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사람들로부터받는한결같은질문이있다.화가인당신은왜글을쓰느냐.한우물만파도될까말까한세상에그렇게여러가지를하면화가로성공할수있겠느냐와같은것이다.
가끔호의적인반응을보내오는분도있기는하다.전문적으로글쓰는일에종사하지도않는당신이어쩌면그렇게글을잘쓰느냐는물음이그것이다.지난30년간이런질문을하도많이받다보니이제는누가물을라치면속으로,또그얘기,하고실소해버린다.
나는왜글을쓰는가.한마디로말해서글쓰기가내겐삶의한방식이기때문이다.그림그리기가내삶의한방식인것처럼글쓰기도나의유력한삶의방식이기때문이다.그점에있어서는독서나여행도마찬가지다.
그런데도허다한사람들의뇌리속에는그림은언제그리나하는‘껄쩍지근함’이있는것같다.그러나그런염려일랑접어두어도좋을듯하다.나는충분히,그리고열심히화가라는역할을감내하고있기때문이다.
많은사람들이‘문학의시대는갔다’는비관적인견해를피력한다.더나아가인문학은죽었다고말하기도한다.어느정도사실일것이다.그러나아무리전자매체가발달한다해도문학이나글쓰기의행위는죽을수없는사항이다.
그래서내게는문학이반찬,미술이밥이다.둘이다투는경우는거의없다.두우물에서나온물은행복하게뒤섞여공존한다.
문학과글쓰기가죽어버린시대인지는모르겠으되요즈음문학과글쓰기의영역이현저히줄어버린것은사실이다.
이것은유감스러운일이다.왜냐하면사색이줄어들고행위만난무하는시대라는증거일것이기때문이다.사색없는행위는얼마나건조하고위험한노릇인가.노래방이퍼져서아마추어가수들이넘쳐나게되었듯작문교실이라도퍼져서글쓰기의유행이라도불어닥쳤으면싶다.
나는어려서부터글쟁이가되고싶었다.자연과학을하는사람의고백치곤좀어쭙잖겠지만아홉살때부터시를쓰기시작했다.학교교지에몇편실은것을빼고는어디변변하게시다운시한편발표한것도아닌주제에감히어려서부터시를썼노라고떠들수있으랴만,단몇줄의시를쓰기위해며칠씩가슴을졸인경험정도는있다는말이다.
고등학교시절한동안은조각에푹빠져한때미대에가려는꿈을꾸기도했다.문과를가려다무슨운명의장난인지이과에배치된이불행한소년에게그래도가장문과냄새가나는자연과학분야는생물학이었다.어려서아버지를따라상경하여학교는결국서울에서다녔지만방학이란방학은거의깡그리고향할아버지댁에서보낸나에게동물을공부할수있다는것은상당한위안이었다.
문학도의꿈을접은지여러해가지난오늘나는동물행동학자가되어돌아와어느문인못지않게왕성한집필활동을하고있다.내가쓰는글은거의모두생명이그주제다.돌이켜보면
나는내가자연과학을하게된것을무척다행스럽게생각한다.과학자치고제법글흉내를낸다고생각해주는덕에여기저기겁없이글을뿌리며산다.또자연과학,그중에서도동물행동학을공부한덕에그냥글만써온이들에비해소재가풍부한편이다.저광활한자연에서퍼오는내글의소재는쉽게마르지않을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그의책들이번역되어잘알려진하버드대학의진화생물학자스티븐제이굴드는크고화려한붓을휘두른다.그러나가끔서평가들로부터그가도대체무슨얘기를하려는것인지모르겠다는비판을듣는다.자신의박식함을알리는데급급한나머지때로글을쓰는본분을잊는다는것이다.
그에비하면
몇년전결코짧지않았던미국생활을청산하고귀국하여처음으로원고청탁을받았을때며칠밤을꼬박새우며괴로워했던기억이난다.어려서흉내내던문학적인글쓰기와영어로배운과학적글쓰기가내안에서서로뒤엉켜싸움질만할뿐도무지게워지질않았다.
컴퓨터가아니었더라면나는아직도그전쟁에휘말려헤어나질못하고있을것이다.일단이술저술실컷들이키곤컴퓨터에모든걸왈칵토해버렸다.그러고나서차근차근주워담기시작했다.몇번의산고를겪으며그렇게끄집어낸내글은어릴때의문학적감성은조금잃었을지모르나대신간결함과명확함을얻었다.
아직도우리문인들중상당수는컴퓨터가두려워원고지에글을토하고있다들었다.나로서는상상이가질않는일이다.
남의글을읽을때문장이정확하지않으면글맛이딱떨어지기때문이다.그러면서도언젠가는과학을시로쓰리라꿈꾼다.
이제출판사들은투고원고만을전문적으로읽어주는사람을고용해야할상황이다.디지털혁명이글쓰기혁명을불러온형국인데문제는타인의글을읽고나면내자신이먼저착잡해진다는것이다(보내온원고의내용들도착잡한경우가많다).
무슨채팅방이나게시판을기웃거리지않아도도처에설익은말을글로바꿔놓은숱한문자들(글이라고하기에는너무함량미달이라는뜻에서)을만나게되는데,그순간연옥이따로없구나하는감상속으로빠져드는경우가한두번이아니다.
흡사누군가머리속에서불러주는것을저19세기말초기다다이즘의초현실주의적자동기술법으로받아적은것이아닌가하는
따라서글쓰기는
물론여기에서하늘아래새로운것이어디있느냐고말할수있지만상호텍스트성에기대면인용조차자신의독창적인글쓰기의연장임을우리는추측해볼수있다.어느비평가의‘인용만으로된글짓기를해보고싶다’는토로는바로이것을말한것이다.
그런데
삶의불행은문학의축복이된다.물론모든불운했던삶이위대한문학이되지않는다는것은새삼말할필요가없다.
역설적으로불행이뜨게하는눈은문학적인시각을갖게한다.위대한시인,작가들의삶을한번들여다보라.삶의불행을담보로하지않은작가들을찾아보기어렵다.이제는그런삶의제한적인의미가,제한적인또다른삶에서만공감을주는희소성의시대,순응의시대가되어버렸다.많은기능적인글쓰기가난무하는시대,그런시대에만족하지못하는사람들이참으로새로운글쓰기의진경시대를열어갈것임을나는희구한다.
어느날내가작가가됐을때,가장많이받은질문중하나는,어떻게습작을했느냐는것이었다.그러니까특별한문학수업방법이있었냐는질문이었는데,그때마다나는이렇게대답해왔다.
질문을던졌던사람들은농담으로생각했을테지만농담만은아니었다.
연애편지는우선,독자가분명하다.독자의취향과성격,수준이분명하다.
또한
마지막으로연애편지는,작자가가지고있는역량을총동원하게만든다는점에서좋다.그러니까연애편지는대충대충쓸수가없는글이라는얘기다.욕망이너무강하기때문에,그욕망이나로하여금,아는것모두와가진재능모두를소비하게만들었던것이다.사랑에빠지면뭔들못하겠는가.
밤을새워가며시집을뒤지게만들고수십번에걸쳐글을고치게만든다.연애편지의이런특성은글이언급하고있는대상,즉화제(話題)를사랑한다는사실에서비롯되는것이다.
나을정말로사랑하는사람의글이라면,그의문재(文才)가아무리박약하다해도어쩔수없이전해져오는따사로움이있게마련이다.개를싫어하는사람이단지애견협회에서청탁을받았다는이유만으로개에관한글을쓸수는있다.그러나그런글로사람들을감동시키기는어렵다.
나는좋은글을쓰는일이연애편지를쓰는일과결코다른것이라고생각하지않는다.감동적인연애편지에해당하는덕목들은고스란히멋진글에도들어맞는다.그러니까혹시지금부터라도
그러니까이런식이되겠다.우선,독자를한정한다.연애편지처럼한사람이라도좋고,아니면가족이나회사동료도좋다.
목표를드러낼필요는없지만적어도글쓴이만큼은확고한목표를가지고있어야한다.김구의‘백범일지’나이순신의‘난중일기’가지금도읽히는것은그들의글이독립정신고취나방어임무완수라는분명한목표를가지고있었기때문이다.반면,얼마전자살한한고위공직자의유서가별다른감동을주지못하는것은그글이궁지에처한자신의처지를변명한다는,자기스스로도납득못할어설픈목표를가지고있었기때문이다.
연애편지적작법의마지막은간단하면서도어렵다.자신이사랑하는대상을택하라.아이,꽃,나무,자전거,오토바이,여배우,뭐라도좋다.사랑하는것에대해서쓰는일은일단즐겁고유쾌하다.적어도싫어하는것에대해서쓰는것보다야얼마나좋은가.
이정도면연애편지적글쓰기의요체는다정리된셈이다.
이제는그저쓰기만하면된다.아,한가지빠트릴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