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을 파는 사람 [4] / 박종훈 *-
BY paxlee ON 2. 9, 2013
생각을파는사람-열아홉번째인물
셀러(seller)박종훈피아니스트·작곡가
셀러유형크로스오버비르투오소(cross-overvirtuoso)
대표상품리스트초절기교연습곡
최신상품PianoParadiso(2012)
크로스오버비르투오소의셀링포인트
1)크로스오버를통해휴식과자극을동시에얻어라.
2)받아들일때는유연하되통합할때는자기만의색깔을넣어라.
3)전달과소통의기본,테크닉부터연마하라.
몇달전나는그와처음무대에서만났다.나는MC이자강연자로,그는피아니스트로.모교인연세대음대를돕기위한토크콘서트에고맙게도그가함께해줬다.기품이흐르는이탈리아제수트를입고피아노를치는그의모습은마치‘한폭의그림’같았다.그를본우리회사여직원들도이구동성으로말했다.
“순정만화주인공이꽃중년이되면딱저모습일것같아요!”
박종훈(44)씨의대학시절후배에게물어보니그는당시연세대에서‘전설의얼짱’이었단다.그런데그는비주얼만훌륭한것이아니다.다섯살에피아노를시작해열다섯살에서울시향과협연을할정도로촉망받는피아니스트였다.줄리아드음대를거쳐정예피아니스트를조련하는이탈리아이몰라피아노아카데미에서전설의피아니스트인라자르베르만을스승으로모셨다.2000년이탈리아산레모클래식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우승하며세계무대에화려하게등장한그는KBS교향악단을비롯해상트페테르부르크심포니,브루노심포니등유수의오케스트라와협연해왔다.미국신문뉴욕타임스의버너드홀랜드는그의연주에대해“놀라운개성,우아한음악성”이라는칭찬을아끼지않았다.
그런데클래식연주자로잘나가던그무렵그는새로운도전을시작한다.앙드레가뇽처럼뉴에이지음악을직접작곡해음반을발표한것이다.지금도그렇지만당시에는클래식과뉴에이지의장벽이견고하게가로막고있을때였다.특히나클래식연주자가뉴에이지음악을연주하는일은좀처럼보기힘들었다.그는거침없이클래식과뉴에이지,재즈사이를오가면서연주자로두각을나타냈다.또한음악방송DJ,클래식공연음악감독,루비스폴카라는클래식전문기획사대표로클래식연주가들의매니지먼트와음반까지제작하고있다.‘피아노치는잘생긴남자’만으로도충분히매력적인데이렇게다양한장르와직업으로자신의생각을파는남자라니.굳이안만날이유가있을까?결국우리는두달뒤서울마포구서교동에위치한그의녹음실겸사무실에서재상봉했다.
크로스오버에서가장중요한것은청중과의소통
장르장벽깨고‘좋은음악’들려주고파
스튜디오에는내나이정도는돼보이는스타인벡피아노가묵직하게자리잡고있었다.그리고그는여전히멋들어진이탈리아제셔츠를입고있다.알고보니실제그의집이이탈리아밀라노에있단다.1년에절반정도는가족이있는이탈리아에가서지냈는데요즘은일이많아서울에있을때가더많다.
한국에있을때는1년에크고작은공연을50여건한다.그는10년전부터‘피아노파라디소(Pianoparadiso)’라는자신만의공연브랜드를만들어독자적인크로스오버영역을개척하고있다.매번주제에따라때로는베토벤이나리스트가나오기도하고,크라이슬러나미국의뮤지컬음악이흐르기도하고,그가만든편하고쉬운뉴에이지곡을소개하기도한다.여기에‘박종훈식토크’가가미된다.일부러웃기려고하는건아닌데은근히웃기고,은근히말도많다.말하다보면딴데로샜다가다시돌아오곤한다.대본은있지만주로말하고싶을때즉흥적으로하고싶은말을한다.청중도이런그의담백한토크를더좋아한다.
요새는그가직접작곡한뉴에이지나재즈곡들을많이연주하는편이다.지난번토크콘서트때도자작곡을연주했다.제목은그의회사이름이기도한루비스폴카(Ruby’spolka).그가기르던개루비를위해만든곡인데듣고있으면강아지한마리가깡총깡총뛰고,멍멍짖고,나른하게조는모습이저절로떠오른다.청중도다들집에서기르는강아지가생각나는지웃으면서신나게박수를쳤다.곡하나로무대와객석사이에완벽한교감이이루어진것이다.
“크로스오버에서중요한것은먼저나와청중사이의크로스오버예요.교차점안에서서로만나야한다는거죠.클래식이아니면들을수없는것,재즈아니면들을수없는것을가져와서재즈팬들과클래식팬들모두와소통의폭과수준을끌어올리고싶은건데현실에서는사실만만치않아요.”
클래식팬들에게는가요를협주곡으로웅장하게만들어도원곡이가요면가요일뿐이다.클래식화성과구조로재즈적인연주를하면재즈팬들은“이건클래식이니까안들어”라는반응이대번에나온다.생각해보면참이상한일이다.사람들은한분야에조예가깊어질수록이해의폭이넓어지기보다는스스로좁아진다.그게음악이든,고전이든,미술이든.
그는어렸을때부터그런장벽이무척이나싫었다.가요든,클래식이든,재즈든왜그걸그렇게구분하는거지?들어서좋으면되는거아냐?그래서그는자신의음악앞에크로스오버라는이름을붙이는것도썩좋아하지는않는다.그자체가또하나의장벽이될수있기때문이다.
피아니스트에게는‘음악사랑하는본능’있어야
재즈와클래식넘나드는크로스오버는휴식인동시에자극
크로스오버의시작과끝은결국관객과의소통이다.그렇다면청중과무엇으로어떻게소통할것인가.피아니스트박종훈은음악이라는것은결국내가느낀것을제대로전달하는것이라고말한다.말한다.먼저음악과나자신사이에충분한교감이일어나야한다는것이다.그는이것을‘음악을사랑하는본능’이라고말한다.
“어떤여자를사랑할때그녀는이렇게생겨서사랑하고,성격이착해서사랑하지는않잖아요.그저본능적으로원하는것이죠.음악도마찬가지예요.일단무조건적으로좋아하고사랑해야해요.그런데재미있는건머리가좋으면90%까지는모방이가능하다는거죠.머리가좋은천재들은뭘하는지모르면서도표현은해내요.그런경우가아니면훈련에의해서어느정도는가능하죠.그러나100%까지가기는쉽지않아요.연습하고연주밖에모르니자기가정말음악을사랑하는지아닌지알틈조차없죠.”
그는다섯살때처음피아노와만난이후40여년간질긴연애를해왔다.내가볼때그는‘밀당(밀고당기기)의고수’다.반복을싫어하고늘새로운변화를좋아하는자신의성향을잘알았던그는클래식부터재즈,뉴에이지등수많은장르들과자신만의방식으로교감해왔다.물론베토벤을연주하다가갑자기재즈즉흥연주를하기란쉽지않다.발레를하다가갑자기힙합을하는거나마찬가지다.그러나때때로이는훌륭한자극제가되기도한다.리스트의초절기교연습이나쇼팽의즉흥환상곡도하루이틀이지그도인간인데짜증날때가있다.그럴때편한뉴에이지나재즈를열심히연습하면다시리스트가치고싶어진다.다양한장르의곡들과적당히밀고당기면서피아노에대한사랑을오랫동안지켜가는것이다.
한분야에서무르익은이들은저마다자신의일을질기게사랑하는방법을갖고있다.소설가박민규는동시에두가지소설을쓴다.방의양쪽구석에각각두개의책상과두개의컴퓨터를둔다.그리고이쪽소설을쓰다가지겨워지면다른컴퓨터에가서또다른소설을쓴다.그것이그에게는휴식이고힐링이며또다른자극이다.피아니스트박종훈에게도크로스오버음악은피아노에대한사랑과열정을지키고발전해나가는그만의방식이지않았을까.
‘나만의색깔’보여주는단단한실력
하루12~13시간연습은기본…손톱깨져건반이피로물들기도
또하나,그는자신의느낀것을청중에게가장편안하게전달할수있는테크닉을갖고있다.그는2009년에‘대형사고’를한번친적이있다.그유명한리스트의‘초절기교연습곡’전곡독주회를국내최초로감행한것이다.총12곡으로구성돼있는이작품은모든피아노곡중에서가장어렵기로유명하다.슈만이“이세상에서이곡을연주할수있는피아니스트는10여명밖에되지않을것”이라고말했을정도.비현실적일정도로현란한기교와극한의다이내믹,풍부한낭만성을요구하기때문에초절기교연습곡전곡을녹음한피아니스트는전세계적으로도드물다.
그런데그는불혹의나이에과감히도전했고음반으로도내놨다.그의첫번째음반의전곡역시리스트의작품들이었다.언뜻생각해도리스트와재즈와의간격은멀고도멀다.바로여기에박종훈식크로스오버의핵심이숨겨져있다.고도의테크닉이없으면절대소화할수없는리스트의초절기교연습곡을마스터했다는것은피아니스트로서그어떤곡도겁없이도전할수있을정도의내공이쌓였음을의미한다.때문에어떤장르가들어와도유연하게흡수하되분명한자기만의색깔을낸다.그것은수십년간클래식피아노를치면서만들어온중심이있기때문이다.아이덴티티가없으면크로스오버는커녕이도저도아닌따로국밥이되거나색깔을찾을수없는정체불명의무엇이돼버리고만다.실제로뼈대가빈약해서혼자서는안되니까이것저것붙인억지콜라보레이션이얼마나많은가.
최근에나는최고의크로스오버음악을하나발견했다.제목은소녀시대의‘아이갓어보이(Igotaboy)’.처음에듣는순간힙합,일렉트로닉등4~5가지장르가절묘하게연결되면서낯선듯했지만들으면들을수록자연스럽게귀에착착감겼다.다양한장르가크로스오버됨에도불구하고‘신선함’과‘자연스러움’이라는두마리토끼를동시에잡는것은보통의프로듀싱실력으로는어림도없는일이다.이곡은SM엔터테인먼트의‘산역사’라불리는작곡가유영진이10여년간녹음실에서수많은가수들의곡을만들어봤기에나올수있는작품이다.
피아니스트박종훈역시다양한장르와크로스오버하면서오랫동안대중의사랑을받을수있었던것은그어떤곡에도자연스럽게자신의색깔을입힐수있는단단한실력이있었기때문이다.그러나그것을만드는과정은그야말로처절한‘몸과의사투’였다.한창때는하루에12~13시간연습은기본.한번은공연중에손톱이깨지면서건반이시뻘건피로물든적도있었다.그야말로목에서피가날때가지노래해야득음한다는판소리명창처럼그도‘손에서피가날정도’로연습했던것이다.
“리스트가그런말을한적이있어요.‘물을끓이려고불을지폈으면끓을때까지계속불을지펴야한다.’연습을하다보면예측을못하겠어요.이정도면됐겠지싶을정도로연습을했는데다음날돌아가있고,죽어라연습해도안돼서포기했는데일주일뒤에는또되고.중요한것하나는결국포기하면안된다는거죠.죽어라연습한실력이지금당장은아니지만언젠가는나오게돼있거든요.”
국내최초리스트초절기교연습곡독주회열어
테크닉이란내마음이원하는것을내몸이해내는일
테크닉이란내마음이원하는것을내몸이해내는일이다.마음으로는수천번도더완벽하게연주했던초절기교연습곡을몸으로해내는것.마음으로는더없이완벽한강의를실제내온몸으로완벽하게해내는것.파울로코엘료처럼완벽하게쓰고싶은글을실제내손으로써내는것이다.그러나몸과마음의간격은얼마나머나먼가.때로는지독한슬럼프와도싸워야한다.
그에게도승승장구하던25세무렵예고도없이슬럼프가찾아왔다.어디서어떤연주를하건칭찬이쏟아지고스스로도가장자신만만하던그때,이유없이라흐마니노프연주를망쳤다.그이후로는라흐마니노프뿐만아니라모든연주에무대공포증이생겼다.고소공포증이있다는그가6층에서떨어져서혼비백산할때의딱,그느낌이었다.심각하게피아노를접을생각까지했다.해결방법은오직하나,두려움에익숙해질때까지견디는것뿐이었다.그렇게몇년동안피아노에매달리다가어느순간거짓말처럼그결과가한꺼번에돌아왔다.무대에서최고의연주를해낸것이다.오랜슬럼프에서벗어나는순간이기도했다.
내가가진크로스오버적인콘텐츠를가장신선하게그러면서도자연스럽게전달하려면먼저테크닉에서최고의경지에올라야한다.듣기에가장편안한연주,읽기에가장편안한글,이해하기가장편안한강의는가장혹독하게그자신을괴롭힌결과다.그런면에서나는그를크로스오버음악계의대가,크로스오버비르투오소(cross-overvirtuoso)라고부르고싶다.오늘저녁귀여운강아지와편안한음악감상을원한다면그의루비스폴카를,광기어린천재의현란한테크닉을제대로느껴보고싶다면그가연주하는리스트의초절기교연습곡을들어보자.무엇을듣든상상그이상일것이다.
-김미경의생각을파는사람/주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