신들의트래버스,하얀거미와같은북벽의지명을듣는것만으로도손에땀을쥐게한다.
독일의한등산잡지가세계의저명산악인들에게질문서를보내지구상에서아름다운산이어디인가물었다.아이거라는이름은눈을씻고보아도거론되지않았다.알파마요(Alpamayo·5943m),K2(8610m),마터호른,피츠로이(FitzRoy·3441m),몽블랑(MontBlanc·4810m).그랑드조라스,시니올츄(Siniolchu·6891m)순으로많이거론된산은이것뿐이다.그럼에도가장많은화제를뿌린산은어김없이아이거북벽이거론된다.그이유는명백하다.아이거북벽은다른어떤산보다많은사람들의목숨을앗아갔기때문이다.이런점으로보아도아이거북벽은등산가들의마음을끌어들이는절대적인흡인력을지니고있다고보아야한다.아이거북벽등반에성공한사람들조차도아이거는다시오르고싶지않다고말한다.한때알프스6대북벽을주름잡던‘알프스의별’레뷔파는1952년아이거8등에성공하면서가장공포를자아내게하는혐오스런곳이아이거북벽이라고했다.
적어도아이거를오르려는사람들이라면어느정도의위험을감수할마음의준비없이는아이거의꿈을이룰수없다.정광식또한아이거북벽에출사표를내면서어쩌면죽어서돌아오지못할것에대비해책상까지깨끗이정돈하고서북벽을향해떠났다.그도‘무서운계획이란걸알면서성공의가능성이희박할수록시도할만한가치가있는것이라’믿었기때문이다.대부분의산악인들은클라이머로성장하기위한통과의례로아이거북벽을택하며,죽고사는문제는오직그들이선택한문제일뿐이다.
“등산가는자신이숙명적인희생자가되리라는것을알면서도산에대한숭앙을버리지못한다”고한머메리의말처럼대부분의산악인들은산이지닌위험성을예견하면서산으로향한다.ⓜ
아이거북벽정상에선한필석,유동진,허욱
-글이용대_코오롱등산학교교장/사진한필석_월간<산>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