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수필범위는여러가지형식을포함시켜논설문까지를두루포함하고있음은다아는사실이다.그러나본질적으로수필에서는논설문을제외하고는두가지요소로이루어진다.작가가개인적으로보고듣고체험한것에,생각과느낌(감상)을붙이는일이다.이부분이수필의주제가된다.작가가보고듣고체험한것만을쓴다면그것은단순한보고문에지나지않고,또감상쪽으로만치우친다면현장감없는,삶의실체성이없는공허한관념에흐르기쉽다.느낌(감상)이란작자의개성에따라나타나는것이나삶에대한철학이다.그러므로이것이어떻게드러나느냐에따라수필의질의갈림길이된다.두가지요소가어떻게드러나는가를예문으로보자.
①어제는모처럼벼르던가족나들이를했다.만원버스로30분,처음으로서오릉엘갔다.②서울의중심부에서멀지않은곳이지만,놀랄만큼울창한산림(山林)이마음속깊이까지시원하게해준다.
①세검정골짜기나관악산에가본일이있으나,②언제나발들여놓을틈도없어짜증이앞서곤했다.그런데서오릉은워낙넓어서인가,북적거리지않아하루의휴식처로는안성맞춤이다.
①아내는가지고간음식을펴놓고,수도장치가된곳에서물을떠왔다.②별다른음식이아닌데도자연속에나와먹는맛이,집에서먹는것과는다른맛이다.숲속이싱그럽고신록의향기속공기가맑은탓일것이다.-H사보(私報)에서-
예문속의①의부분은작자가직접체험한것을나타낸것이고,②의부분은작자의느낌이나생각을나타낸부분이다.작자에따라생각(사상)하는바가다르게나타나나,수필은이것에의해좌우되며,작자의인격적인것이드러난다.묘사나표현을잘한다해도,생각의깊이가없을땐좋은글이되지않는다.
앞의예문이만일다음과같이되었다고했을때를생각해보자.
어제는모처럼벼르던가족나들이를했다.서울의근교는거의가보지않은곳이없어,가족회의끝에서오릉으로향했다.우리들은시원한숲속그늘한군데를차지했다.돗자리를깔고누워책을펴들었다가잠이들었다.깨어났을때는이미12시가지나아내는점심준비를했다.집에서와같이,특별한것이아니고보통으로싸온것들이었다.점심을마치고아이들과잔디밭에서공을찼다.여기저기서점심을마친가족동반의행락객들이자리를깔고쉬고있었다.오후가되어사람들이자리를뜨기시작했다.4시쯤되어우리도자리를챙겨돌아올준비를했다.
그때마침직장친구가족들이저쪽에서돌아나왔다.그들도우리처럼하루를교외에서지낸셈이다.모처럼의하루를교외에서지내고돌아왔다.
문장자체로는흠이없다.독자로하여금밖에서지낸일을잘알수있게쓴점은,섣부른생각을붙인것보다오히려선명하다.하지만작자의느낌이나생각은한군데도들어가있지않아생동감이없다.초등학생의작문만도못한죽은글이다.사상,즉생각하는부분이들어있지않은까닭이다.’세수하고밥먹고학교에갔다’식의어린이들과다를바가없는보고문에지나지않는다.
체험부분과생각하는부분이문장조직에서어떤효과를내고있는가를다시보자.
유람선에서바라보는홍콩구룡항의야경은불빛으로장관을이루고이었다.선실(船室)의만찬회는서서히무르익어갔다.주최측인홍콩을비롯하여한국․미국․캐나다․멕시코․영국․서독․불란서등기타기억할수없는공산권나라를포함한30개국에서모인,6백여명의부부동반바다의사나이들은,각자둥근테이블에둘러앉아웃음과이야기에꽃을피우고있었다,앞자리에는밴드에서흘러나오는경음악에맞추어몇사람이춤을추고있는모습도보인다.
나는몸에익지않은모임에가슴설레면서,포도주잔을들어이국적인분위기에젖어들고있었다.그럴무렵,갑자기악단쪽에서아리랑노래가울려퍼졌다.세계도선사(導船士)회원중에서몇사람이나아리랑을알겠는가.우리일행은귀에익은노래에한동안멍하니듣고있었다.듣고있다기보다는벌써흥분하고있었다.마침남편이그노래소리에맞춰일어섰다.그리고무대위로나가서마이크를잡았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요……"
우유빛바지에다갈색비로드상의를입은남편은,마치오늘밤대가수처럼무대를누비고있었다.흥겹던분위기가갑자기물을끼얹은듯조용해졌다.슬픈정감으로불려지는선율때문일까.노래소리는밴드에맞추어계속이어져나갔다.어느결에우리측일행부인들도그노래소리에합류가됐다.내나라가아닌남의나라에서듣는아리랑……목이메어이어지지가않았다.
나는문득텔레비젼에서보았던,몬트리올올림픽에서레슬링으로금메달을따낸Y선수의얼굴과LA올림픽에서메달을목에건우리선수들이,땀과눈물을흘리며태극기가올라갈때따라부르던모습들을떠올렸다.아리랑을부르는남편의얼굴은선수들의얼굴과다를바가없었다.
노래를들으면서다시떠오르는것은어린시절어머니의손을잡고보았던아리랑영화의한장면이었다.영화속의주인공나운규는붉은피를본충격으로제정신으로돌아오지만,끝내오랏줄에묶여아리랑고개를넘는다.그리고주인공의모습과함께주제가인아리랑이깔린다.
나는이영상을지금도잊을수가없다.이영화는속박하는자와속박당하는자의대립을암시하였다.주인공나운규를광인(狂人)으로설정함으로써,나라를빼앗겨제정신이될수없었던우리민족의비애를상징한것이아니었던가.
그아리랑이새로운감흥으로뇌리를스친다.
단상의연주단이많은나라의노래를다제쳐놓고,청하지도않은아리랑을어떻게해서연주했는지는알수가없었다.앙코르와함께손뼉치는소리에노래는그칠줄을몰랐다.
내나라에서예사로듣던아리랑노래를조국을떠나서들으니,그토록가슴에와닿을수가없었다.해외로나가서는누구나애국자가된다고한다던가.
세계도선사회원중에는아직도한국을모르는사람들이많았다.그날총회에서있었던일을잊을수가없지만,오전아홉시부터점심시간한시간을쉬고오후다섯시까지회의는계속되었다.
총회의내용은도선사헌장의초안을놓고각국대표들이의견을교환하는것이었다.한국대표인남편은의견을제시하기전에,우리나라를알지못하는대표들에게대한민국표지판에사우스코리아로표기되어있는것을지적하며,"여러분,우리나라정식국명은리퍼블릭오브코리아라고합니다.정정해주시기를정식으로요망합니다……."
그리고이어서"수도서울은지금’88올림픽게임을주최하는준비로하루가다르게발전하고있습니다."하고설명을했다.그리고헌장초안에대한의견을제시했다.
발언이끝나자주최측에서는,처음에놓았던팻말을거두고리퍼블릭오브코리아로쓴팻말로바꾸어놓으며정중히사과했다.
낮에는연설과밤에는아리랑을부른남편의얼굴에서,조국에대한애정을느꼈다.민간외교가따로있겠는가.일본대표의부인이무엇을아리랑이라고하느냐고묻는다.
나는아리랑노래만알지설명은어려웠다.우리나라에서널리부르는민요라고만대답할수밖에없어부끄러웠다.일본말로토를달아주면서따라불러보라고했다.
1984년12월4일홍콩구룡항선상의밤은아리랑노래와더불어깊어갔다.유람선은천천히구룡부두에닿았고숙소인쉐라톤호텔로돌아갈때까지,각국회원들은우리들에게따뜻한우정의미소를던져주었다.다음총회장소인파리에서다시만나도,만찬회의세계도선사와그부인들은리퍼블릭오브코리아의아리랑을기억할것이다.
이국에서부른아리랑속에,작자의주체적사상이드러나고있다.단순한여행기록에그치지않고,무엇인가를말하고자한의도가나타났다.머나먼이역에서의아리랑,그것은바로조국애다.이조국애로연결된얘기가작자의생각,사상이다.이사상이독자를공감의세계로이끈다.체험의부분과사상의부분을생각하면서예문을다시보자.
연일찌는듯한더위가2주째계속되고있다.올해도삼베고의에모시적삼을입기로했다.삼베옷을입을때면고향의일이떠오른다.텃밭에는삼이심어졌고,할머니와어머니는연중일과처럼삼베를낳으셨다.6월중순쯤에삼을베어낸다.나무칼로삼잎을털어내고,삼대길이만큼크게만든양철가마에넣어하룻밤을쪄낸다.밤새도록찌고나서아침에꺼내놓으면,동네아낙들이품앗이로삼대껍질을벗겨낸다.
이것을줄에널어말려거두어두었다가,농사일이한가해지면할머니와어머니는일을시작하신다.
말린삼을물에적셔잘게쪼개고,이것을무르팍에대고비벼감아한가닥실이되게이어나간다.이작업을일러삼을삼는다고한다.
한해겨울삼아놓으면커다란항아리같은실덩이가몇개생긴다.할머니와어머니는봄이되기를기다리고,봄이오면이실덩이를푼다.+자형돌개라는실감개를빙글빙글돌리며그돌개에풀어감는다.타래를만드는것이다.
이실타래는껍질을벗겨원사(原絲)를만든다.양잿물로삶은것을냇가로들고나가빨래를쳐대듯빨아대면,실은비로소원사가되는것이다.이것을바딧살에한올씩꿰고,피워놓은불위를지나면서풀칠을해서말린다.이때도꼬마리라는것에감는것인데,이것이삼베는매는일이다.할머니와어머니는긴긴봄날이면바깥마당에서이런작업을하셨다.이제남은것은베틀에올려놓는일뿐이고,이런작업중간에서또한가지의일거리가있다.도꼬마리에감아올린것은날(經)이고이날에는씨(緯)를넣을실꾸리를겯는일이그것이다.할머니와어머니는밤이깊도록꾸리를결으셨다.
삼베의품질은넉새베니,엿새베니,일곱새베니해서등급처럼말한다.이것은바디의칸살이넓고좁음에따라삼베가곱게짜여지고굵게짜여지는것을말한다.굵고거친것일수록숫자가아래로내려오고,고운것일수록숫자가높여져불린다.내가입은옷은일곱새베이지만,고향의머슴이입던옷은석새가아니면넉새베였다.
어머니는이른봄부터늦봄까지베틀에올라베를짜셨다.한필을짜내는기간은보통2주쯤으로기억한다.이렇게짜낸것은모두식구들의옷이되었다.어쩌다남는것은장에내다팔기도하였다.그시절엔모두가제각기삼베를낳아입었다.(하략)
위글은삼베옷을입었다는부분에서생각하는부분이조금비치고있을뿐,오직삼베낳는얘기를백과사전처럼설명하고있을뿐이다.따라서생각하는부분이들어가지않아작자의인격적인것이보이지않고있어아무런감흥이없다.
문맥이통하고묘사가정확해도이런글은좋은수필이되지아니한다.작자의사상이없는까닭이다.적어도할머니,어머니에대한감상한토막쯤은들어가야하지않겠는가.그러나이런류의글이종종눈에띈다.
앞의[예문3]과[예문4]를통해서,수필이갖추어야할두가지요건이어떤것인가를어렴풋이나마짐작할수있을것이다.
숭늉에는한국의맛이있다고들한다.
나역시조석으로숭늉을마실때마다한국을느낀다.숭늉에는은은한온돌의장판색같은빛깔이있고,역시그렇게구수한맛이있다.그러나그빛깔은있는듯하면서도없는것같고그맛은없는듯하면서도있는것같다.
마시고나야비로소그맛을알수있으며,따라놓고봐야그빛깔을볼수가있다.
잡힐듯말듯한여운이입술위에싱그럽다.
그러한숭늉속에는무뚝뚝하고정에겨운할아버지의기침소리가있고,외할머니의인자하고따사로움같은손길이있고,춘향의옷자락같은음향이있다.
(1)위의글에쓰인소재나내용에서친근감을느낄수있는가?친근감을느낄수있다면,그까닭은무엇인가?
→이글의중심소재인’숭늉’은우리생활에서일장성적으로접하는것이며,글쓴이의생각과느낌이대해우리도대개함께공감하는것이기에친근감을준다.
(2)위의글은숭늉의어떤점을예찬했는가?
→숭늉의빛깔과맛.있는듯하면서도없는듯한은은하고정감있는그빛깔과맛에서우리민족의독특한정서를말하고있다.
(3)자신의경험을바탕으로하며,밑줄그은부분에숨겨진뜻을알기쉽게풀이해보자.
→할아버지는겉으로는무뚝뚝하시나손자,손녀를사랑하시는짙은정이있듯이,숭늉도겉으로는확연히드러나지않으면서도은근히사람을끌어당기는듯한힘이그속에있는것이다.외손자,외손녀를아끼시는외할머니의정이담겨있고,강풍이아닌봄바람에살짝나부끼는춘향의옷자락소리가여운을남겨주듯숭늉에도이러한은근한맛이담겨있음을나타내고있다.