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을 파는 사람 [9] / 광고기획자 이제석 *-

생각을파는사람-여덟번째인물

셀러(seller)광고기획자이제석
셀러유형생각의농부(Idealisticfarmer)
대표상품‘뿌린대로거두리라’포스터
최신상품‘성폭력피해자진술조서’포스터
생각의농부의셀링포인트


1)스스로에게가장근본적인질문을던져라.
2)명상과산책으로생각의찌꺼기를비워라.
3)생각을이미지화하는습관을들여라.

광고기획자이제석

이남자,듣던대로꽤나‘까칠’하다.사진기자가포즈좀잡아달라고하자어색해서싫단다.부자연스러운건딱질색이라나.명함도불친절하긴마찬가지다.하얀바탕에직접펜으로쓴이름석자만덜렁박혀있다.

“나면나지,직함같은수식어는필요없다,그걸상징적으로표현한거죠.”군더더기를싫어하는그의성격은사무실인테리어에서도그대로드러난다.심플한소파와의자,널찍한회의용탁자,그리고한강이고스란히내려다보이는넓은창문이전부다.

광고천재이제석(31).
머리좀쓴다는인재들이몰리는광고계의‘수퍼스타’로불리는남자.수상내역도버라이어티하다.뉴욕의SVA(SchoolofVisualArts)재학시절,세계3대광고제의하나인‘원쇼칼리지페스티벌’최우수상부터광고계의오스카상이라는‘클리오어워드’동상,‘미국그래픽스디자인어워드’금상등1년간국제광고제에서29개의상을휩쓸었다.

더놀라운사실은그가지방대출신의간판쟁이였다는사실이다.학창시절한번도공모전에서당선돼본적없고,수많은광고회사에원서를넣었지만면접기회조차얻지못했다.결국그가시작한것은동네의간판일이다.그러다이건아니다싶어무작정뉴욕으로날아갔다.힘겹게떠난미국에서도이제석은‘루저’취급을받았다.교수는그의습작을볼때마다3초만에“넥스트(next·다음)!”를외쳤다.결국그는트럭몇대분의아이디어로치열한‘생각전투’를치른끝에광고의본고장,미국에서성공할수있었다.

전세계유수의광고회사들이그를모셔가기위해경쟁했지만그의선택은또하나의반전이었다.지난2009년자신의광고회사‘이제석광고연구소’를직접설립한것이다.그것도상업광고가아닌공익광고를전면에내세우며.이후그가만든광고들은‘촌스럽고뻔한’공익광고의프레임을완벽히깼다.‘신문이지만누군가에게는이불’이란메시지가담긴노숙자지원캠페인신문광고,경찰청의학교폭력방지캠페인인‘빵셔틀금지’경찰광고판,광화문이순신장군의‘탈의’동상등그가손대는족족이슈가됐다.공익광고가기발한데엣지(!)까지있으니대중들이알아서사진찍고널리널리퍼뜨렸던것이다.

자연과인간의섭리최우선하는생각의농부
‘근본질문’으로생각의씨앗부터차별화하라


산지몇년은돼보이는허름한티셔츠에면바지.아무렇게나빗은머리.이제석은언뜻보면시골농부같다.안그래도한달전까지그는시골에있었단다.조용한미국의산골마을에서1년가까이재충전을끝내고돌아왔다는것이다.그동안수확한(?)생각을머릿속에한가득담은채.

“요즘제가하는일이농사짓기와비슷하단생각을많이해요.자연에서얻어내지않는게없는거같아요.과학,예술은물론이고아이디어조차도요.디자인만봐도매킨토시는해파리의투명함에서착안했고헬리콥터도잠자리모양에서따왔잖아요.”

그는자신의아이디어도결국자연에서온것이라고말한다.내가잘나서생각해낸것인줄알았는데알고보니공중에떠다니는공기와소리,촉감,색깔,이모든것이생각의재료였다는것이다.자연은무한대의콘텐츠원전(原典)이다.누군가자신의시각으로재해석한콘텐츠는재가공이힘들지만원전은얼마든지창조적인변형이가능하다.그래서옛날부터생각의대가들은자연을가장큰스승으로여겼다.

중요한것은‘이미나와함께있는그것’을알아보는눈과감수성이다.그는앞으로아이를낳으면고향인대구에서키울작정이다.닌텐도대신누렁이와어울리며흙을밟고바람소리를들어야차별화된인간이된다는것이다.보통의서른한살들에게는찾아보기힘든통찰과배짱이다.그는생각을키워내는데있어서는이미노련한농사꾼이었다.

생각의농부(Idealisticfarmer),이제석이광고천재가된이유는무엇일까.첫번째로나는그가심는씨앗자체가달랐다고본다.그는어렸을때부터꽤나까칠했다.남들이이게좋다,이쪽으로가야한다고말할때마다팔짱끼고물었다.정말그럴까?왜그런데?왜공부를해야하는데?공부라는게인생에서어떤의미인데?스스로에게근원적인질문을끊임없이던졌다.그렇게심사숙고해서나온판단이보편적인기준과다를지라도주눅들지않았다.오히려‘내가남들과다른것은당연한것’이라는강한확신을가졌다.이는광고를만드는데있어서도가장중요한씨앗이됐다.

“이번에광고해야할게요구르트면나한테묻는거예요.요구르트가뭐지?술이라면혼자산책하면서나한테물어요.술은뭘까.어떤사람에게술은아플때먹는진통제일것이고누군가에게는수면제,누군가에게는기억을잊는망각제잖아요.해석에따라서술의디자인,맛,가격,즐기는방법이다달라지는거죠.”

그는광고란,결국클라이언트에게새롭고참신한해석을파는것이라고말한다.그러려면생각의출발은가장기본적이고본질적인것으로부터다시시작해야한다는것이다.나는그얘기에백번동감했다.광고가참신한해석을판다면강의는참신한깨달음을파는직업이다.때문에나역시강의를만들때항상근원적인질문부터한다.이번달주제가소통의기술이라면‘소통이도대체뭔데?’부터시작한다.자기계발이라면‘자기계발이라는게과연무엇인가’부터브레인스토밍을시작한다.첫시작부터나다우면서도신선한재정의가이뤄지면바로그지점에서생각이가지를치며쭉쭉뻗어나간다.차별화된콘텐츠를원한다면생각의파종단계부터씨앗이달라야한다는것이다.그러나많은사람들이이런질문을하지않는다.자기가이미안다고생각하기때문이다.각종미디어가심어놓은얄팍한정보와이미지,세상사람들의보편적편견을자신의생각인양착각한다.그래서이제석은‘나는쥐뿔도몰라’에서부터시작하라고말한다.

“사람들이자꾸창의력,창의력하는데그말자체가틀렸어요.생각은능력이만드는게아니고창의적태도와발상하는관점에서나오는거거든요.내가아무것도모른다는것을인정하고스스로에게묻고따지는태도와습관,아이디어는바로여기서시작돼요.”

산책과명상으로생각찌꺼기버리는데집중
이미지화훈련통해생각숙성시켜

▲서울시종로구신문로1가한빌딩외벽에붙은이제석의작품.

그렇다면이렇게파종된이제석의생각씨앗은어떤식으로재배될까.그는성실한농부가그러하듯,자신의일거수일투족을철저히생각농사에맞춘다.생각이자라기좋은최적의환경을만드는것이다.뇌가가장활발하게움직일수있도록일찍자고일찍일어나는것은기본.많은디자이너들이마감에쫓겨밤샘을하지만그는예외다.그치열했던학창시절에도밤을새워본적이별로없단다.잠을못자면뇌가멈춰버리기때문이다.어차피인간이집중할수있는시간은하루에한두시간밖에안된다.때문에몇시간집중적으로일하고나머지시간에는푹쉰다.고도의집중력이필요한일은주로오전에배치하는등스케줄관리도치밀하다.작업중에는술·담배도절대하지않는다.

그는생각도‘유기농’으로재배한다.인위적으로채우는것보다불필요한찌꺼기를비우는데집중한다.최대한친환경적으로.그래서그가선택한방법이산책과명상이다.서울시마포구상수동에있는사무실에서작업하다가틈만나면한강변을따라걷는다.한시간정도걷다보면머리가맑아져새로운아이디어들이샘솟는다.그래서돌아올때는뛰어들어오는경우가많다.산책은콘텐츠의보고,자연속에서나자신과진지하게소통할수있는효과적방법이다.그래서칸트,베토벤등동서양의수많은현자들은하나같이산책을즐겼다.특히베토벤은매일오후2시까지일을한다음저녁까지산책하는것이하루일과였다.모두가잠든밤중까지산책을계속할때도있었다.

명상은어렸을때부터자연스럽게터득했다.부모님이맞벌이여서집에늘혼자있는편이었는데공부에관심도없어서혼자생각하고그림그리면서보낸시간이많았다.

“브레인스토밍이시야를넓혀준다면명상은뇌를수직적으로움직여깊이있는상태를만들어주죠.가만히커피한잔을앞에놓고몇시간씩멍때리고있으면많은것들이저절로떠오릅니다.”

그는불교에도관심이많다.종교를믿지는않지만불교의개념들중에서무릎을탁치게만드는것들이많다.한남자가들고있는총이한바퀴돌아자신의뒤통수를겨냥하고있는‘뿌린대로거두리라(Whatgoesaroundcomearound)’는광고도불교에서영감을얻은작품이다.나는이반전포스터를보면서죽비로뒤통수를한대얻어맞는것같았다.그림한장으로인과응보의법칙을이보다더강렬하게보여줄수있을까.이제석은복잡한내용을그림한장으로날카롭게찌르는것이자신의필살기라고말한다.모든군더더기를제거하고가장깊고순수한곳에서퍼올린생각하나로.

여기서한가지짚고넘어가야할것이이제석의생각도구다.그는이미지를통해자신의생각을발전시켜나간다.남들이글을쓰듯그림으로자신의생각을쓰는것이다.생각하는데있어이미지화는중요한도구다.시인존드라이든(JohnDryden)은“이미지를만들어낸다는것은그자체만으로시의생명이자정점”이라고말했다.찰스디킨스는자신의소설이“머릿속에서보았던것을글로적은것에불과하다”고말했다.나역시강의를만들때마다수많은생각도형을그린다.머릿속의수많은생각을원,그래프,삼각형,사각형등수많은이미지들로정리하는것이다.그러다보면아이디어와아이디어사이의관계가보인다.핵심논리와법칙을발견하기도한다.이미지화를통해나만의추상적아이디어에서세상에팔리는콘텐츠로업그레이드되는것이다.그런면에서‘생각을그림으로쓰는’그의직업자체가콘텐츠를재배하고숙성시키는최적의밑거름이지않았을까.

이제석을세계광고계에각인시킨반전포스터작품‘뿌린대로거두리라’.


굴뚝·물탱크등재활용해최소비용최대효과

최종출하지는유엔과전세계,노벨평화상꿈꾼다


광고는자본주의의꽃이다.가장지능적으로,가장콘텐츠적으로사람들을유혹한다.광고를보고있으면‘내가저걸사면조금더행복해질것’이라는착각에빠진다.하지만그는실제광고를통해사람들을조금더행복하게만들수있다고믿는다.생각의농부이제석의출하지는기업이아닌공익을목적으로하는NGO,비영리단체,정부가대부분이다.(‘이제석광고연구소’의프로젝트중80~90%가공익광고다.)그가만드는공익광고의목표는인식의전환이다.사회문제를물리적으로해결하지말고심리적으로풀어보자는거다.

“예를들어외국인에대한시선이안좋다고해서추방이라는물리적카드를꺼내면어떻게될까요?엄청난사회적비용을치러야하겠죠.우리가내놓는해결책은외국인을바라보는사람들의편견과오해,시선을바꾸자는겁니다.이게훨씬더친자연적이고효율적인해결책이죠.앞으로는이런방식이사회의많은문제를풀어내는핵심열쇠가될겁니다.”

그는수년간공익광고일을하면서저예산으로최고의효과를보기위한나름의노하우도쌓았다.비영리단체를제대로광고하려면보통수천만원이든다.하지만그는사방에있는모든것을‘재활용’한다.굴뚝밑에권총사진을붙여지구온난화를경고하고,빌딩위물탱크밑에물을길으러가는아프리카아이의사진을붙여물부족문제를환기시키는식이다.그나저나아무리좋은일을한다지만먹고는살아야하지않나?까칠한이남자,쿨하게말한다.“저통장에돈많아요.”

문제는그게은행통장이아닌미래의통장이라는거다.상업광고해서버는족족사람데려다쓰고,재료비쓰다보면남는건노하우뿐이다.그러나그렇게한철농사잘지어서수확한그것이야말로가장값비싼무형자산이다.그동안쌓아놓은무형자산의가치를매기자면열손가락안에들거란다.전세계적으로도이제석광고연구소처럼공익광고를전문적으로다루는곳은없다.가정폭력,다문화가정,자살등사회각각의이슈들을다룬방대한데이터가매년쌓여가고있다.10년정도지나면전세계에서‘함께하자’며먼저손내밀게될거라는얘기다.

“10년정도지나제나이사십이되면이분야최고가될것이고,육십이되면노벨평화상도기대하고있어요.”

표정을보니농담이아니다.그는진심으로확신하고있었다.이제석을보며나도확신한다.앞으로한국사회에서공공커뮤니케이션은이제석이진리다.그는자신의‘생각밭’에자본과권력이라는약을일찌감치치워버렸다.건강한까칠함으로자연과인간의가치만순수하게담으려애썼다.그렇게탄생한유기농콘텐츠는우리사회의해독제가되고있지않은가.세상을바꾸고싶다면생각의농부,이제석에게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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