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누가쓰는가?[2]
②수필가의교훈적자질
마지막으로수필이가져야할것이바로교훈적이라는것이어야한다는것과직선적인표현은피해야한다는점이라하겠다.
수필에서삶의교훈을얻는것은어느것보다도보배로운일이며인생의아름다운경험이될수도있다.수필에있어서비판정신은글을돋보이게할수가있다.그러나비판은공정해야하며자기자신의분수를염두에두어야한다.교훈의경우에있어서도그렇지만,비판도직선적이기보다는간접적인것이수필에어울린다.이글은1983년한국수필가협회개최세미나에서김태길교수가발표한내용이다.이러한것만지킬줄안다면누구나수필가가될수있으며누구나문학가의소질을가지고있다고말할수있을것이다.이와같이좋은수필을쓸수있는요건이무엇인가를몇가지대목으로요약하였다.
(3)수필을쓰기위한준비
문학지망생이처음생각하는것은대개의경우시가아니면소설이다.그러다가여의치않으면수필이나써보자고한다.수필이쉽다고생각하기때문이다.
사실그런지도모른다.그러나이것은수필이어떤글인가를모르고하는생각이다.여하간수필을쓰고자할때에는먼저알아야할것이있다.문장이좋은것을읽어야하는일이다.그런데여기서부터벽에부딪힌다.
문장에재질이있어도,모범이될만한글을읽지않으면만권의책을읽어도글다운글을쓸수없다.좋은글이몸에배지않은상태에서쓰는것은,어둠속을헤매는것과같은까닭이다.
최근에는각종문학강좌에서수필강좌가공개적으로열리고있어쉽게공부할수가있으나,이에못지않게중요한것이좋은글을찾아읽는일이다.
하지만초보자는좋은글을찾아읽는일이쉽지않다.작자의유명도(有名度)나또는광고에의존할수밖에없고,베스트셀러라는것에빠지기쉬운까닭이다.
따라서좋은글의선택을위해서는,스승이나선배에게서소개받는것이무난한방법이다.여하간좋은글에의해스스로안목을키워나가지않으면,그만큼바른길로들어서는일은늦어진다.수필은내용도내용이지만우선문장이돼야하는글이다.따라서좋은문장을가려볼줄아는눈을가져야하고,그렇게하려면좋은글을대하는일밖에다른길이없다.
수필을쓰고자하는의미는무엇일까.
소재를만났을때수필은시작된다.그러나소재에서오는충동만으로수필이된다고는볼수없다.
스스로쓰고자하는의미가무엇인가를일단생각해보아야한다.쉽게말하면,남이읽어서의미가있겠느냐하는것이다.여기서말하는의미란도덕적이거나윤리적인것이라야한다는것이아니라,내용이독자에게얼마만큼공감을주겠느냐하는것을말한다.인간은사회를떠나살수없다.어느시대이든그사회속에소속되어살고있으며,사회적유대와인간정신에의해지탱된다.
수필에는그런정신이담겨져야한다.말하자면수필은인간끼리의공감하는세계다.
수필이신변잡담의차원을넘어,문학의영역이고자하는이유는이러한요소가들어있는것을뜻한다.수필에는일정한형식이없다.도덕적가치개념으로생각하지않아도된다.
그러나그렇다해도무엇때문에썼는가를모르게쓴글이있다.이말은독자를설득해야한다던가요구해야한다는뜻이아니다.조그마한얘깃거리밖에안되는소재일지라도,그것을통해세상을보는눈과생각하는것이인간적일때,수필은비로소가치를지닌다는얘기다.
이웃과의사랑․고뇌․연민․시대적우수(憂愁)또는비분(悲憤)등이내부에서연소되어나온글이면,이것이독자에게공감을주는글이며의미를지니는글이된다.그러면좋은수필이란어떤것인가.
(3)수필의영농설(營農說)
수필창작에임하는마음의자세에는여러의견이라든지,방법이있을수있겠지만,여기에서는우선심전정리(心田整理)를통한경지정리(耕地整理)를얘기하고자한다.심전정리(心田整理)란글자그대로마음밭(心田)을정리하는것이다.마음을넓히고바르게하듯이,글을쓰기위한마음의자세를바르게하기위해서경지정리,즉토지의이용가치를높이기위하여경지의구획정리나배수시설,관개시설,객토작업,농노개설등을시행하는일을말한다.
가령화선지에그림을그린다거나붓글씨를쓰는경우,물이묻어있는부분은먹이묻지않듯이,글을쓰는경우에도작자가지닌바의지식이나경험등의고정관념이오히려방해가되는경우가있다.어떠한사물이나사건내지는가르침에대하여제대로받아들이지않을수있기때문이다.
물레의가락이곧으면부드러운소리를고르게내지만,그가락이굽으면시끄럽게떠는소리를불규칙적으로내듯이,작자도그심성이물레의가락,즉물레로자은실을감는쇠꼬챙이처럼곧거나굽은직곡(直曲)여하의심성에따라서문장의품위가달라지게된다.
그러므로수필을창작함에있어서선생조건은마음의밭을넓히고바르게고를뿐아니라기름지게해서글의이용가치를높이는일이라할수있다.이를위해서는마치논에서물을뽑아내는배수(排水)와같이,사무사(思無邪)즉사특한생각,불필요한생각을버리고순수세계로돌아가야한다.
관개(灌漑)즉,필요한물을끌어대는관개와도같이,취사선택(取捨選擇)하여쓸것과버릴것을가려서써야한다.인사(人事)는만사(萬事)라는말이있는데,글을쓰는데있어서도역시적합한언어를찾아내어적합한자리에끼워넣는일이긴요하다.
그리고객토(客土),즉토질을개량하기위하여논밭에흙을넣는것과같이,마음을풍부히하고삶의질을높이기위하여새것을받아들여야한다.또한농삿길을수리하거나새로내는일을가리켜농로개설(農路改說)이라하는데,이는상상력의개발이라든지,유추능력(類推能力),은유기능(隱喩機能)등으로비유될수있다.
"육신을버린후에는훨훨날아서가고싶은곳이꼭한군데있다."어린왕자"가사는별나라,의자의위치만옮겨놓으면하루에도해지는광경을몇번이고볼수있다는아주조그만그별나라,가장중요한것은마음으로보아야한다는것을안왕자는지금쯤장미와사이좋게지내고있을까.그나라에는귀찮은입국사증(入國査證)같은것도필요없을것이므로가보고싶은것이다.그리고내생에는다시한반도(韓半島)에태어나고싶다.누가뭐라한대도모국어(母國語)에대한애착때문에나는이나라를버릴수없다.다시출가사문이되어금생에못다한일들을하고싶은것이다."
법정(法頂)의<미리쓰는유서>끝부분
앞에서전제한대로곧은가락같은소리를내는듯한글이다.어린이들의마음처럼,순수하기그지없는마음밭(心田)을열심히,그리고곱게가꾼듯한작품이다.
‘어린아이같지않으면천국에갈수없다"고갈파한예수의말씀처럼순수가배어있는글이다.
다음으로는농부가논밭에서쟁기질을하게될때쟁기를세워서깊이갈이를함으로써많은수확을얻듯이,사고(思考)의심화(深化)를통하여종교적상상력이라든지,철학적인식,작가적양식,역사의식등을자양으로하여아람진작품을생산해야할것이다.
"송월대를버리고다시서로이산일맥을타고내려다보니,길은뚝끊어지고수십길되는절벽이있고,절벽밑에는시퍼런강이흐른다.이절벽이낙화암이다.낙화암은옛날나(羅).당(唐)의연합군이백제의궁성을함락할때비빈(妃嬪),궁녀들이버선발로뛰어나와여기서몸을던져죽었다는곳이다.이바위에나는홀로서있다.눈을감고그때의광경이나다시그려보자?꽃같은미인들이수없이떨어진다.자개잠금비녀는내려지고,머리채는흐트러지고,치맛자락은소리치며펄렁거린다."이병기(李秉岐)의<낙화암찾는길에>중일부
이글에는작자의역사의식이현사법(現寫法)으로표현되어있다.여기에서적용한현사법은과거에일어났던사건이현재눈앞에벌어지고있는것처럼현재진행형으로나타내는기법을말한다.
"치맛자락은소리치며팔랑거린다"가바로그것이다.만일이작자가"역사의식"이없다면,이러한글은나오지않았을것이다.따라서우리가좋은글을쓰기위해서는어떤대상을그리고자하는주체인내게종교적상상력이라든지,철학적인식,역사의식,사회의식등사물을깊고넓게볼수있는고성능의렌즈가요구된다.
농부는이른봄,씨앗을뿌리기전에종자고르기를한다.
다른계통의잡종이섞이지않은순종(純種)을고르는작업을하는것은질좋고풍성한수확을내기위해서다.잡종(雜種)이섞인다거나알맹이가들어있지않고겉껍질만남은쭉정이를가려내기위하여종자(種子)를물에담가서물위로뜨는것들을제거하듯이,글을쓰는데있어서도순수하지못한어떤잡스러운생각을쫓아내는의지적작용이요구된다.
공자는일찍이사무사(思無邪),즉생각에사특함이없어야한다고했거니와불교의사홍서원(四弘誓願)가운데세번째나오는"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즉,끝없이일어나는번뇌를자르게하여달라고서원하는것처럼,글을쓰는데에도잡스러운생각을버리고,주제에기여할수있는내용이나형식을취사선택하는작업이요구된다.
다음으로씨앗을뿌려서심는파종(播種)처럼,창작의단계,즉집필에착수하는단계에이르게되는데,이때는주제가설정되어야한다.
가령사진을찍는데에도어떤구도를잡고샷터를누르듯이,쓰고자하는글의초점이맞추어져야한다.그리고는김을맨다거나하여잡초를제거하는제초(際草)작업과농약을살포하여병충해를막기위한소독(消毒)처럼,창작과정에있어서는퇴고(堆敲)라든지,잡다한생각의속진(俗塵)을털어내려는생각이라든지,잡념(雜念)을제거하고자하는자신과의싸움이있게마련이다.
그리고는곡식을타작(打作)하게되고,탈곡(脫穀)하여도정(搗精)을하게되는마지막단계처럼,작품을완성하는최고의단계에이르게된다.이러한농사의전과정은어디까지나변함없는농심이바탕이되어야하듯이,수필창작에있어서그완성을위해서는시심이라든지,작가적양식이바탕이되어야한다.
돈을벌기위해서농사하는농부는돈버는게목적이기때문에농사일을쉬는농한기(農閑期)에는도박판에서돈을날릴수도있고패가망신(敗家亡身)할수도있다.그러나농사짓는일이그저즐겁고보람있어서농사하는농부의경우는그순후한노심에의해서겨울같은농한기에도쉬지않고새끼를꼰다거나가마니를치는등농사준비를하나하나해두기때문에그런패가망신이있을수없듯이,글을쓰는창작행위도그저좋아서한다고하는순수한창작동기에서이루어지는게바람직하다.그러니까문학을인생의본질에입각해서해야지,어떤수단으로서해서는안된다는얘기다.농심(農心)이란일확천금(一攫千金)을꿈꾸는도박과는거리가멀기때문에수단으로서의문학이아니라그저정직하게살아가는본질로서의문학하는자세를견지하지않으면안된다.
"온겨울의어둠과추위를다이겨내고,봄의아지랑이와따뜻한햇볕과무르익은장미의그윽한향기를온몸에지니면서,너보리는이제모든고초(苦楚)와비명(悲鳴)을다마친듯이고요히머리를숙이고,성자(聖者)인양기도를드린다.이마위에땀방울을흘리면서,농부는기쁜얼굴로너를한아름덤석안아서낫으로스르릉스르릉너를거둔다.너보리는그순박하고,억세고,참을성많은농부들과함께자라나고,또한농부들은너를심고,너를키우고,너를사랑하면서살아간다.
보리,너는항상순박하고,억세고,참을성많은농부들과함께이땅에서영원히사라지지않을것이다."한흑구(韓黑鷗)의<보리>중끝부분
보리의순박함과강인함을농부의덕성과우리겨레의끈질긴민족성에비추어쓴작품이다.늦가을파종에서시작하여겨울을이겨낸끝내봄을맞는보리의생명력을피력하면서무르익은다음,수확에이르기까지찬미로이루어진이글은보리를2인칭의인법으로지칭하여표현하고있다.이수필은보리와농부와우리겨레를‘순박함’과‘강인함’이라는성질의이미지를동일선상에두고그의미를입체적으로통일시키고있다.즉보리이야기는농부의이야기이면서바로조국광복을꿈꾸는우리겨레의이야기인동시에농심이짙게스며있는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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